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第五 孝善 第九 孫順埋兒
[興德王代]
[흥덕왕대]
[흥덕왕 시대이다.]
孫順者[古本作孫舜] 牟梁里人 父鶴山. 父沒 與妻同但傭人家得米穀養老孃. 孃名運烏. 順有小兒 每奪孃食. 順難之 謂其妻曰 “兒可得 母難再求. 而奪其食 母飢何甚. 且埋此兒以圖母腹之盈.”
손순자[고본작손순] 모량리인 부학산. 부몰 여처동단용인가득미곡양노양. 양명운오. 순유소아 매탈양식. 순난지 위기처왈 “아가득 모난재구. 이탈기식 모기하심. 차매차아이도모복지영.”
손순(孫順)[고본에는 손순(孫舜)으로 나온다.]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로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이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언제나 어머니가 드실 것을 빼앗아 먹었다. 이를 민망히 여긴 손순이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이는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께서 드실 것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어머니는 굶주림이 심하시오. 그러니 아이를 묻어버리고 어머니를 배부르게 해드려야겠소.”
乃負兒歸醉山[山在牟梁西北]北郊 堀地忽得石鍾甚奇. 夫婦驚怪 乍懸林木上 試擊之 舂容可愛. 妻曰 “得異物 殆兒之福 不可埋也.” 夫亦以爲然 乃負兒與鍾而還家.
내부아귀취산[산재모량서북]북교 굴지홀득석종심기. 부부경괴 사현임목상 시격지 용용가애. 처왈 “득이물 태아지복 불가매야.” 부역이위연 내부아여종이환가.
이리하여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산은 모량리 서북쪽에 있다.] 북쪽 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매우 기이한 돌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나무에 잠깐 매달아 놓고 두드려보았더니 은은한 소리가 듣기에 퍽 좋았다. 아내가 말하였다. “이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도 이 아이의 복인 듯합니다. 아이를 묻지 않는 게 좋겠어요.” 남편도 그렇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懸鍾於梁扣之 聲聞于闕. 興德王聞之 謂左右曰 “西郊有異鍾聲 淸遠不類. 速檢之.”
현종어양구지 성문우궐. 흥덕왕문지 위좌우왈 “서교유이종성 청원불류. 속검지.”
종을 들보에 매달아 두드렸는데 대궐에까지 종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흥덕왕(興德王)이 듣더니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리는데 맑은 소리가 멀리 들리니 보통 종과는 다르다. 빨리 가서 조사해 오라!”
王人來檢其家 具事奏王 王曰 “昔郭巨瘞子 天賜金釜 今孫順埋兒 地湧石鍾. 前孝後孝 覆載同鑑.” 乃賜屋一區 歲給粳五十碩 以尙純孝焉. 順捨舊居爲寺 號弘孝寺 安置石鍾.
왕인래검기가 구사주왕 왕왈 “석곽거예자 천사금부 금현순매아 지용석종. 전효후효 복재동람.” 내사옥일구 세급갱오십석 이상순효언. 순사구거위사 호홍효사 안치석종.
관리가 그 집을 찾아가서 조사하여 상세히 왕에게 아뢰자, 왕이 말하였다.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다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 속에서 석종이 솟아 나왔다. 전세의 효와 후세의 효를 천지가 함께 본 것이로다!” 그리고 집 한 채를 내려주고 매년 벼 50섬을 주어 극진한 효성을 기렸다. 손순은 옛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홍효사(弘孝寺)라 부르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眞聖王代 百濟橫賊入其里 鍾亡寺存. 其得鍾之地 名完乎坪 今訛云枝良坪.
진성왕대 백제횡적입기리 종망사존. 기득종지지 명완호평 금와운지량평.
진성왕(眞聖王) 때에 포악한 후백제의 도적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 했는데 잘못 전해져 지금은 지량평(枝良坪)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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