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列傳 第七- 丕寧子 丕寧子 丕寧子 不知鄕邑族姓. 眞德王元年丁未 百濟以大兵 來攻茂山甘勿桐岑等城. 庾信率步騎一萬 拒之 百濟兵甚銳 苦戰不能克 士氣索而力憊. 庾信知丕寧子有力戰深入之志 召謂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今日之事 急矣 非子誰能奮勵出奇 以激衆心乎?” 비녕자 부지향읍족성. 진덕왕원년정미 백제이대병 래공무산감물동잠등성. 유신솔보기일만 거지. 백제병심예 고전불능극 사기색이역비. 유신지비녕자유역전십입지지 소위왈 “세한연루 지송백지후조 금일지사 급의 비자수능분여출기 이격중심호?” 비녕자(丕寧子)는 고향과 집안의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眞德王) 원년 정미(서기 647)에 백제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 등의 성을 공격하였다. 유신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막았으나, 백제군이 매우 .. 列傳 第七- 丕寧子 丕寧子 丕寧子 不知鄕邑族姓. 眞德王元年丁未 百濟以大兵 來攻茂山甘勿桐岑等城. 庾信率步騎一萬 拒之 百濟兵甚銳 苦戰不能克 士氣索而力憊. 庾信知丕寧子有力戰深入之志 召謂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今日之事 急矣 非子誰能奮勵出奇 以激衆心乎?” 비녕자 부지향읍족성. 진덕왕원년정미 백제이대병 래공무산감물동잠등성. 유신솔보기일만 거지. 백제병심예 고전불능극 사기색이역비. 유신지비녕자유역전십입지지 소위왈 “세한연루 지송백지후조 금일지사 급의 비자수능분여출기 이격중심호?” 비녕자(丕寧子)는 고향과 집안의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眞德王) 원년 정미(서기 647)에 백제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 등의 성을 공격하였다. 유신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막았으나, 백제군이 매우 .. 列傳 第七-裂起 裂起 裂起 史失族姓. 文武王元年 唐皇帝遣蘇定方 討高句麗 圍平壤城. 含資道摠管劉德敏傳宣國王 送軍資平壤. 王命大角干金庾信 輸米四千石租二萬二千二百五十石 到獐塞 風雪沍寒 人馬多凍死. 麗人知兵疲 欲要擊之. 距唐營三萬餘步而不能前 欲移書而難其人. 時裂起以步騎監輔行 進而言曰 某雖駑蹇 願備行人之數. 열기 사실족성. 문무왕원년 당황제견소정방 토고구려 위평양성. 함자도총관유덕민전선국왕 송군자평양. 왕명대각간김유신 수미사천석조이만이천이백오십석 도장색 풍설호한 인마다동사. 려인지병피 욕요격지. 거당영삼만여보이불능전 욕이서이난기인. 시역디이보기감보행 진이언왈 “소수노건 원비행인지수.” 열기(裂起)는 기록에 집안의 성씨가 전해지지 않는다. 문무왕(文武王) 원년(서기 661)에 당 황제가 소정방(蘇定方)을 보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 列傳 第七- 金歆運 金歆運 金歆運 奈密王八世孫也 父達福迊飡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時 徒衆言及某戰死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김흠운 내밀왕팔세손야 부달복잡찬 흠운소유화랑문노지문시 도중언급모전사우명지금 흠운갸연유체 유격려사제지모. 동뭉승전밀왈 “차인약부적 필불환야.” 김흠운(金歆運)은 내밀왕(奈密王)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소년 시절 화랑 문노(文努)의 문하에 있을 때, 낭도들이 아무개가 전사하여 지금까지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흠운은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북돋웠다. 같은 문하에 있던 승려 전밀(轉密)이 말했다. “이 사람이 만약 전쟁터에 나가면 틀림없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永徽六年 太宗大王憤百濟與高句麗.. 列傳 第七-官昌 官昌 官昌[一云官狀] 新羅將軍品日之子 儀表都雅 少而爲花郞 善與人交. 年十六 能騎馬彎弓 大監某薦之太宗大王. 관창[일운관장] 신아장군품일지자 표도아 소이위화랑 선여인교. 년십육 능기마만궁 대감모천지태종대왕. 관창(官昌)[혹은 관장(官狀)이라고도 한다.]은 신라 장군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16세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숙하여 어떤 대감이 그를 태종대왕에게 천거하였다. 至唐顯慶五年庚申 王出師 與唐將軍侵百濟 以官昌爲副將 至黃山之野 兩兵相對 父品日謂曰 “爾雖幼年 有志氣 今日是立功名取富貴之時 其可無勇乎?” 지당현경오년경신 왕출사 여당장군침백제 이관창위부장 지황산지야 양병상대 부품일위왈 “이수유년 유지기 금일시립공명취당귀지시 기가무용호?” 당 현경(顯.. 列傳 第七- 金令胤 金令胤 金令胤 沙梁人 級飡盤屈之子. 祖欽春[或云欽純]角干 眞平王時爲花郞 仁深信厚 能得衆心. 及壯 文武大王陟爲冢宰 事上以忠 臨民以恕 國人翕然稱爲賢相. 김영윤 사량인 급찬반굴지자. 조흠춘[혹운흠순]각간 진평왕시위화랑 인심신후 능득중심. 급장문무대왕척위총재 사상이충 임민이서 국인흡연칭위현상. 김영윤(金令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인 각간 흠춘(欽春)[혹은 흠순(欽純)이라고도 한다.]은 진평왕(眞平王) 때 화랑이 되었는데 인덕이 깊고 신의가 두터워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장성하자 문무대왕이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았는데,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고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진 재상이라고 칭송했다. 太宗大王七年庚申 唐高宗命大將軍蘇定方 伐百濟 欽春受王命 與將.. 列傳 第七-薛罽頭 薛罽頭 薛[一本作薩]罽頭 亦新羅衣冠子孫也. 嘗與親友四人 同會燕飮 各言其志 罽頭曰 “新羅用人論骨品 苟非其族 雖有鴻才傑功 不能踰越 我願西遊中華國 奮不世之略 立非常之功 自致榮路 備簪紳劒佩 出入天子之側 足矣.” 설[일본작살]계두 역신라의관자손야. 상여친우사인 동회연음 각언기지 계두왈 “신라용인논골품 수비기족 수유홍재걸공 불능유월 아원서유중화국 분불세지략 입비사잊공 자치영로 비잠신검패 출입천자지측 족의. 설(薛)[어떤 책에서는 살(薩)이라 썼다.]계두(罽頭)도 역시 신라의 세력 있는 집 자손이었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데도 골품을 따지니 실로 그 혈족이 아니면 큰 재주와 걸출한 공이 있다해도 자기 신분.. 列傳 第七- 訥催 訥催 訥催 沙梁人 大奈麻都非之子也 眞平王建福四十一年甲申冬十月 百濟大擧來侵 分兵圍攻速含櫻岑岐岑烽岑旗懸穴柵等六城. 王命上州下州貴幢法幢誓幢五軍 往救之. 旣到 見百濟兵陣堂堂 鋒不可當 盤桓不進 或立議曰 “大王以五軍委之諸將 國之存亡 在此一役. 兵家之言曰 ‘見可而進 知難而退’ 今强敵在前 不以好謀而直進 萬一有不如意 則悔不可追.” 將佐皆以爲然 而業已受命出師 不得徒還. 先是 國家欲築奴珍等六城而未遑 遂於其地 築畢而歸. 눌최 사량인 대나마도비지자야.진평왕건복사십일년 갑신동시월 백제대거래침 분병위공속함영장기잠봉잠기현혈책등육성. 왕명상주하주귀당법당서당오군 왕구지. 기도 견백제병진당당 봉불가당 반환불진 혹입의왈 “대왕이오군위지제장 국지존망 재차일역. 병가지언왈 ‘견가이진 지난이퇴.’ 금강적재전 불이호모이직진 만일유불여의 즉회불가추..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