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券 第三 塔像 第四- 南月山 南越山 [亦名甘山寺] [또한 감산사(甘山寺)라고도 한다.] 寺在京城東南二十許里. 金堂主彌勒尊像火光後記云 “開元七年己未二月十五日 重阿飡金志誠 爲亡考仁章一吉飡 亡妃觀肖里夫人 敬造甘山寺一所石彌勒一軀. 兼及愷元伊飡 弟良誠小舍玄度師 姉古巴里 前妻古老里 後妻阿好里 兼庶兄及漢一吉飡一幢薩飡 聰敏大舍 妹首肹買等 同營玆善. 亡妣觀肖里夫人 古人成之 東海欣支邊散也.”[古人成之以下 文未詳其意 但存古文而已 下同]. 사재경성동남이십허리. 금당주미륵존상화광후기운 “개원칠년기미이월십오일 중아찬김지성 위망고인장일길찬 망비관초리부인 경조감산사일소석미륵일구. 겸내개원이찬 제양성소사현석사매고파리 전처고노리 후처아호리 겸서형금한일길찬이당살찬 총민대사 매수힐매등 동영자선. 망비관초리부인 고인성지 동해흔지변산야.”[고인성지이하 문미상시의 단존고문.. 券 第三 塔像 第四- 臺山 月精寺 五類聖衆 臺山 月精寺 五類聖衆 按寺中所傳古記云 慈藏法師 初至五臺 欲覩眞身 於山麓結茅而住 七日不見. 而到妙梵山 創淨岩寺. 안사중소전고기운 자장법사 초지오대 욕도진신어산록결모이주 칠일불견. 이도묘범산 창정암사. 절 안에 전해오는 옛 기록을 보면 자장법사(慈藏法師)는 처음 오대산(五臺山)에 이르러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풀로 집을 짓고 머물렀지만 7일이 되도록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묘범산(妙梵山)으로 가 정암사(淨岩寺)를 세웠다. 後有信孝居士者 或云幼童菩薩化身. 家在公州 養母純孝 母非肉不食 士求肉 出行山野. 후유신효거사자 혹운유동보살화신. 가재공주 양모순효 모비육불식 사구육 출행산야. 그 후에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있었는데, 혹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그의 집은 공주(公州)에 있었는데 어머니 봉양에.. 券 第三 塔像 第四- 溟州五臺山 寶叱徒 太子傳 溟州五臺山 寶叱徒 太子傳記 [古河西府也] [고하서부야] [명주는 옛날 하서부(河西府)이다.] 新羅淨神太子寶叱徒 與弟孝明太子 到河西府世獻角干家一宿. 翌日踰大嶺 各領一千人 到省烏坪 累日遊翫 太和元年八月五日 兄弟同隱入五臺山. 徒中侍衛等 推覓不得 並皆還國. 신라정신태자보질도 여제효명태자 도하서부세헌각간가일숙. 익일유대령 각영일천인 도성오평누일유완 태화원년팔월오일 형제동은입오대산. 대중시위등 추멱부득 병개환국. 신라 정신왕(淨神王)의 태자 보질도(寶叱徒, 태자 보천(寶川)을 말함)는 동생 효명(孝明) 태자와 함께 하서부(河西府)의 세헌(世獻) 각간(角干)의 집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큰 고개를 넘어 각자 1,000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며칠을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서기 64.. 券 第三 塔像 第四- 臺山 五萬眞身 臺山 五萬眞身 按山中古傳 “此山之署名眞聖住處者 始自慈藏法師.” 初法師欲見中國五臺山文殊眞身 以善德王代貞觀十年丙申[唐僧傳云十二年 今從三國本史]入唐. 안산중고전 차산지서명진성주처자 시자장법사 초법사욕견중국오대산문수진신 이선덕왕태정관십년병신[당승전운십이년 금종삼국본사]입당. 산중고전(山中古傳)을 살펴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다. “이 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기록한 것은 자장법사(慈藏法師)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법사가 중국 오대산(五臺山)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고 싶어서 신라 선덕왕(善德王) 때인 정관(貞觀) 10년 병신(서기 636)에[당승전(唐僧傳)에 12년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서는 삼국본사(三國本史)의 기록에 따른다.] 당나라에 들어갔다. 初至中國太和池邊石文殊處 虔祈七日 忽夢大聖授四句揭... 券 第三 塔像 第四- 魚山佛影 魚山佛影 古記云 “萬魚山者 古之慈成山也 又阿耶斯山.[當作摩耶斯 此云魚也] 傍有呵囉國. 昔天卵下于海邊 作人御國 卽首露王. 當此時 境內有玉池 池有毒龍焉. 萬魚山有五羅刹女 往來交通. 故時降電雨 歷四年 五穀不成. 王呪禁不能 稽首請佛說法. 然後羅刹女受五戒 而無後害. 故東海魚龍 遂化爲滿洞之石 各有鍾磬之聲.”[已上古記] 고기운 “만어산자 고지자성산야. 우아야사산[당작마이사 차운어야] 방유가라국 석천한하우해변 작인어국 즉수로왕. 당차시 경내유옥지 지유독룡언. 만어산유오나찰녀 왕래교통. 고시강전우 역사년 오곡불성. 왕주금불능 계수청불설법 .연후나찰녀수오계 이무후해. 고동해어룡 수화위만동지석 각유종경지성.”[이상고기] 고기(古記)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 券 第三 塔像 第四- 洛山 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洛山 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昔義湘法師 始自唐來還 聞大悲眞身住此海邊窟內 故因名洛山 盖西域寶陁洛伽山 此云小白華 乃白衣大士眞身住處 故借此名之. 석의상법사 시자당래환 문대비진신주차해변굴내 고인명낙산 개서역보타낙가산 차운소백화내백의대사신신주처 고차차명지. 옛날 의상법사(義湘法師)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굴에 산다는 말을 듣고 낙산(洛山)이라 이름지었으니, 서역에 관세음보살이 산다는 보타낙가산(寶陁洛伽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을 소백화(小白華)라고도 하는데, 백의대사(白衣大士)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곳이므로 이것을 빌어 이름을 삼은 것이다. 齋戒七日 浮座具晨水上 龍天八部侍從 引入崛內. 參禮空中 出水精念珠一貫給之 湘領受而退 東海龍亦獻如意寶珠一顆 師捧出. 更齋七日 乃見眞容. .. 券 第三 塔像 第四- 芬皇寺 千手大悲 盲兒得眼 芬皇寺 千手大悲 盲兒得眼 景德王代 漢岐里女希明之兒 生五稔而忽盲. 一日其母抱兒 詣芬皇寺左殿北壁畫千手大悲前 令兒作歌禱之 遂得明. 경덕왕대 한기리여희명지아 생오임이홀맹. 일일기모포아 지분황사좌전북벽화선수대비전 영아작가소지 수득명. 경덕왕(景德王) 시대에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여자 희명(希明)의 아이가 태어난 지 5년 만에 갑자기 장님이 되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분황사(芬皇寺) 왼쪽 전각 북쪽 벽에 그려진 천수대비(千手大悲) 앞으로 나아가 아이에게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게 하였더니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其詞曰 膝肹古召旀 二尸掌音毛乎支內良 千手觀音叱前良中 祈以支白屋尸置內乎多 千隱手叱千隱目肹 一等下叱放一等肹除惡支 二于萬隱吾羅 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邪阿邪也 吾良遺知支賜尸等焉 放冬矣用屋尸慈悲.. 券 第三 塔像 第四- 南白月 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南白月 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白月山兩聖成道記云 白月山在新羅仇史郡之北.[古之屈自郡 今義安郡] 峰巒奇秀 延袤數百里 眞巨鎭也. 古老相傳云 백월산양성성도기운 백월산재신라구사군지북.[고지굴자군 금의안군] 봉만기수 연무수백리 진거진야. 고노상전운 「백월산양성성도기(白月山兩聖成道記)」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백월산(白月山)은 신라 구사군(仇史郡)의 북쪽에 있었다.[옛날의 굴자군(屈自郡)이고 지금의 안의군(義安郡)이다.] 산봉우리는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산줄기는 수백 리에 걸쳐 뻗쳐 있었으니, 참으로 큰 진산(鎭山)이었다. 옛 노인들이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昔唐皇帝 嘗鑿一池. 每月望前 月色滉朗 中有一山 嵓石如師子 隱映花間之影 現於池中. 上命畵工圖其狀 遣使搜訪天下. 至海東 見此山有大師子嵓 山之西南二千步許 有三山 其名花..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