惠現求靜
釋惠現 百濟人 少出家 苦心專志 誦蓮經爲業 祈禳請福 靈應良稠. 兼攻三論 染指通神. 初住北部修德寺 有衆則講 無則持誦 四遠欽風 戶外之履滿矣.
석혜연 백제인 소출가 고심전시 송연경위업 기양정복 영응양조. 겸공삼론 염지통신. 초주북부수덕사 유중즉강 무즉지송 사원흠풍 호외지리만의.
승려 혜현(惠現)은 백제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마음과 뜻을 한 곳으로 모아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는데, 기도하여 복을 청하면 부처의 영험한 감응이 실로 많았다. 『삼론(三論)』을 다 배우고 수도를 시작하니 신명에 통하였다. 처음에는 북부 수덕사(修德寺)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신도가 있으면 불경을 강론하고 없으면 불경을 외웠으므로, 사방의 먼 곳에서도 그 품격을 흠모하여 문 밖에는 항상 신발이 가득하였다.
稍厭煩擁 遂往江南達拏山居焉. 山極嵓險 來往艱稀. 現靜坐求忘 終于山中. 同學轝尸 置石室中 虎啖盡遺骸 唯髏舌存焉. 三周寒暑 舌猶紅軟. 過後方變 紫硬如石. 道俗敬之 藏于石塔.
초염번롱 수왕강남달라산거언. 산극암험 래왕간희. 현정좌구망 종우산중. 동학여시 치석실중 호담지유해 유루설존언. 삼주한서 설유홍연. 과후방변 자경여석. 도속경지 정유석탑.
점차 번거롭고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마침내 강남의 달라산(達拏山)에 가서 살았다. 그 산은 매우 험준하여 사람의 왕래가 힘들어 찾기도 어려웠다. 혜현은 고요히 앉아 세상을 잊고 산 속에서 생을 마쳤다. 동문수학하던 제자들이 그 시체를 운구하여 석실 안에 모셔두었는데, 범이 그 유해를 먹어 치우고 해골과 혀만 남겨두었다. 추위와 더위가 세 번 지나가도 혀는 오히려 붉고 부드러웠다. 그 후 차차 변하여 자줏빛이 되더니 돌과 같이 단단해졌다. 스님과 신도들이 이를 공경하여 석탑에 간직하였다.
俗齡五十八 卽貞觀之初. 現不西學 靜退以終 而乃名流諸夏立傳 在唐聲著矣夫.
속영오십팔 즉정관지초. 현불서학 정퇴이종 이내명유제하입전 재당성저의부.
그의 나이 58세에 운명하였으니, 즉 당나라 정관(貞觀, 서기 627~649) 초기였다. 혜현은 일찍이 중국에 유학 간 일도 없었고 고요히 물러나 일생을 마쳤지만,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지고 전기까지 쓰여져 당나라에서도 그 명성이 높았다.
又高麗釋波若 入中國天台山 受智者敎觀 以神異聞 山中而滅 唐僧傳亦有章 頗多靈範.
우고려석파약 입중국천태산 수지자교관 이신이문 산중이멸 당승전역유장 파다영범.
또 고구려의 스님 파약(波若)은 중국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중국 수나라 천태종의 창시자인 지의(智顗)의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을 받아 신이한 사람으로 산속에 알려졌다가 죽었다. 『당승전(唐僧傳)』에도 실려 있는데 자못 영험한 가르침이 많다.
讚曰 麈尾 傳經倦一場 去年淸誦倚雲藏 風前靑史名流遠 火後紅蓮舌帶芳.
찬왈 주미 전경권일장 거년청송의운정 풍전청사명유원 화후홍연설대방,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주미(불법을 전할 때 흔드는 총채로 주미불자(麈尾拂子)라고도 한다.)로 불경 전하는 것 수고롭게 여겨 지난날의 독경소리 구름 속에 숨겼다네.
세속의 역사에 이름을 오래도록 남겼으니 죽어서도 붉은 연꽃같은 혀의 색은 아름다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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