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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列傳 第七- 素那

素那

 

 

素那[或云金川]白城郡蛇山人也 其父沈那[或云煌川]膂力過人 身輕且捷. 蛇山境與百濟相錯 故互相寇擊無虛月. 沈那每出戰 所向無堅陣. 仁平中 白城郡出兵 往抄百濟邊邑 百濟出精兵急擊之 我士卒亂退. 沈那獨立拔劒 怒目大叱 斬殺數十餘人 賊懼不敢當 遂引兵而走.

소나[혹운금천]백성군사산인야 기부심나[혹운황천]려력과인 신경차첩. 사산경여백제상착 고호상구격무허월. 심나매출전 소향무견진. 인평중 백성군출병 왕초백제변읍 백제출정병급격지 아사졸난퇴. 심나독입발검 노목대질 참살수십여인 적구불감당 수인병이주.

 

소나(素那)[혹은 금천(金川)이라고 한다.]는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심나(沈那)[혹은 황천(煌川)이라고 한다.]는 힘이 세고 몸이 가볍고 날랬다. 사산 지역은 경계가 백제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상호간에 노략질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나는 그때마다 나가서 싸웠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견고한 적의 진지가 무너졌다. 인평(仁平, 선덕여왕 때의 연호) 연간에 백성군에서 군사를 내어 백제의 변경을 쳐들어갔는데, 백제도 정예병을 보내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 사졸들이 어지럽게 물러났다. 오직 심나만이 홀로 서서 칼을 뽑아들고 성난 눈으로 크게 꾸짖으며 수십여 명을 베어 죽이니, 적이 두려워서 감히 당해내지 못하고 마침내 병사를 이끌고 도주하였다.

 

百濟人 指沈那曰 ‘新羅飛將’ 因相謂曰 沈那尙生 莫近白城. 素那雄豪有父風. 百濟滅後 漢州都督都儒公請大王 遷素那於阿達城 俾禦北鄙.

백제인 지심나왈 ‘신라비장’ 인상위왈 “심나상생 막근백성.” 소나호웅호유부풍. 백제멸후 한주도독유공청대왕 천소나어아달성 비어북비.

 

백제인들이 심나를 가리켜 ‘신라의 용맹한 장수’라 하고, 이 때문에 서로들 말하기를 “심나가 아직 살았으니 백성 근처엔 가지 말라.”고 하였다. 소나는 용맹스럽고 호방하여 그의 아버지와 같은 풍모를 지녔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한주 도독 도유공(都儒公)이 대왕에게 청하여 소나를 아달성(阿達城)으로 보내 북쪽 변경을 방어하게 하였다.

 

上元二年乙亥春 阿達城太守級飡漢宣 敎民以某日齊出種麻 不得違令. 靺鞨諜者認之 歸告其酋長. 至其日 百姓皆出城在田 靺鞨潛師猝入城 剽掠一城 老幼狼狽 不知所爲. 素那奮刃向賊 大呼曰 “爾等知新羅有沈那之子素那乎 固不畏死以圖生 欲鬪者曷不來耶?”

상원이년을해춘 아달서애수급찬한선 교민이모일제출종마 부득위령. 말갈첩자인지 귀고기추장. 지기일 백성개출재성전 말갈참수졸입성 표략일성 노유낭패 부지소위. 소나분인향적 대호왈 “이기지신라유심나지자소나로 고불외사이도생 욕투자갈불래야?”

 

상원(上元) 2년 을해(서기 675) 봄에 아달성 태수 급찬 한선(漢宣)이 백성들에게 아무 날에 일제히 나가 삼[麻]을 심게 하고는 이 명령을 어기지 못하게 하였다. 말갈(靺鞨)의 첩자가 이를 탐지하고 돌아가서 자기 추장에게 보고하였다. 그날이 되어 백성들이 모두 성에서 나와 밭에 있는데, 말갈이 몰래 군사를 거느리고 갑자기 성으로 들어와 온 성을 약탈하니 늙은이와 어린이들이 낭패하여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이때 소나가 칼을 휘두르며 적을 향하여 크게 외쳤다. “너희들은 신라에 심나의 아들 소나가 있는 줄을 아느냐? 나는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여 살 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싸우고자 하는 자는 어찌 나오지 않느냐?”

 

遂憤怒突賊 賊不敢迫 但向射之 素那亦射 飛矢如蜂. 自辰至酉 素那身矢如猬 遂倒而死.

수분노돌적 적불감박 단향서자 소나역사 비시여봉. 자진지유 소나신시여위 수도이사.

 

드디어 분노하여 적진으로 돌진하자, 적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다만 그를 향하여 활을 쏠 뿐이었다. 소나 역시 활을 쏘았는데 날아오는 화살이 마치 벌떼와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우니 소나의 몸에 화살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박혀 마침내 쓰러져 죽었다.

 

素那妻 加林郡良家女子 初素那以阿達城隣敵國 獨行 留其妻而在家. 郡人聞素那死 弔之 其妻哭而對曰 “吾夫常曰 ‘丈夫固當兵死 豈可臥牀席 死家人之手乎?’ 其平昔之言如此 今死如其志也.” 大王聞之 涕泣沾襟曰 父子勇於國事 可謂世濟忠義矣 贈官迊飡.

소나처 가림군양가여자 초소나이아달성인적국 독행 유기처이재가. 군인간소나사 조지 기처곡이데왈 오부상왈 장부고당병사 이가와상석 사가인지수로 기평석지언여차 금사여기지야 대왕문지 체읍첨금왈 “부자용어국사 가위세제충의의” 증관잡찬.

 

소나의 아내는 가림군(加林郡)의 양갓집 여자로 처음에 소나는 아달성이 적국에 가까이 접하여 있기 때문에 혼자서 가고 자기 아내는 집에 남겨두었다. 고을 사람들이 소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문하니 그의 아내가 곡하며 말하였다.“나의 남편이 항상 말하기를 ‘장부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야 한다. 어찌 침상에 누워 집안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죽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평소 말씀이 이러하였으니 오늘의 죽음은 뜻대로 된 것입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면서 말했다. “아비와 아들이 모두 나랏일에 용감하였으니, 대대로 충의를 이루었다 하겠구나.” 그에게 잡찬의 관직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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