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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三 塔像 第四- 天龍寺

天龍寺

 

東都南山之南 有一峰屹起 俗云高位山. 山之陽有寺 俚云高寺 或云天龍寺. 討論三韓集云 雞林土內 有客水二條 逆水一條 其逆水客水二源 不鎭天災 則致天龍覆沒之災.”

동도남산지남 유일봉흘기 속언고위산 산지양유사 리운고사 혹운천룡사 토론삼한집운 계림토내 유객수이조 역수일조 기역수객수이원 부진천재 즉치천룡복몰지재.”

 

경주 남산(南山)의 남쪽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우리말로 고위산(高位山)이라고 한다. 산의 남쪽에는 절이 있는데 속칭 고사(高寺) 혹은 천룡사(天龍寺)라고 한다. 토론삼한집(討論三韓集)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계림의 땅에는 다른 곳에서 발원하여 흘러 들어오는 물인 객수 두 줄기와 거슬러 흘러오는 물인 역수 한 줄기가 있는데, 그 역수와 객수의 두 근원이 하늘의 재해를 진압하지 못하면 천룡사가 뒤집혀 무너지는 재앙이 있을 것이다.”

 

俗傳云 逆水者 州之南 馬等烏村南流川是 又是水之源 致天龍寺. 中國來使 樂鵬龜來見云 破此寺 則國亡無日矣.’”

속전운 역수자 주지남 마등오촌남류천시 우시수지원 치천룡사. 중국래사 악붕귀래견운 파차사 즉국망무일야.”

 

또 세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역수는 주의 남쪽 마등오촌(馬等烏村)의 남쪽으로 흐르는 시내인데, 그 근원은 천룡사였다. 중국에서 온 사자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 절이 파괴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고 하였다.”

 

又相傳云 昔有檀越有二女 曰天女龍女 二親爲二女創寺因名之.”

우상전운 석유단월유이녀 일왈천룡녀 이친위이녀창사인명지.”

 

또 다음과 같은 말이 서로 전해 왔다. “옛날 이 절의 시주(檀越)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 하였다. 부모는 그 두 딸을 위해 절을 세우고 딸들의 이름을 따서 천룡사라 하였다.”

 

境地異常助道之場 羅季殘破久矣. 衆生寺大聖所乳崔殷諴之子承魯 魯生肅 肅生侍中齊顔. 顔乃重修起廢 仍置釋迦萬日道場 受朝旨. 兼有信書願文 留于寺. 旣卒 爲護伽藍神 頗著靈異.

경지이상조도지장 라계잔차구의. 중생사대성소유최은함지자승노 노생숙 숙생시중제안. 안내중수기폐 잉치석가만일도당 수조지. 겸유신서원문 유우사. 기졸 위호가람신 파저영이.

 

천룡사는 그 터가 신이하여서 불도를 돕는 곳이었는데, 신라 말년에 황폐화되어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중생사(衆生寺)의 관음보살이 젖먹여 기른 최은함(崔殷諴)의 아들은 승로(承魯)였는데, 승로는 숙()을 낳고 숙은 시중 제안(齊顔)을 낳았다. 제안이 이 절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석가만일도량(釋迦萬日道場)을 설치하여 조정의 뜻을 받들었다. 그리고 아울러 신서(信書)와 발원문을 그 절에 남겨두었다. 제안은 죽어서 절을 호위하는 신이 되었는데, 자못 영험과 이적을 드러내었다.

 

其信書略曰 檀越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柱國崔齊顔狀.”

기신거약운 단월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주국최제안상.”

 

그 서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월(檀越) 내사시랑(內史侍郞) 동내사(同內史)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주국(柱國) 최제안(崔齊顔)”이라 되어있다.

 

東京高位山天龍寺殘破有年. 弟子特爲聖壽天長民國安泰之願 殿堂廊閣 房舍廚庫 已來興構畢 具石造泥塑佛聖數軀 開置釋迦萬日道場. 旣爲國修營 官家差定主人亦可 然當遞換交代之時 道場僧衆不得安心.

동경고위산천룡사잔파유년. 제자특위성수천장민국안태지원 전당낭각 방사주고 이래흥구필 구석조니소불성수구 개치석가만일도장. 기위국수영 관가차정주인역가. 연당체환교대지시 도장승중부득안심.

 

경주 고위산의 천룡사는 허물어져 폐허가 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래서 제자 최제안은 특별히 임금님의 만수무강과 나라와 백성의 편안과 태평을 발원하여, 불전과 불당, 회랑과 전각, 방과 부엌, 창고 등의 공사를 일으켜 다 마치었으며, 돌과 흙으로 불상 몇 구를 만들어 석가만일도량을 열었다. 이미 나라를 위하여 다시 절을 지었으니, 관청에서 주지승을 정하여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주지가 바뀔 때마다 도량의 승려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側觀入田 稠足寺院 如公山地藏寺 入田二百結 毗瑟山道仙寺入田二十結 西京之四面山寺 各田二十結例. 皆勿論有職無識 須擇戒備才高者 社中衆望 連次住持焚修 以爲恒規.

측관입전 조족사원 여공산지장사 입전이백결 비금산도선사입전이십결 서경지사면산사 각전이십결례. 개물론유직무직 수택계비재고자 사중중망 연차주지범수 이위항규.

 

시주받은 토지로 절의 경비를 충당하는 것을 보니, 팔공산(八公山)의 지장사(地藏寺)와 같은 절은 시주받은 토지가 2백 결이었고 비슬산(毗瑟山)에 있는 도선사(道仙寺)20결이었고, 서경(西京) 사면(四面)의 산사도 각각 20결씩이었다. 모두들 직책의 유무를 막론하고 모름지기 계를 갖추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절에서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여러 차례 주지로 삼아서 분향하고 수도하는 것을 불변의 규칙으로 삼았다.

 

弟子聞風而悅 我此天龍寺 亦於社衆之中 擇選才德雙高大德 兼爲棟梁 差主人鎭長焚修 具錄文字 付在綱司 自當時主人爲始 受留守官文通 示道場諸衆 各宜知悉

제자 제안은 이 풍습을 듣고 기뻐하였다. 우리 천룡사에서도 절의 스님들 중에서 재주와 덕이 뛰어난 고승으로 우리 절의 기둥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아 주지로 삼아서 길이 분향하고 수도하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문자로 자세히 기록하여 절의 행사 담당자에게 주었다. 이번 주지부터 시작할 것이니, 유수관(留守官)이 이 문서를 받아 도량의 여러 스님들에게 보일 것이다. 승려들도 각자 잘 알아야 할 것이다.

 

重熙九年六月日 具銜如前署.

중희구년유월일 구형여전서.

 

 

중희(重熙) 96월 일, 관직을 앞에 쓴 것처럼 갖추어 서명한다.

 

按重熙乃契丹興宗年號 本朝靖宗六年庚辰歲也.

안중희내거란흥종연호 본조정종육년경진세야.

 

살펴보건대, 중희는 거란 흥종(興宗)의 연호이니, 고려 정종(靖宗) 6년 경진(서기 104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