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列傳 第七- 驟徒 驟徒 驟徒 沙梁人 奈麻聚福之子 史失其姓 兄弟三人 長夫果 仲驟徒 季逼實 驟徒嘗出家 名道玉 居實際寺. 太宗大王時 百濟來伐助川城 大王興師出戰 未決 於是 道玉語其徒曰 “吾聞 爲僧者 上則精術業 以復性 次則起道用 以益他 我形似桑門而已 無一善可取 不如從軍殺身 以報國.” 脫法衣 著戎服 改名曰驟徒 意謂馳驟而爲徒也. 乃詣兵部 請屬三千幢 遂隨軍赴敵場. 及旗鼓相當 持槍劒 突陣力鬪 殺賊數人而死. 취도 사량인 나마취복지자 사실기성 형제삼인 장부과 중취도 계핍실 취도상출가 명도옥 거실제사. 태종대왕시 백제래벌조천성 대왕흥사출전 미결 어시 도옥어기도왈 “오문 위승자 상즉정술업 이복성 차즉기도용 이익야 아형사상문이이 무일선가취 불여종군살신 이보국 ” 탈법의저수복 개명왈취도 의위치취이위도야. 내지병부 청속삼천당 수수군부적장. 급기고상당.. 列傳 第七- 素那 素那 素那[或云金川]白城郡蛇山人也 其父沈那[或云煌川]膂力過人 身輕且捷. 蛇山境與百濟相錯 故互相寇擊無虛月. 沈那每出戰 所向無堅陣. 仁平中 白城郡出兵 往抄百濟邊邑 百濟出精兵急擊之 我士卒亂退. 沈那獨立拔劒 怒目大叱 斬殺數十餘人 賊懼不敢當 遂引兵而走. 소나[혹운금천]백성군사산인야 기부심나[혹운황천]려력과인 신경차첩. 사산경여백제상착 고호상구격무허월. 심나매출전 소향무견진. 인평중 백성군출병 왕초백제변읍 백제출정병급격지 아사졸난퇴. 심나독입발검 노목대질 참살수십여인 적구불감당 수인병이주. 소나(素那)[혹은 금천(金川)이라고 한다.]는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심나(沈那)[혹은 황천(煌川)이라고 한다.]는 힘이 세고 몸이 가볍고 날랬다. 사산 지역은 경계가 백제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상.. 列傳 第七- 奚論 列傳 第七 奚論 奚論 牟梁人也 其父讚德 有勇志英節 名高一時. 建福二十七年庚午 眞平大王選爲椵岑城縣令. 해론 모량인야 기부찬덕 유용지영절 명고일시. 건복이십칠년경오 진평대왕선위가잠성현령. 해론(奚論)은 모량(牟梁)부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찬덕(讚德)은 용맹한 뜻과 뛰어난 절개가 있어 당시에 이름이 높았다. 건복(建福) 27년 경오(서기 610)에 진평대왕(眞平大王)이 그를 발탁하여 가잠성(椵岑城) 현령으로 삼았다. 明年辛未冬十月 百濟大發兵 來攻椵岑城一百餘日 眞平王命將 以上州下州新州之兵救之. 遂往與百濟人戰不克 引還. 讚德憤恨之 謂士卒曰 “三州軍帥見敵强不進 城危不救 是無義也 與其無義而生 不若有義而死.” 乃激昻奮勵 且戰且守. 以至粮盡水竭 而猶食屍飮尿 力戰不怠. 至春正月 人旣疲 城將破 勢不可復完. 乃仰天大呼曰 “.. 列傳 第六- 朴仁範, 元傑, 巨仁, 金雲卿, 金垂訓 等 朴仁範, 元傑, 巨仁, 金雲卿, 金垂訓 等 朴仁範元傑巨仁金雲卿金垂訓輩 雖僅有文字傳者 而史失行事 不得立傳 박인범원걸거인김운경김수훈배 수근우문자전자 이사실행사 부득입전.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글이 전하는 것은 조금 있으나 역사기록에 그들의 행적이 없으므로 전기를 만들 수 없다. 列傳 第六 - 金大問 金大問 金大問 本新羅貴門子弟 聖德王三年 爲漢山州都督 作傳記若干卷 其高僧傳花郞世記樂本漢山記猶存. 김대문 본신라귀문자제 성덕왕삼년 위한산주도독 작전기약간권 기고승전화랑세기악본한산기유존.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 귀족의 자제인데 성덕왕(聖德王) 3년(서기 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다. 전기 몇 권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는 아직도 남아 있다. 列傳 第六-崔彦撝 崔彦撝 崔彦撝 年十八入唐遊學 禮部侍郞薛廷珪下及第. 四十二還國爲執事侍郞瑞書院學士 及太祖開國 入朝 仕至翰林院太學士平章事. 卒諡文英. 최언위 년십팔입당유학 예부시랑설정규하급제. 사십이환국위집사시랑서서원학사 급태조개국입조 사지한림원태학사평장사. 졸시문영. 최언위(崔彦撝)는 나이 열여덟에 당에 유학하여 예부시랑 설정규(薛廷珪)의 아래에서 급제하였다. 42세에 귀국하여 집사시랑 서서원학사(瑞書院學士)가 되었고, 태조가 개국하자 조정에 들어와서 벼슬이 한림원태학사평장사(翰林院太學士平章事)에 이르렀다. 죽은 뒤에 시호를 문영(文英)이라 하였다. 列傳 第六-崔承祐 崔承祐 崔承祐 以唐昭宗龍紀二年入唐 至景福二年 侍郞楊涉下及第 有四六五卷 自序爲餬本集 後爲甄萱作檄書 移我太祖. 최승우 이당소종용기이년입당 지경복이년 시랑양보하급제 유사육오권 자서위호본집 후위견춴작격서 이아태조. 최승우(崔承祐)는 당 소종(昭宗) 용기(龍紀) 2년(서기 890)에 당에 들어가서 경복(景福) 2년(서기 893)에 시랑 양섭(楊涉)의 아래에서 급제하였다. 『사륙집(四六集)』 5권이 있는데 자신이 쓴 서문에서 『호본집(餬本集)』이라 하였다. 그 뒤에 견훤(甄萱)을 위하여 격문을 지어 우리 태조에게 보냈다. 列傳 第六- 薛聰 薛聰 薛聰 字聰智. 祖談捺奈麻 父元曉. 初爲桑門 掩該佛書 旣而返本 自號小性居士. 설총 자총지. 조담날나마 부원효. 초위상문 엄해불서 기이반본 자호소성거사. 설총(薛聰)의 자는 총지(聰智)이다.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佛書)에 통달하였으나 얼마 후에 속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불렀다. 聰性明銳 生知道術. 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 至今學者宗之. 又能屬文 而世無傳者 但今南地 或有聰所製碑銘 文字缺落不可讀 竟不知其何如也. 총성명예 생지도술. 이방언독구경 훈도후생 지금학자종지. 우능속문 이세무전자 단금난지혹유총소제비명 문자결락불가독 경부지기하여야. 총은 본성이 총명하고 예리하며 태어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다. 그는 우리말로 9경을 해..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