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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列傳 第六- 薛聰

薛聰

 

薛聰 字聰智. 祖談捺奈麻 父元曉. 初爲桑門 掩該佛書 旣而返本 自號小性居士.

설총 자총지. 조담날나마 부원효. 초위상문 엄해불서 기이반본 자호소성거사.

 

설총(薛聰)의 자는 총지(聰智)이다.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佛書)에 통달하였으나 얼마 후에 속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불렀다.

 

聰性明銳 生知道術. 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 至今學者宗之. 又能屬文 而世無傳者 但今南地 或有聰所製碑銘 文字缺落不可讀 竟不知其何如也.

총성명예 생지도술. 이방언독구경 훈도후생 지금학자종지. 우능속문 이세무전자 단금난지혹유총소제비명 문자결락불가독 경부지기하여야.

 

총은 본성이 총명하고 예리하며 태어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다. 그는 우리말로 9경을 해독하여 후학들을 가르쳤으니, 지금도 배우는 자들이 그를 종주(宗主)로 삼고 있다. 그는 또한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지금 남쪽 지방에 총이 지은 비명이 간혹 있으나 글자가 이지러지고 떨어져서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 알 수 없다.

 

神文大王以仲夏之月 處高明之室 顧謂聰曰 今日 宿雨初歇 薰風微凉 雖有珍饌哀音 不如高談善謔 以舒伊鬱 吾子必有異聞 盍爲我陳之.”

신문대왕이중하지월 처고명지실 소위총왈 금일 숙우초헐 훈풍미량 수유진찬애음 불여고담선학 이서이울 오자필유이문 개위아진지.”

 

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 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총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은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개고, 훈훈한 바람이 조금 서늘하니 비록 좋은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다 해도 고상한 담론과 재미있는 해학으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대는 필시 색다른 이야기도 알고 있을 터이니 어디 한번 나를 위하여 말해주지 않겠는가?”

 

聰曰 唯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 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총왈 유 신문석화왕지시래야. 식지이향원 획지이취막 당삼춘이발염 능백화이독출. 어시 자이금하 염염지령 요요지영 무불분주상알 유공불급.

 

설총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들은 것은 옛날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철이 되자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디고운 아름다운 꽃의 정령들이 바삐 달려와 화왕을 알현하고자 하며 오로지 뒤쳐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粧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曰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而沐春雨以去垢 快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홀유일가인 주안옥치 선장정복 령빙이래 작약이전왈 첩리설백지사정 대경청지해이목춘우이거후 쾌청풍이자적 기명왈장미 문왕지영덕 기천침어향유 왕기용아호?’

 

홀연히 한 미인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맵시있게 차려입고는 간들간들 오더니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저는 눈처럼 흰 물가의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薔薇)라고 합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들은지라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온대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左右供給雖足 膏梁以充腸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王亦有意乎.

우유일장부 포의위대 재백지장 용종이보 구루이래일 복재경성지외 거대도지방 하림창망지야경 상의차아지색 기명왈백두옹 절위좌우공급수족 고량이충장 차주이청신 건연저장 수유량약이보기 악석이견독 고왈 수유사마 무기관괴 범백군자 무불대궤 불식왕역유의호.”

 

또한 한 장부가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와서 말하기를 저는 서울 밖의 큰길가에 거처하여,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빛에 의지하고 있사온대, 이름은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록 주위에서 받들어 올리는 것들이 넉넉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의복이 장롱 속에 쌓여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돋우고 독한 침으로 병독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명주실과 삼실같은 귀한 것이 있다 해도 왕골과 띠풀 같은 천한 물건을 버리지 않아(雖有絲麻 無棄菅蒯), 무릇 모든 군자들은 모자람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또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疎遠正直 是以 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

혹왈 이자지래 하위하사?’ 화왕왈 장부지언 역유도리 이가인난득 장여지하?’ 장부진이언왈 오위왕총명식리의 고래언이 금즉비야 범위군자 선불친근사망 소원정직 시이 맹가불우이종신 풍당랑잠이호수 자고여차 오기내하?’ 화왕왈 오과의 오과의!”

 

어떤 이가 두 사람이 왔는데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하니, 화왕이 장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이 일을 어찌 할꼬?’라고 말했습니다. 장부가 나아와서 말하기를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이치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하여 왔던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릇 임금된 사람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이 때문에 맹가(孟軻, 맹자)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낭서(郞署, 숙위관으로 낮은 관직임)에 머물러 백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였으니 전들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했답니다.”

 

於是 王愀然作色曰 子之寓言 誠有深志 請書之 以謂王者之戒.” 遂擢聰以高秩.

어시 왕초연작색왈 자지우언 성유심지 청서지 이위왕자지계.” 수탁총이고질.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했다.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있다. 글로 써서 왕 된 이들의 경계로 삼기 바란다.” 그리고는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世傳日本國眞人 贈新羅使薛判官詩序云 嘗覽元曉居士所著 金剛三昧論 深恨不見其人 聞新羅國使薛 卽是居士之抱孫 雖不見其祖 而喜遇其孫 乃作詩贈之.”

세전일본국진인 증신라사설판관시서운 상람원효거사소자 금강삼매론 심한불견기인 문신라국사설 즉시거사지포손 수불견기조 이희우기손 내작시증지.”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일본국(日本) 진인(眞人)이 신라 사신 설판관(薛判官)에게 준 시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일찍이 원효거사가 지은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을 본 적이 있으나,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음을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듣자하니 신라국 사신 설이 바로 거사의 손자라고 하니, 비록 그의 할아버지는 보지 못했으나 그의 손자를 만난 것을 기뻐하여 이에 시를 지어 그에게 준다.”

 

其詩至今存焉 但不知其子孫名字耳 至我顯宗在位十三歲 天禧五年辛酉[天禧五年辛酉 當作乾興元年壬戌] 追贈爲弘儒侯 或云 薛聰嘗入唐學 未知然不.

기시지금존언 단부지기자손명자이 지아현종재위십삼세 천희오년신유[천희오년신유 당작건흥원년임술] 추증위사유후 혹운 설총상입당학 미지연불.

 

그 시는 지금도 남아 있으나 그 자손의 이름은 모른다. 우리 현종(顯宗)이 왕위에 있으신 지 13년인 천희(天禧) 5년 신유[건흥(乾興) 원년 임술의 잘못]에 설총에게 홍유후(弘儒侯)를 추증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설총이 일찍이 당에 들어가 유학하였다고 하나, 실제 그랬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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