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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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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第五 感通 第七 - 正秀師救氷女 正秀師救氷女 第四十哀莊王代 有沙門正秀 寓止皇龍寺. 冬日雪深 旣暮 自三郞寺還 經由天嚴寺門外. 有一乞女産兒 凍臥濱死. 師見而憫之 就抱 良久氣蘇. 乃脫衣以覆之 裸走本寺 苫草覆身過夜. 제사십애장왕대 유사문정수 우지황룡사. 동일설심 기모 자삼랑사환 경유천엄사문외. 유일걸녀산아 동와빈사. 사견이민지 취포 양구기소. 내탈의이복지 나주본사 점초복신과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에 승려 정수(正秀)는 황룡사(皇龍寺)에 머물러 있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고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삼랑사(三郞寺)에서 돌아오다가 천엄사(天嚴寺) 문 밖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누워 있었는데,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스님이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여인을 안아주었는데, 한참 만에 의식이 들었다. 그래서 옷..
卷第五 感通 第七 - 融天師彗星歌 卷第五 感通 第七 融天師彗星歌 [眞平王代] [진평왕대] [진평왕 시대이다.] 第五居烈郞 第六實處郞[一作突處郞] 第七寶同郞等 三花之徒 欲遊楓岳 有彗星犯心大星. 郞徒疑之 欲罷其行. 時天師作歌歌之 星怪卽滅 日本兵還國 反成福慶. 大王歡喜 遣郞遊岳焉. 재오거열랑 재육실처랑[일작돌처랑] 제칠보동랑등 삼화지도 욕유픙악 유혜성범심대성. 낭도의지 욕파기행. 시천사작가가지 성괴즉멸 일본병환군 반성복경. 대왕환희 견랑유악언. 제5거열랑(居烈郞), 제6실처랑(實處郞)[혹은 돌처랑(突處郞)이라고도 한다], 제7보동랑(寶同郞) 등의 낭도들이 금강산(金剛山)에 유람을 가려고 하였는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였다. 낭도들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그 유람을 그만두려고 하였다. 이때 융천사(融天師)가 노래를 지어서 부르니 별의 변괴..
券 第五 感通 第七- 金現感虎 金現感虎 김현이 호랑이에게 감동받다. 新羅俗 每當仲春 初八至十五日 都人士女 競遶興輪寺之殿塔爲福會. 元聖王代 有郎君金現者 夜深獨遶不息. 有一處女 念佛隨遶 相感而目送之. 遶畢 引入屛處通焉. 신라속 매당중춘 초파지십오일 도인사녀 경요흥륜사지전탑위복회. 원성왕대 유낭군김현자 야심독요불식. 유일처녀 염불수요 상감이목송지. 요필 인입병처통언.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보름날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홍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을 다투어 돌며 복을 비는 모임을 가졌다. 원성왕(元聖王) 때에 낭군(郎君) 김현(金現)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홀로 탑을 돌았다. 그때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따라 돌았는데, 서로 마음이 통하여 눈짓을 하였다. 탑돌이를 마치자 구석진 곳으로 처녀를 데리고 ..
卷第五 感通 第七 - 月明師兜率歌 卷第五 感通 第七 月明師兜率歌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竝現 浹旬不滅. 日官奏 “請緣僧 作散花功德則可禳.” 경덕왕십구년경자사월삭 이일병현 협순불멸. 일관주 “청연승 작산화공덕즉가양.” 경덕왕(景德王) 19년 경자(서기 760) 4월 초하루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천문을 담당한 관리가 아뢰었다. “인연 있는 중을 청하여 산화공덕1)을 베풀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於是潔壇於朝元殿 駕幸靑陽樓 望緣僧 時有月明師 行于阡陌時之南路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어시결단어조원전 가행청양루 망연승 시유월명사 행우천백시지남로 왕사소지 명개단작계. 그래서 조원전(朝元殿)에 깨끗하게 단을 만들고 왕이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월명사(月明師)가 밭..
卷第五 感通 第七 - 眞身受供 眞身受供 長壽元年壬辰 孝昭卽位 始創望德寺 將以奉福唐室. 後景德王十四年 望德寺塔戰動 是年有安史之亂. 羅人云 “爲唐室立玆寺 宜其應也!” 장수원년임진 효소즉위 시창망덕사 장이봉복당실. 후경덕왕십사년 망덕사탑전동 시년유안사지란. 라인운 “위당실입자사 의기응야!” 장수(長壽) 원년 임진(서기 692)에 효소왕(孝昭王)이 즉위하여 망덕사(望德寺)를 세우고 당나라 황실의 복을 빌려고 하였다. 그 후 경덕왕(景德王) 14년(서기 755)에 망덕사 탑이 흔들리더니 이 해에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신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당나라 황실을 위해 세운 절이니 마땅히 그 감응이 있구나!” 八年丁酉 設落成會 王親駕辦供 有一比丘 儀彩疎陋 局束立於庭 請曰 “貧道亦望齋.” 王許赴床杪 將罷 王戱調之..
卷第五 感通 第七 - 憬興遇聖 憬興遇聖 神文王代 大德憬興 姓水氏 熊川州人也. 年十八出家 遊刃三藏 望重一時. 開耀元年 文武王將昇遐 顧命於神文曰 “憬興法師 可爲國師 不忘朕命.” 神文卽位 冊爲國老 住三郞寺. 신문왕대 대덕경흥 성수씨 웅천주인야. 년십팔출가 유인삼장 망중일시. 개요원년 문무왕장승하 고명어신문왈 “경흥법사 가위국사 불망짐명,” 신문즉위 책위국노 주삼랑사. 신문왕(神文王) 때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은 성이 수(水)씨이며 웅천주(熊川州) 사람이다. 18세에 중이 되어 삼장(三藏)에 통달하니 그 시대에 명망이 높았다. 개요(開耀) 원년(서기 681)에 문무왕(文武王)이 세상을 떠나려고 할 때 신문왕에게 유언을 남기었다. “경흥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짐의 명을 잊지 말라.” 신문왕이 즉위하여 국로(國老)로 삼고 삼랑사(三郎寺)에서 살..
卷第五 感通 第七 - 廣德嚴莊 卷第五 感通 第七 廣德嚴莊 文武王代 有沙門名廣德嚴莊 二人友善 日夕約曰 “先歸安養者須告之.” 문무왕대 유사문명광덕엄장 이인우선 일석약왈 “선귀안양자수고지.” 문무왕(文武王) 때 중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밤낮으로 약속했다. “먼저 극락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하자!” 德隱居芬皇西里[或云 皇龍寺有西去房 未知孰是] 蒲鞋爲業 挾妻子而居 莊庵栖南岳 火種刀耕. 一日 日影拖紅 松陰靜暮 窓外有聲 報云 某已西往矣 惟君好住 速從我來. 덕은거분황서라[혹운 황룡사유서거방 미지숙시] 포혜위업 협처자이거 장엄서남악 화종도경.일일 일영타홍 송음정모 창외유성 보운 “모기서왕의 유군호주 속종아래.”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혹은 황룡사에 서거방(西去房)이 있다고도..
卷第五 感通 第七- 郁面婢念佛西昇 郁面婢念佛西昇 여종 욱면이 염불하여 극락으로 가다 景德王代 康州[今晋州 一作剛州 則今順安] 善士數十人 志求西方 於州境創彌陀寺 約萬日爲契. 경덕왕대 강주[금진주 일작강주 즉금순안] 선사수십인 지구서방 어주경창미타사 약만일위계. 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지금의 진주(晉州)인데 강주(剛州)라고도 하니, 그렇다면 지금의 순안(順安)이다.]의 신자 수십 명이 서방정토(극락, 천국)를 정성껏 구하여 고을 경내에 미타사(彌陁寺)를 세우고 1만 일을 기약하여 계(契)를 만들었다. 時有阿干貴珍家一婢 名郁面 隨其主歸寺 立中庭 隨僧念佛. 主憎其不職 每給穀二碩 一夕舂之. 婢一更舂畢 歸寺念佛[俚言‘己事之忙 大家之舂促.’ 蓋出乎此] 日夕微怠 庭之左右 竪立長橛 以繩穿貫兩掌 繫於橛上合掌 左右遊之激勵焉. 시유아간책진가일비 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