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60) 썸네일형 리스트형 卷第五 孝善 第九 - 孫順埋兒 卷第五 孝善 第九 孫順埋兒 [興德王代] [흥덕왕대] [흥덕왕 시대이다.] 孫順者[古本作孫舜] 牟梁里人 父鶴山. 父沒 與妻同但傭人家得米穀養老孃. 孃名運烏. 順有小兒 每奪孃食. 順難之 謂其妻曰 “兒可得 母難再求. 而奪其食 母飢何甚. 且埋此兒以圖母腹之盈.” 손순자[고본작손순] 모량리인 부학산. 부몰 여처동단용인가득미곡양노양. 양명운오. 순유소아 매탈양식. 순난지 위기처왈 “아가득 모난재구. 이탈기식 모기하심. 차매차아이도모복지영.” 손순(孫順)[고본에는 손순(孫舜)으로 나온다.]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로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이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언제나 어머니가 드실.. 卷第五 孝善 第九 - 向得 舍知 割股供親 卷第五 孝善 第九 向得 舍知 割股供親 [景德王代] [경덕왕대] [경덕왕 시대이다.] 熊川州有向得舍知者 年凶 其父幾於餒死 向得割股以給養. 州人具事奏聞 景德王賞賜租五百碩. 웅천주유향득사지자 년흉 기부기어뇌사 향득할고이급양. 주인구사주문 경덕왕상사조오백석. 웅천주(熊川州)에 향득(向得)이란 사지(舍知)가 있었다. 흉년이 들어 그 아버지가 거의 굶어 죽게 되자 향득은 다리 살을 베어 봉양했다. 고을 사람들이 자세히 이 사실을 아뢰자 경덕왕(景德王)이 상으로 벼 500섬을 내려주었다. 舍知: 신라 17 관등 가운데 13째 등급의 벼슬을 이르던 말 卷第五 孝善 第九 - 大城 孝 二世父母 大城 孝 二世父母 대성 효 이세부모 대성의 두 부모에 대한 효 [神文王代] [신문왕 시대이다.] 牟梁里[一作浮雲村]之貧女慶祖有兒 頭大頂平如城 因名大城. 모량리[일작부운촌]지빈녀경조유아 두대정평여성 인명대성. 모량리(牟梁里)[다른 이름은 부운촌(浮雲村)이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한 성곽과 같아 대성(大城)이라고 이름 지었다. 家窘不能生育 因役傭於貨殖福安家 其家俵田數畝 以備衣食之資. 時有開士漸開 欲設六輪會於興輪寺 勸化至福安家 安施布五十疋. 開呪願曰 “檀越好布施 天神常護持 施一得萬倍 安樂壽命長.” 大城聞之 跳踉而入 謂其母曰 “予聽門僧誦倡 云施一得萬倍 念我定無宿善 今玆困匱矣 今又不施 來世益艱 施我傭田於法會 以圖後報何如?” 가군불능생육 인역용어화식복안가 기가효.. 卷第五 孝善 第九 - 眞定師 孝善雙美 眞定師 孝善雙美 진정사 효선쌍미 효와 선이 고루 아름다운 진정법사. 法師眞定 羅人也 白衣時 隸名卒伍 而家貧不娶 部役之餘 傭作受粟以養孀母. 家中計産唯折脚一鐺而已. 법사진정 라인야. 백의시 예명졸오 이가빈불취 부약지여 용작수속이양상모. 가중계산유절각이당이이. 진정법사(眞定法師)는 신라 사람이다. 승려가 되기 전에는 군졸이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 부역을 하면서도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집안에 재산이라고는 단지 다리 부러진 솥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一日有僧到門 求化營寺鐵物 母以鐺施之. 旣而定從外歸 母告之故 且虞子意何如爾. 定喜現於色曰 “施於佛事 何幸如之 雖無鐺又何患?” 乃以瓦盆爲釜 熟食而養之. 일일유승도문 구화영사철물 모이당시지 기이정종외귀 모고이고 차려자의하여이 .. 卷第五 避隱 第八 - 念佛師 念佛師 南山東麓有避里村 村有寺 因名避里寺. 寺有異僧 不言名氏 常念彌陀 聲聞于城中 三百六十坊 十七萬戶 無不聞聲. 聲無高下 琅琅一樣 以此異之 莫不致敬. 皆以念佛師爲名. 남산동록유피리촌 촌유사 인명피리사. 사유이승 불언명씨 상념미타 성문우성중 삼백육십방십칠만호 무불문성. 성무고하 랑랑일양 이차이지 막불치경. 개이염불사위명. 남산(南山)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 있는데, 마을의 이름을 따서 피리사(避里寺)라 하였다. 절에는 기이한 스님이 있었으니 이름을 말하지 않고 늘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는데,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려 360방 17만 호에서 그 염불 소리를 듣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높고 낮음이 없는 소리는 한결같이 낭랑하였다. 이로써 그를 기이하게 여기며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 卷第五 避隱 第八 - 布川山 五比丘 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 [경덕왕대] [경덕왕(景德王) 시대이다.] 歃良州東北二十許里有布川山. 石窟奇秀 宛如人斲. 有五比丘 未詳名氏 來寓而念彌陀 求西方. 幾十年 忽有聖衆 自西來迎. 於是五比丘各坐蓮臺 乘空而逝 至通度寺門外留連 而天樂間奏. 寺僧出觀 五比丘爲說無常苦空之理 蛻棄遺骸 放大光明 向西而去. 其捐舍處 寺僧起亭榭 名置樓 至今存焉. 삽량주동북이십허리유포천산. 석굴기수 완여인착. 유오비구 미상명씨. 래우이념미타 구서방. 기십년 홀유성중 자서래영. 어시오비구각좌연대 승공이서 지통도사문외유연 이천악간주. 사승출관 오비구위설‘무상고공지리.’ 세기유해 방대광명 향서이거. 기연사처 사승기정사 명치루 지금존언. 삽량주(歃良州)의 동북 쪽 20리쯤 되는 곳에 포천산(布川山)이 있다. 그곳에는 석굴(石窟)이 있었는데, .. 卷第五 避隱 第八 - 迎如師 卷第五 避隱 第八 迎如師 實際寺釋迎如 未詳族氏. 德行雙高. 景德王將邀致供養 遣使徵之. 如詣內 齋罷將還 王遣使陪送至寺. 入門卽隱 不知所在. 使來奏 王異之 追封國師. 後亦不復現世. 至今稱曰國師房. 실제사석영여 미상족씨. 덕행쌍고. 경덕왕장요치공양 견사징지. 여지내 재파장환 왕견사배송지사. 입문즉은 불여소재. 사래주 왕이지 츠봉국사. 후역불복현세. 지금칭왈국사방. 실제사(實際寺)의 승려 영여(迎如)의 성씨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덕과 행실이 모두 높았다. 경덕왕(景德王)은 그를 맞아 공양을 드리기 위해 사자를 보내서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들어가 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왕은 사자를 보내 그를 절까지 모시도록 하였다. 그는 절에 들어서자마자 곧 사라져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자가 와서 아뢰니 왕.. 卷第五 避隱 第八 - 勿稽子 勿稽子 第十奈解王卽位十七年壬辰 保羅國古自國[今固城]史勿國[今泗州]等八國 倂力來侵邊境. 王命太子捺音將軍一伐等率兵拒之 八國皆降. 時勿稽子軍功第一 然爲太子所嫌 不賞其功. 或謂勿稽曰 “此戰之功 唯子而已 而賞不及子 太子之嫌 君其怨乎?” 稽曰 “國君在上 何怨人臣.” 或曰 “然則奏聞于王幸矣.” 稽曰 “伐功爭命 揚己掩人 志士之所不爲也 勵之待時而已.” 제십내해왕즉위십칠년임진 보라국고자국[금소성]사물국[금사천]등팔국 병력래침변경. 왕명태자내음장군일벌등솔병거지 팔국개항. 시물계자군공제일 연위태자소혐 불상기공. 혹위물계왈 “차전지공 유자이이 이상불급자 태자지혐 군기원호?” 계왈 “국군재상 하원인신 혹왈 연즉주문우왕행의.” 계왈 “벌공쟁명 양기엄인 지사지소불위야 려지대시이이.” 제10대 내해왕(奈解王)이 즉위한 지 17년인 임.. 이전 1 ··· 5 6 7 8 9 10 11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