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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傳 第八- 百結先生 百結先生 百結先生 不知何許人 居狼山下 家極貧 衣百結若懸鶉 時人號爲東里百結先生 嘗慕榮啓期之爲人 以琴自隨 凡喜怒悲歡不平之事 皆以琴宣之. 백결선생 부지하허인 거낭산하 가극빈 의백결약현순 시인호위동리백결선생 상모영계기지위인 이금자수 범희노비환불형지사 개이금선지. 백결선생(百結先生)은 어떠한 사람인지 내력을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옷을 백 군데나 기워 마치 메추라기를 달아맨 것 같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 백결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일찍이 영계기(榮啓期, 중국 고대에 거문고의 명인)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기쁘고 성나고 슬프고 즐거운 일과 불평스러운 일을 모두 거문고로 풀었다. 歲將暮 隣里舂粟 其妻聞杵聲曰 “人皆有粟舂之 我獨無焉 何以卒歲?”..
列傳 第八-勿稽子 勿稽子 勿稽子 奈解尼師今時人也. 家世平微 爲人倜儻 少有壯志. 물계자 내해이사금시인야. 가세평미 위인척당 소유장지. 물계자(勿稽子)는 내해 이사금(奈解尼師今) 때 사람이다. 집안은 평범하고 미천하지만 사람됨이 기개가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장한 뜻을 품고 있었다. 時八浦上國同謀伐阿羅國 阿羅使來 請救. 尼師今使王孫㮈音 率近郡及六部軍往救 遂敗八國兵. 是役也 勿稽子有大功 以見憎於王孫 故不記其功. 시팔포상국모벌아라국 아라사래 청구. 이사금사왕손내음 솔근군급육부군왕구 수패팔국병. 시역야 물계자유대공 이견증어왕손 고불기기공. 당시에 포상(浦上)의 여덟 무리가 함께 모의하여 아라국(阿羅國)을 치니, 아라의 사신이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내음(㮈音)을 시켜 인근의 군 및 6부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돕게 하..
列傳 第八- 實兮 實兮 實兮 大舍純德之子也. 性剛直 不可屈以非義. 眞平王時 爲上舍人 時下舍人珍堤 其爲人便佞 爲王所嬖. 雖與實兮同寮 臨事互相是非 實兮守正不苟且 珍堤嫉恨 屢讒於王曰 “實兮無智慧 多膽氣 急於喜怒 雖大王之言 非其意則憤不能已. 若不懲艾 其將爲亂 盍黜退之? 待其屈服 而後用之 非晩也.” 王然之 謫官泠林. 실혜 대사순덕지자. 성강직 불가굴이비의. 진평왕시 위상사인 시하사인진제 기위인변녕 위왕소폐. 수여실혜동료 임사호상시비 실혜수정불구자 진제질한 누참어왕왈 “실혜무지혜 다담기급어희노 수대왕지언 비기의직분불능이. 약불징애 지강위난 합출퇴지? 대기굴복 이후용지 비만야.” 왕연지 적관영림. 실혜(實兮)는 대사(관등) 순덕(純德)의 아들이다. 성품이 강직하여 의롭지 않은 일로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진평왕(眞平王) 때 상사인..
列傳 第八-聖覺 聖覺 聖覺 菁州人 史失其氏族. 不樂世間名官 自號爲居士 依止一利縣法定寺. 後歸家養母 以老病難於蔬食 割股肉以食之. 及死 至誠爲佛事資薦. 大臣角干敬信伊飡周元等 聞之國王 以熊川州向德故事 賞近縣租三百石. 성각 청주인 사실기씨족. 불락세간명관 자호위거사 의지일리현법정사. 후귀가양모 이노병난어소식 할고육이식지. 급사 지성위불사자천. 대신각간경신이찬주원등 문지국왕 이웅천주향덕고사 상근현조삼백석. 성각(聖覺)은 청주(菁州, 경남 진주) 사람이다. 기록에 성씨와 집안은 전해지지 않는다. 세상의 명예와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스스로 거사라고 칭하며 일리현(一利縣) 법정사(法定寺)에 머물렀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가 늙고 병들어서 채소만으로는 봉양하기가 어려웠으므로 넙적다리 살을 베어서 먹였다. 어머..
列傳 第八-向德 向德 向德熊川州板積鄕人也 父名善 字潘吉 天資溫良 鄕里推其行 母則失其名 向德亦以孝順 爲時所稱. 향덕웅천주판적향인야 부명선 자반길 천자온량 향리추기행 모즉실기명 향덕역이효순 위지소칭. 향덕(向德)은 웅천주(熊川州, 충남 공주) 판적향(板積鄕)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름이 선(善)이고 자(字)는 반길(潘吉)인데, 타고난 품성이 온순하고 선량하여 향리에서 그의 품행을 높이 칭송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향덕은 효성스럽고 공손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天寶十四年乙未 年荒民饑 加之以疫癘. 父母飢且病 母又發癰 皆濱於死. 向德日夜不解衣 盡誠安慰 而無以爲養. 乃刲髀肉以食之 又吮母癰 皆致之平安. 鄕司報之州 州報於王 王下敎 賜租三百斛宅一區口分田若干 命有司立石紀事 以標之 至今 人號其地云孝家. 천보십사년..
列傳 第七-階伯 階伯 階伯 百濟人 仕爲達率 唐顯慶五年庚申 高宗以蘇定方爲神丘道大摠管 率師濟海 與新羅伐百濟. 階伯爲將軍 簡死士五千人 拒之曰 “以一國之人 當唐羅之大兵 國之存亡 未可知也 恐吾妻孥 沒爲奴婢 與其生辱 不如死快.” 遂盡殺之. 계백 백제인 사위달솔 당현경오년경신 고종이소정방위신구도대총과 솔사제해 여신라벌백제 계백위장군 간사사오천인 거지왈 “이일국지인 당당라지대병 국지존망 미가지야. 공오처라 몰위노비 여기생역 불여사결.” 수진살지. 계백(階伯)은 백제 사람으로 벼슬이 달솔(達率)이었다.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당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 대총관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게 하였다. 계백은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을 뽑아 이를 막고자 하며 말하였다. “한 나라의..
列傳 第七- 匹夫 匹夫 匹夫 沙梁人也 父尊臺阿飡. 太宗大王以百濟高句麗靺鞨轉相親比 爲脣齒 同謀侵奪 求忠勇材堪綏禦者 以匹夫爲七重城下縣令. 필부 사량인야 부존대아찬. 태종대왕이백제고구려말갈전상친비 위순치 동모침탈 구충용재감수어자이필부위칠중성하현령. 필부(匹夫)는 사량(沙梁) 사람이며 아버지는 아찬 존대(尊臺)이다. 태종대왕(太宗大王)이 백제, 고구려, 말갈 등이 서로 가까워져 입술과 이와 같은 관계가 되어 함께 침탈을 꾀하자, 충성스럽고 용맹한 인재로서 방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을 구하였는데, 필부를 칠중성(七重城) 관하의 현령으로 삼았다. 其明年庚申秋七月 王與唐師滅百濟. 於是 高句麗疾我 以冬十月 發兵來圍七重城. 匹夫守且戰二十餘日. 賊將見我士卒盡誠 鬪不內顧 謂不可猝拔 便欲引還. 逆臣大奈麻比歃密遣人告賊 以城內食盡力窮 若攻之必降 賊..
列傳 第七-竹竹 竹竹 竹竹 大耶州人也 父郝熱爲撰干. 善德王時爲舍知 佐大耶城都督金品釋幢下. 王十一年壬寅秋八月 百濟將軍允忠領兵 來攻其城. 죽죽 대야주인애 부학열위찬간 선덕왕시위사지 좌대야성도독김품석당하. 왕십일년임인추팔월 백제장군윤충영병 래공기성, 죽죽(竹竹)은 대야주(大耶州) 사람이며, 아버지 학열(郝熱)은 찬간이었다. 선덕왕(善德王) 때 죽죽이 사지(舍知)가 되어 대야성(大耶城) 도독 김품석(金品釋)의 휘하에서 보좌하고 있었다. 선덕왕 11년 임인(서기 642) 가을 8월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성을 공격하였다. 先是 都督品釋 見幕客舍知黔日之妻有色 奪之. 黔日恨之 至是爲內應 燒其倉庫. 故城中兇懼 恐不能固守 品釋之佐阿飡西川[一云 沙飡祗之那] 登城謂允忠曰 “若將軍不殺我 願以城降.” 선시 도독품석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