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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傳 第九-倉助利 倉助利 倉助利 高句麗人也 烽上王時 爲國相. 時慕容廆爲邊患. 王謂群臣曰 “慕容氏兵强 屢犯我疆埸 爲之奈何?” 창조리 고구려인야 봉상왕시 위국상. 시모용외위변환. 왕위군신왈 “모용씨병강 누범아강역 위지내하?” 창조리(倉助利)는 고구려인인데 봉상왕(烽上王) 때 국상(國相)이 되었다. 당시에는 모용외(慕容廆)가 변경의 걱정거리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했다.“모용씨는 군대가 강성하여 누차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倉助利對曰 “北部大兄高奴子 賢且勇 大王若欲禦寇安民 非高奴子 無可用者.” 王以爲新城太守 慕容廆不復來. 창조리대왈 “북부대형고노자 현차용 대왕약욕어구안민 비고노자 무가용자 왕이위신성태수 모용외불복래. 창조리가 대답하였다. “북부(北部)의 대형(大兄) 고노자(高奴子)가 어질고도 용..
列傳 第八-都彌 都彌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도미 백제인야. 수편호소민 이파지의지. 기처미려 역유절행 위시인소칭. 도미(都彌)는 백제인이다. 비록 평범한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고왔을 뿐만 아니라 절개있는 행실로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 編戶: 일본식 한자 평민의 집. 蓋婁王聞之 召都彌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개루왕문지 소도미여어왈 “범부인지덕 수이정결위선 약재유혼무인지처 유지이교언 즉능부동심자 선의호?” 대왈 “인지정 불가측야 이약신지처자 수사무이자야.”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대체로 부인의 덕은 정조와 ..
列傳 第八-都彌 都彌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도미 백제인야. 수편호소민 이파지의지. 기처미려 역유절행 위시인소칭. 도미(都彌)는 백제인이다. 비록 평범한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고왔을 뿐만 아니라 절개있는 행실로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 編戶: 일본식 한자 평민의 집. 蓋婁王聞之 召都彌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개루왕문지 소도미여어왈 “범부인지덕 수이정결위선 약재유혼무인지처 유지이교언 즉능부동심자 선의호?” 대왈 “인지정 불가측야 이약신지처자 수사무이자야.”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대체로 부인의 덕은 정조와 ..
列傳 第八- 薛氏 薛氏 薛氏女 栗里民家女子也. 雖寒門單族 而顔色端正 志行修整 見者無不歆艶 而不敢犯. 眞平王時 其父年老 番當防秋於正谷. 女以父衰病 不忍遠別 又恨女身不得待行 徒自愁悶. 설씨녀 율리민가여자야 수한문단족 이안색단정 지행수정 견자무불흠염 이불감범. 진평왕시기부연로 번당방추어정곡. 여이부쇠병 불인원별 우한여신부득대행 도자수민. 설씨녀(薛氏女)는 율리(栗里) 민가의 딸이다. 비록 미천한 가문에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마음과 행실을 잘 닦아, 보는 사람마다 모두 그 아름다움을 흠모하면서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였다. 진평왕(眞平王) 때 그의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에 편입되어 정곡(正谷) 땅으로 변경을 지키러 가게 되었다. 딸은 아버지가 노쇠하고 병들어 차마 멀리 떠나게 할 수 없었고 또한 여자의 몸으로 대신 ..
列傳 第八- 孝女知恩 孝女知恩 孝女知恩 韓歧部百姓連權女子也 性至孝 少喪父 獨養其母 年三十二 猶不從人. 定省不離左右 而無以爲養 或傭作或行乞 得食以飼之. 日久不勝困憊 就富家請賣身爲婢 得米十餘石. 窮日行役於其家 暮則作食歸養之. 如是三四日 其母謂女子曰 “向 食麤而甘 今則食雖好 味不如昔 而肝心若以刀刃刺之者 是何意耶?” 女子以實告之 母曰 “以我故使爾爲婢 不如死之速也.” 효녀지은 한기부백성연권여자야 성지효. 소상부 독양기모 년삼십이 유불종인. 정성불리좌우 이무이위양 혹용작옥행걸 득식이사지. 일구불승곤비 취부가청매신위비 득미십여석. 궁일행역어기가 모즉작식귀양지. 여시삼사일 기모위여자왈 “향 식추이감 금즉식수호 미불여석 이간심약이도인자지자 시하의야? 여자이실고지 모왈 ”이아고사이위비 불여사지속야.“ 효녀 지은(知恩)은 한기부(韓歧部) 백성 ..
列傳 第八- 率居 率居 率居 新羅人 所出微 故不記其族系. 生而善畵. 嘗於皇龍寺壁畵老松 體幹鱗皴 枝葉盤屈 烏鳶燕雀 往往望之飛入 及到 蹭蹬而落. 歲久色暗 寺僧以丹靑補之 烏雀不復至. 又慶州芬皇寺觀音菩薩晋州斷俗寺維摩像 皆其筆蹟 世傳爲神畵. 솔거 신라인 소출미 고불기기족계. 생이선화. 상어황룡사벽화노송 체간린준 지엽반굴 오응연작 왕왕망지비입 급도 층등이락. 세구색암 사승이단청보지 오작불복지. 우경주분황사관음보살진주단속사유마상 개기필적 세전위신화. 솔거(率居)는 신라인이며 출신이 미천하여 집안 내력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皇龍寺) 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몸통과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졌고 가지와 잎은 얼기설기 굽어져서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가 이따금 멀리서 바라보고 날아들다가 벽..
列傳 第八- 金生 金生 金生 父母微 不知其世系. 生於景雲二年 自幼能書 平生不攻他藝 年踰八十 猶操筆不休. 隸書行草皆入神 至今 往往有眞蹟 學者傳寶之. 김생 부모미 부지기세손 생어경운이년 자유능서 평생불공타예 년유팔십 유조필불휴. 예서행서개입신 지금 왕왕유진적 학자전가보지. 김생(金生)은 부모가 미천하여 집안 내력을 알 수 없다. 경운(景雲) 2년(서기 711)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다 평생동안 다른 기예는 닦지 않았으며 나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예서(隸書)와 행서(行書), 초서(草書) 모두 입신의 경지여서 지금까지도 왕왕 진필이 남아 있는데 배우는 이들이 전해오면서 보물로 여긴다. 崇寧中 學士洪灌隨進奉使入宋 館於汴京 時翰林待詔楊球李革 奉帝勅至館 書圖簇 洪灌以金生行草一卷 示之 二人大駭曰 不圖..
列傳 第八- 劒君 劒君 劒君 仇文大舍之子 爲沙梁宮舍人 建福四十四年丁亥秋八月 隕霜殺諸穀 明年春夏大飢 民賣子而食. 於時 宮中諸舍人同謀 盜唱翳倉穀分之 劒君獨不受. 諸舍人曰 “衆人皆受 君獨却之 何也? 若嫌小 請更加之.” 검군 구문대사지자 위사량궁사인 건복사십사년정해추팔월 운상살제곡 명년춘하대기 민매자이식. 어시 궁중제사인동모 도창예창곡분지 검군독불수. 제사인왈 “중인개수 군독각지 하야? 약혐소 청경가지.” 검군(劒君)은 대사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 사인으로 있었다. 건복(建福) 44년 정해(서기 627)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모든 곡식을 해치고 이듬해 봄과 여름에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잇는 형편이 되었다. 이때 궁중의 여러 사인들이 함께 모의하여 창예창(唱翳倉)의 곡식을 훔쳐서 나누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