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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列傳 第八-向德

 

向德

 

向德熊川州板積鄕人也 父名善 字潘吉 天資溫良 鄕里推其行 母則失其名 向德亦以孝順 爲時所稱.

향덕웅천주판적향인야 부명선 자반길 천자온량 향리추기행 모즉실기명 향덕역이효순 위지소칭.

 

향덕(向德)은 웅천주(熊川州, 충남 공주) 판적향(板積鄕)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름이 선(善)이고 자(字)는 반길(潘吉)인데, 타고난 품성이 온순하고 선량하여 향리에서 그의 품행을 높이 칭송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향덕은 효성스럽고 공손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天寶十四年乙未 年荒民饑 加之以疫癘. 父母飢且病 母又發癰 皆濱於死. 向德日夜不解衣 盡誠安慰 而無以爲養. 乃刲髀肉以食之 又吮母癰 皆致之平安. 鄕司報之州 州報於王 王下敎 賜租三百斛宅一區口分田若干 命有司立石紀事 以標之 至今 人號其地云孝家.

천보십사년을미 년황민기 가지이역려. 부모기차병 모우발옹 개빈어사. 향덕일야불해의 진성안위 이무이위양. 내규비육이식지 우연모옹 개치지평안. 향사보지주 주보어왕 왕하교 사조삼백두택일구구문전약간 명유사입석기사 이표지 지금 인호기지운효가.

 

천보(天寶) 14년 을미(서기 755)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전염병까지 겹쳤다. 향덕의 부모도 굶주리고 병들었으며, 어머니는 종기까지 나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향덕은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봉양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이고, 어머니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 모두 평안하게 되었다. 마을 관리가 이 일을 주(州)에 보고하고 주에서는 왕에게 아뢰니, 왕이 교서를 내려 벼 3백 섬과 집 한 채, 구분전(口分田: 구분전(口分田)은 북위에서 비롯해 수, 당대에 시행된 균전제에서 지급된 공전(公田)의 명칭이다. 생활능력이 없는 이를 구휼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급하는 토지를 말한다.) 약간을 주었다. 그리고 담당 관청에 명하여 비를 세우고 그 일을 기리도록 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이 그곳을 효가(孝家)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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