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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列傳 第七- 訥催

訥催

 

訥催 沙梁人 大奈麻都非之子也 眞平王建福四十一年甲申冬十月 百濟大擧來侵 分兵圍攻速含櫻岑岐岑烽岑旗懸穴柵等六城. 王命上州下州貴幢法幢誓幢五軍 往救之. 旣到 見百濟兵陣堂堂 鋒不可當 盤桓不進 或立議曰 大王以五軍委之諸將 國之存亡 在此一役. 兵家之言曰 見可而進 知難而退今强敵在前 不以好謀而直進 萬一有不如意 則悔不可追.” 將佐皆以爲然 而業已受命出師 不得徒還. 先是 國家欲築奴珍等六城而未遑 遂於其地 築畢而歸.

눌최 사량인 대나마도비지자야.진평왕건복사십일년 갑신동시월 백제대거래침 분병위공속함영장기잠봉잠기현혈책등육성. 왕명상주하주귀당법당서당오군 왕구지. 기도 견백제병진당당 봉불가당 반환불진 혹입의왈 대왕이오군위지제장 국지존망 재차일역. 병가지언왈 견가이진 지난이퇴.’ 금강적재전 불이호모이직진 만일유불여의 즉회불가추.” 장좌개이위연 이업이수명출사부득도환. 선시 국가욕축노진등육성이미황 수어기지 축필이귀.

 

눌최(訥催)는 사량(沙梁) 사람인데 대나마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진평왕 건복(建福) 41년 갑신(서기 624) 겨울 10월에 백제가 군대를 크게 일으켜 침입하면서 병사를 나누어 속함(速含), 앵잠(櫻岑), 기잠(岐岑), 봉잠(烽岑), 기현(旗懸), 혈책(穴柵) 등 여섯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왕은 상주(上州), 하주(下州), 귀당(貴幢), 법당(法幢), 서당(誓幢) 5군에 명하여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전장에 도착해서 백제 병사가 진영을 갖춘 것이 당당하여 예봉을 당할 수가 없음을 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 어떤 자가 의견을 내어 말했다. “대왕이 5군을 여러 장수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존망이 이 한번의 싸움에 달려 있다. 병가(兵家)에 이르기를 가능해 보이면 나아가고, 어려울 것 같거든 물러나라.’고 하였다. 지금 강한 적을 앞에 두고 좋은 계책도 없이 곧장 나아갔다가 만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때가 늦을 것이다.” 장수와 보좌관들이 모두 그렇겠다고 여겼지만 이미 명을 받아 군대를 출동한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 노진(奴珍) 등 여섯 성을 쌓고자 했으나 미처 겨를이 없었는데, 드디어 그곳에서 성을 쌓는 일만을 마치고 돌아왔다.

 

於是 百濟侵攻愈急 速含岐岑穴柵三城 或滅或降. 訥催以三城固守 及聞五軍不救而還 慷慨流涕 謂士卒曰 陽春和氣 草木皆華 至於歲寒 獨松栢後彫 今孤城無援 日益阽危 此誠志士義夫 盡節揚名之秋 汝等將若之何?” 士卒揮淚曰 不敢惜死 唯命是從.” 及城將隤 軍士死亡無幾 人皆殊死戰 無苟免之心.

어시 백제침공유급 속함기잠혈책삼성 혹멸혹항. 눌최이삼성고수 금분오군불욕이환 강개유체위사졸왈 양춘화기 초목개화 지어세한 독송뱍후조 금호성무수 일익염위 차성지사의부 진절양명지추 여등장약지하 사졸휘루왈 불감석사 유명시종 급성장퇴 군사사망무기 인개수사전무구면지심.

 

이때 백제의 침공이 더욱 급격해져 속함, 기잠, 혈책 세 성이 함락되거나 항복하였다. 눌최는 나머지 세 성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5군이 구원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는 말을 듣자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사졸들에게 말했다. “봄철의 온화한 기운에는 초목이 모두 꽃을 피우지만 겨울이 되면 유독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제일 뒤에 시든다. 지금 외로운 성에 원군은 없고 날로 위급하여지니, 이제는 실로 뜻있는 이와 의로운 장부가 절개를 다하고 이름을 날릴 때다.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졸들이 모두 눈물을 뿌리면서 말했다. “감히 죽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명령만을 따르겠습니다.” 성이 함락될 무렵, 군사들이 거의 다 죽고 몇 명 남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모두 결사적으로 싸우며 구차하게 모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訥催有一奴 强力善射. 或嘗語曰 小人而有異才 鮮不爲害 此奴宜遠之.” 訥催不聽. 至是城陷賊入 奴張弓挾矢 在訥催前 射不虛發 賊懼不能前. 有一賊出後 以斧擊訥催乃仆 奴反與鬪俱死 王聞之 悲慟 追贈訥催職級飡.

눌최유일노 강력선사. 혹상어왈 소인이유이재 선불위해 차노의원지.” 눌최불청 지시성함적입 노장궁협시 재눌최전 사불허발 적구불능전. 유일적출후 이부격눌최내부 노반여투구사 왕문지 비통 추증눌최직급찬.

 

눌최에게는 종이 하나 있었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어떤 자가 전에 말하기를 소인배가 특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문 법이니, 이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나, 눌최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성이 함락되고 적이 들어오자, 그 종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끼워 눌최의 앞에 버티고 서서 쏘는데 화살이 빗나가는 것이 없으니, 적들이 두려워하여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때 어떤 적병 하나가 뒤에서 와서 눌최를 도끼로 쳐서 쓰러뜨리자, 그 종은 뒤돌아서 싸우다가 눌최와 같이 죽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며 눌최를 급찬으로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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