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공 12년
[經]十有二年春 葬陳靈公
십유이년춘 장진영공
12년 봄 진나라 영공의 장례가 있었다.
[經]楚子圍鄭
초자위정
초나라가 정나라를 포위하였다.
[經]夏六月乙卯 晉荀林父帥師及楚子戰于邲 晉師敗績
하유월을묘 진순임보수사급초자전우필 진사패적
여름 6월 을묘일 진나라 순임보가 병력을 이끌고 초나라 자작과 필에서 싸웠으나 연패하였다.
[經]秋七月
추칠월
가을 7월까지....
[經]冬十有二月戊寅 楚子滅蕭
동십유이월무인 초자멸소
겨울 12월 무인일에 초나라 지도자가 소나라를 멸망시켰다
[經]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淸丘
진인송인위인조인동맹우청구
진나라 송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청구에서 동맹하였다.
[經]宋師伐陳 衛人救陳
송사벌진 위인구진
송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하자 위나라가 진나라를 구원하다.
傳
[傳]十二年春 楚子圍鄭 旬有七日 鄭人卜行成 不吉 卜臨于大宮 且巷出車 吉
십이년춘 초자위정 순유칠일 정인복행성 불길 복임우대궁 차항출거 길
12년 봄 초나라가 정나라를 7일간 포위하니 정나라 사람들이 화친을 점쳐보니 불길하고, 태묘에 가서 병거를 출병시켜 싸움이 길하다 나왔다.
國人大臨 守陴者皆哭 楚子退師
국인대임 수비자개곡 초자퇴사
백성들이 모두 태묘에 모였고 수비하는 사람들 모두 울고있으니 초나라가 병력을 거뒀다.
鄭人修城 進復圍之 三月克之 入自皇門 至于逵路
정인수정 진복위지 삼월극지 입자황문 지우규로
정나라 사람들이 성을 수리하자 다시 포위하니 다시 포위하여 3개월만에 정나라를 함락하고 황문으로 들어가 성앞 대로까지 이르니
鄭伯肉袒牽羊以逆曰 孤不天 不能事君 使君懷怒以及敝邑
정백육단견양이역왈 고불천 불능사군 사군회노이급폐읍
정나라 지도자 백작이 어깨를 드러내고 양들을 끌고 나와 영접하며 말하길 ‘고(제후의 자기를 부르는 호칭)의 죄로 지도자(초나라 왕)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여 지도자가 분모하여 예까지 이르러 도시를 폐허로 만들게 하였습니다.
孤之罪也 敢不唯命是聽 其俘諸江南 以實海濱 亦唯命 其翦以賜諸侯 使臣妾之 亦唯命
고지죄야 감불유명시청 기부제강남이실헤빈 역유명 기전이사제후 사신첩지 역유명
이는 저의 죄이니 감히 명하시는 대로 받들겠습니다. 백성들을 강남으로 끌고가 해변(외진 곳)에 살라고 해도 따르고, 병사들을 제후들에게 나눠주어 노비로 삼아도 명으로 받들겠습니다.
若惠顧前好 徼福於厲宣桓武 不泯其社稷 使改事君 夷於九縣 君之惠也 孤之願也 非所敢望也 敢布腹心 君實圖之
약혜고전호 격복어여선환무 불민기사직 사개사군 이어구현 군지혜야 고지원야 비소감망야 감포복심 군실도지.
만약 전대 조상들의 은혜를 생각하시어 여공, 선공, 환공, 무공의 복을 원하여 사직을 유지하고 초나라를 섬기게 하고 군현으로 삼아주시면 초나라왕의 은혜이겠고 제 바람이지만 감히 바랄수 없는 일이요 감히 제 속마음을 드러내니 지도자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左右曰 不可許也 得國無赦
좌우왈 불가허야 득국무사
좌우 대신들이 허락하면 안됩니다 하며 나라를 얻으면 사면이란 안 됩니다 하더라
王曰 其君能下人 必能信用其民矣 庸可幾乎 退三十里而許之平 潘尪入盟 子良出質
왕왈 기군능하인 필능신용기민의 용가기호 퇴삼십리이허지평 반왕입맹 자량출질
초나라왕이 이르길 ’이 지도자가 겸양하니 백성들의 신용을 얻었을 것이니 그 기회를 살려 30리를 물러나 화평하도록 하라‘ 하였다 초나라 대부 반왕이 정나라로 들어가 동맹하고 정나라 자량(鄭伯의 아우)이 인질로 초나라로 갔다.
傳
[傳]夏六月 晉師救鄭 荀林父將中軍 先縠佐之 士會將上軍 郤克佐之 趙朔將下軍 欒書佐之 趙括趙嬰齊爲中軍大夫 鞏朔韓穿爲上軍大夫 荀首趙同爲下軍大夫 韓厥爲司馬
하유월 진사구정 순임보장중군 선곡좌지 사회장상군 곡극좌지 조삭장하군 난서좌지 조괄조영제위중군대부 공삭한천위상군대부 순수조동위하군대부 한궐위사마
여름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할 때 순임보가 중군의 장수를 맡고 선곡(彘季)이 보좌하면 사회가 상군 장수로 극극이 좌장으로 조삭이 하군 장수로 난서가 좌장으로 조괄과 조앵제가 중군 대부로 공삭 한천이 상군 대부로 순수와 조동(荀首는 荀林父의 아우이고, 趙同은 趙嬰齊의 兄이다)이 하군대부로 한궐이 사마(병참)으로 종군했다.
及河 聞鄭旣及楚平 桓子欲還曰 無及於鄭而勦民 焉用之 楚歸而動 不後
급하 문정기급초평 환자욕환왈 ‘무급어정이초민 언용지 초귀이동 불후’
황하에 이르러 정나라가 이미 초나라와 화친함을 듣고 환자(순임보)가 철군하고자 하여 말하길 ‘정나라에 도착해 병력을 상하게 하면 끝이니 초나라가 철군하고 움직여도 늦지않다’하였다.
隨武子曰 善 會聞用師觀釁而動 德刑政事典禮不易 不可敵也 不爲是征
수무자왈 선 회문용사관흔이동 덕형정사전례불이 불가적야 불위시정
따르던 무자(사회)가 옳습니다 제 듣기론 ‘용병은 적의 틈을 보아 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덕, 형벌, 정사, 전례를 어기지 않은 나라는 적으로 삼지 말라 하였으니 이번 정벌은 멈춤이 낫겠습니다’ 하더라,
楚君討鄭 怒其貳而哀其卑 叛而伐之 服而舍之 德刑成矣 伐叛 刑也 柔服 德也 二者立矣
초군토정 노기이이애기비 반이벌지 복이사지 덕형성의 벌반 형야 유복 덕야 이자립의
초나라가 정나라를 토벌함에 양다리 걸치는 것에 분노하여서 이나 애닯고 낮춰보았음이며 반란은 벌하고 복종하며 놔두는 것이 덕과 형법을 세우는 것이니 반란을 벌하는 것이 형법이요 항복한 사람에 부드럽게 대하는 건 덕이니 두가지를 세운 것이 됩니다.
昔歲入陳 今玆入鄭 民不罷勞 君無怨讟 政有經矣
석세입진 금자입정 민불피로 군무원독 정유경의.
초나라가 전에는 진나라로 지금은 정나라를 침입함에도 백성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지도자에 대해 원망이 없으니 다스림이 어긋남 없음이라 볼 수 있다.
荊尸而擧 商農工賈不敗其業 而卒乘輯睦 事不奸矣
형시이거 상농공가불패기업 이졸승집목 사불간의
형시라는 진법으로 일반 경제가 피폐하지 않고 졸개와 장교들이 서로 화목하여 서로 속임이 없으며
蔿敖爲宰 擇楚國之令典 軍行 右轅 左追蓐 前茅慮無 中權 後勁 百官象物而動 軍政不戒而備 能用典矣
위오위재 택초국지영전 군행 우원 좌추욕 전모려무 중권 후경 백관상물이동 군정불계이비 능용전의
위오를 재상으로 초나라에 법의 기틀을 잡고 군대가 출동함에 우군은 장군을 보필하고, 좌군은 야영을 준비하고 선두는 旗를 들고 불의의 사태를 알리고, 중군(주력부대)은 힘을 가지고, 후군은 강병으로 후미를 지키며, 百官은 각자 職位를 象徵하는 旗를 세우고서 職位에 맞게 行動하여 軍政이 警戒하지 않아도 完備되니, 典章(체제)을 잘 運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其君之擧也 內姓選於親 外姓選於舊 擧不失德 賞不失勞 老有加惠 旅有施舍 君子小人 物有服章 貴有常尊 賤有等威 禮不逆矣
기군지거야 내성선어치 외성선어구 거부실덕 상불실노 노유가혜 려유시사 군자소인 물유복장 귀유상존 천유등위 예불역의
초나라 지도자가 인재를 들어 쓸 때는 가족 중에는 친하고 가족 외엔 친구를 등용하니 덕을 잃지않고, 상벌에 공있는 사람을 빼지않고 노인을 우대하고 여행자에게 숙식을 주고 군자와 소인을 복장으로 구별하고 귀족을 존중하고 천민은 등급에 맞게 대하니 예법에 맞는 것으로 볼 것이다,
德立刑行 政成事時 典從禮順 若之何敵之
덕립형행 정성사시 전종예순 약지하적지?
덕을 세우고 법을 집행하여 다스림이 시의적절하고 전례에 맞고 예법을 따르니 어찌 적으로 삼을까요?‘
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 兼弱攻昧 武之善經也 子姑整軍而經武乎
견가이진 지난이퇴 군지선정애 경약공매 무지선경야 자고정군이경무호
가망성이 있을 때 진군하고 어려울 듯 하면 퇴각하는게 용병에 있어서 제일 가는 방법이요. 역소국은 예로서 우매한 나라는 강공으로 가는게 힘쓰는 법의 가장 좋은 법이다. 고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힘쓰는 법의 기본입니다.
猶有弱而昧者 何必楚
유유역이매자 하필초
약하고 우매한 나라가 널렸는데 초나라를 칠 이유가 뭡니까?
仲虺有言曰 取亂侮亡 兼弱也 汋曰 於鑠王師 遵養時晦 耆昧也 武曰 無競惟烈 撫弱耆昧 以務烈所可也
중훼유언왈 취란모망 겸약야 작왈 어삭왕사 준양시회 기매야 무왈 무경유열 무약기매 이무열소 가야
중훼(仲虺는 湯王의 左相으로 薛나라의 祖上奚仲의 後裔이다)가 말하길 어지러운 나라는 취하고 망한 나라를 경멸하고 약한 나라는 예를 다해라 했습니다. 작이 말하길 ’훌륭한 무왕의 군대여, 주왕을 무찌른다는 것은 주왕의 우매함 말하고 무왕이 이르길 ‘경쟁할 만한 것이 없는 열정으로 약소국은 위무하고 우매한 자를 흡수하며 업적을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彘子曰 不可
체자왈 불가
체자(先縠)가 말하길 '안됩니다.
晉所以霸 師武臣力也 今失諸侯 不可謂力 有敵而不從 不可謂武
진소이패 수무신력야 금실제후 불가위력 유적이부종 불가위무
진나라가 천하 패자가 된 것은 강한 군대와 신하들의 노력때문인데 제후들을 잃으면 무슨 힘이 있으며 적을 쫒지 않으면 군대가 아니라 할 것입니다.
由我失霸 不如死
유아실패 불여사
패자의 자리를 잃는다면 죽는게 낫습니다.
且成師以出 聞敵彊而退 非夫也
차성수이출 문적강이퇴 비부야
또 전열을 가다듬고 출병하여 강적이라 소리에 퇴거한다면 장부가 아니다.
命爲軍帥 而卒以非夫 唯群子能 我弗爲也 以中軍佐濟
명위군수 이졸이비부 유군자능 아불위야 이중군좌제
왕명으로 병력을 이끌고 흐지부지함은 대장부가 아닌데 귀하들은 그럴수 있는지 몰라고 나는 못하겠다 하고 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넜다.
知莊子曰 此事[師]殆哉
지장자왈 차사[사]태재
지장자(筍首)가 이르길 ‘이 일(군대)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였다.
周易有之 在師☷☵之臨☷☱曰 師出以律 否臧 凶
주역유지 재사☷☵지임☷☱왈 사출이율 부장 흉
주역에 있기를 師之臨괘는 병력은 율령으로 출병하여야 하니 그리 갈무리되지 않으면 흉합니다.
執事順成爲臧 逆爲否
집사순성위장 역위부
모든 일이 순서에 맞으면 그걸 藏이라 하는 거고 반대를 갈무리 되지 못함이라 하는 겁니다.
衆散爲弱 川壅爲澤 有律以如己也 故曰律, 否臧 且律竭也
중산위약 천옹위택 유율이여기야 고왈률, 부장 차율갈야
무리가 흩어지면 약해지고 물을 막으면 못이되듯 규칙을 두는 건 한 몸같이 움직이기 위함이니 규칙이라는 거고 갈무리가 되지 않음을 규칙이 없다라는 겁니다.
盈而以竭 夭且不整 所以凶也
영이이갈 옥차부정 소이흉야
가득찬 물이 마르면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게 되니 흉하다 하는 겁니다.
不行之謂臨 有帥而不從 臨孰甚焉 此之謂矣
불행지위임 유수이부종 임숙심언 차지위의
움직이지 않음을 멈춤이라하고 병력이 따르지 않으니 정체되어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果遇 必敗 彘子尸之 雖免而歸 必有大咎
과우 필패 체자시지 수면이귀 필유대구
체자가 초나라 군대를 맞이하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고 체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요 죽음을 면한다 해도 큰 허물이 될 겁니다.
韓獻子謂桓子曰 彘子以偏師陷 子罪大矣
한헌자위환자왈 체자이편사함 자죄대의 한헌자(한궐)이 환자에게 말하길 ‘체자가 작은 병력을 잃더라도 장군의 책임이 막중한 것입니다.
子爲元帥 師不用命 誰之罪也 失屬亡師 爲罪已重 不如進也
자위원수 사불용명 수지죄야 실속망사 위죄이중 불여진야
귀하가 원수로서 부대가 명령에 따르지 않음은 누구의 죄이며 속한 병사들을 잃으면 죄가 더 커지는 것이니 출전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事之不捷 惡有所分 與其專罪 六人同之 不猶愈乎 師遂濟
사지불첩 악유소분 여기전죄 육인동지 불유유호 사수제
싸움에 지더라도 단점은 나뉠 것이니 그 죄를 6명이 나누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晉나라 군대가 강을 건넜다.
傳
楚子北師 次於郔
초자북사 차어연
초나라 지도자가 북으로 군대를 옮겨 연땅에 주둔하였다.
沈尹將中軍 子重將左 子反將右 將飮馬於河而歸
심윤장중군 자중장과 자잡장우 장음마어하이귀
심윤이 중군을 맡고 자작의 아들 중이 좌장을 아들 반이 우장을 맡아 황하 물을 마시게 하곤 귀국하였다(세를 과시)
聞晉師旣濟 王欲還 嬖人伍參欲戰
문진사기제 왕욕환 폐인오삼욕전
진나라 군대가 이미 건너왔다 소리를 듣고 초나라 왕은 회군하고자 했으나 폐인(아첨꾼) 오삼(伍參은 伍奢의 祖父)은 싸우고저 하였다.
令尹孫叔敖弗欲曰 昔歲入陳 今玆入鄭 不無事矣 戰而不捷 參之肉其足食乎
영윤손숙오불욕왈 석세입진 금자입정 불무사의 전이불첩 삼지육기족식호
영윤 손숙오가 전쟁을 피하려 말하길 ‘작년엔 진나라 올해는 정나라를 침공했으니 일이 없던게 아니니 싸움에서 진다면 오삼의 고기를 먹어도 시원치 않으리’ 하니
參曰 若事之捷 孫叔爲無謀矣 不捷 參之肉將在晉軍 可得食乎
삼왈 ‘약사지첩 손숙위무모의 불첩 삼지육장재진군 가득식호?’
오삼이 말하길 ‘이길 경우엔 손숙 당신이 지모가 없다는 것이오 지면 내 몸뚱이는 진군 수중에 있을 것인데 잡아먹을수 있겠소?’ 하더라
令尹南轅反旆 伍參言於王曰 晉之從政者新 未能行令 其佐先縠剛愎不仁 未肯用命 其三帥者 專行不獲 聽而無上 衆誰適從 此行也 晉師必敗
영윤남원반패 오삼언어왕왈 진지종정자신 미능행령 지좌선곡강퍅불인 미긍용명 기삼수자 전행불획 청이무상 중수적종 차행야 진사필패
영윤 손숙오가 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니 오삼이 왕에게 이르길 ‘진나라의 집장관이 신참이하 명령권이 부실하고 그 좌장 선곡은 강퍅하고 인자함이 없으니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 상중하 삼군의 수장도 전권이 없고 들을 만한 명령권자가 없으니 이리하는 겁니다. 진나라 군대는 반드시 패할 겁니다’하더라
且君而逃臣 若社稷何 王病之 告令尹改乘轅而北之 次于管以待之
차군이도신 약사직하 왕병지 고영윤개승원이북지 차우관이대지
그리고 지도자가 신하를 피한다면 사직의 꼴이 뭐가 됩니까? 왕이 마음이 상해 영윤으로 하여금 수레를 북으로 돌리게 하고 관땅에 주둔하며 진나라 군대를 기다렸다.
傳
晉師在敖鄗之間
진사재오호지간
진나라 군대는 오산과 호산 사이에 있었다.
鄭皇戌使如晉師曰 鄭之從楚 社稷之故也 未有貳心 楚師驟勝而驕 其師老矣 而不設備 子擊之 鄭師爲承 楚師必敗
정황술사여진사왈 정지종초 사직지고야 미유이심 초사취승이교 기사노의 이불설비 자격지 정사위승 초사필패
정나라는 황술을 진나라 군대로 보내 이르길 ‘정나라가 초나라를 지지함은 사직을 유지하려는 거지 양다리 걸치기는 아니고 초나라 군대는 승리에 취해 교만해졌고 출병한지 오래라 피로에 쩔어있으니 진나라가 앞장서고 우리 정나라가 따르면 초나라를 꺾을수 있습니다’했다
彘子曰 敗楚服鄭 於此在矣 必許之
체자왈 패초복종 어차재의 필허지
체자가 이르길 ‘초나라를 꺽고 정나라를 굴복시킴은 이에 달렸으니 반드시 받아들이십시오’하더라
欒武子曰 楚自克庸以來 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于民生之不易 禍至之無日 戒懼之不可以怠在軍 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于勝之不可保
난무자왈 초자극용이래 기군무일불토국인이훈지우민생지불역 화지지무일 계구지불가이태재군 무일불토군실이신경지우승지불가보
난서(무자는 호)가 이르길 ‘초나라는 용나라를 차지한 이래 지도자가 백성들을 밀접하게 가르치는게 생활이 되었고 생활이 바뀌지 않으면 재앙이 언제 미칠지 모르니 군대에 나태하지 말 것을 경계하였고 군인들이 긴장하지않으면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채근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고
紂之百克而卒無後 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啓山林 箴之曰 民生在勤 勤則不匱 不可謂驕
주지백극이졸무후 훈지이약오분모필노남루이계산림 잠지왈 민생재근 근즉불궤 불가위교
은나라 주왕은 연승하면서도 망하고 뒤를 이은 이가 없다면서 약오와 분모(초나라 공신) 헤진 옷을 입고 산림을 개척한 사실을 잠언으로 백성의 삶은 근면함에 있으니 근면하면 가난해지지 않는다 하고 있으니 교만하다 할 수 없습니다.
先大夫子犯有言曰 師直爲壯 曲爲老
선대부자범유언왈 사직위장 곡위노
선대 대부 자범은 말을 남기길 ’군대가 올곧으면 웅장하고 굽으면 노쇠한 것‘이라 했다.
我則不德 而徼怨于楚 我曲楚直 不可謂老
아즉부덕 이격원우초 아곡초직 불가위노
우리가 부덕한데 초나라의 원망을 자초한다면 우리가 굽은 것이요 초나라가 곧은 것이니 초나라가 노쇠한 거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其君之戎分爲二廣 廣有一卒 卒偏之兩
기군지융위이광 광유일졸 졸편지양
초나라 지도자가 군대를 둘로 나눠 2광으로 만들었는데, 광은 1졸(병거 30승)이고 졸은 2 편(15승)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右廣初駕 數及日中 左則受之 以至于昏 內官序當其夜 以待不虞 不可謂無備
우광초가 수급일중 좌즉수지 이지우혼 내관서당기애 이대불우 불가위무비
우광이 먼저 한낮까지 호위하면 좌광이 이어받아 해질녁까지 그리고 밤에는 내관들이 담당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니 방비가 허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子良 鄭之良也 師叔 楚之崇也 師叔入盟 子良在楚 楚鄭親矣
자량 정지양야 사숙 초지숭야 사숙입맹 자양재초 초정친의
자량은 정나라의 실세요 사숙은 초나라의 존경받는 인물인데 사숙은 정나라에 자량은 초나라에 있으니 정나라와 초나라는 밀접한 모양새입니다.
來勸我戰 我克則來 不克遂往 以我卜也 鄭不可從
래권아전 아극즉래 불극수왕 이아복여 정불가종
정나라 사신이 와서 전쟁을 독려함은 이기는 편에 붙으려는 수작이니 정나라 사신의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趙括趙同曰 率師以來 唯敵是求 克敵得屬 又何俟 必從彘子
조괄조동왈 솔사이래 유적시구 극적득속 우하사 필종체자
조괄과 조동이 이르길 ‘군대를 이끌고 나선 것은 적이 있어서요 적을 이기고 속한 병사를 구하는데 뭘 망설입니까 체자의 의견을 따르십시오’ 하더라.
知季曰 原屛 咎之徒也
지계왈 원병 구지도야
지계(장자)가 말하길 원(조동) 병(조괄)은 체자(구)를 따르는 무리이다.
趙莊子曰 欒伯善哉 實其言 必長晉國
조장자왈 난백선재 실기언 필장진국
장자(조삭)이 이르길 무자(난백)이 옳으니 그의 말대로 하면 진나라의 국운이 장대해질 겁니다 하더라
傳
楚少宰如晉師曰 寡君少遭閔凶 不能文
초소재여진사왈 과군소조민흉 불능문
초나라의 소재(官名)거 진나라 군대로 와서 말하길 우리 지도자가 어릴 때 민흉(불행)을 만나 외교적 발어은 못한다.
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 將鄭是訓定 豈敢求罪于晉
문이선군지출입차행야 장정시훈정 기감구죄우진
두사람의 선군(이전 지도자-楚나라 成王과 穆王)이 이 길을 다닌 것은 정나라를 훈육하기 위함이었으니 진나라에게 죄를 지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二三子無淹久
이삼자무엄구
두세명이라도 오래 머물지 마시오
隨季對曰 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 與鄭夾輔周室 毋廢王命
수계대왈 석평왕명아선군문후왈 여정협보주실 무폐왕명
수계가 대답하길 과거 주나라 평왕이 우리 선대 지도자 문후에게 이르길 정나라와 함께 주왕실을 보좌하라셨으니 왕명을 거스리겠습니까?
今鄭不率 寡君使群臣問諸鄭 豈敢辱候人
금정불솔 과군사군신문제정 기감욕후인
지금 정나라가 따르지 않으니 우리 지도자(초나라)가 신하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인데 이게 무슨 제후를 욕되게 하는 겁니까?
敢拜君命之辱
감배군명지욕
감히 지도자의 명을 받들고자 합니다.
彘子以爲諂 使趙括從而更之曰 行人失辭
체자이위첨 사조괄종이경지왈 행인실사
체자가 조괄의 말을 아첨하는 것으로 보아 조괄을 쫒아가 다시 말하길 ‘행인(사자)가 실언하였다’ 하고
寡君使群臣遷大國之迹於鄭曰 無辟敵 群臣無所逃命
과군사군신천대국지적어정왈 무피적 군신무소도명
초나라 지도자가 제 신하들오 대국의 길을 정나라에 알려주라시며 신하들이 적을 피하지 말고 명령을 어기지 말라 하셨다.
傳
楚子又使求成于晉 晉人許之盟有日矣
초자우사구성우진 진인허지맹우일의
초나라 지도자가 다시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니 진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동맹할 날자를 잡다.
楚許伯御樂伯 攝叔爲右 以致晉師
초허백어악백 섭축위우 이치진사
그런데 楚나라 허백이 백악의 수레를 몰고, 攝叔이 車右(거우(車右)는 창으로 근접전을 주로 담당하며 거좌(車左)는 활로 원거리 공격을 맡는다)가 되어 晉나라 군대로 다가섰다
許伯曰 吾聞致師者 御靡旌摩壘而還
허백왈 오문치사자 어미정마루이환
허백이 말하길 ‘내 알기론 도전자는 깃발을 휘날리며 적진을 돌파하고 돌아와야 한다’ 들었다하니
樂伯曰 吾聞致師者 左射以菆 代御執轡 御下 兩馬掉鞅而還
악백왈 오문치사자 좌사이추 대어집비 어하 양마도양이환
악백은 ‘내 알기론 거좌는 활을 쏘고 고삐를 잡으면 내려 두 말의 가슴걸이를 바로잡고 돌아온다’더라 하고
攝叔曰 吾聞致師者 右入壘 折馘執俘而還
섭숙왈 오문치사자 우입루 절괵집부이환
섭숙은 ‘내 알기론 도전자는 망루에 진입하여 적의 귀를 자르고 사로잡아 온다’고 들었다 하고
皆行其所聞而復 晉人逐之 左右角之
개행기소문이복 진인축지 좌우각지
모두 저 아는 대로 행하고 복귀하니 진나라 사람들이 추격하고 양쪽으로 협공하였다.
樂伯左射馬 而右射人 角不能進
백악좌사마 이우사인 각불능진
백악이 말을 쏘고 오른쪽으론 사람을 쏘니 추격병들이 나서지 못하더라
矢一而已 麋興於前 射麋麗龜
실일이이 미흥어전 사미여귀
화살 한 대만 남았을 때 고라니가 나타났고 화살로 쏘니 여귀(등을 맞추다)
晉鮑癸當其後 使攝叔奉麋獻焉曰 以歲之非時 獻禽之未至 敢膳諸從者
진포계당기후 사섭숙봉미헌언왈 이세지비시 헌금지미지 감선제종자
진나라의 포계가 뒤따랐는데 섭숙을 시켜 고라니를 헌납하며 이르길 ‘아직 사냥철이 아니니 사냥물이 없을 터이니 감히 쫒아오는 이들에게 선물로 바칩니다 하니
鮑癸止之曰 其左善射 其右有辭 君子也 旣免
포계지지왈 기좌선사 기우유사 군자야 기면
포계가 추격을 멈추게 하고 말하길 ’좌측은 사격을 잘하고 우측은 말에 예가 있으니 군자로다. 그들을 놓아주었다.
傳
晉魏錡求公族未得而怒 欲敗晉師 請致師 弗許 請使 許之
진위기구공족미득이노 욕패진사 청치사 불허 청사 허지
진나라 위기(소위 結草報恩의 고사가 나오게 된)가 대부가 되길 원하나 이루지 못하자 진나라 군대를 붕괴시키려고 군대에 합류하고자 하니 허락하지 않고 사신 되기를 청하니 허락받았다.
* 魏錡: https://blog.naver.com/honchangtong/222188638835
遂往 請戰而還 楚潘黨逐之 及熒澤 見六麋 射一麋以顧獻曰 子有軍事 獸人無乃不給於鮮 敢獻於從者 叔黨命去之
수왕 청전이환 초반당축지 금형택 견육미 사일미이고헌왈 자유군사 수인내급불급어선 감헌어종자 숙당명거지
사신으로 가서 전쟁을 선포하고 돌아오는데 초나라 반당이 추격하였다 형택에 이르러 고라니 6마리를 보고 그 중 하나를 잡아 되돌아 서서 반당에게 말하길 ‘지금 전투중이니 말이나 사람도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니 감히 부하들에게 이를 선물하겠소’하니 반당이 추격을 멈췄다.
趙旃求卿未得 且怒於失楚之致師者 請挑戰 弗許 請召盟 許之 與魏錡皆命而往
조전구경미득 차노어실초지치사자 청도전 불허 청소맹 허지 여위기게명이왕
조전(趙穿의 아들) 역시 벼슬을 원했으나 되지 못하고 도전해온 초나라 사자를 놓친 것에 화가 나서 도전하고자 하나 허락받지 못하고, 동맹을 청하니 허가되어 위기와 동행하였다.
郤獻子曰 二憾往矣 弗備 必敗
극헌자왈 이감왕의 불비 필패
극헌자(郤克)가 이르길 ‘분에 찬 두 사람이 초나라로 가니 대비하지 않으면 패배할 것이라’ 하였다.
彘子曰 鄭人勸戰 弗敢從也 楚人求成 弗能好也 師無成命 多備何爲
체자왈 정인권전 불감종야 초인구성 불능호야 사무성명 다비하위
체자가 말하길 ‘정나라가 싸움을 권함에도 따르지 않았고 초나라가 화친을 청함에도 선하게 응대하지 않았음은 군대에 기강이 없는 것과 같은데 (그런 군대)가 대비를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하더라
士季曰 備之善
사계왈 비지선
사계가 말하길 ‘대비하는게 낫다’하면서
若二子怒楚 楚人乘我 喪師無日矣 不如備之
약이자노초 초인승아 상사무일의 불여비지
‘두 사람이 가서 초나라 군을 움직이고 초나라 군대거 우리보다 우세하면 우리 군대로선 끝장날 뿐이니 준비함이 옳다’
楚之無惡 除備而盟 何損於好
초지무오 제비이맹 하손어호
초나라가 앙심을 품지않는다면 대비보다는 동맹해도 손해날 일이 없소
若以惡來 有備 不敗
약이오래 유비 불패
앙심을 품고 오더라도 대비가 되었으면 패배치 않을 겁니다.
且雖諸侯相見 軍衛不徹 警也
차수제후상견 군위불철 경야
또한 재후들이 서로 만날때도 군인들이 호위하는 것은 서로를 경계하는 것이다.
彘子不可
체자불가
체자는 대비하지 않았다
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
사계사공삭한천수칠복우오전
사계가 공삭과 한천으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오산 앞 7곳에 매복하게 하였다.
故上軍不敗 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 故敗而先濟
고상군불패 조앵제사기도선구주우하 고패이선제
그 덕에 상군이 패배치 않고 조앵제가 대원을 보내 황하에 배를 준비시키니 싸움에 해하고도 황하를 건넜다.
傳
潘黨旣逐魏錡 趙旃夜至於楚軍 席於軍門之外 使其徒入之
반당기축위기 조전야지어초군 석어군문지외 사기도입지
반당이 위기를 축출하고 조전이 밤에 초나라 군대로 가서 자신은 군문에 앉아 부대원만 들어가게 했다.
楚子爲乘廣三十乘 分爲左右 右廣雞鳴而駕 日中而說 左則受之 日入而說
초자위승광삼십승 분위좌우 우광계명이가 일중이설 좌즉수지 일입이설
초나라 자작이 승광(기병) 30 수레를 책정해 좌우로 나누어 우광은 새벽 닭울 때 고삐를 매고 한낮엔 풀며 좌광은 그를 받아 해지면 풀었다.
許偃御右廣 養由基爲右 彭名御左廣 屈蕩爲右
허언어우광 양유기위우 팽명어좌광 굴탕위우
허언이 우광을 맞고 양유가 우장(右將)아 되고 팽명을 좌광으로 굴탕을 右將으로 뒀다.
乙卯 王乘左廣 以逐趙旃 趙旃棄車而走林
을묘 왕승좌광 이축조전 조전기거이주림
을묘일에 초나라 왕이 좌광을 타고 조전을 추적하니 조전이 병거를 버리고 숲으로 도망하였다.
屈蕩搏之 得其甲裳
굴탕박지 득기갑상
굴탕이 체포하여 그 아랫도리 갑옷을 뺏었다
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 使軘車逆之
진인구이자지노초사애 사돈거역지
진나라 사람들이 2사람이 초나라 군대를 격동케 할까 염려하여 돈거를 보내 마중하였다.
潘黨望其塵 使騁而告曰 晉師至矣 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 遂出陳
반당망기진 사빙이거왈 진사지의 초인역구왕지입진군애 수출진
반당이 그 먼지를 보고 사신을 보내 말하길 진나라 군이 온다 초나라 사람들이 왕이 진나라 군대에 잡힐까 우려하여 진을 펼쳤다.
孫叔曰 進之 寧我薄人 無人薄我
손숙왈 진지 영아박인 무인박아
손숙이 말하길 ‘진군하라 우리가 적을 잡을 지언정 누구도 우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詩云 ‘元戎十乘 以先啓行 先人也 軍志曰 先人有奪人之心 薄之也’ 遂疾進師 車馳卒奔 乘晉軍
시운 ‘원융십승 이선계행 선인야 군지왈 선인유탈인지심 박지야’ 수질진사 거치래분 승진군
시경에 큰 수레 10승이 선봉에 선다는 말이요 군대 일지에 이르길 그리 선봉대가 사람들의 戰意를 꺾는 법이라 하고 달려나가고 수레가 달려오니 진군을 윽박하였다.
桓子不知所爲 鼓於軍中曰 先濟者有賞 中軍下軍爭舟 舟中之指可掬也
환자부지소위 고어군중왈 선제자유상 중군하군쟁주 주중지지가국야
진나라 환자가 갈팡질팡하며 북을 울려 부대에 이르길 ‘먼저 강을 건너면 상을 줄 것이다’라 하니 중군, 하군이 배를 타려 다투는데 배위에 남은 잘린 손가락이 움켜쥐고 있을 정도였다.
傳
晉師右移 上軍未動
진사우이 상군미동
진나라 군대가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나 상군은 아직 이동하지 않았다.
工尹齊將右拒卒 以逐下軍
공윤제장우거졸 이축하군
초나라 공윤(인력을 담당하는) 제가 우측 진영의 부하들을 이끌고 하군을 추격하였다.
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曰不穀不德而貪 以遇大敵 不穀之罪也
초자사당교여채구거고당혜후왈불곡부덕이식 이우대적 불곡지죄야
초나라 지도자가 당교와 채구(초나라 대부들)을 보내 당혜후(작은 제후국)에게 이르길 내 착하지도 덕도 없으며 탐욕을 부려 강한 적을 만나니 내가 착하지 못한 내 죄로다 하였다.
然楚不克 君之羞也 敢藉君靈 以濟楚師
연초불극 군지수야 감적군영 이제초사
초나라가 이기지 못하면 지도자(唐侯)의 수치라 생각하고 감히 당후의 기세로 초나라 군대를 건너게 해주시오
使潘黨率游闕四十乘 從唐侯以爲左拒 以從上軍 駒伯曰 待諸乎 隨季曰 楚師方壯 若萃於我 吾師必盡 不如收而去之
사반당솔유궐사십승 종당후이위좌거 이종상군 구백왈 대제호 수계왈 초사방장 약췌어아 어사필진 불여수이거지
반당으로 40승의 병거를 갖고 당후군에 합류하여 좌측 진영을 이루고 상군을 추격하니 구백(郤克)이 말하길 ‘모두 대기할까요?’ 하니 수계(진나라 대부)가 ‘초나라 군의 기세가 좋으니 우리 군대가 진멸될 터이니 철수함만 못하다’하였다.
分謗生民 不亦可乎 殿其卒而退 不敗
분방생민 불역가호 전기졸이퇴 불패
비난은 나누어 받고 백성을 살리는게 나으리라 하며 부하들의 진영을 갖추고 퇴각하니 패배는 면했다.
王見右廣 將從之乘 屈蕩尸之曰 君以此始 亦必以終
왕견우광 장종지승 굴당시지왈 군이차시 역필이종
초나라 왕이 우광(우측 병거단)으로 옮겨 타려하니 굴탕이 저지하며 말하며 ‘왕이 이 전쟁을 시작하였으니 좌군에 머물며 마무리하기 바랍니다’하였다.
自是楚之乘廣先左
자시초지승광선좌
이로부터 초나라왕은 좌군에 머물게 되었다.
傳
晉人或以廣隊不能進 楚人惎之脫扃
진인혹이광대불능진 초인기지탈경
진나라 사람들이 병거가 나아가지 못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경을 떼라고 가르쳤다
少進 焉[馬]還 又惎之拔旆投衡
소진 언[마]환 우기지발패투형
조금 전진하곤 다시 주저앉자 다시 가르쳐주길 멍에를 치우라 했다.
乃出 顧曰 吾不如大國之數奔也
내출 고왈 오불여대국지수분야
그리하고 돌아보며 말하길 ‘우리는 귀국처럼 도망해본 경험이 없을 뿐이요’ 했다.
傳
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 以他馬反 遇敵不能去 棄車而走林
조전이기양마이제기형여숙부 이타마반 우접불능거 기거이주림
조전이 좋은 말 두필에 숙부와 형을 태워보내고 자기는 다른 말로 돌아오는 길에 적을 만나 숲으로 도망한 것이다.
逢大夫與其二子乘 謂其二子無顧 顧曰 趙傁在後 怒之 使下 指木曰 尸女於是 授趙旃綏 以免
봉대부여기이자승 위기이자무고 고왈 조수재후 노지 사라 지목왈 시여어시 수조전수 이면
진날 대부 봉이 아들 둘과 수레를 타고 가다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길 ‘뒤를 보지 마라’하였음에도 ‘뒤에 조씨 노인이 옵니다’하니 화가나서 수레에서 내리게 하고 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길 니들 시체를 여기에 두리라 하고 조전을 수레에 태워 목숨을 구했다.
明日 以表尸之 皆重獲在木下
명일 이표시지 개중획재목하
다음날 표시해둔 나무 밑에서 두 아들의 시체를 거뒀다.
傳
楚熊負羈囚知罃 知莊子以其族反之 廚武子御 下軍之士多從之
초웅부기수지앵 지장자이기족반지 주무자어 하군지사다종지
초나라 웅부기가 지앵(지장자의 아들)을 사로잡으니 지장자가 사병을 이끌어 초나라군에 대드니 주무자(위기)가 수레를 몰고 하군 병력이 뒤따랐다.
每射 抽矢 菆納諸廚子之房 廚子怒曰 非子之求 而蒲之愛 董澤之蒲 可勝旣乎
매사 추시 추납제주자지방 주자노왈 비자지구 이포지애 동택지포 가승기호
활을 쏠 때마다 화살을 주자의 箭筒에 넣으니 주자가 화를 내며 말하길 아들을 구하러 온 것 아니고 화살을 아끼나요 동택의 부들(질 좋은 화살)에 비하겠습니까? 하니
知季曰 不以人子 吾子其可得乎 吾不可以苟射故也
지계왈 ‘불이인자 오자기가득호 오불가이구사고야
지계가 말하길 ‘사람에 비하겠나? 내 자식들은 (인질 교환으로) 구할 걸세 그러지 못하면 화살을 쏘겠네’하더라
射連尹襄老獲之 遂載其尸 射公子穀臣囚之 以二者還
사연윤양노획지 수재기시 사공자곡신수지 이이자환
연윤(영윤처럼 직책) 양노를 죽여 그 시체를 수레에 싣고, 공자 곡신(초나라의 왕자)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及昏 楚師軍於邲
급혼 초사군어필
저녁에 초나라 군대가 필에 머물렀다.
晉之餘師不能軍 宵濟 亦終夜有聲
진지여사불능군 소제 역종야유성
진나라 패잔병들이 군세를 갖추지 못하고 강을 건너는데 밤새 소란스러웠다.
傳
丙辰 楚重至於邲 遂次于衡雍
병진 초중지어필 수차추형옹
병진일 초나라 중기갑병이 필에 이르니 형옹에 주둔하였다.
潘黨曰 君盍築武軍而收晉尸以爲京觀
반당왈 군합축무군이수진시이위경관
반당이 이르길 지도자께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진나라 군의 시신으로 봉분을 쌓아 위세를 떨치지 않으십니까?
臣聞克敵 必示子孫 以無忘武功
신문극적 필시자손 이무망무공
소신이 듣기론 ‘적을 이기면 가족들에게 보여 겁을 주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하니
楚子曰 非爾所知也 夫文 止戈爲武
초자왈 비이소지야 부문 지과이무
초나라 자작이 말하길 ‘네 아는 것이 틀렸다 글자로 보면 그칠 지와 창이 합쳐진 글자가 무란 글자다
武王克商 作頌曰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之
무왕극상 작송왈 재즙간과 재고궁시 아구의덕 사우시하 윤왕보지
무왕이 은왕조를 멸망시키고 노래하길 “창과 방패를 수습하고 활과 화살을 치우고 덕있고 의로운 사람을 구하니 하나라 시절을 되살려 진실로 천왕을 보호하게 되었다’했다.
又作武 其卒章曰 耆定爾功
우작무 기졸장왈 기정이공
무라는 글 마지막에 이르길 ‘천왕의 공을 안정시켰다’라 썼다
其三曰 鋪時繹思 我徂惟求定
기삼왈 포시역사 아조유구정
그 3장에 이르길 ‘시절과 생각을 깊이 생각하여(鋪繹) 우리(문,무왕)가 그 안정을 이뤘다.’했고
其六曰 綏萬邦 屢豊年
기육왈 수만방 누풍년
6장에 ‘세상을 편안케하니 풍년이 들었다’ 하였다.
夫武 禁暴戢兵 保大定功 安民和衆 豊財者也 故使子孫無忘其章
부무 금폭급병 보대정공 안민화중 풍재자야 고사자손무망기장
무릇 무라는 것은 ‘폭력을 갈무리하고 큰 안정을 이루어 백성들을 편안하고 조화하게하고 재물이 풍요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고로 자손들로 그 가르침을 잊지않게 하여라.
今我使二國暴骨 暴矣 觀兵以威諸侯 兵不戢矣 暴而不戢 安能保大 猶有晉在 焉得定功 所違民欲猶多 民何安焉
금아사이국폭골 폭의 관병이위제후 병불즙의 폭이불즙 안능보대 유유진재 언득정공 소위민욕유다 민하안언
지금 우리가 두 나라로 하여금 주검에 이르게 하였으니 폭력이요 무력을 보여 제후들을 위협하였으니 병력을 갈무리한게 아니다. 갈무리 않고 세를 과시한 꼴이니 어찌 큰 뜻을 이루고 안정시킨 것이냐? 진나라가 있어서 안정을 이루는 공이 있음에 백성들이 욕심이 과해졌으니 백성들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無德而强爭諸侯 何以和衆 利人之幾 而安人之亂 以爲己榮 何以豊財
무덕이강쟁제후 하이화중 이인지기 이안인지란 이위기영 하이풍재
덕없이 제후들과 겨루었으니 어찌 화합한 것이며 사람들을 이롭게 한것인가? 사람들의 분란을 즐기며 영화를 구한 것이니 어찌 백성들이 풍요하겠는가?
武有七德 我無二[一]焉 何以示子孫
무유칠덕 아무이[일]언 사이시자손
무란 것엔 7가지 덕이 있으니 나로선 그 가운데 하나도 없으니 뭘 자손들에게 보인단 것인가?
其爲先君宮 告成事而已 武 非吾功也
기위선군궁 고성사이이 무 비오공야
그저 선대 임금들의 묘에 나아가 일의 성사를 아뢸뿐이니 무공은 내 힘으로 된 것 아니다.
古者明王 伐不敬 取其鯨鯢而封之 以爲大戮於是乎有京觀 以懲淫慝
고자명왕 벌불경 취기경예이봉지 이위대육어시호유경관 이징음특‘
옛날 지혜로운 지도자(문왕 무왕)들은 불경함을 벌하고 鯨鯢(그 수괴)를 막고자 도륙하여 경관(무덤)을 만든 것이니 경관이란 그런 淫慝(음란하고 간악함)을 징계한 것이다.
今罪無所 而民皆盡忠以死君命 又可以爲京乎 祀于河 作先君宮 告成事而還
금죄무소 이민개진충이사군명 우가이위경호 사우하 작선군궁 고성사이환
지금은 그런 죄(紂왕 같은)가 없으니 백성들이 모두 충심으로 싸운 것이고 이미 경관의 의미를 이룬 것이니 황하에 제를 올리고 종묘에 고하고 돌아갔다.
傳
是役也 鄭石制實入楚師 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
시역야 정석제실입초사 장이분정이입공자어신
이번 일은 정나라 대부 석제가 초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정나라를 나누어 공자 어신에게 주려 생겨난 일이다.
辛未 鄭殺僕叔及子服
신미 정살복숙급자복
신미일 정나라 사람들이 복숙과 자복(僕叔은 魚臣이고, 子服은 石制)을 죽이니
君子曰 史佚所謂毋怙亂者 謂是類也
군자왈 사일소위무호란자 위시류야
군자들이 말하길 ‘사일(사관)이 말하길 남의 환란을 기회로 삼지말라’는 말이 이런 부류이다.‘ 했다.
詩曰 亂離瘼矣 爰其適歸 歸於怙亂者也夫
시왈 난이막의 원기적귀 귀어호난자야부
시경에 이르길 ’난리로 이별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그건 남의 환란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하였다.
傳
鄭伯許男如楚
정백허남여초
정나라 伯爵과 허나라 男爵이 초나라를 방문하였다(동맹을 위해)
傳
秋 晉師歸 桓子請死 晉侯欲許之
추 진사귀 환자청사 진후욕허지
가을 진나라 군대가 돌아가고 환자가 죽음을 청하지 진나라 제후가 그럴까 하였다.
士貞子諫曰 不可
사정자간왈 불가
사정자(士渥濁)가 간언하길 ’안됩니다‘하며
城濮之役 晉師三日穀 文公猶有憂色 左右曰 有喜而憂 如有憂而喜乎 公曰 得臣猶在 憂未歇也 困獸猶鬪 況國相乎
성복지역 진사삼일곡 문공유유유색 좌우왈 유희이우 여유유이희호 공왈 득신유재 우미갈야 곤수유투 황국상호
성복 전투에서 진나라 군대가 3일간 초나라 곡식을 먹었는데 문공이 근심하니 좌우가 이르길 ’기쁜 일에 왜 근심하십니까?‘ 하니 문공이 답하길 ’초나라 대부 득신이 있으니 근심이 가시질 않는구나’하였다. 짐승도 싸울줄 아는데 하물며 나라의 재상이 어떻겠는가
及楚殺子玉 公喜而後可知也曰 莫余毒也 已是晉再克而楚再敗也
급초살자옥 공희이후가지야왈 막여독야 이시진재국이초재패야
초나라가 자옥(득신)을 죽이자 문공이 기뻐하며 ‘내게 독과 같았다 이로 진나라가 이길 것이요 초나라는 질 것이다.‘ 했다
楚是以再世不競
초시이재세불경
초나라는 이로부터 다시는 패권 경쟁에 나서지 못했다.
今天或者大警晉也 而又殺林父以重楚勝 其無乃久不競乎
금천혹자대경진야 이우살임보이중초승 지무내구불경호
이제 하늘이든 누구들 진나라를 경계할 것이니 임보를 죽이면 초나라를 돕는 격이니 패권경쟁에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林父之事君也 進思盡忠 退思補過 社稷之衛也 若之何殺之
임보지사군야 진사진충 퇴사보과 사직지위야 약지하살지
순임보가 지도자를 섬김에 있어 늘 마음을 쓰고 충성하는 마음으로 주군의 허물을 감싸니 사직이 보호되는 것이니 어찌 죽이겠는가?
夫其敗也 如日月之食焉 何損於明 晉侯使復其位
부기패여 여일월지식언 하손어명 진후사복기위
그의 패배는 일식이나 월식처럼 자연스런 일로 태양의 광명을 가리는 것 아닙니다 하니 진나라 제후가 순임보의 직위를 복위하였다.
傳
冬 楚子伐蕭 宋華椒以蔡人救蕭
동 초자벌소 송화초이채인구소
겨울 초나라 자작이 소나라를 정벌하자 송나라 대부 화초가 채나라 사람들과 함께 소나라를 돕다.
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 王曰 勿殺 吾退 蕭人殺之 王怒 遂圍蕭 蕭潰
소인수웅상의료급공자병 왕왈 물살 오퇴 소인살지 왕노 수위소 소궤
소나라 사람들이 웅상의료(초나라 용사로 구슬로 저글링하는 재주꾼, 그의 재주로 송나라 군사들의 주의를 끌어 전쟁에 이겼다)와 초나라 자작의 아들 병을 사로잡으니 초나라 왕이 ‘죽이 말라 우리가 철수 하겟다’하였음에도 소나라 사람들이 두 사람을 죽이니 분노하여 소나라를 포위하니 소나라가 궤멸하였다.
申公巫臣曰 師人多寒 王巡三軍 拊而勉之 三軍之士 皆如挾纊
신공무신왈 사인다한 왕순삼군 부이면지 삼군지사 개여협광
신나라를 봉지로 받은 굴무신이 이르길 ‘병사들이 너무 추워합니다’ 초나라왕이 3군을 돌아보는데 모두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더라.
遂傅於蕭
수부어소
드디어 소나라에 들어가니
還無社與司馬卯言 號申叔展 叔展曰 有麥麴乎 曰 無, 有山鞠窮乎 曰 無
환무사여사마묘언 호신숙전 숙전왈 유맥국호 왈 무 유산국궁호 왈 무
소나라의 환무사가 초나라 사마묘에게 신숙전에게 신호를 주게하니 숙전이 답하길 ‘맥국이 있느냐?’ 하니 ‘없다’ 하니 국궁은 있느냐 해도 또 없다라 하였다.
還無社는 蕭나라의 大夫이고, 司馬卯와 申叔展은 모두 楚나라 大夫이다. 還無社는 평소 申叔展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에 司馬卯를 通해 그를 부른 것이다.
맥국: 麥麴과 鞠窮은 濕氣를 막는 藥材로 申叔展이 還無社를 흙탕물 속으로 도망시키려고 이런 말을 하였으나, 還無社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다. 전장에서 隱語[謬語]를 使用한 것이다.
河魚腹疾奈何 曰 目於眢井而拯之 若爲茅絰 哭井則己
하어복질내하 왈 목어완정이증지 약위모질 곡정즉기
‘민물고기를 먹고 탈이 나면 어쩌려느냐?’하니 답이 ‘마른 우물 아래 있으면 구해주라!’하더라 ‘머리 끈을 두라 내가 소리지를 것이다.’하였다
明日蕭潰 申叔視其井 則茅絰存焉 號而出之
명일소궤 신숙시기정 즉모질재언 오이출지
다음날 소나라가 궤멸하고 신숙이 머리끈이 있는 그 우물을 발견하니 불러 구출하였다.
傳
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淸丘曰 恤病討貳
진원곡송화초위공달조인동맹우청구왈 휼병토이
진나라 원곡, 송나라 화초, 위나라 공달, 조나라사람들이 청구에서 동맹하고 말하길 ‘곤란을 겪는 나라를 돕고 양다리 걸친 나라는 토벌한다.’였다.
於是卿不書 不實其言也 宋爲盟故伐陳 衛人救之
어시경불서 부실기언야 송위맹고벌진 위인구지
벼슬명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 말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서이다. 宋나라가 陳나라를 討伐하자 衛나라가 陳나라를 救援하였으니, 두 마음 품은 나라를 討伐하지 않은 것이고, 楚나라가 宋나라를 치는데도 晉나라가 救援하지 않았으니, 禍難이 있는 나라를 救援하지 않은 것이다.
孔達曰 先君有約言焉 若大國討 我則死之
공달왈 선군유약언언 약대국토 아즉사지.
공달이 말하길 ‘전대 왕들은 말하면 지켰다’하면서 대국(진나라)이 죄를 묻는다면 죽음도 불사하리라‘ 했다
-衛成公이 陳共公과 오랜 友好가 있었기 때문에 孔達이 淸丘의 結盟을 저버리고 陳나라를 救援하고서 죽음으로써 晉나라에 謝罪하고자 한 것이다. 宣公 14년에 衛나라가 孔達을 죽인 傳의 背景이다.
노선공 13년
經
十有三年春 齊師伐莒
십유삼년춘 제사벌거
傳) 十三年春 齊師伐莒 莒恃晉而不事齊故也
십삼년춘 제사벌거 거시진이불사제고야
13년 봄 제나라 군대거 거나라를 정벌하였는데 거나라 사람들은 진나라가 제나라를 무시해서라 믿었다.
夏 楚子伐宋
하 초자벌송
傳) 夏 楚子伐宋 以其救蕭也 君子曰 淸丘之盟 唯宋可以免焉
하 초자벌송 이기구소야 군자왈 청구지맹 유송가이면언
여름 초나라 자작이 소나라를 도와준 송나라를 정벌한 것은 군자(학자)들이 말하길 ‘청구에서의 동맹은 송나라만 비난을 면할수 있다’라 했다.
宋나라가 두 마음을 품은 陳나라를 討伐하였다가 지금 宋나라가 楚나라의 討伐을 받는데도 晉나라와 衛나라는 結盟을 생각해 宋나라를 救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經에는 宋나라 大夫까지 함께 貶下하였으니, 傳에서는 華椒의 罪가 자주 그 나라에 미쳤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의심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오직 宋나라만이 非難을 免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秋 螽
추 종
傳) 秋 赤狄伐晉 及淸 先縠召之也
추 적적벌진 급청 선곡소지야
가을 적적(오랑캐의 이름)이 진나라를 정벌하여 청읍에까지 이르니 선곡이 불러들인 것이다.
邲의 戰爭에서 先縠이 뜻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狄을 불러들여 變亂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淸의 一名은 淸原이다.
冬 晉殺其大夫先縠
동 진살기대부선곡
傳) 冬 晉人討邲之敗與淸之師 歸罪於先縠而殺之 盡滅其族 君子曰 惡之來也 己則取之 其先縠之謂乎
동 진인토필지패여청지사 귀죄어선곡이살지 진멸기족 군자왈 악지래야 기즉취지 기선곡지위호.
겨울 진나라 사람들이 필에서의 패배와 청읍의 전투를 빌미로 선곡에게 죄를 물어 일족을 멸절하였다. 학자들은 ‘악한 일이 닥쳐오는 것은 스스로가 그리 만든 것이요 선곡의 경우를 말함이다’하였다.
傳) 淸丘之盟 晉以衛之救陳也 討焉 使人弗去曰 罪無所歸 將加而師
孔達曰 苟利社稷 請以我說 罪我之由 我則爲政而亢 大國之討 將以誰任 我則死之
청구지맹 진이위지구진야 토언 사인불거왈 죄무소귀 장가이사
공달왈 구리사직 청이아설 죄아지유 아즉위정이항 대국지토 장이수임 아즉사지
청구 동맹에서 진나라는 위나라가 진나라를 도운 것에 대해 비난하며 사신을 가로막고 말하길 ‘죄를 밝히지 않으면 장차 군대를 일으키겠다’하였다.
공달이 말하길 ‘사직의 안위를 위해 내 한마디 하리다 “죄가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다룰 것이나 대국이 누구 탓이냐 따진다면 내가 죽음으로 답하리다”’하였다.
- 이는 다음 해 공달을 죽인 배경이다.
노선공 14년
[經]十有四年春 衛殺其大夫孔達
십유사년춘 위살기대부공달
[傳]十四年春 孔達縊而死 衛人以說于晉而免. 遂告于諸侯曰 寡君有不令之臣達 構我敝邑于大國 旣伏其罪矣 敢告 衛人以爲成勞 復室其子 使復其位
십사년춘 공달액이사 위인이설우진이면 수고우제후왈 과군유불령지신달 구아폐읍우대국 기복기죄의 감고 위인이위성노 복실기자 사복기위.
14년 봄 위나라 대부 공달이 목매어 죽고 위나라가 이를 진나라에 설명하고 징벌을 면했다. 제후들에게 이르길 ‘우리 지도자의 불초한 신하 공달이 대국과 갈등을 도모하여 망친데 대한 책임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나라는 그가 공로가 있다 보아 그 아들을 결혼시키고 공달의 지위를 복위시켰다.
[經]夏五月壬申 曹伯壽卒
하오월임신 조백수졸
[傳]夏 晉侯伐鄭 爲邲故也 告於諸侯 蒐焉而還 中行桓子之謀也 曰 示之以整 使謀而來. 鄭人懼 使子張代子良于楚, 鄭伯如楚 謀晉故也 鄭以子良爲有禮 故召之
하 진후벌정 위필고야 고어제후 수언이환 중항환자지모야 왈 시지이정 사모이래 정인구사자장대자량우초 정백여초 모진고야. 정이자량위유례 고소지.
진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이는 필지역 전투에서 초나라에 협조한 때문이다. 재후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모아 돌아왔다. 이는 중행환자의 계략이었으니 이르길 ‘잘 안정된 모습을 보여 미래를 도모하자는 겁니다.’하였다. 정나라가 두려워 자장을 자량을 대신해 초나라에 인질로 보냈고 정나라 지도자가 초나라로 갔으니 과연 진나라에 어찌 대응해야하나를 논하기 위해서였고 정나라는 자량이 예절바르다 보아 불러들인 것이다.
* 子良: 宣公 12년에 子良이 楚나라에 人質로 갔다. 子張은 鄭穆公의 孫子이다.
[經]晉侯伐鄭
진후벌정
[傳]楚子使申舟聘于齊曰 無假道于宋 亦使公子馮聘于晉 不假道于鄭
초자사산주빙우제왈 무가도우송 역사공자빙빙우진 불가도우정
초나라 지도자가 신주(두려움을 모르는)를 제나라로 보내며 말하길 ‘송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하지마라’ 도 공자 빙을 진나라로 사신으로 보내며 정나라로 가는 길을 구하지 말라하였다.
申舟以孟諸之役惡宋 曰鄭昭 宋聾 晉使不害 我則必死 王曰 殺女 我伐之
신주이맹제지역악송 왈정소 송롱 진사불해 아즉필사 왕왈 살여 아벌지
신주는 맹제에서 송나라에 악행한 적 있어서 말하길 ‘정나라는 똑똑하고 송나라는 고집불통이라 진나라로 가는 사신은 해가 없겠지만 난 필시 죽임당할 것이다’ 하니 왕이 ‘내 정벌하리라’하더라
見犀而行 及宋 宋人止之
견서이행 급송 송인지지
아들 서를 만나고 출발하여 송나라에 도착하니 송나라 사람들이 막아서더라.
華元曰 過我而不假道 鄙我也 鄙我亡也 殺其使者 必伐我 伐我 亦亡也 亡一也 乃殺之
화원왈 과아이불가도 비아야 비아망야 살기사자 필아벌 벌아 역망야 망일야 내살지
송나라 대부 화원이 말하길 ‘우리 땅을 지나면서도 허락을 구하지 않으니 우리를 변방쯤으로 아는 것이요 그렇다면 어차피 속국이나 한가지다. 사신을 죽이면 우리가 토벌당할건데 이리 망하나 저리 망하나 같은 것’이라면서 신주를 죽였다.
楚子聞之 投袂而起 屨及於窒皇 劒及於寢門之外 車及於蒲胥之市
초자문지 투몌이기 구급어실황 검급어침문지외 거급어포서지시
초나라 지도자가 듣고 소매자락을 차고 일어나 달려가니 뜨락에서야 신발을 신고 입구에서 검을 차고 포서(아마도 포장된 도로가 아닌 곳)에서 수레에 올랐다.
[經]秋九月 楚子圍宋
추구월 초자위송
[傳]秋九月 楚子圍宋
가을 9월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포위하다.
[經]葬曹文公
장조문공
[傳]冬 公孫歸父會齊侯于穀 見晏桓子 與之言魯樂 桓子告高宣子曰 子家其亡乎 懷於魯矣 懷必貪 貪必謀人 謀人 人亦謀己 一國謀之 何以不亡
동 공손귀보회제후우곡 견안환자 여지언노요 환자고고선자왈 자가기망호 회어노의회필탐 탐필모인 모인 인적모기 일국모지 하이불망
겨울 공손 귀보가 제나라 제후들과 곡에서 회맹자리에서 만나 안환자와 노나라 이야기를 즐겁게 하니 안환자가 고선자에게 ‘자가는 노나라를 그리워하니 망쪼가 들었다 그리움은 바램이 되고, 바라면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면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게 되니 집단을 이루게 되면 당연히 망하게 될 것이다.
[經]冬 公孫歸父會諸[齊]侯于穀
동 공손귀보회제후우곡
[傳]孟獻子言於公曰 臣聞小國之免於大國也 聘而獻物 於是有庭實旅百 朝而獻功 於是有容貌采章嘉淑而有加貨 謀其不免也. 誅而薦賄 則無及也. 今楚在宋 君其圖之 公說
맹헌자언어공왈 신문소국지면어대국야 빙이헌물 어시유정실여백 조이헌공 어시유용모채장가숙이유가화 모깃불면야. 주이천회 즉무급야. 금초재송 군기도지 공열
맹헌자가 선공에게 아뢰길 ‘저 알기로 소국이 대국의 처벌을 면하려면 소국이 헌물을 들고 방문하여 궁정 뜰에 물건들을 늘어놓고 조회하며 공을 돌리며 사치품에 재화를 더하니 이는 책벌을 면하려는 도모입니다. 벌을 받고나서 뇌물을 바친들 효과가 없는 법이니 지금 초나라 왕이 송나라에 있으니 비켜갈 방도를 도모하소서’하니 선공이 기뻐했다.
魯宣公 15년
[經]十有五年春 公孫歸父會楚子于宋
[傳]十五年春 公孫歸父會楚子于宋
십오년춘 공손귀보회초자우송
15년 봄 공손(재후의 손자) 귀보가 송에서 초나라 지도자를 만나다.
[經]夏五月 宋人及楚人平
하오월 송인급초인평
[傳]宋人使樂嬰齊告急于晉 晉侯欲救之
송인사악영제고급우진 진후욕구지
송나라 사람들이 악영제를 진나라로 보내 위급함을 알리니 진나라 제후가 돕고자 하였으나
伯宗曰 不可
백종왈 불가
대부 백종이 안됩니다 하였다.
古人有言曰 雖鞭之長 不及馬腹 天方授楚 未可與爭 雖晉之彊 能違天乎
고인유언왈 수편지장 불급마복 천방수초 미가여쟁 수진지강 능위천호
옛사람들이 한 말 중에 ‘채찍이 아무리 길어도 말의 배에는 닿지 않는 법’이라 했습니다. 하늘이 초나라를 거두었는데 싸움이 되겠습니까 비록 진나라가 강국이지만 하늘 뜻을 어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諺曰高下在心
언왈고하제심
속담에 ‘위아래는 마음에 달린 문제’라 하였으니
川澤納汙 山藪藏疾 瑾瑜匿瑕 國君含垢 天之道也
천택납오 산수장질 근유닉하 국군함구 천지도야
내와 못은 더러워지는 법이고 산과 숲은 벌레들을 감추고있으며 아름다운 옥도 흠집을 갖고있고 나라의 지도자는 때 타기 마련인 것이 하늘의 이치다.
君其待之 乃止
군기대지 내지
지도자께선 기다리시죠’ 하니 진나라 제후가 출병하지 않았다.
使解揚如宋 使無降楚 曰 晉師悉起 將至矣
사해양여송 사무항초 왈 진사실기 장지의
해양을 송나라로 보내 초나라에 항복하지 못하게 하며 이르길 ‘진나라 부대가 곧 도착할 것’이라 말하라 했다.
鄭人囚而獻諸楚
정인수이헌제초
정나라 사람들이 해양을 체포하여 초나라 무리에 바치니
楚子厚賂之 使反其言 不許 三而許之 登諸樓車 使呼宋人而告之 遂致其君命
초자후뢰지 사반기언 불허 삼이허지 등제루거 사호송인이고지 수치기군명
초나라 자작이 후히 뇌물을 주면 송나라에 반대로 얘기하라 했으나 싫다하였으나 3번 거푸 말하자 그러마하니, 초나라군이 누거에 태워 송나라 사람들에게 소리치게 했으나 해양이 기회를 틈타 ‘드디어 진나라 군이 올거란 천왕의 명을 밝혔다.
楚子將殺之 使與之言曰 爾旣許不穀而反之 何故 非我無信 女則棄之 速卽爾刑
초자장살지 사여지언왈 이기허불곡이반지 하고 비아무신 여즉기지 속즉이형
초나라 자작이 죽이려 하여 사람을 보내 묻길 ‘너가 그러마 하고는 반대로 한 것은 어쩐 일이냐? 내가 신의가 없는게 아니고 너가 신의가 없으니 버림을 받아야 하니 속히 네 형벌을 받으라’하였다.
對曰 臣聞之 君能制命爲義 臣能承命爲信 信載義而行之爲利 謀不失利 以衛社稷 民之主也 義無二信 信無二命 君之賂臣 不知命也 受命以出 有死無霣 又可賂乎
대왈 신문지 군능제명위의 신능승명위신 신재의이행지위히 모불실리 이위사직 민지주야 의무이신 신무이명 군지뇌신 부지명야. 수명이출 유사무운 우하뇌호?
해양이 답하길 ‘소신이 듣기엔 “지도자가 명을 만드는 것을 옳음이라 하고 신하가 명을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 하니 옳음에 대한 신의로 봉행하는 것이 이로움이요 불리함을 도모하는 것이니 사직을 지키는 것이 백성들의 주인 됨입니다. 옳음이란 양다리가 아니고 신의란 두 가지 명을 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내게 뇌물을 주었으니 명이란게 뭔지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명울 받고 나선 것이니 죽은들 할 말이 있을까만 뇌물이 무슨 경우인가?
臣之許君 以成命也
신지허군 이성명야
소신이 지도자로 받아들였으면 그 명을 받드는 것이 옳습니다.
死而成命 臣之祿也
사이성명 신지록야
죽음으로 명을 받들 수 있음이 소신의 복록입니다.
寡君有信臣 下臣獲考 死又何求 楚子舍之以歸
과군유신신 하신획고 사우하구 초자사지이귀
우리 지도자에겐 신뢰할 만한 신하가 있는 것이요 신하는 명을 받들었는데 죽음말고 뭘 구하겠나요’하니 초나라 지도자가 내버려두고 돌아갔다.
[經]夏五月 宋人及楚人平
하오월 송인급초인평
[傳]夏五月 楚師將去宋 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 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 王棄言焉 王不能答 申叔時僕曰 築室反耕者 宋必聽命 從之. 宋人懼 使華元夜入楚師 登子反之牀 起之曰 寡君使元以病告曰 敝邑易子而食 析骸以㸑 雖然城下之盟 有以國斃 不能從也 去我三十里 唯命是聽 子反懼 與之盟而告王 退三十里 宋及楚平 華元爲質 盟曰 我無爾詐 爾無我虞
하오월 초사장거송 신서계수어왕지마전왈 무외지사이불감폐왕명 왕기언언 왕불능답 신숙시복왈 축실반졍자 송필청명 종지. 송인구 사화원야입초사 등자반지상 기지왈 과군사원이병고왈 폐읍역자이식 석해이찬 수연성하지맹 유이국폐 불능종지 거아삼십리 유명시청 자반구 여지맹이고왕 퇴삼십리 송급초평 화원위질 맹왈 아무이사 이무아우
여름 5월 초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떠나려 하니 신서가 계수하며 왕의 말머리에 서서 말하길 ‘무외(申舟)가 죽음을 불사하고 왕명을 지켜냈는데 왕께선 명령(송나라를 9달 포위하고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감)을 버리시겠습니까?’하니 왕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수레를 몰던 신숙시가 아뢰길 ‘여기 집을 짓고 농사꾼을 들이면 송나라가 굴복할 것입니다’하니 그대로 했다. 송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화원을 야밤에 초나라 군대로 가도록 하여 자반의 침상에 올라 깨워 이르길 ‘우리 지도자가 나를 보내 어려움을 알리게 하니 “서로 자식을 잡아먹으며 해골을 부수어 밥을 짓는 지경이나 성하지맹(성밖에 나와 항복하는 일)만은 못하겠으니 30리만 후퇴하면 항복하리라”’하니 자반이 두려워하여 동의하고 초나라 왕에게 30리 후퇴하고 송나라와 화친하고 화원을 초나라에 인질로 데려가며 서로 약조하길 우리도 속이지 않을 것이니 송나라도 속이지 말라 하였다.
[經]六月癸卯 晉師滅赤狄潞氏 以潞子嬰兒歸
유월계묘 진사멸적적로씨 이노자영아귀
6월 계묘일 진나라 군대가 적적의 로씨를 멸망시키고 노씨의 아들 영아를 잡아 귀환하였다.
[傳]潞子嬰兒之夫人 晉景公之姊也 酆舒爲政而殺之 又傷潞子之目 晉侯將伐之 諸大夫皆曰 不可
노자영아지부인 진경공지자야 풍서위정이살지 우상로자지목 진후장벌지 제대부개왈 불가.
노자 영아의 부인은 진나라 경공의 누이라 풍서(로나라 승상)가 죽였고 로의 아들의 눈을 상하게 했다. 진나라 제후가 토벌하고자 했으나 모든 대부들이 말하길 ‘아니됩니다’했다.
酆舒有三儁才 不如待後之人 伯宗曰 必伐之 狄有五罪 儁才雖多 何補焉
풍서유삼준재 불여대후지인 백종왈 필벌지 적유오죄 준재수다 하보언
풍서에겐 3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으니 후임을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하니 백종은 ‘반드시 벌주어야 합니다 오랑캐에게 5가지 죄가 있으니 뛰어난 재주가 많은들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하더라.
不祀一也 耆酒二也 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 虐我伯姬四也 傷其君目五也
불사일야 기주이야 지중장이탈여씨지삼야 학아백희사야 상기군목오야
조상 제사를 않으니 1이요 술을 좋아하니 2요, 중장(로씨국의 현자)를 버리고 여씨의 땅을 빼앗으니 3이요 우리 백희를 학살한 것이 4번 째요 자기 지도자의 눈을 상하게 했으니 5번째다.
怙其儁才而不以茂德 玆益罪也
호기준재이불이무덕 자익죄야
그 재주를 믿고 덕을 쌓지 않으니 죄를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 而申固其命 若之何待之
후지인혹자장경봉덕의이사신인 이신고기명 약지하대지
후임자가 덕과 정의를 존경하고 받들어 神人을 섬기며 그 맡은 책임을 든든히 하여 자리잡으면 왜 기다려야 합니까?
不討有罪曰 將待後 後有辭而討焉 毋乃不可乎
불토유죄왈 장대후 후유사이토언 무내불가호
죄를 따지지 않고 ‘후임을 기다리자하는데 그 후임자가 이치에 맞게 처신함에도 죄를 묻는다는게 불가하지 않을까요?
夫恃才與衆 亡之道也 商紂由之 故滅
부시재여중 망지도야 상주유지 고멸
대저 재주를 믿는 무리는 망하는 길인데 상나라 주왕이 그리했으니 파멸한 것입니다.
天反時爲災 地反物爲妖 民反德爲亂 亂則妖災生
천반시위재 지반물위요 민반덕위란 란즉요재생
하늘과 운때가 어긋나면 재앙이요 땅이 사물과 어긋나면 요사함이고 백성들이 덕과 어긋나면 난리하 하니 난리란 요사스러움이요 재앙을 만드는 것입니다.
故文 反正爲乏 盡在狄矣 晉侯從之
고문 반정위핍 진재적의 진후종지
옛 말에 올바름과 어긋나는 걸 결핍이라 했는데 적(오랑캐)에 모두 있습니다’ 하니 진나라 제후가 수긍하다.
六月癸卯 晉荀林父敗赤狄于曲梁 辛亥 滅潞 酆舒奔衛 衛人歸諸晉 晉人殺之
유월계묘 진순임보패적적우곡량 신해 멸로 풍서분위 위인귀제진 진인살지
6월 계묘일 진나라 순임보가 곡량에서 적적을 물리치고 신해일 로나라를 멸망시키니 풍서가 위나라로 도망하였으나 위나라 사람들이 풍서를 진나라 사람들에 돌려보내니 신나라 사람들이 풍서를 죽였다.
[經]秦人伐晉
진인벌진
[傳]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 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 卒立召襄
왕손소여소씨모씨쟁정 사왕자첩살소재공급모백위 졸립소양
왕의 손자 소가 소씨 모씨와 정사를 쥐려하니 왕자 첩을 보내어 소재공과 모백위를 죽이고 마침내 소양(소제공의 아들)이 정사를 도맡게 하였다.
[經]王札子殺召伯毛伯
왕찰자살소백모백
[傳]秋七月 秦桓公伐晉 次于輔氏
추칠월 진환공벌진 차우보지
가을 7월 진환공이 진나를 정벌하려 보지 땅에 주둔하였다.
壬午 晉侯治兵于稷 以略狄土 立黎侯而還
임오 진후치병우직 이략적토 입여후이환
임오일에 진나라 제후가 직땅에서 병사를 모아 오랑캐 땅을 노략하여 여후를 세우고 돌아왔다.
及雒 魏顆敗秦師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급락 위과패진사우보지 획두회 진지역인야
락에 이르러 위과가 진나라 군대를 보지에서 물리치고 두회를 사로잡았는데 진나라 군대의 용사다.
初 魏武子有嬖妾 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殉
초 위무자유폐첩 무자 무자질 명과왈 필가시 질병즉왈 필이위순
전에 위무자에게 자식이 없는 폐첩이 하나있었는데 무자가 병이 깊자 아들 과에게 이르길 ‘개가시켜라’ 병이 깊자 순장시키라‘고 말을 바꾸었다
及卒 顆嫁之曰 疾病則亂 吾從其治也
급졸 과가지왈 질병즉란 오종기치야
결국 죽고 과가 개가시키면서 이르길 ’병으로 혼란이 와 순장하라했지만 나는 정신 맑을 대 하신 말을 따르겠다‘했다.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 杜回躓而顚 故獲之
급보지지역 과견노인결초이항두회 두회질이전 고획지
보지 전투에서 위과는 어떤 노인이 풀을 묶어 두회의 길을 막는 걸 보았는데 그로 두회를 사로잡게된 것이다.
夜夢之曰 余 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 余是以報
야몽지왈 여 이소가부인지부야 이용선인지치명 여시이보
밤에 꿈에 나타나 이르길 ’너가 개가시킨 부인의 아버지다. 너가 부친의 온전할 때 명령을 따라주었기로 보답한 것‘이라 하였다.
[經]秋 螽
추 종
가을 메뚜기의 피해가 있었다.
[經]仲孫蔑會齊高固于無婁
중손멸회제고고우무루
중손(둘째 손자?) 멸이 제나라 고고를 송나라 땅 무루에서 만났다.
[經]初稅畝
[傳]初稅畝 非禮也 穀出不過藉 以豐財也
초세묘 비례야 곡출불과적 이풍재야
처음 이랑마다 세를 부과하니 예가 아니다. 公田 (공동 농경지)소출을 거두기는 하지만 일반 백성의 소출은 손대지 않았다는 말
[經]冬 蝝生 饑
동 연생 기
겨울 蝝(누리:메뚜기)이 발생하였으나 먹을게 없어 모두 굶어 죽었다.
傳
[傳]晉侯賞桓子狄臣千室 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 吾獲狄土 子之功也 微子 吾喪伯氏矣. 羊舌職說是賞也曰 周書所謂 庸庸祗祗者 謂此物也 夫士伯庸中行 伯君信之 亦庸士伯 此之謂明德矣 文王所以造周 不是過也
진후상환자적신천실 역상토백이과연지현왈 오획적토 자지공야 미자 오상백씨의 양설직설시상야왈 주서소위 용용지지자 위차물야 부사백용중항 백군신지 역용사백 차지위명덕의 문왕소이조주 부시과야
진나라 제후가 환자에게 오랑캐 1000호를 상으로 부었고 사백에게 과연현을 상으로 주며 말하길 ‘내가 오랑캐 땅을 얻은 건 네 덕이다 너 아니였으면 환자(伯氏)를 잃었을 것이다’하였다. 양설직(羊舌職은 叔向의 아버지)이 이 포상에 대해 말하길 ‘주서(康誥)에 이르길 庸庸祗祗(文王이 쓸 만한 사람을 쓰고 尊敬할 만한 사람을 尊敬하였다)는 말이다. 사백을 고용함에 치우침이 없었고 지도자가 사백을 믿었으니 이를 이르러 밝은 덕이라 하는 것이요 문왕이 주나라를 창건한 것도 (인재를 고르게 등용한 것) 이상이 아닙니다.
故詩曰 陳錫載周 能施也 率是道也 其何不濟
고시왈 진석재주 능시야 솔시도야 기하부제
그러므로 大雅(시경의 6義)에서 陳錫載周 (베품이 주나라에 있어) 능히 베풀었으니 이 도를 따르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傳
[傳]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 不敬
진후사조동헌적부우주
진나라 제후가 조동으로 하여금 오랑캐 포로를 주나라로 바칠 때 주나라에 대한 공경함이 없었다.
劉康公曰 不及十年 原叔必有大咎 天奪之魄矣
유강공왈 불급십년 원숙필유댜구 천탈지백의
유강공(周王의 季子이고, 原叔은 趙同이다.) ‘불과 10년이 가기 전에 원숙은 큰 죄를 지을 것이요 하늘이 그의 혼백을 거둘 것이다’하였다.
16년
[經]十有六年春王正月 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
십유육년춘왕정월 진인멸적적갑씨급유우
[傳]十六年春 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
십육년춘 진사회수사멸적적갑씨급유우탁진
16년 봄 진나라 사회가 병력을 이끌고 적적 갑씨와 유우 탁진을 멸하였다
三月 獻狄俘
삼월 헌적부
3월 적의 패잔병을 주나라에 드렸다.
晉侯請于王 戊申 以黻冕命士會將中軍 且爲大傅 於是晉國之盜 逃奔于秦
진후청우왕 무신 이불면명사회장중군 차위대부 어시진국지도 도분우진
진나라 제후가 주나라 왕에게 청하니 무신일 사회에게 黻冕(정승의 복장)을 내려 중군의 지휘를 맡기고 태부의 자리를 주었다. 이때 晉나라의 도둑무리가 모두 秦나라로 도망하였다.
羊舌職曰 吾聞之 禹稱善人 不善人遠 此之謂也夫
양설직왈 오문지 우칭선인 불선인원 차지위야부
양설직이 말하길 ‘내 듣기론 우왕이 선인을 등용하니 불량한 사람들이 멀리 도망갔다’는데 이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
詩曰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 善人在上也
시왈 전전긍긍 여임심연 여리박빙 선인재상야
시경에 깊은 물에 다가선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조심하는게 선인들이 높다라는 것이다.
善人在上 則國無幸民
선인재성 즉국무행민
선인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 백성들이 요행을 바라지 않게 된다
諺曰 民之多幸 國之不幸也 是無善人之謂也
언왈 민지다행 국지불행야 시무선인지위야
속담에 백성들이 요행수나 바라는 사람이 많으면 전체 무리에겐 불행이요 선인들이 없다는 의미이다.
[經]夏 成周宣榭火
하 성주선사화
[傳]夏 成周宣榭火 人火之也 凡火 人火曰火 天火曰災
하 성주선사화 인화지야 범화 인화왈화 천화왈재
여름 성주선사(아마도 주나라 창건을 기리는 사당)에 화재가 나니 이는 사람이 불지른 것이다. 무릇 화재란 사람이 내면 화요 하늘이 내면 재앙이라 한다.
[經]秋 郯伯姬來歸
[傳]秋 郯伯姬來歸 出也
추 담백희래귀 출야
가을 담나라 백작에게 시집갔던 魯君의 딸이 쫒겨왔다.
[傳]爲毛召之難故 王室復亂 王孫蘇奔晉 晉人復之
위모소지란고 왕실복란 왕손소분진 진인복지
모백과 소백(천자=주왕의 대부)의 소란으로 왕실이 다시 분란에 빠지니 왕손 소가 진나라로 도망하였으나 진나라가 그를 다시 복귀시켰다.
[經]冬 大有年
동 대유년
[傳]冬 晉侯使士會平王室 定王享之 原襄公相禮
동 진후사사회평왕실 정왕향지 원양공상례
겨울 진나라 제후가 사회로 하여금 왕실을 분란을 안정시키니 정왕이 향연(희생을 반으로 쪼개 올리는 것)을 베푸는데 원영공이 상례(사회자)가 되었다.
殽烝 武子私問其故 王聞之 召武子曰 季氏而不聞乎 王享有體薦 宴有折俎 公當享 卿當宴 王室之禮也
효증 무자사문기고 왕문지 소무자왈 ‘계씨이불문호? 왕향유체천 연유절조 공당향 경단연 왕실지례’
효증(끓인 안주) 무자가 개인적으로 그 연유를 묻자 왕이 듣고는 무자를 불러 이르길 ‘동생은 못들어봤는가 왕이 향연을 베풀면 희생을 반으로 쪼개 올리고 연회에서는 고기를 삶아 잘라 올리는 법(折俎)이고 제후들에겐 향례(하늘에 제사를)를 제후의 경들에겐 연례(우리의 잔치)를 베푸는게 왕실의 예법이다’하였다.
武子歸而講求典禮 以修晉國之法
무자귀이강구전례 이수진국지법
무자가 돌아가 전례를 공부하여 진나라의 법을 정리하였다.
노선공 17년
[經]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 許男錫我卒
십유칠년춘왕정월경자 허남석아졸
17년 봄 정월 경자일에 허나라 지도자 男爵 석아가 죽었다.
[傳]十七年春 晉侯使郤克徵會于齊
십칠년 진후사극극징회우제
17년 봄 진나라 제후가 극극을 시켜 제나라에서 회맹을 주최하였다
齊頃公帷婦人 使觀之 郤子登 婦人笑於房 獻子怒 出而誓曰 所不此報 無能涉河
제경공유부인 사관지 극자등 부인소어방 헌자노 출이서왈 ‘소불차보 무능섭하’
제나라 경공인 부인으로 하여금 장막안에서 관람하도록 하였는데 절름발이인 극극이 계단을 오르자 부인이 웃었기로 헌자=극극이 노하여 나오면서 맹세하며 이르길 ‘이에 대한 복수를 못하면 다시는 황하를 건너지 않으리라’하였다.
獻子先歸 使欒京廬待命于齊曰 不得齊事 無復命矣
헌자선귀 사난경려대명우제왈 부득제사 무복명의
극극이 먼저 돌아가며 난경려에게 제나라에서 명을 기다리라 말하고 ‘이 치욕을 되갚지 못하면 다시는 명을 받을 생각마라’하였다.
郤子至 請伐齊 晉侯弗許 請以其私屬 又弗許
극자지 청벌제 진후불허 청이기사속 우불허
극자가 진나라에 돌아와 제나라를 징벌하자고 청했으나 진나라 제후가 허락지 않았다. 다시 私兵으로라도 토벌하겠다 한 것도 허가치 않았다.
[經]丁未 蔡侯申卒
정미 채후신졸
정미일 채나라 지도자 후작 신이 죽었다.
[經]夏 葬許昭公
하 장허소공
여름 허나라 소공을 장례하다
[經]葬蔡文公
장채문공
채나라 문공을 장례하다
[經]六月癸卯 日有食之
유월계미 일유식지
6월 계묘일에 일식이 있었다
[經]己未 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
기미 공회진후위후조백주자동맹우단도
기미일 선공이 진,위,조,주나라 지도자들과 단도에서 회맹하였다.
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 及斂盂 高固逃歸
제후사고고안약채조남곽언회 급렴우 고고도귀
제나라 제후가 고고, 안약, 채조, 남곽언을 회맹에 보냈으나 염우에 이르러 고고가 극극이 분노한다는 소리에 도망하여 돌아왔다.
夏 會于斷道 討貳也
하 회우단도 토이야
여름 단도에서 회맹함은 양다리 걸친 것에 대한 징벌을 토의하려는 것이었다.
盟于卷楚 辭齊人 晉人執晏弱于野王 執蔡朝于原 執南郭偃于溫
맹우권초 사제인 진인집안약우야왕 집채조우원 집남곽언우온
권초에서의 회맹에서 제나라의 참가를 거절하고 진나라 사람들이 안약을 야왕에서, 원에서 채조를 온에서 남곽언을 사로잡았다.
苗賁皇使 見晏桓子 歸言於晉侯曰 夫晏子何罪
묘분황사 견안환자 귀언어진후왈 부안자하죄?
분황(楚나라 鬪椒의 아들이다. 楚나라가 鬪氏를 滅하자, 賁皇이 晉나라로 도망가서 苗地를 食邑으로 받았다.)이 사신으로 가다가 안환자(안약)이 잡혀가는 걸 보고 진나라에 돌아와 무슨 죄인가를 물었다.
昔者諸侯事吾先君 皆如不逮 擧言群臣不信 諸侯皆有貳心[志]
석자제후사오선군 개여불체 거언군신불신 제후개유이심
옛날 제후들이 우리 진 문공을 섬긴 것에 비하면 모두 진나라 신하들이 신의를 지키지 않아 제후들도 배반할 뜻을 품는다고 합니다.
齊君恐不得禮 故不出 而使四子來 左右或沮之曰 君不出 必執吾使
제군공부득례 고불출 이사사자래 좌우혹저지왈 군불출 필집오사
제나라 지도자가 네사람을 보낸 건 대접받지 못할까 이며 신하들이 가지말라며 한 말이 ‘지도자가 가지않으면 우리 사신들이 잡힐 것이다’했습니다.
故高子及斂盂而逃 夫三子者曰 若絶君好 寧歸死焉
고고자급염우이도 부삼자자왈 약절군호 영귀사언
고로 고고가 염우에서 도망하니 남은 세사람은 지도자의 우호친선 관계를 깨느니 회맹에서 죽겠다 하였습니다.
爲是犯難而來 吾若善逆彼 以懷來者 吾又執之 以信齊沮 吾不旣過矣乎
위시범난이래 오약선역피 이회래자 오우집지 이신제저 오불기과의호
이리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오는 저 사람들은 우리가 잘 대접함이 옳은데 우리가 제나라 사람들의 방해하는 말들대로 사로잡은 꼴이니 이미 우리의 과오 아니겠습니까?
過而不改 而又久之 以成其悔 何利之有焉
과이불개 이우구지 이성기회 하리지유언
허물이란 고치기 힘들고 오래 걸리니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使反者得辭 而害來者 以懼諸侯 將焉用之
사반자득사 이해래자 이구제후 장언용지
되돌아간 사람에겐 변명거리를 주고 온 사람들을 괴롭히면 제후들로 두려워하게 만드니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晉人緩之 逸
진인완지 면
진나라 사람들이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經]秋 公至自會
추 공지자회
선공이 회맹에서 돌아왔다.
[傳]秋八月 晉師還
추팔월 진사환
가을 8월 진나라 군대가 돌아갔다.
[傳]范武子將老 召文子曰 燮乎 吾聞之 喜怒以類者鮮 易者實多
범무자장노 소문자왈 섭호 오문지 희노이류자선 역자실다
범무자(士會)가 늙어 직에서 물러서려 하면서 아들 문자를 불러 이야기하길 ‘섭아 내 듣기론 희노애락의 감정을 도리에 맞게 표하는자는 드물고 그 반대는 흔하다
詩曰 君子如怒 亂庶遄沮 君子如祉 亂庶遄已 君子之喜怒 以已亂也
시왈 군자여노 난서천저 군자여지 난서천이 군자지희노 이이난야
시경에 이르길 “지도자가 노하면 소란이 그치고 군자가 기뻐하면 소란이 멈춘다”고 한 말은 군자의 감정이 이미 혼란이라는 말이다.
弗已者 必益之 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 不然 余懼其益之也
불이자 필익지 극자기혹자욕이난어제호 불연 여구기익지야
그리 자중하지 못한 자는 반드시 가중시키는 법(喜怒가 公正하지 못하면 禍亂을 그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禍亂을 增加시킨다)이다 극자가 제나라의 소란을 더하고자 하는가? 아니라면 소란을 가중시킬까 두렵다.
余將老 使郤子逞其志 庶有豸乎 爾從二三子 唯敬 乃請老 郤獻子爲政
여장노 사극자정기지 서유치호 이종이삼자 유경 내청노 극헌자위정
내가 이제 늙어 은퇴하려는데 극자의 마음을 달래주면(豸)이 소란이 풀릴 것이니 대부들을 공경하여라 대부들을 따라 존중하길 바란다며 은퇴를 청하니 극헌자가 정사를 맡아보다.
[經]冬十有一月壬午 公弟叔肹卒
동십유일월임오 공제숙힐졸
[傳]冬 公弟叔肹卒 公母弟也
동 공제숙힐졸 공모제야
겨울 선공의 아우 힐이 죽으니 같은 배 형제이다.
凡大子之母弟 公在曰公子 不在曰弟 凡稱弟 皆母弟也
범대자지모제 공재왈공자 부재왈제 범칭제 개모제야
무릇 태자의 한 배에서 태어난 동생을 생존시엔 공자로 죽으면 동생으로 부른다. 고로 제라함은 한 어머니 형제를 말한다.
18년
[經]十有八年春 晉侯衛世子臧伐齊
십유팔년춘 진후위세자장벌제
18년 봄 진나라 지도자와 위나라 세자 장이 제나라를 토벌하였다.
[傳]十八年春 晉侯衛大子臧伐齊 至于陽穀 齊侯會晉侯盟于繒 以公子疆爲質于晉 晉師還 蔡朝南郭偃逃歸
십팔년춘 진후위세자장벌제 지우양곡 제후회진후맹우증 이공자강위질우진 진사환 채조남곽언도귀
18년 봄 진나라 제후와 위나라 세자 장이 제나라를 토벌하였는데 양곡까지 이르렀다. 제나라 제후가 진나라 제후와 증에서 동맹하기로 하고 공자(아들중 하나)를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니 진나라 군대가 돌아갔고 채조와 남곽언이 탈출하여 귀국하였다.
[經]公伐杞
공벌기
선공이 기나라를 토벌하였다.
[經]夏四月
하사월
[傳]夏 公使如楚乞師 欲以伐齊
하 공사여초걸사 욕이벌제
여름 4월 선공이 초나라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제나라 토벌을 위함이었다.
[經]秋七月 邾人戕鄫子于鄫
[傳]秋 邾人戕鄫子于鄫 凡自虐其君曰弑 自外曰戕
추 주인장증자우증 범자학기군왈살 자외왕장
가을 7월 주나라 사람들이 증나라 지도자(子爵직위=鄫子)를 증나라 땅에서 죽였다. 무릇 내부에서 지도자를 죽이면 시해요 외부인이 죽이면 장이라 한다.
[經]甲戌 楚子旅卒
[傳]楚莊王卒 楚師不出 旣而用晉師 楚於是乎有蜀之役
초장왕졸 초사불출 기이용진사 초어시호유촉지역
갑술일에 초나라 장왕이 죽어 병력을 내어주지 못하자 진나라 군대를 빌리게 되었다. 초나라는 당시 촉땅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經]公孫歸父如晉
[傳]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 有寵 欲去三桓 以張公室 與公謀 而聘于晉 欲以晉人去之
공손귀보이양중지입공야 유총 욕거삼환 이장공실 여공모 이빙우진 욕이진인거지
公孫(=王孫) 귀보는 양중이 선공을 세웠으므로 총애받았다. 삼환(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세 경(卿) 집안,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 세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집안의 시조는 모두 노 환공의 아들들로, 계손씨는 공자 우, 숙손씨는 공자 아, 맹손씨는 공자 경보의 자손이다.)세력을 내몰고 공실(=왕실)을 강화하려 선공과 상의하여 진나라 힘으로 3환을 내몰고자 해서다.
* 노 선공(魯 宣公)의 이름은 퇴(俀)이며, 문공(文公)의 서자(庶子)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襄仲:公子遂)이 문공의 적자 악(惡)과 시(視)를 죽여 즉위했다. 이때부터 노나라 공실은 점점 쇠락해지고 삼환(三桓)이 강해졌다. 노 성공(魯 成公)의 이름은 흑굉(黑肱)이다. 아버지 선공이 삼환(三桓)을 칠 계획을 세우다 죽어 뒤를 이었다. 계문자는 이를 원망하여 선공을 세운 양중의 아들로 선공의 총애를 받은 공손귀보(公孫歸父)를 추방했다. 노 양공(魯 襄公)의 이름은 오(午)로, 성공(成公)이 죽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經]冬十月壬戌 公薨于路寢
동시월임굴 공훙우로침 * 路寢: 제후 또는 임금의 정전
[傳]冬 公夢
동 공훙
겨울 선공이 돌아가시니
季文子言於朝曰 使我殺適立庶 以失大援者 仲也夫 臧宣叔怒曰 當其時不能治也 後之人何罪 子欲去之 許請去之 遂逐東門氏
계문자언어조왈 사아살적립서 이실대원자 중야부 장선숙노왈 당기시불능치야 후지인하죄 자욕거지 허청거지 수축동문씨
계문자가 조정에서 이르길 ‘우리로 적자를 죽이고 서자인 선공을 세워 대국의 원조를 얻지 못하게 한 것은 양중이다’하니 장선숙이 화내며 말하길 ‘그 당시엔 다루지 않았는데 후손이 뭔 죄란 말인가?하며 자네들이 처벌하기 원한다면 허가하겠다’하니 마침내 東門氏(襄仲의 族屬이 동문밖에 살았기 때문에)를 축출하였다.
[經]歸父還自晉 至笙 遂奔齊
子家還 及笙 壇帷 復命於介 旣復命 袒括髮 卽位哭 三踊而出 遂奔齊
자가환 급생 단유 복명어개 기복명 단괄발 즉위곡 삼용이출 수분제
자가(귀보)가 돌아와 생에 이르러 단을 쌓고 휘장을 둘러 介(요즘 말로 브로커나 중재자)에게 보고하고 웃옷을 내리고 머리를 묶고 선공을 위해 곡을하고 3번 뛰고 나와 제나라로 도망하였다.
書曰 歸父還自晉 善之也
서왈 귀보환자진 선지야
기록에 귀보가 진나라로부터 귀환한 것은 선한 일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