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山 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昔義湘法師 始自唐來還 聞大悲眞身住此海邊窟內 故因名洛山 盖西域寶陁洛伽山 此云小白華 乃白衣大士眞身住處 故借此名之.
석의상법사 시자당래환 문대비진신주차해변굴내 고인명낙산 개서역보타낙가산 차운소백화내백의대사신신주처 고차차명지.
옛날 의상법사(義湘法師)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굴에 산다는 말을 듣고 낙산(洛山)이라 이름지었으니, 서역에 관세음보살이 산다는 보타낙가산(寶陁洛伽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을 소백화(小白華)라고도 하는데, 백의대사(白衣大士)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곳이므로 이것을 빌어 이름을 삼은 것이다.
齋戒七日 浮座具晨水上 龍天八部侍從 引入崛內. 參禮空中 出水精念珠一貫給之 湘領受而退 東海龍亦獻如意寶珠一顆 師捧出. 更齋七日 乃見眞容. 謂曰 “於座上山頂 雙竹湧生 當其地作殿宜矣.” 師聞之出崛 果有竹從地湧出. 乃作金堂 塑像而安之 圓容麗質 儼若天生. 其竹還沒. 方知正是眞身住也. 因名其寺曰洛山 師以所受二珠 鎭安于聖殿而去.
재계칠일 부좌구신수상 용천팔부시종 인입굴내. 참예공중 출수정년주일관급지 상령수이퇴 동해용적헌여의보주일과 사봉출 경재칠일 내견진용. 위왈 “어좌상산정 쌍죽용생 당기지작전의의.” 사문지출굴 과유죽종지용출. 내작금당 소상이안지 원용여질 엄약천생. 기죽환몰. 방지정시진신주야. 인명기사왈낙산 사이소수이주 진안우성전이거.
의상이 7일 동안 재계하고 앉았던 자리를 새벽 일찍 물 위에 띄웠더니 불법을 수호하는 용천팔부(龍天八部)의 시종들이 굴 속으로 안내하였다. 공중을 향하여 예를 올리자,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내주어서 이를 받아 나오는데, 동해의 용도 여의주 한 알을 바쳐서 이것도 같이 받아 나왔다. 다시 재계한 지 7일 만에 관음보살의 진신을 보았다. 관음이 말하였다. “내가 앉은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절을 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법사가 이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자,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그래서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만들어 모셨는데, 그 둥근 얼굴과 고운 모습이 엄연히 하늘에서 만들어 낸 듯하였다. 그때 대나무가 다시 없어졌다. 그제서야 관음의 진신이 머무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의상은 이 절의 이름을 낙산사(洛山寺)라고 하고, 받아온 두 구슬을 성전에 모셔두고 떠났다.
後有元曉法師 繼踵而來 欲求瞻禮. 初至於南郊 水田中 有一白衣女人刈稻. 師戱請其禾 女以稻荒戱答之 又行至橋下. 一女洗月水帛. 師乞水 女酌其穢水獻之. 師覆棄之 更酌川水而飮之. 時野中松上 有一靑鳥 呼曰 休醍醐和尙.
후유원효법사 계종이래 욕구첨예. 초지어남교 수전중 유일백의여인예도 사희청기화 여이도황희당비 유행지교하 일녀세월수백 사걸수 여작기예수헌지 사복기지 경작천수이음지 시야중송상 유일청조 호왈 “휴제호화상.”
그 뒤에 원효법사(元曉法師)가 와서 예를 올리려고 하였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렀는데, 논 가운데서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장난삼아 그 벼를 달라고 하자, 여자도 장난삼아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법사가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자 한 여인이 월경 수건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인을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는 그 물을 엎질러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말하였다. “불성을 깨닫지 못한 중!”
忽隱不現 其松下有一隻脫鞋. 師旣到寺 觀音座下 又有前所見脫鞋一隻. 方知前所遇聖女乃眞身也. 故時人謂之觀音松 師欲入聖崛 更覩眞容 風浪大作 不得入而去.
홀은불현 기송하유일척탈혜. 사기도사 관음좌하 우유전소견탈혜일척. 방지전소우성녀내진신야. 고시인위지관음송 사욕입성굴 경도진용 풍랑대작 부득입이거.
그리고는 홀연히 숨어서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러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서야 원효법사는 전에 만났던 여자가 관음의 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고 하였다. 법사가 신성한 굴로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신을 보려고 하였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떠났다.
後有崛山祖師梵日 太和年中入唐 到明州開國寺 有一沙彌 截左耳在衆僧之末 與師言曰 “吾亦鄕人也. 家在溟州界翼嶺縣德耆坊 師他日若還本國.”
후유굴산조사범일 태화년중입당 도명주개국사 유일사미 절좌이재중승지말 여사언왈 “오역향인야. 가재명주계익령덕기방 사타일액환본국.”
훗날 굴산조사(崛山祖師) 범일(梵日)이 태화(太和) 연간(서기 827~835)에 당나라에 가 명주(明州) 개국사(開國寺)에 이르렀는데, 왼쪽 귀가 잘린 한 어린 중이 승려들 끝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사에게 말하였다. “저 또한 신라 사람입니다. 집이 명주(溟州) 지역인 익령현(翼嶺縣) 덕기방(德耆坊)에 있습니다. 조사께서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제 집을 지어주십시오.”
須成吾舍 旣而遍遊叢席 得法於鹽官[事具在本傳] 以會昌七年丁卯還國 先創崛山寺而傳敎.
수성오사 기이편유총석 덕법어염관[사구재본전] 이회창칠년정묘환국 선창굴산사이전교.
이윽고 조사는 승려들이 많이 모인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염관(鹽官)에게서 법을 얻고,[이 일은 본전에 자세히 실려 있다.] 회창(會昌) 7년 정묘(서기 847)에 귀국하자, 먼저 굴산사(崛山寺)를 창건하여 불교를 전하였다.
大中十二年戊寅二月十五日 夜夢 昔所見沙彌到窓下曰 “昔在明州開國寺 與師有約 旣蒙見諾 何其晩也?”
대중십이년무인이월십오일 야몽 석소견사미도창하왈 “석재명주개국사 여사유약 기몽견락 하기만야?”
대중(大中) 12년 무인(서기 858) 2월 15일 밤 꿈에 전에 보았던 중이 창문 밑에 와서 말하였다. “예전에 명주 개국사에서 조사와 약속하여 이미 승낙을 받았는데, 어찌 이다지도 늦는단 말입니까?”
祖師驚覺 押數十人 到翼嶺境 尋訪其居 有一女居洛山下村 問其名 曰德耆 女有一子 年才八歲 常出遊於村南石橋邊 告其母曰 “吾所與遊者 有金色童子.”
조사경각 압수입인 도익령경 심방기거 유일여거낙산하촌 문기명 왈덕기 여유일자 년재팔세 상출유어촌남석교변 고기모왈 “오소여유자 유슴색동자.”
조사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곧 수십 명을 데리고 익령에 가서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낙산 아래 마을에 한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름을 물어보니 덕기(德耆)라고 하였다. 그 여자에게는 여덟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늘 마을 남쪽 돌다리 주변에서 놀았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나와 함께 노는 아이 중에 금빛이 나는 아이가 있어요.”
母以告于師 師驚喜 與其子尋所遊橋下. 水中有一石佛. 舁出之 截左耳 類前所見沙彌. 卽正趣菩薩之像也. 乃作簡子 卜其營構之地 洛山上方吉 乃作殿三間安其像.[古本載梵日事在前 湘曉二師在後. 然按湘曉二師爾□於高宗之代 梵日在於會昌之後 相去一百七十餘歲. 故今前却而編次之. 或云 梵日爲湘之門人 謬妄也].
모이고유사 사경희 여기자심소유교하. 수중유일석불. 여출지 절좌이 유전소견사미. 즉정취보살지상야. 내작간자 복기영구지지 낙산상방길 내작전삼간안기상[고본재범일사재전 상효이사재후. 연안상효이사이* 어고종지대 범일재어회창지후 상거일백칠십여세. 고금전각이편차지. 혹운범일위상지문인 류망야].
아이 어머니는 이를 조사에게 말해주었고, 조사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그 아이가 함께 놀았다는 다리 밑으로 갔다. 그랬더니 물 속에 돌부처 하나가 있었다. 꺼내보니 왼쪽 귀가 떨어진 것이 일전에 만난 어린 중과 똑같았다. 이것이 바로 정취보살(正趣菩薩)의 불상이었다. 그래서 대나무 조각으로 절을 지을 곳을 점쳐보니 낙산 위가 가장 좋다 하여서, 3칸짜리 절을 짓고 그 불상을 모셨다.[고본(古本)에는 범일의 일이 앞에 있고 의상과 원효의 일이 뒤에 있었다. 그러나 살펴보니, 의상과 원효 두 법사의 일은 당나라 고종 때이고, 범일은 회창(會昌) 이후의 일이니, 서로 170년의 거리가 있다. 지금 앞뒤를 바꾸어서 순서를 정하였다. 혹자는 범일이 의상의 제자라고도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後百餘年 野火連延到此山 唯二聖殿 獨免其災 餘皆煨燼. 及西山大兵已來 癸丑甲寅年間 二聖眞容及二寶珠 移入襄州城 大兵來攻甚急 城將陷. 時住持禪師阿行[古名希玄] 以銀合盛二珠 佩持將逃逸. 寺奴名乞升奪取 深埋於地 誓曰 “我若不免死於兵 則二寶珠 終不現於人間 人無知者 我若不死 當奉二寶 獻於邦家矣.”
후백여년 야화연탄도차산 유이성전 독면기재 여개외신. 금서산대병기래 계축갑인연간 이성진용급이보주 이입양주성 대병래공심급 성장함. 시주지선사아행[고명희현] 이은합성이주 패지장도일. 사노명걸승탈취 심매어지 서왈 “아약불면사어병 즉이보주 종불현어인간 인무지자 아약불사 당봉이보 헌어방가의.”
그 후 백여 년이 지나 들불이 이 산까지 번졌으나 오로지 관음과 정취 두 성인을 모신 불전만은 홀로 그 화재를 면하였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다 타버렸다. 몽고의 병란 이후 계축년(서기 1253) 갑인년(서기 1254) 연간에 두 성인의 진용과 두 보물 구슬을 양주성(襄州城)으로 옮겼는데, 몽고 군사들이 급하게 쳐들어와서 성이 함락될 지경이었다. 당시 주지였던 선사 아행(阿行)[옛 이름은 희현(希玄)이다.]이 은으로 만든 함에 두 보물을 넣어 가지고 도망가려고 하였다. 이때 절의 종 걸승(乞升)이 빼앗아 땅 속 깊이 묻고 맹세하였다. “내가 만일 이 전쟁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면 두 보물은 끝내 인간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여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만약 죽지 않는다면 마땅히 두 보물을 받들어서 나라에 바칠 것이다.”
甲寅十月二十二日城陷 阿行不免 而乞升獲免. 兵退後掘出 納於溟州道監倉使. 時郎中李祿綏爲監倉使 受而藏於監倉庫中 每交代傳受.
갑인시월십이일성함 아행불면 이걸승획면. 병퇴후굴출 납어명주도감창사. 시낭중이녹수위감창사 수이장어감창고중 매교대전수.
갑인년(서기 1254) 10월 22일에 성이 함락되었다. 아행은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걸승은 살아날 수 있었다. 적의 군사가 물러가자 땅에서 파내어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에게 바쳤다. 당시 낭중(郎中) 이녹수(李祿綏)가 감창사였는데, 이것을 받아 감창고에 보관해 두고서 매번 교대할 때마다 전해 주었다.
至戊午十一月 本業老宿祗林寺住持大禪師覺猷奏曰 “洛山二珠 國家神寶. 襄州城陷時 寺奴乞升 埋於城中 兵退取納監倉使 藏在溟州營庫中. 今溟州城殆不能守矣 宜輸安御府.”
지무오십일월 본업노숙자람서주지대선사각유주왈 “낙산이주 국가신보. 양주성함시 사노걸승매어성중 병퇴취납감창사 장재명주영고중. 금명주성태불능수의 의수안어부.”
무오년(서기 1258) 11월에 이르자 우리 불교의 원로인 지림사(祗林寺) 주지인 대선사 각유(覺猷)가 왕에게 아뢰었다. “낙산사의 두 보물은 국가의 신보입니다. 양주성이 함락될 때 절의 종 걸승이 성 안에 묻어두었다가 적군이 물러간 뒤 파내어 감창사에게 바쳐서 명주 군영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제 명주성도 지킬 수 없사오니, 마땅히 대궐의 창고로 옮겨 모시는 것이 마땅할 줄로 아옵니다.”
主上允可. 敎夜別抄十人 率乞升 取於溟州城 入安於內府. 時使介十人 各賜銀一斤米五石.
주상윤가. 교야별초십인 솔걸승 취어명주성 입안어내부. 시사갸십인 각사은일근미오석.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야별초 10명에게 걸승을 데리고 명주성에서 보물 구슬을 가지고 대궐로 와서 모셔두었다. 그 당시 갔던 10명에게도 각각 은 1근과 쌀 5섬을 주었다.
昔新羅爲京師時 有世達寺[今與敎寺也]之莊舍 在溟州溟州㮈李郡.[按地理志 溟州無㮈李郡 唯有㮈城郡. 本㮈生郡 今寧越. 又牛首州領縣 有㮈靈郡 本㮈已郡 今剛州 牛首州今春州. 今言㮈李郡 未知孰是].
석신라위경사시 유세달사[금여교사야]지장사 재명주명주내리군.[안지리지 명주무내래군 유유내성군. 본내생군 금영월. 우우수주영현 유내령현 본내이군 금강주 우수리금춘주 금언내리군 미지숙시]
옛날 경주가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世達寺)[지금의 여교사(與敎寺)이다.]의 농장이 명주 내리군(㮈李郡)에 있었다.[『지리지(地理志)』를 찾아보니, 명주에는 내리군이 없고 다만 내성군(㮈城郡)만이 있었다. 본래는 내생군(㮈生郡)인데 지금의 영월(寧越)이다. 또 우수주(牛首州)의 영현(領縣)에 내령군(㮈靈郡)이 있는데, 본래는 내이군(㮈已郡)으로 지금의 강주(剛州)이고, 우수주는 지금의 춘주(春州)이다. 여기서 말한 내리군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本寺遣僧調信爲知莊. 信到莊上 悅太守金昕公之女 惑之深 屢就洛山大悲前 潛祈得幸. 方數年間 其女已有配矣. 又往堂前 怨大悲之不遂已 哀泣至日暮. 情思倦憊 俄成假寢. 忽夢金氏娘 容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兒早識上人於半面 心乎愛矣 未嘗暫忘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 今願爲同穴之友 故來爾.” 信乃顚喜 同歸鄕里.
본사연승조신위지장. 신지장상 열태수김흔공지녀 감지심 누취낙산대비전 잠기득행. 방수년간기녀이우배의. 우왕당전 원대비지불수이 애읍지일모. 정사권비 아성가.침 홀몽김씨낭 용예입문 찬연계치이위왈 “아조식상인어반면 심호애의. 미상점망 박어부모지명 강종인의. 금원위동혈지우 고래이.” 신내전희 동귀향리.
본사에서 승려 조신(調信)을 농장 관리자로 삼았다. 조신이 농장에 왔는데 태수 김흔공(金昕公)의 딸을 좋아하게 되어 깊이 빠져서,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행운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몰래 기도하였다. 그러던 중 수년 사이에 그 여자에게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래서 조신은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면서 슬피 울다가 날이 저물었다. 그리운 정에 지쳐서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홀연히 꿈 속에서 김씨 낭자가 기쁜 얼굴로 문으로 들어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저도 일찍이 스님을 잠깐 뵙고 마음 속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잠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 부모님의 명에 쫓기어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부부가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조신은 넘어질 듯 기뻐하며 그 여자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計活四十餘星霜 有兒息五. 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如是十年 周流草野 懸鶉百結 亦不掩體. 適過溟州蟹縣嶺 大兒十五歲者忽餒死 痛哭收瘞於道. 從率餘四口 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舍. 夫婦老且病 飢不能興 十歲女兒巡乞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父母爲之歔欷 泣下數行. 婦乃皺澁拭涕 倉卒而語曰.
계활사십여성상 유아식오. 가도사벽 여곽불급. 수내낙백부휴 호기구어사방. 여시십년 주유초야 현순백결 역불엄체. 적과명주해현령 대아십오세자홀뇌사 통곡수예어도. 종솔여사구 도우곡현[금우현야] 결모어로방이사. 부부노차병 기불능흥 십세여아순걸 내위리오소서 호통와어전. 부모위지허희 읍하수행. 부내추삽식체 창졸이어왈.
40여 년을 함께 살며 자식 다섯을 두었다. 하지만 집은 단지 네 벽뿐이고 끼니조차 제대로 댈 수 없었다. 결국은 마침내 몰락해서 서로 이끌고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입에 풀칠을 하였다. 이렇게 하길 10년 동안 초야를 두루 돌아다녔으니, 여기저기 찢어져 기운 옷은 몸뚱이조차 가리기 어려웠다. 마침 명주(溟州)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15살 난 큰 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어서 통곡을 하며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자식을 데리고 우곡현(羽曲縣)[지금의 우현(羽縣)이다.]에 이르러서 길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부부가 늙고 또 병이 들었으며 굶주려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10살 난 여자 아이가 구걸을 하러 다녔는데 마을의 큰 개에게 물려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앞에 누웠다.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다 부인이 눈물을 훔치고 갑작스럽게 말하였다.
“予之始遇君也 色美年芳 衣袴稠鮮.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數尺之煖 得與子共之 出處五十年 情鍾莫逆 恩愛綢繆 可謂厚緣. 自比年來 衰病歲益深 飢寒日益迫 傍舍壺漿 人不容乞. 千門之恥 重似丘山. 兒寒兒飢 未遑計補 何暇有愛悅夫婦之心哉?
“여지시우군야 색미년방 의고조선. 일미지감 즉여자분지 수척지난 득여자공지 출처오십년정종막역 은애주무 가위후연. 자차연래 쇠병세익심 기한일익박 방사호장 인불용걸. 천문지치중사구산. 아한아기 미황계보 하가유애열부부지심재?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옷도 많고 깨끗했지요. 한 가지 맛있는 음식이라도 있으면 당신과 나누어 먹었으며, 얼마 안 되는 따뜻한 옷감이라도 있으면 당신과 함께 했지요. 출가한 지 50년 동안 정이 모이고 거슬림이 없었으며 은혜와 사랑이 두루 얽혔으니 두터운 인연이라 이를 만하지요. 그런데 근래 들어 쇠약해져 병이 더욱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가 날로 심해지는데, 곁방살이나 변변찮은 음식도 사람들은 주질 않습니다. 온 집 문턱에서 걸식하는 이 부끄러움은 산보다도 더 무거워요. 아이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리는데도 보살필 경황이 없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하고 아껴주는 부부의 심정을 가질 수 있겠어요?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君乎予乎 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餧 焉如隻鸞之有鏡? 寒棄炎附 情所不堪. 然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辭.
홍안교소 초상지로 약속지란 유서표풍 군유아이위루 아위군이족우. 세사석일지환 적위우환소계. 군호여호 애지차극? 여기중조지동위 언여척난지유경 한기화부 정소불감. 연이행지비인 이합유수. 청종차사.
붉은 얼굴에 예쁜 웃음은 풀잎의 이슬이었고 지초와 난초 같은 향기로운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홑씨처럼 날려갔읍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서 걱정이 되고 나는 당신이 있어서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지난 날의 즐거움을 생각해보니 우환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여러 마리 새가 함께 굶주리는 것이 어찌 한 마리 난새가 거울을 보고 짝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겠어요?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붙는 것은 인정상 감당할 수 없지요. 하지만 가고 멈추는 것은 사람에 달린 일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운수가 있는 법입니다. 바라건대 여기서 헤어집시다.”
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신문지댜희 각분이아장행 여왈 “아향상자 군기남의.”
조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각자 두 아이씩 나누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여자가 말하였다. “나는 고향을 향해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세요.”
方分手進途而形開. 殘燈翳吐 夜色將闌. 及旦鬚髮盡白. 惘惘然殊無人世意 已厭勞生 如飫百年辛苦. 貪染之心 洒然氷釋. 於是慚對聖容 懺滌無已.
방분수도이형개. 잔등예토 야색장란. 급단수발진백. 망망연수무인세의 이염노생 여어백년신고. 탐염지심 쇄연빙석. 어시참대성용 참척무이.
그리하여 이별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꿈에서 깼다. 꺼질 듯한 등불은 희미한 빛을 토하고 있었고 밤은 이제 새려고 하였다. 아침이 되어서 보니 수염과 머리털이 온통 하얗게 세었다. 멍하니 유달리 인간 세상에 뜻이 없어졌고 이미 괴로운 생애에도 싫증이 났으니, 마치 한평생 고통을 실컷 맛본 것 같았다. 세속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이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얼굴로 관음보살상을 바라보며 참회하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
歸撥蟹縣所埋兒塚 乃石彌勒也 灌洗奉安于隣寺 還京師 免莊任. 傾私財 創淨土寺 懃修白業. 後莫知所終.
귀발해현소매아총 내석미륵야. 관새봉안우린사 환경사 면장임. 경사재 창부토사 근수자업. 후막지소종.
돌아오는 길에 해현에서 아이를 묻었던 무덤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물로 씻어서 이웃 절에 모시고는 서울로 돌아와서 농장의 소임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다 쏟아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고 부지런히 선업을 닦았다. 그 뒤에는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議曰 讀此傳 掩卷而追繹之 何必信師之夢爲然? 今皆知其人世之爲樂 欣欣然役役然 特未覺爾. 乃作詞誡之曰
의왈 독차전 엄권이추석지 하필신사지몽위연? 금개지기인세지위락 흔흔연역역연 특미각이. 내작사계지왈.
논평하여 말한다. 이 전기를 읽은 후 책을 덮고 지난 일을 추억해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의 꿈만이 그러하겠는가? 지금 모두들 인간 세상의 즐거움만 알아서 기뻐하기도 하고 애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단지 깨닫지 못해서 그러할 뿐이다. 그래서 가사를 지어서 경계한다.
快適須臾意已閑 暗從愁裏老蒼顔 不須更待黃梁熟 方悟勞生一夢間.
쾌적수유의이한 암종수리노창안 불수경대황염숙 방오노생일몽간.
治身臧否先誠意 鰥夢蛾眉賊夢藏 何似秋來淸夜夢 時時合眼到淸凉.
치신장부선성의 환몽아미적몽장 하사추래청야몽 시시합안도청량.
즐거움은 금방 끝나 마음은 벌써 싫증나더니 어느덧 근심 속에 늙어버렸구나. 좁쌀밥 익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괴로운 인생 꿈에 불과함을 깨달았다네.
수행이 잘 되고 못 되고는 성실한 마음에 달렸는데 홀아비는 미인을 도둑은 창고를 꿈꾼다네. 어찌해야 가을날 맑은 밤의 꿈처럼 날마다 청량(淸凉)함을 꿈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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