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遺事 (140) 썸네일형 리스트형 유사를 읽고... 다 아는대로 유사는 승려 일연의 역작이다. 보다시피 인물들의 행적이 많고 심지어 불교에 대해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다. 이쯤에서 왜 일연은 역사를 연대기나 왕의 업적 중심이 아닌 불교에 할애했을까???? 조심스럽지만.... 그런 종교에 치우친 관점이 제시하는 건 소위 사람들의 인식개선이라고 본다. 불교 수입의 당위성... 그건 바로 난생설화를 고집하는 봉황족과 용족의 치열한 대립을 화해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잘아는 고,백,신 3국의 시조신화의 상징을 살펴보면 확실해진다. 하나같이 알이 등장한다. 난생설화.... 세계는 용과 봉황의 대결이다. 로마, 미국의 상징은 독수리.... 중국은 용... 소위 용족=뱀족과 닭=삼족오=독수리= 봉황족의 대립.... 그리고 서구인들의 공포의 대상 龍전.. 삼국유사의 王歷 연대표-유사를 끝내며..... terms.naver.com/entry.nhn?docId=1633701&cid=62146&categoryId=62146&expCategoryId=62146 왕력 || 중국 || 신라 || 고구려 || 백제 || 가락 || | 전한 前漢 | 신라 新羅 | | | | | 선제 오봉 갑자년(기원전 57)부터 4년 동안 宣帝 五鳳(甲子)四 | 제1대 혁거세(赫居世) 성은 박씨(朴氏)이다. 알에�� terms.naver.com 卷第五 孝善 第九 - 貧女養母 卷第五 孝善 第九 貧女養母 孝宗郞遊南山鮑石亭[或云三花述] 門客星馳 有二客獨後. 郞問其故 曰 “芬皇寺之東里有女 年二十左右 抱盲母相號而哭. 問同里 曰 此女家貧 乞啜而反哺有年矣 適歲荒 倚門難以藉手 贖賃他家 得穀三十石 寄置大家服役 日暮橐米而來家 炊餉伴宿 晨則歸役大家 如是者數日矣 母曰 昔日之糠粃 心和且平 近日之香秔 膈肝若刺而心未安 何哉 女言其實 母痛哭 女嘆己之但能口腹之養 而失於色難也 故相持而泣 見此而遲留爾. 효종랑유남산포석정[혹운삼화술] 문객성치 유이객독후. 랑문기고 왈 “분황사지동리유녀 년이십좌우 포맹모상호이곡. 문동리 왈 ‘차녀가빈 걸철이반포유년의 적세황 기문난이적수 속임타가 득곡삼십석 지치대가복무 일모탁미이래가 취향반숙 진즉귀역대가 여시자수일의 모왈 “석일지당비 심화차평 근일지향갱 격간약자이심미안 하재?” .. 卷第五 孝善 第九 - 孫順埋兒 卷第五 孝善 第九 孫順埋兒 [興德王代] [흥덕왕대] [흥덕왕 시대이다.] 孫順者[古本作孫舜] 牟梁里人 父鶴山. 父沒 與妻同但傭人家得米穀養老孃. 孃名運烏. 順有小兒 每奪孃食. 順難之 謂其妻曰 “兒可得 母難再求. 而奪其食 母飢何甚. 且埋此兒以圖母腹之盈.” 손순자[고본작손순] 모량리인 부학산. 부몰 여처동단용인가득미곡양노양. 양명운오. 순유소아 매탈양식. 순난지 위기처왈 “아가득 모난재구. 이탈기식 모기하심. 차매차아이도모복지영.” 손순(孫順)[고본에는 손순(孫舜)으로 나온다.]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로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이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언제나 어머니가 드실.. 卷第五 孝善 第九 - 向得 舍知 割股供親 卷第五 孝善 第九 向得 舍知 割股供親 [景德王代] [경덕왕대] [경덕왕 시대이다.] 熊川州有向得舍知者 年凶 其父幾於餒死 向得割股以給養. 州人具事奏聞 景德王賞賜租五百碩. 웅천주유향득사지자 년흉 기부기어뇌사 향득할고이급양. 주인구사주문 경덕왕상사조오백석. 웅천주(熊川州)에 향득(向得)이란 사지(舍知)가 있었다. 흉년이 들어 그 아버지가 거의 굶어 죽게 되자 향득은 다리 살을 베어 봉양했다. 고을 사람들이 자세히 이 사실을 아뢰자 경덕왕(景德王)이 상으로 벼 500섬을 내려주었다. 舍知: 신라 17 관등 가운데 13째 등급의 벼슬을 이르던 말 卷第五 孝善 第九 - 大城 孝 二世父母 大城 孝 二世父母 대성 효 이세부모 대성의 두 부모에 대한 효 [神文王代] [신문왕 시대이다.] 牟梁里[一作浮雲村]之貧女慶祖有兒 頭大頂平如城 因名大城. 모량리[일작부운촌]지빈녀경조유아 두대정평여성 인명대성. 모량리(牟梁里)[다른 이름은 부운촌(浮雲村)이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한 성곽과 같아 대성(大城)이라고 이름 지었다. 家窘不能生育 因役傭於貨殖福安家 其家俵田數畝 以備衣食之資. 時有開士漸開 欲設六輪會於興輪寺 勸化至福安家 安施布五十疋. 開呪願曰 “檀越好布施 天神常護持 施一得萬倍 安樂壽命長.” 大城聞之 跳踉而入 謂其母曰 “予聽門僧誦倡 云施一得萬倍 念我定無宿善 今玆困匱矣 今又不施 來世益艱 施我傭田於法會 以圖後報何如?” 가군불능생육 인역용어화식복안가 기가효.. 卷第五 孝善 第九 - 眞定師 孝善雙美 眞定師 孝善雙美 진정사 효선쌍미 효와 선이 고루 아름다운 진정법사. 法師眞定 羅人也 白衣時 隸名卒伍 而家貧不娶 部役之餘 傭作受粟以養孀母. 家中計産唯折脚一鐺而已. 법사진정 라인야. 백의시 예명졸오 이가빈불취 부약지여 용작수속이양상모. 가중계산유절각이당이이. 진정법사(眞定法師)는 신라 사람이다. 승려가 되기 전에는 군졸이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 부역을 하면서도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집안에 재산이라고는 단지 다리 부러진 솥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一日有僧到門 求化營寺鐵物 母以鐺施之. 旣而定從外歸 母告之故 且虞子意何如爾. 定喜現於色曰 “施於佛事 何幸如之 雖無鐺又何患?” 乃以瓦盆爲釜 熟食而養之. 일일유승도문 구화영사철물 모이당시지 기이정종외귀 모고이고 차려자의하여이 .. 卷第五 避隱 第八 - 念佛師 念佛師 南山東麓有避里村 村有寺 因名避里寺. 寺有異僧 不言名氏 常念彌陀 聲聞于城中 三百六十坊 十七萬戶 無不聞聲. 聲無高下 琅琅一樣 以此異之 莫不致敬. 皆以念佛師爲名. 남산동록유피리촌 촌유사 인명피리사. 사유이승 불언명씨 상념미타 성문우성중 삼백육십방십칠만호 무불문성. 성무고하 랑랑일양 이차이지 막불치경. 개이염불사위명. 남산(南山)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 있는데, 마을의 이름을 따서 피리사(避里寺)라 하였다. 절에는 기이한 스님이 있었으니 이름을 말하지 않고 늘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는데,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려 360방 17만 호에서 그 염불 소리를 듣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높고 낮음이 없는 소리는 한결같이 낭랑하였다. 이로써 그를 기이하게 여기며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