階伯
階伯 百濟人 仕爲達率 唐顯慶五年庚申 高宗以蘇定方爲神丘道大摠管 率師濟海 與新羅伐百濟. 階伯爲將軍 簡死士五千人 拒之曰 “以一國之人 當唐羅之大兵 國之存亡 未可知也 恐吾妻孥 沒爲奴婢 與其生辱 不如死快.” 遂盡殺之.
계백 백제인 사위달솔 당현경오년경신 고종이소정방위신구도대총과 솔사제해 여신라벌백제 계백위장군 간사사오천인 거지왈 “이일국지인 당당라지대병 국지존망 미가지야. 공오처라 몰위노비 여기생역 불여사결.” 수진살지.
계백(階伯)은 백제 사람으로 벼슬이 달솔(達率)이었다.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당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 대총관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게 하였다. 계백은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을 뽑아 이를 막고자 하며 말하였다. “한 나라의 사람으로 당과 신라의 많은 병사를 당해내자니, 나라의 존망을 알기 어렵다. 내 처자식이 붙잡혀 노비가 될까 두렵구나.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흔쾌히 죽는 것이 나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처자식을 다 죽였다.
至黃山之野 設三營. 遇新羅兵將戰 誓衆曰 “昔句踐以五千人 破吳七十萬衆. 今之日 宜各奮勵決勝 以報國恩.” 遂鏖戰 無不以一當千 羅兵乃却 如是進退 至四合 力屈以死.
지황산지야 설삼영. 우신라병장전 서중왈 “석구천이오천인 파오칠심만중. 금지일 의각분려결승 이보국은.” 수오전 무불이일당천 라병내각 여시진퇴 지사합 역굴이사.
황산(黃山)의 들에 이르러 세 개의 진영을 설치하였다. 신라 병사들과 맞닥뜨려 싸우려 할 때 여러 사람에게 맹세하며 말했다. “옛날 월(越)왕 구천(句踐)은 5천의 군사로 오(吳)의 7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각자 분발해서 승리를 쟁취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리라!” 그리고 드디어 처절하게 싸웠다. 백제군 한 명이 천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라군이 끝내 퇴각하였다. 이렇게 진퇴를 네 번이나 거듭하다가, 힘이 다해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