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第券二 奇異 券二- 孝成王 孝成王 開元十年壬戌十月 始築闕門於毛火郡. 今毛火村 屬慶州東南境 乃防日本塞垣也. 周廻六千七百九十二步五尺 役徒三萬九千二百六十二人 掌員元眞角干. 개원십년임술시월 시축궐문어모화군. 금모화촌 속경주동남경 내방일본색단야. 주회육천칠백구십이보오척 력주삼만구천이백육십이인 장원원진각간. 개원(開元) 10년 임술(서기 722)에 비로소 모화군(毛火郡)에 관문(闕門)을 쌓았다. 지금의 모화촌(毛火村)으로 경주(慶州) 동남쪽 경계에 속하는데, 일본(日本)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요새였다. 둘레가 6,792보 5자였으며, 동원된 인부는 39,262명으로 감독자는 원진(元眞) 각간(角干)이었다. 開元二十一年癸酉 唐人欲征北狄 請兵新羅 客使六百四人來還國. 개원이십일년계유 당인욕정북적 청병신라 객사육백사인래환국. 개원 21년 계유(서기.. 券 第二 奇異 卷二- 水路夫人 水路夫人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躑躅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성덕왕대 순정공부강릉태수[금명주] 행차해정주선. 방유석정 요병임해 고천장 상유철촉화성개. 공지부인수로견지 위좌우왈 “절화헌자기수?” 종자왈 “비인적소도 개사불능.” 방유노옹견자우이과자 문부인언 절기화 역작가사헌지 기옹부지하허인야.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지금의 명주(溟州)이다.] 태수로 임명되어 가던 중,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을 때였다. 주변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높이 천 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 券 第二 奇異 卷二- 聖德王 聖德王 第三十三 聖德王 神龍二年丙午歲 禾不登 人民飢甚. 丁未正月初一日 至七月三十日 救民給租 一口一日三升爲式. 終事而計 三十萬五百碩也. 王爲太宗大王刱奉德寺 設仁王道場七日 大赦. 始有侍中職[一本系孝成王]. 제삼십삼 성덕왕 신용이년병오세 화부등 인민기심. 정미정월초일일 지칠월삼십일 구민급고 일구일일삼승위식. 종사이계 삼깁만오백석야. 왕위태종재왕창복덕사 설인왕도장칠일 대사. 시유시중직[일본계효성왕] 제33대 성덕왕(聖德王) 때인 신룡(神龍) 2년 병오(서기 706)에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몹시 굶주렸다. 정미년(서기 707) 정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백성들에게 벼를 나누어 주었는데, 한 사람 당 하루에 3되씩 주기로 하였다. 일을 마치고 계산해 보니 300,500섬이었다. 왕이 태종대왕을 위하여 봉덕사(.. 券 第二 奇異 卷二- 孝昭王代 竹旨郞 孝昭王代 竹旨郞 [亦作竹曼 亦名智官] [역작죽만 역명지관] [죽만(竹曼) 또는 지관(智官)이라고도 한다.] 第三十二 孝昭王代 竹曼郞之徒 有得烏[一云谷] 級干. 隷名於風流黃卷 追日仕進 隔旬日不見. 郞喚其母 問爾子何在 母曰 “幢典牟梁益宣阿干 以我子差富山城倉直 馳去行急 未暇告辭於郞.” 郞曰 汝子若私事適彼 則不須尋訪 今以公事進去 須歸享矣 乃以舌餠一合酒一缸 率左人[鄕云皆叱知 言奴僕也]而行. 郞徒百三十七人 亦具儀侍從. 제삼십이 효소왕대 죽만낭지도 유득오[일운곡]급간. 예명어풍류황권 추일사진 격순일불견. 랑환기모 문이자하재 모왈 “동전모량익선아간 이아자차부산성창직 치거행급미하고사어랑.” 랑왈 “여자약사사적피 즉불수심방 금이공사진거 수귀형의.” 내이설병일합주일항 솔좌인[향운개질지 언노복야]이행. 낭도백삼십칠인 역구의시.. 卷第二 紀異 第二- 萬波息笛 萬波息笛 第三十一神文大王 諱政明 金氏. 開耀元年辛巳七月七日卽位 爲聖考文武大王 創感恩寺於東海邊[寺中記云 文武王欲鎭倭兵 故始創此寺 未畢而崩 爲海龍. 其子神文立 開耀二年畢排. 金堂砌下 東向開一穴 乃龍之入寺 旋繞之備. 蓋遺詔之葬骨處 名大王岩 寺名感恩寺 後見龍現形處 名利見臺]. 제삼십일신문대왕 휘정명 김씨. 개요원년신사칠월칠일즉위 위성고문무대왕 창감은사어 동해변[사중기운 문무왕욕진왜병 고시창차사 미필이붕 위해룡. 기자신문립 개요이년필배. 금당체하 동향개일혈 내용지지입사 선요지비. 개유조지장골처 명대왕암 사명감은사 후견용현형처 명이견대.]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의 이름은 정명(政明)이고 김씨이다. 개요(開耀) 원년 신사(서기 681) 7월 7일에 왕위에 오르자, 거룩하신 선대부왕인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 卷第二 紀異 第二- 文武王 法敏 卷第二 紀異 第二 文武王 法敏 王初卽位 龍朔辛酉 泗沘南海中 有死女尸 身長七十三尺 足長六尺 陰長三尺. 或云身長十八尺 在乾封二年丁卯. 왕초즉위 용삭신유 사비남해중 유사여시 신장칠십삼척 족장육척 음장삼착. 혹운신장팔십척 재건봉이년정묘. 왕이 처음 왕위에 올랐던 용삭(龍朔) 신유년(서기 661)에 남쪽 바다에 여자 시체가 있었는데, 키가 73자였고 발의 길이가 6자였으며 음문의 길이가 3자였다. 혹은 키가 18자로 건봉 2년 정묘(서기 667)에 있었던 일이라고도 한다. 總章戊辰 王統兵 與仁問欽純等 至平壤 會唐兵滅麗. 唐帥李勣 獲高臧王還國[王之姓高 故云高臧 按唐書高宗記 顯慶五年庚申 蘇定方等 征百濟 後十二月 大將軍契苾何力 爲浿江道行軍大總管 蘇定方爲遼東道大總管 劉伯英爲平壤道大總管 以伐高麗 又明年辛酉正月 蕭嗣業爲扶餘.. 券第一奇異 第一 - 長春郞 罷郞 長春郞 罷郞 [一作羆] [일작비] [파랑은 비랑(羆郞)이라고도 한다.] 初 與百濟兵戰於黃山之役 長春郞罷郞 死於陣中 後討百濟時 見夢於太宗曰 "臣等 昔者爲國亡身 至於白骨 庶欲完護邦國 故隨從軍行 無怠而已 然迫於唐帥定方之威 逐於人後爾 願王加我以小勢" 초 여백제병전어황산지역 장춘랑비랑 사어진중 후토백제시 현몽어태종왈 "신등 석저위국망신 지어백골 서욕완호방국 고수종둔행 무태이이 연박어당수정방지위 축어인후이 원왕가아이소세." 처음 백제 군사와 황산(黃山)에서 싸울 때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이 전투 중에 죽었다. 훗날 백제를 토벌할 때 태종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신 등은 일전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백골이 되었지만, 우리나라를 완전히 지키고 싶어서 군대를 따라다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나.. 券第一奇異 第一 - 太宗 春秋公 太宗 春秋公 第二十九 太宗大王 名春秋 姓金氏. 龍樹[一作龍春]角干 追封文興大王之子也 妣眞平大王之女天明夫人. 妃文明皇后文姬 卽庾信公之季妹也. 제이십구 태종대왕 명춘추 성김씨. 용수[일작용춘]각간 추봉문흥대왕지자야 비진평대왕지녀 천명부인. 비문명황후문희 즉유신공지계매야.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이며 성은 김씨이다. 용수(龍樹)[용춘(龍春)이라고도 한다.]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왕비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로, 곧 김유신(金庾信)공의 막내 동생이다. 初 文姬之姉寶姬 夢登西岳捨溺瀰 滿京城. 旦與妹說夢 文姬聞之謂曰 “我買此夢” 姊曰 “與何物乎?” 曰 “鬻錦裙可乎?” 姊曰 “諾” 妹開襟受之 姊曰..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