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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卷第五 避隱 第八 - 包山二聖

卷第五 避隱 第八

 

包山二聖

 

羅時有觀機道成二聖師 不知何許人 同隱包山[鄕云所瑟山乃梵音 此云包也]. 機庵南嶺 成處北穴. 相去十許里 披雲嘯月 每相過從.

라시유관기도성이성사 부지하허인 동은포산[향운소슬산내범음 차운포야]. 기암남령 성처북혈. 상거십허리 피운소월 매상과종.

 

신라 때에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란 두 성사(聖師)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두 사람은 포산(包山)[나라 사람들이 소슬산(所瑟山)이라고 한 것은 인도 음으로, ‘싸다의 뜻이다.]에 숨어 살았다. 관기는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북쪽 굴에서 살았다. 서로 10여 리쯤의 거리였으나,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서로 늘 왕래하였다.

 

成欲致機 則山中樹木皆向南而俯 如相迎者 機見之而往 機欲邀成也 則亦如之 皆北偃 成乃至. 如是有年.

성욕지기 즉산중수림개형남이부 여상영자 기견지이왕 기욕요성야 즉역여지 개북언 성내지. 여시유년.

 

도성이 관기를 부르려고 하면 산 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굽혀 영접하는 것 같았으므로 관기는 이것을 보고 도성에게 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역시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지므로 도성이 관기에게 오게 되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냈다.

 

成於所居之後高嵓之上 常宴坐. 一日自嵓縫間透身而出 全身騰空而逝 莫知所至. 或云 至壽昌郡[今壽城郡]捐骸焉. 機亦繼踵歸眞. 今以二師名命其墟 皆有遺趾. 道成嵓高數丈 後人置寺穴下.

성어소거지후고암지상 상연좌. 일일자암봉간투신이출 전신등공이서 막지소지. 혹운 지수창군[금수성군]연해언. 기역단종귀진. 금이이사명명기허 개유유지. 도성암고수장 후인치사혈하.

 

도성은 그가 거주하는 뒷산의 높은 바위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하루는 바위 사이에서 빠져나와 몸을 허공에 날리며 떠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혹자는 수창군(壽昌郡)[지금의 수성군(壽城郡)이다.]에 가서 죽었다고도 한다. 그러자 관기도 또한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두 성사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살던 곳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도성암(道成嵓)은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는데 후인들이 그 굴 아래에 절을 지었다.

 

太平興國七年壬午 有釋成梵 始來住寺. 敞萬日彌陀道場 精懃五十餘年 屢有殊祥. 時玄風信士二十餘人歲結社 拾香木納寺. 每入山採香 劈析淘洗 攤置箔上 其木至夜放光如燭. 由是郡人項施其香徒 以得光之歲爲賀. 乃二聖之靈感 或岳神攸助也. 神名靜聖天王. 嘗於迦葉佛 時受佛囑 有本誓 待山中一千人出世 轉受餘報.”

태평흥국칠년임오 유석성범 시래주사. 창만일미타도장 정근오십여년 누유수상. 시현풍신사이십여인세결사 습향목납사. 매입산채향 벽석도세 탄치박상 기목지야방광여촉. 유시군인항시기향도 이득광지세위하. 내이성지영감 혹악신유조야. 신명정성천왕. 상어가섭불 시수불촉 유본서 대산중일천인출세 전수여보,”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 임오(서기 982)에 중 성범(成梵)이 처음으로 이 절에 와서 살았다. 그는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어 부지런히 50여 년을 전념했는데 특별히 상서로운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이때 현풍(玄風)의 신도 20여 명이 결사(結社)를 만들고 해마다 향나무를 주워다 절에 바쳤다. 매번 산에 가서 향나무를 채취하다가 쪼개고 씻어서 발 위에 펼쳐두었는데, 그 향나무가 밤이 되면 촛불처럼 빛을 발하였다. 이런 이유로 고을 사람들은 그 향을 바친 무리들에게 보시하고 빛을 얻는 해라며 축하하였다. 이것은 두 성사의 영감이거나 혹은 산신령의 도움일 것이다. 산신령의 이름은 정성천왕(靜聖天王)이다. 일찍이 가섭불 시대에 부처님의 부탁을 받고 발원 맹세를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산중에서 1천 명의 출가를 기다려 남은 업보를 받겠습니다.”

 

今山中嘗記九聖 遺事則未詳 曰 觀機道成搬師師道義[有栢岩基]子陽成梵今勿女白牛師.

금산중상기구성 유사즉미상 왈 관기도성반사사도의[유백암기]자영성범금물여백우사.

 

지금 산중에는 아홉 성인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것이 있는데 자세하지는 않지만, 관기, 도성, 반사(搬師), 첩사()[백암사(栢岩寺)에 터가 있다.], 자양(子陽), 도의(道義), 성범(成梵), 금물녀(今勿女), 백우사(白牛師) 등이다.

 

讚曰 相過踏月弄雲泉 二老風流幾百年 滿壑烟霞餘古木 偃昻寒影尙如迎.

찬왈 상과답월롱운천 이노풍류기백년 만학연하여고목 언앙한영상여영.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달빛을 밟고 서로 찾아 구름과 물 희롱하던 두 노인의 풍류는 몇 백 년이 되었는가.

골짜기엔 고목들이 안개처럼 빽빽하고 기울어진 그림자만 아직도 서로 맞이하는 듯하네.

 

搬音般 鄕云雨木 音牒 鄕云加乙木. 此二師久隱嵓叢 不交人世. 皆編木葉爲衣 以度寒暑 掩濕遮羞而已 因以爲號.

반음반 향운우목 음첩 향운가을목. 차이사구은암총 불교인세. 개편목엽위의 이도한서 엄습차수이이 인이위호.

 

()은 음이 반()인데 우리말로는 피나무라고 하며, ()은 우리말로는 떡갈나무라 한다. 이 두 성사는 오랫동안 바위 사이에 숨어 지내며 인간 세상과는 사귀지 않았다. 모두 나뭇잎을 엮어 옷을 대신하여 추위와 더위를 겪었으며 습기를 막고 최소한으로 가릴 뿐이었다. 그러므로 반사ㆍ첩사로 호를 삼았던 것이다.

 

嘗聞楓岳 亦有斯名. 乃知古之隱倫之士 例多逸韻如此 但難爲蹈襲. 予嘗寓包山 有記二師之遺美 今幷錄之.

상문풍악 역유사명. 내지고지은륜지사 예다일운여차 단난위도습. 여상우포산 유기이사지유미금병록지.

 

일찍이 들으니 풍악에도 이런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옛날 숨어 산 선비들 중에서 뛰어난 운치를 지닌 사람들이 이처럼 많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따라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일찍이 포산에 머물 때 두 스님의 미덕을 기록하였는데, 아울러 함께 적는다.

 

紫茅黃精肚皮 蔽衣木葉非蠶機

寒松颼颼石犖确 日暮林下樵蘇歸

夜深披向月明坐 一半颯颯隨風飛

敗蒲橫臥於憨眠 夢魂不到紅塵羈

雲遊逝兮二庵墟 山鹿恣登人迹稀.

자모황정두피 폐의목엽비잠기

한송수수석낙각 일모임하초소귀

야심피향월명좌 일반입입수풍비

패포횡와어감면 몽혼부도홍진기

운유서혜이암허 산록자등인적희.

 

자모(紫茅, 풀이름)와 황정(黃精, 약초이름)으로 배를 채우고 입은 옷은 나뭇잎이지 누에고치로 짠 비단이 아닌데....

외딴 소나무 바람에 흔들리고 바위그늘 짙고 날 저문 나무아래 꼴 베는 아이가 돌아오네.

깊은 밤 밝은 달 아래에 좌선하노라면 바람이 거칠게 불어 날릴 듯 한데....

낡은 부들자리 깔고 잠들어도 꿈에도 속세에 얽매이지 않는다네

구름 흘러가는 두 암자엔 산사슴만 뛰어놀 뿐 인적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