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券 第三 塔像 第四- 彌勒仙花 未尸郞 眞慈師 彌勒仙花 未尸郞 眞慈師 第二十四眞興王 姓金氏 名彡麥宗 一作深麥宗. 以梁大同六年庚申卽位. 慕伯父法興之志 一心奉佛 廣興佛寺 度人爲僧尼. 又天性風味 多尙神仙 擇人家娘子美艶者 捧爲原花. 要聚徒選士 敎之以孝悌忠信 亦理國之大要也. 제이십사진흥왕 성김씨 명삼맥종 일작심맥종. 이량대동육년경신즉위. 모백부법흥지지 일심봉불 광흥불사 도인위승니. 우천성풍미 다상신선 택인가랑자미염자 봉위원화. 요취도선사 교지이효제충신 역리국지대요야.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인데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梁)나라 대동(大同) 6년 경신(서기 540)에 왕위에 올랐다. 백부 법흥왕(法興王)의 뜻을 사모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교를 받들어 널리 절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승려가 되도록 하였다...
券 第三 塔像 第四- 前後所將舍利 前後所將舍利 國史云 “眞興王太淸三年己巳 梁使沈湖 送舍利若干粒. 善德王代貞觀十七年癸卯 慈藏法師所將佛頭骨佛牙佛舍利百粒佛所著緋羅金點袈裟一領. 其舍利分爲三 一分在皇龍塔 一分在太和塔 一分幷袈裟在通度寺戒壇 其餘未詳所在. 壇有二級 上級之中 安石蓋如覆鑊.” 국사운 “진흥왕태청삼년기사 양사심호 송사리액간립. 선덕왕대정관십칠년계묘 자장법사소장불두골불아불사리백립불소착비라금점가사일령. 기사리분삼위 일분재황룡탑 일분재태화탑 일분병가사재통도사계단 기여미상소재. 단유이급 상급지중 안석개여복확.” 『국사(國史)』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진흥왕(眞興王) 때인 태청(太淸) 3년 기사(서기 549)에 양(梁)나라에서 심호(沈湖)를 보내어 사리 몇 알을 보내왔다. 선덕왕(善德王) 시대인 정관(貞觀) 17년 계묘(서기 643)에 자장법사..
券 第三 塔像 第四- 敏藏寺 敏藏寺 禺金里貧女寶開有子 名長春 從海賈而征 久無音耗. 其母就敏藏寺[寺乃敏藏角干捨家爲寺]觀音前 克祈七日. 而長春忽至. 問其由緖 曰 “海中風飄舶壞 同侶皆不免. 予乘隻板 歸泊吳涯 吳人收之 俾耕于野. 有異僧 如鄕里來 弔慰勤勤 率我同行. 前有深渠 僧掖我跳之 昏昏間如聞鄕音與哭泣之聲 見之乃已屆此矣.” 우금리빈녀보개유자 명장춘 종해가이정 구무음모. 기모취민장사[사내민장각간사가위자]관음전 극기칠일. 이장춘홀지. 문기유서 왈 “해중풍표박괴 동여개불면. 여승척판판 귀박오애 오인수지비경우야 .유이승 여향리래 조위근근 솔아동행. 전유심거 승액아도지 혼혼간여문향음여곡읍지성 견지내이계차의. 우금리(禺金里)의 가난한 여자 보개(寶開)는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바다의 장사꾼을 따라 가더니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 어머..
券 第三 塔像 第四- 栢栗寺 栢栗寺 鷄林之北岳曰金剛嶺 山之陽有栢栗寺 寺有大悲之像一軀 不知作始 而靈異頗著 或云 “是中國之神匠 塑衆生寺像時幷造也.” 諺云 “此大聖曾上忉利天 還來入法堂時 所履石上脚迹 至今不刓.” 或云 “救夫禮郞還來時之所視迹也.” 계림지북악왈금강령 산지양유백률사 사유대비지상일구 부지작시 이영이파저. 혹운 “시중국지신장 소중생사상시병조야.” 언운 “차대성승상도리천 환래입법당시 소리석상각적 지금불완.” 혹운 “구부례랑환래시지소시적야.” 계림(鷄林) 북쪽 산을 금강령(金剛嶺)이라 하는데 산의 남쪽에는 백률사(栢栗寺)가 있다. 이 절에는 관음보살상이 하나 있는데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자못 영험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귀신 같은 솜씨를 가진 장인이 중생사(衆生寺)의 불상을 만들 때 같이..
券 第三 塔像 第四- 三所觀音 衆生寺 三所觀音 衆生寺 新羅古傳云 中華天子有寵姬 美艶無雙. 謂 “古今圖畫 尠有如此者.” 乃命善畫者寫眞[畵工傳失其名 或云 張僧繇. 則是吳人也. 梁天監中 爲武陵王國侍郞直秘閣知畵師 歷右將軍吳興太守. 則乃中國梁陳間之天子也. 而傳云唐帝者 海東人 凡諸中國爲唐爾. 其實未詳何代帝王 兩存之] 其人奉勅圖成 誤落筆汚赤 毁於臍下. 欲改之而不能 心疑赤誌 必自天生 功畢獻之. 신라전운 “중화천자유총희 미염무쌍. 위 ”고금도화 선유여차자.“ 내명선화자사진[화공전실기명 혹운 장승요. 즉시오인야. 양천감중 위무릉왕국시랑직비지화사 역고장군오흥태수. 즉내중국양진간지천자야. 이전운당제자 해동인 범제중국위당이. 기실미상하대제왕 양존지] 기인봉칙도성 오락필오적 훼어제하. 욕개지이불능 심의작지 필자천성 공필헌지. 『신라고전(新羅古傳)』에는 이르길 중국 ..
券 第三 塔像 第四- 興輪寺 壁畫 普賢 興輪寺 壁畫 普賢 第五十四景德王時 興輪寺南門 及左右廊廡 災焚未修 靖和弘繼二僧 募緣將修. 貞明七年辛巳五月十五日 帝釋降于寺之左經樓 留旬日 殿塔及草樹土石 皆發異香 五雲覆寺 南池魚龍 喜躍跳擲. 國人聚觀 嘆未曾有 玉帛梁稻 施積丘山. 工匠自來 不日成之. 제오십사경덕왕시 흥륜사남문 급좌우낭무 재분미수 정와홍계이승 모연장수. 정명칠년신사오월십오일 제석강우사지좌경루 유순일 전탑급초수토석 개발이향 오운복사 남지어룡 희약도척. 국인취관 탄미증유 옥백영도 시적구산. 공장자래 불일성지. 제54대 경명왕(景明王) 때 홍륜사(興輪寺)의 남문과 좌우의 낭무(廊廡, 궁궐이나 종묘의 정전(正殿) 아래에 동서로 붙여 지은 건물)가 불에 탔지만 미처 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화(靖和)와 홍계(弘繼) 두 승려가 시주를 받아 수리하려..
券 第三 塔像 第四- 生義寺 石彌勒 生義寺 石彌勒 善德王時 釋生義 常住道中寺. 夢有僧引上南山而行 令結草爲標 至山之南洞 謂曰 “我埋此處 請師出安嶺上.” 선덕왕시 석생의 상주도중사. 몽유승인상남산이행 영결초위표 지산지남동 위왈 “아매차처 청사출한영상.” 선덕왕(善德王) 시절의 승려 생의(生義)는 늘 도중사(道中寺)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꿈에 한 승려가 그를 데리고 남산(南山)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 표시하게 하고 산의 남쪽 골짜기로 와서 말하였다.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은 나를 파내어 능선 위에 편히 묻어주시오.” 旣覺 與友人尋所標 至其洞掘地 有石彌勒出 置於三花嶺上. 善德王十三年甲辰歲 創寺而居 後名生義寺[今訛言性義寺 忠談師每歲重三重九 烹茶獻供者 是此尊也]. 기각 여우인심소표 지기동굴지 유석미륵출 치어삼화영상. 선덕왕십삼년갑진세 창..
券 第三 塔像 第四- 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竹嶺東百許里 有山屹然高峙 眞平王九年丁未 忽有一大石. 四面方丈 彫四方如來 皆以紅紗護之 自天墜其山頂. 王聞之 命駕瞻敬 遂創寺嵓側. 額曰大乘寺. 請比丘亡名 誦蓮經者主寺. 洒掃供石 香火不廢. 號曰亦德山 或曰四佛山 比丘卒旣葬 塚上生蓮. 죽령동백허리 유산흘연고치 진평왕구년정미 홀유일대석. 사면방장 조사방여래 개이홍사호지자연추기산정. 왕문지 명가첨경 수창사암측. 액왈대승사. 청비구망명 송연경자주사. 쇄소공석 향화불폐. 호왈역덕산 혹왈사불산 비구졸기장 총상생연. 죽령(竹嶺) 동쪽 100리쯤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9년 정미(서기 587)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커다란 돌 하나가 하늘에서 산꼭대기로 떨어졌다. 그 돌에는 사방여래(四方如來)가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붉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