薛罽頭
薛[一本作薩]罽頭 亦新羅衣冠子孫也. 嘗與親友四人 同會燕飮 各言其志 罽頭曰 “新羅用人論骨品 苟非其族 雖有鴻才傑功 不能踰越 我願西遊中華國 奮不世之略 立非常之功 自致榮路 備簪紳劒佩 出入天子之側 足矣.”
설[일본작살]계두 역신라의관자손야. 상여친우사인 동회연음 각언기지 계두왈 “신라용인논골품 수비기족 수유홍재걸공 불능유월 아원서유중화국 분불세지략 입비사잊공 자치영로 비잠신검패 출입천자지측 족의.
설(薛)[어떤 책에서는 살(薩)이라 썼다.]계두(罽頭)도 역시 신라의 세력 있는 집 자손이었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데도 골품을 따지니 실로 그 혈족이 아니면 큰 재주와 걸출한 공이 있다해도 자기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나는 서쪽으로 중화국에 유학하여 불세출의 지략을 떨치고 특별한 공을 세워 스스로의 힘으로 영예로운 자리에 올라, 의관을 차려 입고 검을 차고서 천자의 곁을 드나들어야 만족하겠다.”
武德四年辛巳 潛隨海舶入唐. 會太宗文皇帝親征高句麗 自薦爲左武衛果毅. 至遼東 與麗人戰駐蹕山下 深入疾鬪而死 功一等. 皇帝問 是何許人 左右奏新羅人薛罽頭也 皇帝泫然曰 吾人尙畏死 顧望不前 而外國人 爲吾死事 何以報其功乎 問從者聞其平生之願 脫御衣覆之 授職爲大將軍 以禮葬之.
무덕사년신사 잠수해박입당. 회태종문황제친정고구려 자천위좌무위과의. 지요동 여려인전주필산하 심입질투이사 공일등. 황제문 “시하허인?” 좌우주신라인설계두야. 황제현연왈 “오인상외사고망부전 이외국인 위오사사 하이보기공호? 문종자문기평생지원 탈어의복지 수직위대장군 이례장지.
그는 무덕(武德) 4년 신사(서기 621)에 남몰래 배를 타고 당에 들어갔다. 마침 태종 문황제가 친히 고구려를 정벌하므로, 스스로 천거하여 좌무위과의(左武衛果毅)가 되었다. 요동에 이르러 주필산(駐蹕山) 밑에서 고구려인과 싸우는데,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 맹렬하게 싸우다가 죽으니 그의 공로가 1등이었다. 황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주위의 신하들이 신라인 설계두라고 아뢰었다. 황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도 죽음이 두려워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데,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무엇으로 그의 공을 갚겠는가?” 황제는 종자(從者)에게 설계두의 평생소원을 듣고서,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대장군의 관직을 제수하였으며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