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列傳 第四-異斯夫 異斯夫 異斯夫[或云苔宗]姓金氏 奈勿王四世孫 智度路王時 爲沿邊官 襲居道權謀 以馬戱 誤加耶[或云加羅]國取之. 이사부[혹운태종]성김씨 내물왕사세손 지도로왕시 위연변관 습거도권모 이마희 오가야[혹운가라]국취지. 이사부(異斯夫)[혹은 태종(苔宗)이라고도 한다.]의 성은 김씨이고, 내물왕(奈勿王)의 4세손이다. 지도로왕(智度路王, 지증왕) 때 변경 관리가 되어 거도(居道)의 계략을 모방하여 말놀이로써 가야(加耶)[혹은 가라(加羅)라고도 한다.]국을 속여서 빼앗았다. 至十三年壬辰 爲阿瑟羅州軍主 謀幷于山國. 謂其國人愚悍 難以威降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舡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 踏殺之.” 其人恐懼則降. 지십삼년임진 위아슬라주군주 모병우산국. 위기국인우한 난이위항 가이계복. 내다조목우사자 분재전강.. 列傳 第四-居道 居道 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 爲干 時 于尸山國居柒山國 介居隣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群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叔. 兩國人 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 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 거도 실기족성 부지하소인야. 사탈해이사금 위간 시 우시산국거칠산국 개서인경 번위국환. 거도위변관 잠회병탄지지 매년일도 집군마어장토지야 사병사기지 치즈이위희악 시인칭위마숙. 양국인 습견지 이위신라상사 불이위괴. 어시기병마 격기불의 이멸이국. 거도(居道)는 성이 전해지지 않고 어느 곳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 때 벼슬을 하여 간(干)이 되었는데, 이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이웃 경계에 끼어있어서 자못 신라의 근심거리가 .. 列傳 第四-居柒夫 居柒夫 居柒夫[或云荒宗]姓金氏 奈勿王五世孫. 祖仍宿角干 父勿力伊飡. 거칠부[혹운황종]성김씨 내물왕오세손. 조잉숙각간 부물력이찬. 거칠부(居柒夫)[혹은 황종(荒宗)이라고도 한다.]의 성은 김(金)씨이고, 내물왕(奈勿王)의 5세손이다. 조부는 각간 잉숙(仍宿)이요, 아버지는 이찬 물력(勿力)이다. 居柒夫少跅弛有遠志 祝髮爲僧 遊觀四方. 便欲覘高句麗 入其境. 聞法師惠亮開堂說經 遂詣聽講經. 一日 惠亮問曰 “沙彌從何來?” 對曰 “某新羅人也.” 其夕 法師招來相見 握手密言曰 “吾閱人多矣 見汝容貌 定非常流 其殆有異心乎?” 거칠부소적이유원지 축발위승 유관사방. 편욕점고구려 입기경. 문법사혜량개당설경 수지청강경. 일일 혜량문왈 “사미종하래?” 대왈 “모신라인야.” 기석 법사초래상견 악수밀언왈 “오열인다의 견여용모 정비상류 .. 列傳 第四-乙支文德 乙支文德 未詳其世系 資沈鷙有智數 兼解屬文 隋開皇[開皇 當作大業]中 煬帝下詔征高句麗 於是 左翊衛大將軍宇文述 出扶餘道 右翊衛大將軍于仲文 出樂浪道 與九軍至鴨淥水 文德受王命 詣其營詐降 實欲觀其虛實 述與仲文 先奉密旨 若遇王及文德來 則執之. 仲文等 將留之 尙書右丞劉士龍 爲慰撫使 固止之. 遂聽文德歸 深悔之 遣人紿文德曰 更欲有議 可復來 文德不顧 遂濟鴨淥而歸. 述與仲文 旣失文德 內不自安 述以粮盡欲還 仲文謂以精銳追文德 可以有功? 述止之 仲文怒曰 “將軍仗十萬兵 不能破小賊 何顔以見帝.” 述等不得已而從之 度鴨淥水追之 文德見隋軍士有饑色 欲疲之 每戰輒北 述等一日之中 七戰皆捷 旣恃驟勝 又逼群議 遂進東 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을지문덕 미상기세계. 자침지유지수 겸해속문. 수개황[개황 당작대업]중 양제하조정고구려. 어시 좌익위대.. 列傳 第三-金庾信 下 金庾信 下 麟德元甲子三月 百濟餘衆 又聚泗沘城反叛. 熊州都督 發所管兵士攻之 累日霧塞 不辨人物. 是故 不能戰 使伯山來告之 庾信授之陰謀 以克之. 인덕원갑자삼월 백제여중 우취사비성반반 웅주도독 발소관병사공지 누일무색 불변인물 시고불능전 사백산래고지 유신구지음모 이극지. 인덕(麟德) 원년(서기 664) 갑자 3월, 백제(百濟)의 남은 군사들이 다시 사비성(泗沘城)에 모여 반란을 일으켰다. 웅주(熊州) 도독이 자기 휘하의 병사들로 공격했으나, 여러 날 안개가 끼어서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싸움을 할 수 없어 백산(伯山)을 시켜 사정을 알리니, 유신(庾信)이 계략을 알려 주어 그들을 이겼다. 麟德二年 高宗遣使梁冬碧任智高等來聘 兼冊庾信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 食邑二千戶. 인덕이년 고종견사양동벽임지고.. 列傳 第二-金庾信 中 金庾信 中 二年秋八月 百濟將軍殷相 來攻石吐等七城. 王命庾信及竹旨陳春天存等將軍 出禦之. 分三軍爲五道擊之 互相勝負 經旬不解. 至於僵屍滿野 流血浮杵. 於是 屯於道薩城下 歇馬餉士 以圖再擧. 時有水鳥東飛 過庾信之幕 將士見之 以爲不祥. 庾信曰 “此不足怪也.” 謂衆曰 “今日必有百濟人來諜 汝等佯不知 勿敢誰何.” 又使徇于軍中曰 “堅壁不動 待明日援軍至 然後決戰.” 이년추팔월 백제장군은상 내공석토등칠성. 왕명유신급죽지진춘천존등장군 출어지. 분삼군위오도격지 호상승부 경순불해 지어강시만야 유혈부저 어시든어도살성하 갈마향사 이도재거 시유수조동비 과유신지막 장사견지 이위불상. 유신왈 “차부족괴지 위중왈 금일필유백제인래첩여등양부지 물감수하.” 우리순우군중왈 “견벽부동 대명일원군지 연후결전.” 진덕왕 2년(서기 649) 가을 8월, .. 列傳 第一 -金庾信 上 金庾信 王京人也. 十二世祖首露 不知何許人也 以後漢建武十八年壬寅 登龜峯 望駕洛九村 遂至其地開國 號曰加耶 後改爲金官國. 其子孫相承 至九世孫仇亥[或云仇次休] 於庾信爲曾祖. 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 庾信碑亦云 軒轅之裔 少昊之胤 則南加耶始祖首露與新羅 同姓也. 김유신 왕경인야. 십이세조수로 부지하허인야. 이후한건무십팔년임인 등귀봉 망가락구촌 수지기지개국 호왈가야 후개위금관국 기자손상승 지구세손구래[혹운구차휴] 어유신위증조 라인 자위소호금천씨후 고성김 유신비역운 ‘헌원지예 소호지윤’ 즉남가야시조수로여신라 동성야. 김유신(金庾信)은 서라벌 사람이다. 그의 12대조 수로(首露)는 어떤 사람인지 알수없지만 그는 후한(後漢) 건무(建武) 18년 임인(서기 42년)에 귀봉(龜峯)에 올라가 가락(駕洛)의 아홉 촌을 살펴보았.. 雜志 第九-高句麗,百濟 高句麗,百濟 高句麗百濟職官 年代久遠 文墨晦昧 是故不得詳悉. 今但以其著於古記及中國史書者 爲之志. 고구려백제직관 연대구원 문묵회매 시고부득상실. 금단이기저어고기급중국사거자 위지지. 고구려와 백제의 관직은 연대가 오래 되었으며 기록이 모호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제..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