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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三 塔像 第四- 三所觀音 衆生寺

三所觀音 衆生寺

 

新羅古傳云 中華天子有寵姬 美艶無雙. 古今圖畫 尠有如此者.” 乃命善畫者寫眞[畵工傳失其名 或云 張僧繇. 則是吳人也. 梁天監中 爲武陵王國侍郞直秘閣知畵師 歷右將軍吳興太守. 則乃中國梁陳間之天子也. 而傳云唐帝者 海東人 凡諸中國爲唐爾. 其實未詳何代帝王 兩存之] 其人奉勅圖成 誤落筆汚赤 毁於臍下. 欲改之而不能 心疑赤誌 必自天生 功畢獻之.

신라전운 중화천자유총희 미염무쌍. 고금도화 선유여차자.“ 내명선화자사진[화공전실기명 혹운 장승요. 즉시오인야. 양천감중 위무릉왕국시랑직비지화사 역고장군오흥태수. 즉내중국양진간지천자야. 이전운당제자 해동인 범제중국위당이. 기실미상하대제왕 양존지] 기인봉칙도성 오락필오적 훼어제하. 욕개지이불능 심의작지 필자천성 공필헌지.

 

신라고전(新羅古傳)에는 이르길 중국 천자에게 총애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이르길 고금의 그림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리는 자에게 명하여 그 실제 모습을 그리도록 하였다.[그 화공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혹 장승요(張僧繇)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오()나라 사람이다. ()나라 천감(天監) 연간(서기 502~519)에 무릉왕국의 시랑(侍郞) 직비각지화사(直秘閣知畵師)가 되었고, 우장군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 그러므로 여기의 천자는 양()나라와 진()나라 무렵의 천자일 것이다. 그런데 신라고전에서 당나라 황제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중국을 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 실상은 어느 시대의 제왕인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두 가지 모두 기록해 놓는다.] 그 화공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그림을 완성하였는데, 그만 실수로 붓을 떨어뜨려서 배꼽 밑에 붉은 점이 찍혔다. 고치려고 하였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그 붉은 점은 필시 태어날 때부터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림을 다 그리자 황제에게 바쳤다.

 

帝目之曰 形則逼眞矣. 其臍下之誌 乃所內秘 何得知之幷寫?” 帝乃震怒 下圓扉將加刑. 丞相奏云 所謂伊人 其心且直 願赦宥之.” 帝曰 彼旣賢直 朕昨夢之像 畫進不差則宥之.”

제목지왈 형즉핍진의 기제하지지 내소내비 하득지지병사?” 제내진노 하원비장가형 승상주운 소위이인 기심차직 원사유지.” 제왈 피기현직 짐작몽지상 화진불차즉유지.”

 

황제는 그림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습이 실물 뺨치는구나. 그런데 배꼽 밑의 점은 속으로 감추어진 것인데 어찌 알고 이것까지 그렸느냐?” 그리고는 황제는 크게 화를 내며 화공을 옥에 가두고 형벌을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승상이 아뢰었다. “저 사람은 마음이 정직하다고들 말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황제가 말하였다. “저 자가 어질고 정직하다면, 짐이 어젯밤 꿈에 본 것을 그려서 바치게 하라. 만일 조금도 차이가 없다면 용서해 주겠다.”

 

其人乃畫十一面觀音像呈之 協於所夢 帝於是意解赦之. 其人旣免 乃與博士芬節約曰 吾聞新羅國 敬信佛法 與子乘桴于海適彼 同修佛事 廣益仁邦 不亦益乎.”

기인내화십일면관음보상정지 협어소몽 제어시의해사지 기인기면 내여박사분절약왕 오문신라국경신불법 여자승부우해적피 동수불사 광익인방 불역익호?

 

그래서 그 화공은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의 모습을 그려 바쳤는데 꿈에 본 것과 일치하였고 황제는 그제야 마음이 풀려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 화공은 화를 면하게 되자, 박사(博士) 분절(芬節)과 약속하여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신라에서는 불법을 공경히 믿는다 합니다. 그대와 같이 배를 타고 신라에 가서, 함께 불법을 수행하여 어진 나라를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遂相與到新羅國 因成此寺大悲像. 國人瞻仰 禳禱獲福 不可勝記.

수상여도신라국 인성차사대비상. 국인첨앙 양도호복 불가승기.

 

그리고는 드디어 함께 신라에 도착하여 중생사의 관음보살상을 만들었다.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기도하여 복을 얻었으니, 이러한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羅季天成中 正甫崔殷諴 久無胤息 詣玆寺大慈前祈禱 有娠而生男. 未盈三朔 百濟甄萱 襲犯京師 城中大潰. 殷諴抱兒來告曰 隣兵奄至 事急矣 赤子累重 不能俱免. 若誠大聖之所賜 願借大慈之力 覆養之 令我父子再得相見.” 涕泣悲惋 三泣而三告之 裹以襁褓 藏諸猊座下 眷眷而去.

라계천성중 정보최은함 구무윤식 지자사대비전기도 유신이생남. 미잉삼삭 배제견훤 습범경사성중데궤. 은함포아래고왈 인병엄지 사급의 적자누중 불능구면. 약성대성지소사 원차대자지력복양지 영아부자재득상견.” 체읍비완 함읍이삼고지 과이강보 장제예좌하 권권이거.

 

신라 말년 천성(天成) 연간(서기 926~929)에 정보(正甫) 최은함(崔殷諴)이 오래도록 자식이 없어 이 절의 관음보살 앞에 와서 기도하였더니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석 달이 못 되어 백제 견훤(甄萱)이 서울을 습격하자 성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은함이 아기를 안고 이 절에 와서 말하였다. “이웃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쳐들어와 일이 급합니다. 어린 아이 때문에 누가 겹친다면 우리 모두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진실로 대성(大聖)께서 이 아이를 주셨다면, 원하옵건대 큰 자비의 힘으로 이 아이를 길러주시어서, 우리 부자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 하면서 세 번 울면서 세 번 고하였다. 그리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관음보살이 앉은 사자좌 밑에 감추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經半月寇退 來尋之 肌膚如新浴 貌體嬛好 乳香尙痕於口. 抱持歸養 及壯 聰惠過人.

경반월구퇴 래심지 기부여신욕 모체현호 유향상흔어구. 포지귀양 급장 총혜과인.

 

반 달을 지나 견훤의 군사가 물러가자 돌아와서 아기를 찾았다. 그런데 아기의 살결이 마치 새로 목욕한 것과 같았으며 모습이 더 예뻐졌고 입에서는 아직도 젖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기를 안고 돌아와 길렀는데,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혜롭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是爲丞魯 位至正匡 丞魯生郎中崔肅 肅生郎中齊顔焉 自此繼嗣不絶. 殷諴隨敬順王入本朝 爲大姓.

시위승로 위지정광 승오생낭중최숙 숙생낭중제안언 자차계사부절. 은함수경순왕입본조 위대성.

 

이 사람이 바로 승로(丞魯)로 벼슬이 정광(正匡)에 이르렀다. 승로는 낭중(郎中) 최숙(崔肅)을 나았고 최숙은 낭중 제안(齊顔)을 낳았으니, 이로부터 자손이 끊이질 않았다. 은함은 경순왕(敬順王)을 따라 고려에 들어와 큰 가문을 이루었다.

 

又統和十年三月 主寺釋性泰 跪於菩薩前 自言 弟子久住玆寺 精勤香火 晝夜匪懈. 然以寺無田出 香祀無繼 將移他所 故來辭爾.” 是日假寐 夢大聖謂曰 師且住 無遠離 我以緣化充齋費.” 僧忻然感悟 遂留不行.

우통화십년삼월 주사석성태 궤어보살전 자언 제자구주자사 정근행화 주야비해 연이사무전출행사무단 장이타소 고래사이 시일가매 몽대성위왈 자차주 무원리 아이연화충재비 승흔연감오 수유불행.

 

또 통화(統和) 10(서기 992) 3월에 주지인 성태(性泰)가 보살상 앞에 꿇어앉아 말하였다.

제자는 오랫동안 이 절에 머물면서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향불 받들기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절 땅에서는 나는 것이 없어 이제 향불도 받들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성태는 잠시 졸았는데,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대사는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고 멀리 떠나지 말라. 내가 시주를 받아 재에 쓸 비용을 마련하리라.” 승려는 기뻐하였고 또 감동받아 깨달은 바도 있어서, 마침내 그곳에 머무르기로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

 

後十三日 忽有二人 馬載牛駄 到於門前. 寺僧出問 何所而來 曰 我等是金州界人. 向有一比丘到我云 我住東京衆生寺久矣 欲以四事之難 緣化到此 是以斂施隣閭 得米六碩鹽四碩 負載而來.”

후십삼일 홀유이인 마재우태 도어문전. 사승출문 하소이래 왈 아등시금주계인. 향유일비구도아운 아주동경중생사구의 역이사사지난 연화도차.’ 시이검시인여 득미육석염사석 부재이래.”

 

13일 뒤에 갑자기 두 사람이 말과 소에 짐을 싣고 문 앞에 이르렀다. 성태가 나가서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저희들은 금주(金州)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한 스님이 저희들에게 찾아와, ‘나는 동경(東京) 중생사에 오랫동안 있었는데 공양에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시주를 얻으러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웃 마을에서 시주를 거두어 쌀 6섬과 소금 4섬을 싣고 오는 길입니다.”

 

僧曰 此寺無人緣化者 爾輩恐聞之誤.” 其人曰 向之比丘 率我輩而來 到此神見井邊 曰 距寺不遠 我先往待之.’ 我輩隨逐而來.

승왈 차사무인연화자 이배공문지오 기인왈 향지비구 솔아배이래 도차신견정변 왈 거사불원 아선왕사지 아배수축이래.

 

승려 성태가 말하였다. “이 절에는 시주를 구하러 간 사람이 없습니다. 그대들은 아마 잘못 들은 것 같소이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일전에 오셨던 스님이 우리들을 데리고 오다가, 이 신현정(神見井) 우물가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절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내 먼저 가서 기다리겠소.’라고 하여서 저희들이 뒤따라 온 것입니다.”

 

寺僧引入法堂前 其人瞻禮大聖 相謂曰 此緣化比丘之像也 驚嘆不已. 故所納米鹽 追年不廢.”

사승인입법당전 기인첨례대성 상위왈 차연화비구지상야 경탄불이. 고소납미염 추년불폐,”

 

그래서 절의 스님이 이들을 법당 앞으로 인도하여 관음보살상을 보고 예를 올리고는 서로 말하였다. “이 분이 바로 시주를 구하러 오셨던 그 스님이잖아?” 이렇게 말하고는 놀라고 탄복하기를 끝이 없었다. 이후 매년 마다 쌀과 소금이 끊이질 않았다.

 

又一夕 寺門有火災 閭里奔救 升堂見像 不知所在. 視之 已立在庭中矣 問其出者誰 皆曰 不知 乃知 大聖靈威也.

우일석 사문유화재 여리분구 승당견상 부지소재. 시지 이립재정중의 문기출자수 개왈 부지내지 대성영위야.

 

또 어느 날 저녁 절 문에 불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껐다. 그런데 법당에 올라가 보니 관음보살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이미 뜰 가운데에 서 있길래 밖으로 내온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모두들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제서야 관음보살의 신령한 위력인 줄을 알았다.

 

又大定十三年癸巳間 有僧占崇 得住玆寺 不解文字 性本純粹 精勤火香 有一僧欲奪其居 訴於襯衣天使曰 玆寺所以國家祈恩奉福之所 宜選會讀文疏者主之.”

우대정십삼년계사간 유승점숭 득주자사 불해문자 성본순수 정근화향 유일승욕탈기거 소어친의천사왈 자사소이국가기은봉복지소 의선회독문소자주지.”

 

또 대정(大定) 13년 계사(서기 1173) 연간에 점숭(占崇)이 이 절에 머물고 있었다. 점숭은 글자는 몰랐지만 마음이 순하여서 정성스럽게 부지런히 향불을 받들었다. 그런데 어떤 중이 그 절을 빼앗으려고 친의천사(襯衣天使:옷을 공급하는 이)에게 호소하여 말하였다. “이 절은 나라에서 은혜와 복을 비는 곳이니, 마땅히 글을 읽을 줄 아는 자를 뽑아 주지로 삼아야 합니다.”

 

天使然之 欲試其人 乃倒授疏文. 占崇應手 披讀如流. 天使服膺 退坐房中 俾之再讀. 崇鉗口無言. 天使曰 上人良由大聖之所護也.” 終不奪之. 當時與崇同住者 處士金仁夫 傳諸鄕老 筆之于傳.

천사연의 욕시기인 내도수소문. 점숭응수 파독여류. 전사복응 퇴자방중 비지재독. 숭감구무언. 천사왈 상인양유대성지소호야.” 종불찰지 당시여숭동주자 처사김인부 전제향노 필지우전.

 

천사는 그 말이 맞다고 여기고, 그 사람을 시험하려고 불교의 글을 거꾸로 주었다. 그러자 점숭은 곧 글을 펼쳐 들더니 물 흘러가듯이 줄줄줄 읽었다. 천사가 탄복하고는 방 가운데로 물러앉아 다시 읽어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번엔 점숭이 입을 다문 채 한 글자도 읽지 못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말하였다. “스님은 참으로 관음보살께서 보살펴주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결국 절을 빼앗지 않았다. 당시에 점숭과 함께 살던 처사 김인부(金仁夫)가 마을 노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전기에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