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遺事

券 第三 塔像 第四- 臺山 月精寺 五類聖衆

臺山 月精寺 五類聖衆

 

按寺中所傳古記云 慈藏法師 初至五臺 欲覩眞身 於山麓結茅而住 七日不見. 而到妙梵山 創淨岩寺.

안사중소전고기운 자장법사 초지오대 욕도진신어산록결모이주 칠일불견. 이도묘범산 창정암사.

 

절 안에 전해오는 옛 기록을 보면 자장법사(慈藏法師)는 처음 오대산(五臺山)에 이르러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풀로 집을 짓고 머물렀지만 7일이 되도록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묘범산(妙梵山)으로 가 정암사(淨岩寺)를 세웠다.

 

後有信孝居士者 或云幼童菩薩化身. 家在公州 養母純孝 母非肉不食 士求肉 出行山野.

후유신효거사자 혹운유동보살화신. 가재공주 양모순효 모비육불식 사구육 출행산야.

 

그 후에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있었는데, 혹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그의 집은 공주(公州)에 있었는데 어머니 봉양에 효성을 다하였다. 어머니는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거사는 고기를 구하기 위해 산과 들로 돌아다녔다.

 

路見五鶴射之 有一鶴落一羽而去. 士執其羽 遮眼而見人 人皆是畜生. 故不得肉 而因割股肉進母.

로견오학사지 유일학락일우이거. 사집기우 차안이견인 인개시축생. 고부득육 이인할고육진모.

 

어느 날 길에서 학 다섯 마리를 보고 활로 쏘았는데 그중 한 마리 학이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버렸다. 거사는 그 깃털을 주워 그것으로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짐승으로 보였다. 그래서 고기는 구하지 못하고 자신의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 어머니께 드렸다.

 

後乃出家 捨其家爲寺 今爲孝家院. 士自慶州界至河率 見人多是人形. 因有居住之志 路見老婦 問可住處 婦云 過西嶺 有北向洞可居.” 言訖不現.

후내출가 사기가위사 금위효가원. 사자경주계지하솔 견인다시인형. 인유거추지지 노견노부 문 가주처 부운 과서령 유북행동가거.” 언흘불현.

 

훗날 출가하였는데, 자기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으니, 지금의 효가원(孝家院)이다. 거사가 경주 경계 하솔(河率)에 이르러 깃털로 눈을 가리고 사람들을 보았더니 그제야 대부분 인간의 형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곳에 머물러 살기로 마음 먹고, 길에서 어느 늙은 부인을 만나 살만한 곳을 물어보았더니, 그 부인이 말하였다. “서쪽 고개를 넘으면 북쪽으로 향한 골짜기가 있는데, 그곳이 살만합니다.” 말을 마치자 이내 보이지 않았다.

 

士知觀音所敎 因過省烏坪 入慈藏初結茅處而住 俄有五比丘到云 汝之持來袈裟一幅 今何在?” 士茫然 比丘云 汝所執見人之羽是也.”

사지관음소교 인과성오평 입자장초결모처이주 아유오비구도운 여지지래가사일폭 금하재?” 사망연 비구운 여소집견인지우시야.”

 

거사는 관음보살의 가르침인 것을 깨닫고 즉시 성오평(省烏坪)을 지나서 자장법사가 처음 풀로 집을 지었던 곳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런데 잠시 후 다섯 명의 승려가 오더니 말하였다. “그대가 가지고 온 가사 한 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거사가 어찌된 일인지 몰라 멍하니 있자, 승려가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쥐고 사람을 보는 깃털이 바로 그것이다.”

 

士乃出呈 比丘乃置羽於袈裟闕幅中相合 而非羽乃布也. 士與五比丘別後 方知是五類聖衆化身也.

사내출정 비구내치우어가사궐폭중상합 이비우내포야. 사여오비구별후 방지시오류성중화신야.

 

거사가 곧 내어주자, 승려는 곧 깃털을 가사의 찢어진 곳에 대었는데 꼭 맞았다. 깃털이 아니고 베였던 것이다. 거사는 다섯 중과 작별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다섯 성중의 화신임을 알았다.

 

此月精寺 慈藏初結茅 次信孝居士來住. 次梵日門人信義頭陁來 創庵而住 後有水多寺長老有緣來住. 而漸成大寺. 寺之五類聖衆 九層石塔 皆聖跡也. 相地者云 國內名山 此地最勝 佛法長興之處云云.”

차월정사 자장초결모 차신효거사래주. 차범일문인신의두타래 창암이주 후유수다사장노유연래주. 이점성대사. 사지오류성중 구층석탑 개성적야. 상지자운 국내명산 차지최승 불법장흥지처운운.”

 

이 월정사(月精寺)는 자장법사가 처음으로 풀을 엮어서 지었고, 그 다음에는 신효거사가 와서 살았다. 그 다음에는 범일(梵日)의 제자 두타승인 신의(信義)가 와서 암자를 세우고 살았고, 그 뒤에는 수다사(水多寺) 장로 유연(有緣)이 와서 살았다. 그래서 점점 큰 절을 이루게 되었다. 절의 다섯 성중과 9층 석탑은 모두 성스러운 유적이다. 풍수를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 안의 명산 중에 이곳이 가장 좋은 땅으로, 불법이 길이 흥성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