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遺事 (140) 썸네일형 리스트형 卷第五 避隱 第八 - 布川山 五比丘 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 [경덕왕대] [경덕왕(景德王) 시대이다.] 歃良州東北二十許里有布川山. 石窟奇秀 宛如人斲. 有五比丘 未詳名氏 來寓而念彌陀 求西方. 幾十年 忽有聖衆 自西來迎. 於是五比丘各坐蓮臺 乘空而逝 至通度寺門外留連 而天樂間奏. 寺僧出觀 五比丘爲說無常苦空之理 蛻棄遺骸 放大光明 向西而去. 其捐舍處 寺僧起亭榭 名置樓 至今存焉. 삽량주동북이십허리유포천산. 석굴기수 완여인착. 유오비구 미상명씨. 래우이념미타 구서방. 기십년 홀유성중 자서래영. 어시오비구각좌연대 승공이서 지통도사문외유연 이천악간주. 사승출관 오비구위설‘무상고공지리.’ 세기유해 방대광명 향서이거. 기연사처 사승기정사 명치루 지금존언. 삽량주(歃良州)의 동북 쪽 20리쯤 되는 곳에 포천산(布川山)이 있다. 그곳에는 석굴(石窟)이 있었는데, .. 卷第五 避隱 第八 - 迎如師 卷第五 避隱 第八 迎如師 實際寺釋迎如 未詳族氏. 德行雙高. 景德王將邀致供養 遣使徵之. 如詣內 齋罷將還 王遣使陪送至寺. 入門卽隱 不知所在. 使來奏 王異之 追封國師. 後亦不復現世. 至今稱曰國師房. 실제사석영여 미상족씨. 덕행쌍고. 경덕왕장요치공양 견사징지. 여지내 재파장환 왕견사배송지사. 입문즉은 불여소재. 사래주 왕이지 츠봉국사. 후역불복현세. 지금칭왈국사방. 실제사(實際寺)의 승려 영여(迎如)의 성씨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덕과 행실이 모두 높았다. 경덕왕(景德王)은 그를 맞아 공양을 드리기 위해 사자를 보내서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들어가 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왕은 사자를 보내 그를 절까지 모시도록 하였다. 그는 절에 들어서자마자 곧 사라져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자가 와서 아뢰니 왕.. 卷第五 避隱 第八 - 勿稽子 勿稽子 第十奈解王卽位十七年壬辰 保羅國古自國[今固城]史勿國[今泗州]等八國 倂力來侵邊境. 王命太子捺音將軍一伐等率兵拒之 八國皆降. 時勿稽子軍功第一 然爲太子所嫌 不賞其功. 或謂勿稽曰 “此戰之功 唯子而已 而賞不及子 太子之嫌 君其怨乎?” 稽曰 “國君在上 何怨人臣.” 或曰 “然則奏聞于王幸矣.” 稽曰 “伐功爭命 揚己掩人 志士之所不爲也 勵之待時而已.” 제십내해왕즉위십칠년임진 보라국고자국[금소성]사물국[금사천]등팔국 병력래침변경. 왕명태자내음장군일벌등솔병거지 팔국개항. 시물계자군공제일 연위태자소혐 불상기공. 혹위물계왈 “차전지공 유자이이 이상불급자 태자지혐 군기원호?” 계왈 “국군재상 하원인신 혹왈 연즉주문우왕행의.” 계왈 “벌공쟁명 양기엄인 지사지소불위야 려지대시이이.” 제10대 내해왕(奈解王)이 즉위한 지 17년인 임.. 卷第五 避隱 第八 - 包山二聖 卷第五 避隱 第八 包山二聖 羅時有觀機道成二聖師 不知何許人 同隱包山[鄕云所瑟山乃梵音 此云包也]. 機庵南嶺 成處北穴. 相去十許里 披雲嘯月 每相過從. 라시유관기도성이성사 부지하허인 동은포산[향운소슬산내범음 차운포야]. 기암남령 성처북혈. 상거십허리 피운소월 매상과종. 신라 때에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란 두 성사(聖師)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두 사람은 포산(包山)[나라 사람들이 소슬산(所瑟山)이라고 한 것은 인도 음으로, ‘싸다’의 뜻이다.]에 숨어 살았다. 관기는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북쪽 굴에서 살았다. 서로 10여 리쯤의 거리였으나,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서로 늘 왕래하였다. 成欲致機 則山中樹木皆向南而俯 如相迎者 機見之而往 機欲邀成也 則亦如之 皆北偃 成.. 卷第五 避隱 第八- 信忠掛冠 卷第五 避隱 第八 信忠掛冠 孝成王潛邸時 與賢士信忠 圍碁於宮庭栢樹下 嘗謂曰 “他日若忘卿 有如栢樹.” 효성왕잠저시 여현사신충 위기어궁정백수하 상위왈 “타일약망경 우여백수.” 효성왕(孝成王)이 왕위에 오르기 전, 어진 선비 신충(信忠)과 더불어 대궐 뜰의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며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다. “뒷날에 만약 내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거가 될 것이야.” 信忠興拜 隔數月 王卽位 賞功臣 忘忠而不第之 忠怨而作歌 帖於栢樹 樹忽黃悴 王怪使審之 得歌獻之 大驚曰 “萬機鞅掌 幾忘乎角弓.” 乃召之賜爵祿 栢樹乃蘇. 신충흐배 격수월 왕즉위 상공신 망충이불제지 충원이작가 첩어백수 수홀황췌 왕괴사심지 득가헌지 대경왈 “만기앙장 기망호각궁.” 내소지사작록 백수내소. 그러자 신충은 일어나서 절을 하였다. 그 후 몇.. 卷第五 避隱 第八 - 惠現求靜 惠現求靜 釋惠現 百濟人 少出家 苦心專志 誦蓮經爲業 祈禳請福 靈應良稠. 兼攻三論 染指通神. 初住北部修德寺 有衆則講 無則持誦 四遠欽風 戶外之履滿矣. 석혜연 백제인 소출가 고심전시 송연경위업 기양정복 영응양조. 겸공삼론 염지통신. 초주북부수덕사 유중즉강 무즉지송 사원흠풍 호외지리만의. 승려 혜현(惠現)은 백제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마음과 뜻을 한 곳으로 모아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는데, 기도하여 복을 청하면 부처의 영험한 감응이 실로 많았다. 『삼론(三論)』을 다 배우고 수도를 시작하니 신명에 통하였다. 처음에는 북부 수덕사(修德寺)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신도가 있으면 불경을 강론하고 없으면 불경을 외웠으므로, 사방의 먼 곳에서도 그 품격을 흠모하여 문 밖에는 항상 신발이 가득하.. 卷第五 避隱 第八 - 緣會逃名 文殊岾 緣會逃名 文殊岾 高僧緣會嘗隱居靈鷲 每讀蓮經 修普賢觀行. 庭池常有蓮數朶 四時不萎[今靈鷲寺龍藏殿 是緣會舊居] 國主元聖王聞其瑞異 欲徵拜爲國師 師聞之 乃棄庵而遁. 行跨西嶺嵓間 有一老叟今爾耕 問師‘奚適?’ 曰 “吾聞邦家濫聽 縻我以爵 故避之爾.” 고승연회상은거영취 매독연경 수보현관행. 정지상유연수타 사시불위[금영취사용장전 시연회구거] 국주원성왕문기단이 욕칭배위국사 사문지 내기암이둔. 행과서령암간 유일노수굼이경문살‘해적?’ 왈 “오문방가남청 미아이작 고피지이.” 고승 연회(緣會)는 일찍이 영취산(靈鷲山)에 숨어 살면서 항상 『법화경(法華經)』을 읽어 보현보살의 관행법(觀行法)을 닦았다. 뜰의 연못에는 늘 연꽃 두 세 송이가 피어 사시사철 시들지 않았다.[지금 영취사의 용장전(龍藏殿)이 옛날 연회가 살던 터이다.] 원.. 卷第五 避隱 第八 - 朗智乘雲, 普賢樹 卷第五 避隱 第八 朗智乘雲 普賢樹 歃良州阿曲縣之靈鷲山[歃良今梁州 阿曲一作西. 又云求佛 又屈弗. 今蔚州置屈弗驛 今存其名]有異僧. 庵居累紀 而鄕邑皆不識 師亦不言名氏. 常講法華 仍有通力. 삽량주아곡현지영취산[삽량금양주 아곡일작서. 우운구불 우굴불. 금울주치굴불역 금존기명]유이승. 암거누기 이향읍개불식 사역불언명씨. 상강법화 잉유통력. 삽량주(歃良州) 아곡현(阿曲縣)의 영취산(靈鷲山)[삽량은 지금의 양주(梁州)인데 아곡은 서(西)라고도 되어 있다. 구불(求佛) 또는 굴불(屈弗)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울주(蔚州)에 굴불역을 두었으니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남아 있다.]에 이상한 스님이 있었다. 암자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나 고을에서는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였고, 스님도 자기의 성명을 말하지 않았다. 늘 『법화경(法華.. 이전 1 2 3 4 5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