溟州五臺山 寶叱徒 太子傳記
[古河西府也]
[고하서부야]
[명주는 옛날 하서부(河西府)이다.]
新羅淨神太子寶叱徒 與弟孝明太子 到河西府世獻角干家一宿. 翌日踰大嶺 各領一千人 到省烏坪 累日遊翫 太和元年八月五日 兄弟同隱入五臺山. 徒中侍衛等 推覓不得 並皆還國.
신라정신태자보질도 여제효명태자 도하서부세헌각간가일숙. 익일유대령 각영일천인 도성오평누일유완 태화원년팔월오일 형제동은입오대산. 대중시위등 추멱부득 병개환국.
신라 정신왕(淨神王)의 태자 보질도(寶叱徒, 태자 보천(寶川)을 말함)는 동생 효명(孝明) 태자와 함께 하서부(河西府)의 세헌(世獻) 각간(角干)의 집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큰 고개를 넘어 각자 1,000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며칠을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서기 648) 8월 5일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가 숨었다. 호위하던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모두들 서울로 돌아갔다.
兄太子 見中臺南下眞如院基下山末靑蓮開 其地結草菴而居 弟孝明見北臺南山末靑蓮開 亦結草菴而居. 兄弟二人 禮念修行 五臺進敬禮拜. 靑在東臺滿月形山 觀音眞身一萬常住 赤在南臺麒麟山 八大菩薩爲首 一萬地藏菩薩常住. 白方西臺長嶺山 無量壽如來爲首 一萬大勢至菩薩常住 黑掌北臺相王山 釋迦如來爲首 五百大阿羅漢常住. 黃處中臺風爐山 亦名地爐山 毗盧遮那爲首 一萬文殊常住 眞如院地 文殊大聖 每日寅朝化現三十六形[三十六形 見臺山五萬眞身傳] 兩太子並禮拜 每日早朝 汲于洞水 煎茶供養一萬眞身文殊.
형태자 견중대남하진여원기하산말청련개 기지결초암이거 제효명견북대남산말쳥련개 역결초암이거. 형제이인 예념수행 오대진경예배. 창제동대만월형산 관음진신일만상주 적재남대기린산 팔대보살위수 일만지장보살상주. 백방서대장령산 무량수여래위수 일만대세지보살상주 흑장북대상왕산 석가여래위수 오백대아라한상주. 황처중대풍로산 역명지로산 비로자나위수 일만문수상주. 진여원야 문수대성 매일인조화현삼십육형.[삼십육형 견대산오만진신전] 양태자병예배 매일조조 급우동수 전차공양일만진신문수.
형 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아래 진여원(眞如院) 터 아래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동생 효명도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역시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형제는 예불과 염불로 수행하면서 다섯 봉우리에 나아가 공경히 예배를 드렸다. 청색 방향인 동대의 보름달 모양의 산에는 관음보살의 진신 1만이 늘 있었고, 적색 방향인 남대의 기린산(麒麟山)에는 팔대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지장보살이 늘 있었다. 백색 방향인 서대의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1만 대세지보살이 늘 있었고, 흑색 방향인 북대의 상왕산(相王山)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5백 대아라한이 늘 있었다. 그리고 황색 방향인 중대의 풍로산(風爐山)은 지로산(地爐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문수보살이 늘 있었다. 그리고 진여원에는 문수보살이 매일 새벽에 36가지 형상으로 변화하여 나타났다.[36가지 형상은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에 보인다.] 두 태자는 함께 예배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서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
淨神太子弟副君在新羅 爭位誅滅 國人遣將軍四人 到五臺山孝明太子前. 呼萬歲 卽是有五色雲 自五臺至新羅 七日七夜浮光 國人尋光到五臺 欲陪兩太子還國. 寶叱徒太子 涕泣不歸 陪孝明太子 歸國卽位. 在位十餘年 神龍元年三月八日 始開眞如院[云云].
정신태자제부군재신라 쟁위주멸 국인견장군사인 도오대산혀명태자전. 호만세 즉시유오색운자오대지신라 칠일칠야부광 국인심광도오대 욕배영태자환국. 보질도태자 체읍불귀 배효명태자 귀국즉위. 재위십여년 신령원년삼월팔일 시개진여원[운운]
정신왕의 태자이자 동생인 부군(副君)이 신라의 서울에서 왕위를 다투다가 죽임을 당하자, 나라 사람들은 네 명의 장군을 보내어 이들 태자를 찾았다. 그들은 오대산에 이르러 효명 태자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곧바로 오색구름이 오대산에서부터 신라 서울까지 뻗쳐 7일 밤낮 동안 광채가 났다. 나라 사람들은 그 빛을 찾아 오대산에 이르러 두 태자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보질도 태자는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명 태자를 모시고 돌아가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10여 년인 신룡(神龍) 원년(서기 705) 3월 8일에 비로소 진여원을 세웠다고 한다.
寶叱徒太子 常服于洞靈水 肉身登空 到流沙江 入蔚珍大國掌天窟修道 還至五臺神聖窟 五十年修道[云云] 五臺山是白頭大根脈 各臺眞身常住[云云].
보질도태자 상복우동영수 육신등공 도류사강 입울진대국장촌굴수도 환지오대신성굴 오십년수도[운운] 오대산시백두대근맥 각대진신상주[운운]
보질도 태자는 늘 골짜기의 신령한 물을 마셨다. 그리하여 육신이 허공으로 올라가 유사강(流沙江)에 이르러 울진대국(蔚珍大國)의 장천굴(掌天窟)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그 후 다시 오대산 신성굴(神聖窟)로 돌아와 50년 동안이나 수도하였다고 한다. 오대산은 바로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인데, 다섯 개의 대 각각에는 항상 진신이 머물러 있다고 한다.
'三國遺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券 第三 塔像 第四- 南月山 (0) | 2020.06.11 |
---|---|
券 第三 塔像 第四- 臺山 月精寺 五類聖衆 (0) | 2020.06.10 |
券 第三 塔像 第四- 臺山 五萬眞身 (0) | 2020.06.09 |
券 第三 塔像 第四- 魚山佛影 (0) | 2020.06.08 |
券 第三 塔像 第四- 洛山 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0) | 2020.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