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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列傳 第七- 匹夫

匹夫

 

匹夫 沙梁人也 父尊臺阿飡. 太宗大王以百濟高句麗靺鞨轉相親比 爲脣齒 同謀侵奪 求忠勇材堪綏禦者 以匹夫爲七重城下縣令.

필부 사량인야 부존대아찬. 태종대왕이백제고구려말갈전상친비 위순치 동모침탈 구충용재감수어자이필부위칠중성하현령.

 

필부(匹夫)는 사량(沙梁) 사람이며 아버지는 아찬 존대(尊臺)이다. 태종대왕(太宗大王)이 백제, 고구려, 말갈 등이 서로 가까워져 입술과 이와 같은 관계가 되어 함께 침탈을 꾀하자, 충성스럽고 용맹한 인재로서 방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을 구하였는데, 필부를 칠중성(七重城) 관하의 현령으로 삼았다.

 

其明年庚申秋七月 王與唐師滅百濟. 於是 高句麗疾我 以冬十月 發兵來圍七重城. 匹夫守且戰二十餘日. 賊將見我士卒盡誠 鬪不內顧 謂不可猝拔 便欲引還. 逆臣大奈麻比歃密遣人告賊 以城內食盡力窮 若攻之必降 賊遂復戰. 匹夫知之 拔劒斬比歃首 投之城外. 乃告軍士曰 忠臣義士 死且不屈 勉哉努力 城之存亡 在此一戰.”

기명년경신추칠월 왕여당사멸백제. 어시 고구려질아 이동시월 발병래위칠중성. 필부수차전이입여일. 적장견아사졸진성 투불내고 위불가졸발 변욕인환. 역신대나마비삽밀견인고적 이성내식진역궁 약공지필항 적수복전 필부지지 발검참비삽수 투지성외. 내고군사왈 충신의사사차불굴 면재노략 성지존망 재차일전.”

 

그 이듬해인 경신(서기 660) 가을 7월에 왕이 당나라 군대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에 고구려가 우리를 미워하여 겨울 10월에 병사를 출동시켜 칠중성을 포위하였다. 필부가 지키고 싸운 지 20여 일이 되었다. 적장은 우리 사졸이 정성을 다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우는 것을 보고 쉽게 함락시킬 수 없다 여기고, 곧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려 하였다. 이때 역신(逆臣) 대나마 비삽(比歃)이 몰래 사람을 보내 적에게 알리기를, 성 안에 양식이 떨어지고 힘이 다하여 만약 이를 친다면 반드시 항복할 것이라고 하니, 적이 다시 공격해왔다. 필부가 이 사실을 알고 칼을 뽑아 비삽의 머리를 베어 성 밖으로 던지고는 군사들에게 말했다. “충신과 의사는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것이니 힘써 노력하라! 성의 존망이 이 한번 싸움에 달렸다.”

 

乃奮拳一呼 病者皆起 爭先登 而士氣疲乏 死傷過半. 賊乘風縱火 攻城突入. 匹夫與上干本宿謀支美齊等 向賊對射. 飛矢如雨 支體穿破 血流至踵 乃仆而死. 大王聞之 哭甚痛 追贈級飡.

내분권일호 병자개기 쟁선등 이사기피핍 사상과반. 적승풍종화 공성돌입. 필부여상간본숙모지미제등 향적대사. 비시여우 지체천파 혈류지종 내부이사. 댜왕문지 곡심통 추증급찬.

 

그리고는 주먹을 휘두르며 한 마디 하니, 병든 자들까지 모두 일어나 앞을 다투어 성 위에 올라갔으나 사기가 꺾이고 다해 죽고 다친 이가 반을 넘었다. 그때 적이 바람을 이용해 불을 지르고 성을 공격하며 들이닥쳤다. 필부가 상간(上干) 본숙(本宿), 모지(謀支), 미제(美齊) 등과 함께 적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러나 빗발처럼 날아오는 화살에 온몸이 찢어지고 잘리어, 흐르는 피가 발꿈치까지 적시더니 끝내 쓰러져 죽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비통하게 곡하였으며 급찬으로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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