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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卷第五 避隱 第八 - 勿稽子

勿稽子

 

第十奈解王卽位十七年壬辰 保羅國古自國[今固城]史勿國[今泗州]等八國 倂力來侵邊境. 王命太子捺音將軍一伐等率兵拒之 八國皆降. 時勿稽子軍功第一 然爲太子所嫌 不賞其功. 或謂勿稽曰 此戰之功 唯子而已 而賞不及子 太子之嫌 君其怨乎?” 稽曰 國君在上 何怨人臣.” 或曰 然則奏聞于王幸矣.” 稽曰 伐功爭命 揚己掩人 志士之所不爲也 勵之待時而已.”

제십내해왕즉위십칠년임진 보라국고자국[금소성]사물국[금사천]등팔국 병력래침변경. 왕명태자내음장군일벌등솔병거지 팔국개항. 시물계자군공제일 연위태자소혐 불상기공. 혹위물계왈 차전지공 유자이이 이상불급자 태자지혐 군기원호?” 계왈 국군재상 하원인신 혹왈 연즉주문우왕행의.” 계왈 벌공쟁명 양기엄인 지사지소불위야 려지대시이이.”

 

10대 내해왕(奈解王)이 즉위한 지 17년인 임진년(서기 212)에 보라국(保羅國)과 고자국(古自國)[지금의 고성(固城)이다.]과 사물국(史勿國)[지금의 사주(泗州).] 등 여덟 나라가 합세하여 신라의 변경을 침략해 왔다. 왕은 태자 내음(捺音)과 장군 일벌(一伐)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 막게 하니 여덟 나라가 모두 항복하였다. 이때 물계자(勿稽子)의 공이 으뜸이었지만, 태자에게 미움을 받아 포상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계자에게 물었다. “이번 싸움에 이긴 공은 오로지 당신 때문이오. 그런데도 당신은 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태자께서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이오. 그대는 원망스럽지도 않소?” 물계자는 대답하였다. “나라의 임금이 위에 계시는데 신하인 태자를 어찌 원망하겠는가?” 그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임금께 아뢰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러자 물계자는 대답하였다. “업적을 자랑하고 이름을 다투며 자기를 뽐내고 남을 누르는 것은, 뜻있는 선비가 할 일이 아니오. 힘써 때를 기다릴 뿐이오.”

 

二十年乙未 骨浦國[今合浦也]等三國王各率兵來攻竭火[疑屈弗也 今蔚州]. 王親率禦之 三國皆敗. 稽所獲數十級 而人不言稽之功.

이십년을미 골포국[금합포야]등삼국왕각솔병래공갈화[의굴불야 금울주]. 왕친솔어지 삼국개패. 계소획수십급 이인불언계지공.

 

내해왕 20년 을미(서기 215)에 골포국(骨浦國)[지금의 합포(合浦).] 등 세 나라 왕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갈화(竭火)[굴불(屈弗)인 듯한데, 지금의 울주(蔚州).]를 쳤다. 그러자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으니 세 나라가 모두 패하였다. 이때도 물계자가 죽인 적병의 시체는 수십 급이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공을 거론치 않았다.

 

稽謂其妻曰 吾聞仕君之道 見危致命 臨難忘身 仗於節義 不顧死生之謂忠也.” 夫保羅[疑發羅 今羅州]竭火之役 誠是國之難君之危 而吾未曾有忘身致命之勇 此乃不忠甚也. 旣以不忠而仕君 累及於先人 可謂孝乎? 旣失忠孝 何顔復遊朝市之中乎?

계위기처왈 오문사군지도 견위치명 임난망신 장어절의 불고사생지위충야. 부보라[의발라 금나주]갈화지역 성시국지난군지위 이오미증유망신치명지용 차내불충심야. 기이불충이사군 누급어선인 가위효호 기실충효 하안복유조시지중호?

 

물계자는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 들으니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움을 만나면 목숨을 바치고 환란을 당해서는 몸을 잊어버리며, 절의를 지켜 생사를 돌보지 않음을 충이라고 했소. 보라(保羅)[발라(發羅)로 생각되는데, 지금의 나주(羅州).]와 갈화의 싸움은 진실로 나라의 환란이었고 임금의 위태로움이었는데, 나는 일찍이 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치는 용맹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매우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오. 이미 충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임금을 섬겨 그 허물이 아버님께 미쳤으니,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소? 이미 충과 효의 도를 잃었는데 무슨 낯으로 다시 조정과 저자를 나다닐 수 있겠소?”

 

乃被髮荷琴 入師彘山[未詳]. 悲竹樹之性病 寄托作歌 擬溪澗之咽響 扣琴制曲. 隱居不復現世.

내피발하금 입사체산[미상]. 비죽수지성병 기탁작가 의계간지연향 구금제곡. 은거불복현세.

 

그리고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메고는 사체산(師彘山)[자세하지 않다.]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대나무의 곧은 성질이 병이 되는 현실을 슬퍼하면서 이를 비유하여 노래를 짓기도 하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비겨 거문고를 타며 곡조를 붙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곳에 숨어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