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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三 塔像 第四- 南白月 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南白月 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白月山兩聖成道記云 白月山在新羅仇史郡之北.[古之屈自郡 今義安郡] 峰巒奇秀 延袤數百里 眞巨鎭也. 古老相傳云

백월산양성성도기운 백월산재신라구사군지북.[고지굴자군 금의안군] 봉만기수 연무수백리 진거진야. 고노상전운

 

백월산양성성도기(白月山兩聖成道記)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백월산(白月山)은 신라 구사군(仇史郡)의 북쪽에 있었다.[옛날의 굴자군(屈自郡)이고 지금의 안의군(義安郡)이다.] 산봉우리는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산줄기는 수백 리에 걸쳐 뻗쳐 있었으니, 참으로 큰 진산(鎭山)이었다. 옛 노인들이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昔唐皇帝 嘗鑿一池. 每月望前 月色滉朗 中有一山 嵓石如師子 隱映花間之影 現於池中. 上命畵工圖其狀 遣使搜訪天下. 至海東 見此山有大師子嵓 山之西南二千步許 有三山 其名花山[其山一體三首 故云三山] 與圖相近. 然未知眞僞 以隻履懸於師子嵓之頂 使還奏聞 履影亦現池. 帝乃異之 賜名曰白月山.[望前白月影現 故以名之] 然後池中無影.

석당황제 상착일지. 매월망전 월색황랑 중유일산 암석여사자 은영화간지영 현어지중. 상명화공도기상 견사수방천하. 지해동 견차산유대사자암 산지서남이천보러 유삼산 기명화산[기산일체삼수 고운삼산] 여도상근. 연미지진위 이척리현어사자암지정 사환주문 리영역현지. 제내이지 사명왈백월산.[망전백월영현 고이명지] 연후지중무영.

 

옛날 당나라 황제가 연못을 하나 팠다. 그런데 매월 보름 전 달빛이 밝아지면 연못 가운데 산이 하나 비치는데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꽃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어 연못 가운데에 그림자로 나타났다. 황제는 화공에게 그 모양을 그리도록 하고 사람을 보내어 천하를 돌며 찾게 하였다.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이르러 백월산에 큰 사자암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산의 서남쪽 2보쯤에 화산(花山)이란 이름의 삼산(三山)[하나의 몸체에 봉우리가 셋이어서 삼산이라고 한다.]이 있었으니 그림과 똑같았다. 그러나 화산이 진짜 그 산인지 알 수 없어서 신발 한 짝을 사자암 꼭대기에 걸어놓고 돌아와 아뢰었는데 신발 그림자도 못에 나타났다. 황제는 이상히 여기며 그 산의 이름을 백월산(白月山)이라 하였다.[보름 전에 흰 달의 그림자가 연못에 나타났기 때문에 백월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그러자 연못 가운데에 산 그림자가 없어졌다.

 

山之東南三千步許 有仙川村 村有二人. 其一曰努肹夫得[一作等] 父名月藏 母味勝. 其一曰怛怛朴朴 父名修梵 母名梵摩.[鄕傳云雉山村 誤矣. 二士之名方言. 二家各以二士心行騰騰苦節二義名之爾] 皆風骨不凡 有域外遐想 而相與友善. 年皆弱冠 往依村之東北嶺外法積房 剃髮爲僧.

산지동남삼천보허 유선천촌 촌유이인. 기일왈노힐부득[일작등] 부명월장 모미승. 기일왈달달부득 부명수범 모명범마[향전운치산촌 오의. 이사지명방언. 이가각이이사심행등등고절이의명지이] 개풍골불범 유역외하상 이상여우선. 연개약관 왕의촌지동북영외법적방 체발위승.

 

이 산의 동남쪽 3천보 쯤에 선천촌(仙川村)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노힐부득(努肹夫得)[()을 등()이라고도 한다.]이니 그의 아버지는 월장(月藏)이고 어머니는 미승(味勝)이다. 다른 한 사람은 달달박박(怛怛朴朴)이니 아버지는 수범(修梵)이고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향전(鄕傳)에 치산촌(雉山村)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우리말이다. 두 사람의 마음 수행이 그 기세가 등등하고 절개가 굳었기 때문에, 두 집에서 각각 이 두 가지 뜻으로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풍골이 비범하였고 세속을 초월하려는 뜻이 있어서 서로 잘 지냈다. 나이가 20이 되자 마을 동북쪽 고개 밖에 있는 법적방(法積房)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未幾 聞西南雉山村法宗谷僧道村有古寺 可以棲眞 同往大佛田小佛田二洞 各居焉. 夫得寓懷眞庵 一云壤寺[今懷眞洞有古寺基是也] 朴朴居瑠璃光寺.[今梨山上有寺基是也] 皆挈妻子而居 經營産業. 交相來往 棲神安養 方外之志 未常暫廢. 觀身世無常 因相謂曰 腴田美歲良利也 不如衣食之應念而至 自然得飽煖也. 婦女屋宅情好也 不如蓮池華藏千聖共遊 鸚鵡孔雀 以相娛也. 況學佛當成佛 修眞必得眞 今我等旣落彩爲僧 當脫略纏結 成無上道 豈宜汨沒風塵 與俗輩無異也.”

미기 문서남치산촌법종곡승도촌유고사 가이서진 동왕대불전소불전이동 각거언. 부득우회진암일운양사[금회진동유고사기시야] 박박거유리광사[금이산상유사기시야] 개설처자이거 경영산업 교사래왕 서신안양 방외지지 미상점폐 관신세무상 인상위왈 유전미세양리야 불여의식지응념이지 자연득포완야. 부녀옥택정호야 불여연지화장천성공유 앵무공작 이상오야. 황학불당성불 수진필득진 금아등기락채위승 당탈략전결 성무상도 이의골몰풍진 여속배무이야.

 

얼마 뒤 서남쪽의 치산촌(雉山村)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에 오래된 절이 있는데 정신을 수양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서 대불전(大佛田)과 소불전(小佛田)의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살았는데 양사(壤寺)라고도 한다.[지금도 회진동(懷眞洞)에 옛 절터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다.] 박박은 유리광사(瑠璃光寺)에 살았다.[지금의 이산(梨山) 위에 있는 절터가 바로 이곳이다.] 둘 다 처자를 버리고 살면서 생계를 꾸리는 일도 하였다. 서로 왕래하며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편안히 길렀지만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육체와 세상의 무상함 보고는 서로 말하였다.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지만 옷과 음식이 생각대로 생기고 저절로 배부르고 따스함만은 못하다. 여자들과 집이 좋기는 하지만 연화장(蓮華藏)에서 여러 부처님과 함께 놀고 앵무새와 공작새와 서로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더군다나 불도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얻어야 한다. 이제 우리들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당연히 몸에 얽매여 있는 것을 벗어버리고 최상의 도를 이루어야 하거늘, 어찌 세속에 파묻혀서 속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내서야 되겠는가?”

 

遂唾謝人間世 將隱於深谷. 夜夢白毫光 自西而至 光中垂金色臂 摩二人頂. 及覺說夢 與之符同 皆感嘆久之 遂入白月山無等谷[今南藪洞也] 朴朴師占北嶺師子嵓 作板屋八尺房而居 故云板房. 夫得師占東嶺磊石下有水處 亦成方丈而居焉 故云磊房[鄕傳云 夫得處山北瑠璃洞 今板房 朴朴居山南法精洞磊房 與此相反 以今驗之 鄕傳誤矣] 各庵而居 夫得勤求彌勒 朴朴禮念彌陁.

수타사인간세 장은어심곡. 야몽백호광 자서이래 광중수금색비 마이인정. 급각설몽 여지부동 개감탄구지. 수입백월산무등곡[금남수동야] 박박사점북령사자암 작판옥팔척방이거 고운판방. 부득사점동령뢰석하유수처 역성방장이거언 고운뢰방.[향전운 부득처산북유리동 금판방 박박거산남법정동뢰방 여차상반 이금험지 향전오의] 각암이거 부득근구미륵 박박예념미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버리고 깊은 산골에 은거하려고 하였다. 그날 밤에 꿈 속에서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속에서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깨어나 서로 꿈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었다. 한참 동안 감탄하다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지금의 남수동(南藪洞)이다.]으로 들어갔다. 박박사(朴朴師)는 북쪽 고개에 있는 사자암에 자리잡고 판자로 여덟 자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판방(板房, 판자 방)이라 하였다. 부득사(夫得師)는 동쪽 고개의 돌무더기 아래 물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열 자 되는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 돌무더기 방)이라 하였다.[향전(鄕傳)에는 부득이 산 북쪽 유리동에 살았는데 지금의 판방이고, 박박은 산 남쪽 법정동 뇌방에 살았다고 하니, 서로 반대가 된다. 지금 살펴보면 향전이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각각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부지런히 구하였고 박박은 아미타불을 경건히 염불하였다.

 

未盈三載 景龍三年己酉四月八日 聖德王卽位八年也 日將夕 有一娘子年幾二十 姿儀殊妙 氣襲蘭麝 俄然到北庵[鄕傳云南庵] 請寄宿焉 因投詞曰 行逢日落千山暮 路隔城遙絶四隣 今日欲投庵下宿 慈悲和尙莫生嗔.

미영삼재 경룡삼년기유사월팔일 성덕왕즉위팔년야. 일장석 유일낭자년기이십 자의수묘 기습난사 아연도북암[향전운남암] 청기숙언 인투사왈 행봉일낙천산모 로격성요절사린 금일욕투암하숙 자비화상막생진.”

 

3년이 채 못된 경룡(景龍) 3년 기유(서기 709) 48, 성덕왕(聖德王)이 왕위에 오른 지 8년째 되는 해였다. 날이 저물려고 하는데, 20세 가량의 한 낭자가 매우 아름다운 얼굴에 난초와 사향의 향기를 풍기면서 북암에 와서[향전(鄕傳)에는 남암이라 하였다.]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청하고는 글을 써서 바쳤다. "나그넷길 해 저물어 온 산이 어두운데 길 막히고 성은 멀어 마을도 없다오오늘은 이 암자에서 묵으려 하는데 자비로운 스님은 화내지 마시오."

 

朴朴曰 蘭若護淨爲務 非爾所取近 行矣 無滯此處.” 閉門而入[記云 我百念灰冷 無以血囊見試].

박박왈 난약호정위무 비이소취근 행의 무체차처.” 폐문이입[기운 아백념회냉 무이혈낭견시.”].

 

박박이 말하였다. “절은 깨끗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곳이니 그대가 가까이 할 곳이 아니오. 어서 떠나시오. 이곳에 지체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성도기에서는, “나는 모든 잡념이 식었으니 여색으로 시험하려 들지 말라.”라고 하였다.]

 

娘歸南庵[傳曰北庵] 又請如前. 夫得曰 汝從何處 犯夜而來?” 娘答曰 湛然與太虛同體 何有往來 但聞賢士志願深重 德行高堅 將欲助成菩提耳.” 因投一偈曰 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 竹松陰轉邃 溪洞響猶新 乞宿非迷路 尊師欲指津 願惟從我請 且莫問何人.

낭귀남암[전왈북암] 우청여전. 부득왈 여종하처 범야일래 낭답왈 심연여태허동체 하유왕래 달문현사지원심중 덕행고견 덕행고견 장욕조성보리이 인역일게왈 일모천산로 행행절사린 죽송음전수계동향유신 걸식비미로 존사욕지진 원유종아청 차막문하인.

 

낭자는 남암으로 가서[향전(鄕傳)에는 북암이라 하였다.] 또 전과 같이 부탁하였다. 그러자 부득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디서 이 밤중에 왔소?” 낭자가 대답하였다. “고요함이 태허와 한 몸이 되었으니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지신 분이 바라는 뜻이 깊고 무거우며 덕행이 높고 굳다 하기에, 보리를 이루도록 돕고자 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주었다.

 

 

해 저문 깊은 산길 가도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소나무 대나무 그늘은 더욱 그윽해지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 오히려 새롭게 들리네.

잠잘 곳 청함은 길 잃어서 아니요 스님에게 깨달음의 길을 가르쳐 주려 함이네.

부디 나의 청만 들어 주시고 길손이 누군지 묻지 마시오.

 

師聞之驚駭謂曰 此地非婦女相汚 然隨順衆生 亦菩薩行之一也 況窮谷夜暗 其可忽視歟.”

사문지경해위왈 차지비부녀상오 연수순중생 역보살행지일야 황궁곡야암 기가홀시여.”

 

부득사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말하였다. “이곳은 부녀자가 더럽힐 곳이 아니지만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요 하물며 깊은 산골에서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소.”

 

乃迎揖庵中而置之. 至夜淸心礪操 微燈半壁 誦念厭厭. 及夜將艾 娘呼曰 予不幸適有産憂 乞和尙排備苫草.”

내영읍암중이치지. 지야청심려조 미등반벽 송념암암. 급야장애 낭호왈 여불행적유산우 걸화상배비점초.”

 

곧 암자로 맞아들여 머물도록 하였다. 밤이 되자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가다듬고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방에서 조용히 염불을 하였다. 날이 새려 하자 낭자가 부득사를 부르며 말하였다. “내 불행하게도 마침 해산할 기미가 있으니, 부탁이니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夫得悲矜莫逆 燭火殷勤 娘旣産 又請浴 肹慚懼交心 然哀憫之情 有加無已 又備盆槽 坐娘於中 薪湯以浴之 旣而槽中之水 香氣郁烈 變成金液 努肹大駭 娘曰 吾師亦宜浴此.” 肹勉强從之 忽覺精神爽凉 肌膚金色.

부득비긍막역 촉화은근 낭기산 우청욕 힐참구교심 연애민지정 유가무이 우비분조 좌낭어중신탕이욕지 기시조중지수 샹기욱열 변성금액 노힐대해 낭왈 오사역의욕차힐면강종지 올각정신상량 기부금색.

 

부득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은은하게 밝혔다. 낭자가 이미 해산을 한 후에, 또 목욕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지만, 그러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더 커져서, 목욕통을 준비해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그런데 잠시 후 목욕물에서 향기가 진하게 풍기더니 물이 금빛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자 낭자가 말하였다. “우리 스님도 이 물로 목욕하십시오.” 부득이 억지로 그 말대로 하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피부가 금빛으로 변하였다.

 

視其傍 忽生一蓮臺 娘勸之坐 因謂曰 我是觀音菩薩 來助大師 成大菩提矣.” 言訖不現.

기시방 홀생일연대 낭권지좌 인위왈 아시관음보살 래조대사 성대보리의.” 언흘불현.

 

그 옆을 보니 홀연히 연화대좌가 있었다. 낭자는 부득에게 앉으라고 권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대사를 도와 큰 깨달음을 이루어주려고 왔소.” 그리고 말을 마치더니 사라졌다.

 

朴朴謂肹今夜必染戒 將歸听之 旣至 見肹坐蓮臺 作彌勒尊像 放光明 身彩檀金 不覺扣頭而禮曰 何得至於此乎?”

박박위힐금야필염계 장귀은지 기지 견힐좌연대 작미륵존상 방광명 신체단슴 불각구두이예왈 하득지어차호?”

 

한편 박박은 부득이 지난 밤에 반드시 계를 더럽혔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부득에게 가서 비웃어 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밝은 빛을 발하며 몸이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박박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는 말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肹具叙其由 朴朴嘆曰 我乃障重 幸逢大聖而反不遇. 大德至仁 先吾著鞭. 願無忘昔日之契 事須同攝.” 肹曰 槽有餘液 但可浴之.”

힐구서기유 박박탄왈 아내장중 행봉대성이반불우. 대덕지인 선오착편. 원무망석일지계 사수동섭 힐왈 조유여액 단가욕지.

 

부득이 그 여유를 자세히 말해주자 박박은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장애가 많아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고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셈이 되었습니다. 큰 덕에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습니다. 옛 인연을 잊지 말고 나도 도와주기 바랍니다.” “통 속에 금물이 남았으니 목욕할 수 있을 것이오.”

 

朴朴又浴 亦如前成無量壽 二尊相對儼然. 山下村民聞之 競來瞻仰 嘆曰 希有希有 二聖爲說法要 全身躡雲而逝.

박박우욕 역여전성무량수 이존상대엄연. 산하촌민문지 경래첨앙 탄왈 희유희유!” 이성위설법요전신섭운이서.

 

박박도 목욕을 하자, 부득처럼 무량수불이 되어 두 부처가 엄연히 서로 마주 대하였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앞 다투어 달려와 우러러보며 감탄하였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로다!” 두 부처는 불법의 요체를 설명한 뒤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天寶十四年乙未 新羅景德王卽位.[古記云 天鑑十四年乙未 法興卽位 何先後倒錯之甚如此] 聞斯事 以丁酉歲 遣使創大伽藍 號白月山南寺. 廣德二年[古記云 大曆元年 亦誤]甲辰七月十五日寺成. 更塑彌勒尊像 安於金堂 額曰現身成道彌勒之殿.’ 又塑彌陁像 安於講堂. 餘液不足 塗浴未周 故彌陁像 亦有斑駁之痕. 額曰現身成道無量壽殿.

천보십사년을미 신라경덕왕즉위.[고기운 천람십사년을미 법흥즉위 하선루고착지심여차] 문신사 이정유세 견사창대가람 호백월산남사. 광덕이년[고기운 대력원년 역오]갑진칠월십오일사성. 경소미륵존상 안어금당 액왈현신성도미륵지전 우소미타상 안어강당. 여액부족 도욕미주고미타상 역유반박지흔. 액왈현신성도무량수전.

 

천보(天寶) 14년 을미(서기 755)에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왕위에 올랐는데,[고기(古記)에는 천감(天鑑) 14년 을미(서기 515)에 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으니, 어찌 선후가 뒤바뀐 것이 이처럼 심하단 말인가?] 이 일을 듣고 정유년(서기 757)에 사자를 보내어 큰 절을 창건하고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라고 하였다. 광덕(廣德) 2년 갑진(서기 764)[고기(古記)에서는 대력(大曆) 원년이라 하였지만 역시 잘못된 것이다.] 715일에 절을 완공하였다.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모시고 현판에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고 하였다. 또 아마타불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다. 그러나 남은 금물이 모자라 몸에 고루 바르지 못하여 아미타불상에는 역시 얼룩진 흔적이 있다. 그 현판에는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하였다.

 

議曰 娘可謂應以婦女身攝化者也. 華嚴經摩耶夫人善知識 寄十一地生佛 如幻解脫門. 今娘之桷産微意在此. 觀其投詞 哀婉可愛 宛轉有天仙之趣. 嗚呼! 使娘婆不解隨順衆生語言陁羅尼 其能若是乎? 其末聯宜云 淸風一榻莫予嗔.“ 然不爾云者 蓋不欲同乎流俗語爾.”

의왈 낭가위응이부녀신섭화자야. 화엄경마야부인선지깃 기십일지생불 여환해탈문. 금낭지각산미의재차. 관기투사 애완가애 완전유천선지취. 오호! 사낭파불해수순중생어언다라니 기능약시호? 기말연의운 청풍일탑막여진.“ 연불이운자 개불욕동호유속어이.”

 

논평해 말한다. “낭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변화하여 중생을 교화했다 하겠다. 화엄경(華嚴經)에 마야부인(摩耶夫人) 선지식(善知識)이 십일지(十一地)에 살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解脫門)을 보인 것과 같다. 이제 낭자가 해산한 미묘한 뜻이 여기에 있다. 그녀가 준 글은 애절하고 완곡하며 사랑스러워서 하늘나라 선녀의 자취가 있다. 오호라! 만일 낭자가 중생을 따라 다라니를 말할 줄 몰랐다면 이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그 구절의 끝에는 맑은 바람이 한 자리함을 꾸짖지 마시오.”라고 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체로 세속의 말처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讚曰 滴翠嵓前剝啄聲 何人日暮扣雲扃 南庵且近宜尋去 莫踏蒼苔汚我庭 右北庵.

찬왈 적취암전각탁성 하인일모구운경 남암차근의심거 막답창태오아정 우북암.

 

다음과 같이 기리길...

 

푸른 물방울 떨어지는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소리 그 누가 해 저무는데 구름 문을 두드리나.

남암이 가까우니 그곳으로 가시오 내 뜰의 푸른 이끼 밟아 더럽히지 마시오.

 

- 북암을 찬미한 것이다.

 

谷暗何歸已暝煙 南窓有簟且流連 夜闌百八深深轉 只恐成喧惱客眠 右南庵

곡암하귀이명연 남창유점차유욘 야난백팔심심전 지공성훤뇌갹면 우남암 십리송은일경미 방승래시여초제삼조욕태천장효 생하쌍아척향서 우성낭.

 

 

골짜기 어두운데 어디로 가리오 남창에 자리 있으니 머물다 가시오.

밤 깊도록 백팔염주 굴리고 또 굴리니 길손이 시끄러워 잠 못 들까 걱정이네.

 

- 남암을 찬미한 것이다.

 

十里松陰一徑迷 訪僧來試夜招提 三槽浴罷天將曉 生下雙兒擲向西 右聖娘.

솔그늘 십 리에 길을 헤매다 스님 시험하러 밤에 절을 찾았네.

세 번 목욕하니 날이 새려 하는데 두 아이 낳고서 서쪽으로 갔다네.

 

- 관음보살 낭자를 찬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