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韓世家 上
熊虎交爭之世 桓雄天王 尙未君臨 苗桓 乃九皇之一也. 在昔 已爲我桓族 遊牧農耕之所 而及神市開天以土爲治 一積而陰立 十鉅而陽作 无匱而衷生焉.
웅호교쟁지세 환웅천왕 상미군립 묘환 내구황지일야. 재석 이위아환족 유목농경지소 이급신시개천이토위치 일적이음립 십거이양작 무면이충생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의 무리가 서로 다투던 세상, 한웅천왕(桓雄天王)께서 아직 임금으로 임하시기 전에 묘족(苗族)과 환족(桓族)은 9황족(皇族=夷族)의 하나였다. 옛날에 이미 우리 환족(桓族)은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가축을 기르고, 밭 갈아 농사짓던 장소들이 있었는데, 신시(神市)라는 곳을 중심하여 나라를 세우고, 땅을 다스리기 시작하며, 하나가 조용히 일어서니 열(十: 단군을 9환에 합산하는 듯)번째로 커지니 막힘없이 완벽하게 이뤄진다.
鳳鳥 聚棲於白牙岡 仙人 來往於法首橋. 法首 仙人名也. 人文早已發達 五穀豊熟.
봉조 취서어백아강 선인 래왕어법수교. 법수 선인명야. 인문조이발달 오곡풍숙.
이에 봉황새가 백아강(白牙岡)에 모여 들어 서식(棲息)하였으며, 법수교(法首橋)에는 선인(仙人)이 왕래 하였다. 법수(法首)는 선인(仙人)의 이름이었다. 인간의 문화와 문물이 일찍이 발달하였고, 오곡(五穀)은 풍성하게 익어 편안하였다.
適以是時 紫府先生 造七回祭神之曆 進三皇內文於天陛 天王嘉之 使建三淸宮而居之 共工軒轅倉頡大撓之徒 皆來學焉.
적이시시 자부선생 조칠회제신지력 진삼황내문어천폐 천왕희지 사건삼청중이거지 공공헌원창 대요지도 개래학언.
마침 이때에 자부(紫府)선생이 7회제신(七回諸神)의 책력(柵曆)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왕(天王)폐하에게 받들어 올리니, 천왕(天王)께서 이를 가상히 여기고 삼청궁(三淸宮)을 지어 살게 하였더니,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頡), 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다 와서 배웠다.
於是 作柶戱 以演桓易 盖神誌赫德所記 天符之遺意也.
어시 작사희 이연환역 개신질혁덕소기 천부지유의야.
이때에 윷놀이를 하며 환역(桓易)을 실연하여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天府(하늘의 마음가짐)의 의도를 기록한 것이다.
昔者 桓雄天王 思天下之大 非一人所能理化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석자 환웅천왕 사천하지개 비일인소능리화 장풍백우사운사 이주곡주명주형주병주선악 범두인간삼백육십여사.
옛날에 한웅천왕께서 천하(天下)가 크고 크니, 한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교화(敎化)하고 다스릴 수 없으므로, 풍백(風伯)과 운사(雲師)와 우사(雨師)로 하여금 곡식과 운명과 형벌과 질병과 선악을 주관하게 하시어,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모두 주관하게 하셨다.
作曆 以三百六十五日五時四十八分四十六秒 爲一年也 此乃三神一體上尊之遺法也. 故 以三神立敎 乃作布念之標.
작력 이삼백육십오일오시사십팔분사십육초 위일년야 차내삼신일체상존지유법야. 고 이삼신립교 내작포념지표.
책력(柵曆)을 만들어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일년으로 삼았으니, 이는 바로 삼신일체(三神一體)이신 하늘님께서 남겨주신 법이다. 그러므로 이는 삼신(三神)으로서 인륜도덕의 가르침을 세우고, 이어 布念(푸념:하늘(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복을 기원하는 말이나 행위)의 기준을 지었다.
其文曰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自是蘇塗之立 到處可見 山像雄常 山頂皆有.’
기문왈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 자시소도지립 도처가현 산산웅상 산정개유.
그 글에 이르기를 ’하늘님은 정성된 마음 가운데 내려오시면 인간의 성품은 광명(=지혜)으로 통하니, 세상을 교화(敎化)하고 다스려서, 인간을 크게 도와 잘 살게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이 이념으로부터 소도(蘇塗)가 곳곳에 세워지니 어디서든 한웅의 모양(桓雄像)인 웅상(雄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四來之民 環聚墟落 四家同井 二十稅一 時和年豊 露積邱山 萬姓歡康之 作太白環舞之歌以傳.
사래지민 환취허락 사가동정 이십세일 시화년풍 노적구산 만성환강지 작태백환무지가이전.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은 둥그렇게 언덕에 모여 부락을 이루었으며, 사방의 집들이 한 우물을 사용하였으며, 세금은 소득의 20/1로 하니, 해마다 풍년이 들어, 언덕과 산에는 곡식이 쌓이고, 만백성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태백환무가(太白環舞歌)를 지어 전하였다.
繼有蚩尤氏 作造九治以採得鑄鐵作兵 又制飛石迫擊之機 天下 莫敢讐之. 時 軒丘不服 蚩尤 躬率往征之 大戰於涿鹿. 涿鹿 今山西大同府也.
계유치우씨 작조구치이태득주철작병 우재비석박격지기 천하 막감수지. 시 헌구불복 치우 궁솔왕정지 대전어탁록. 탁록 금산서대동부야.
이어서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있었는데, 아홉 곳에 야금소(冶金所)를 만들어 광석을 캐어 철을 녹여서 병기를 만들고, 또 비석박격기(飛石迫擊機)라는 병기를 만드니, 이에 천하는 감히 그를 원수삼는 자가 없었다. 이때에 헌구(軒丘)만이 굴복하지 않으니, 치우천왕이 몸소 정벌에 나아가 탁록(涿鹿)에서 크게 싸웠다. 탁록(涿鹿)은 지금 산서성(山西城)의 대동부(大同府)이다.
將戰 作涿鹿檄 乃召八十一宗黨大人. 先以頒示蚩尤形像 具命誓而告之 蚩尤天王曰 ‘爾軒丘 明聽朕誥! 日之有子 惟朕一人 爲萬世爲公之義 作人間洗心之誓. 爾軒丘 侮我三神一體之原理 怠棄三倫九誓之行. 三神 久厭其穢 命朕 一人 行三神之討 爾早已洗心改行 自性求子. 降在爾腦 若不順命 天人咸怒 其命之不常 爾無可懼乎哉.’
장전 작탁록격 내소팔십일종당대인. 선이반시치우형상 구명서이고지 치우천왕왈 ’이헌구 명청짐고 일지유자 유짐일인 위만세위공지의 작인간세심지서 이헌구 모아삼신일체원리 태기삼윤구서지행. 삼신 구염기예 명짐 일인행삼신지토 이조이세심개행 자성구자. 강재이뇌 약불순명 천인감노 기명지불상 이무가구호재.
전쟁을 하려고 탁록(涿鹿)을 칠 격문(檄文)을 짓고, 이에 81명의 종당(宗黨) 어른들을 소집하였다. 먼저 치우천왕의 형상을 그려 나누어 준 후, 목슴을 걸고 맹세하여 함께 싸울 것을 고(告)하니, 치우천왕이 격문(檄文)에서 이르기를, ‘너희들 헌구(軒丘)는 짐의 가르침을 분명히 들어라! 태양의 아들 오직 짐이 만세(萬世)의 공의(公義)를 위하니, 사람들이 마음을 씻고 맹세했다. 너희 헌구(軒丘)는 우리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를 모욕하고, 삼륜구서(三倫九誓)를 게을리하며 포기했다. 삼신(三神)은 오래도록 그 더러움에 염증을 느껴, 짐에게 명령하여 삼신(三神)의 토벌(討伐)을 하게 하였으니, 너희들이 일찍이 마음을 닦고, 행동을 고치고, 스스로 자기의 성품을 구하여라. 너희 머리 속에 이미 내려와 있음에도 순종치 않으니 하늘사람이 공분하고 있으니, 그런 命(삶의 방식)은 올바르지 않으니 너희들은 가히 두려움이 없겠느냐.’라고 하였다.
於是 軒丘 乃平服 天下 宗我焉.
어시 헌구 내평복 천하 종아언.
이에 헌구(軒丘)가 평정되어 복종하니, 천하(天下)가 우리를 우두머리로 여겼다.
時 有爲子隱於妙香山 其學 出於紫府先生也. 過見熊氏君 君請爲我陳道乎.
시 유위자은어묘향산 기학 출어자부선생야. 과견웅씨군 군청위아진도호.
때에 유위자(有爲子)가 묘향산에 은둔하고 있었는데, 그의 학문은 자부(紫府)선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유위자가 지나가다가 웅씨 왕을 만나자, 웅씨(熊氏)왕이 유위자(有爲子)에게 청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도(道)의 펼쳐주소서.하였다.
對曰 “道之大原 出乎三神也 道旣無對無稱 有對非道 有稱亦非道也. 道無常道而隨時 乃道之所貴也. 稱無常稱而安民 乃稱之所實也. 其無外之大 無內之小 道乃無所不含也.
대왈 도지대원 출호삼신야 도기무대무칭 유대비도 유칭역비도야. 도무상도이수시 내도지소귀야. 칭무상칭이안민 내칭지소실야 기무외지대 무내지소 도내무소불함야.
유위자(有爲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도(道)의 큰 근원은 삼신(三神)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도(道)란 상대도 없고 호칭도 없는 것이며, 상대가 있는 것은 도(道)가 아니고 호칭이 있는 것도 역시 도(道)가 아니다. 도(道)란, 무상하지 않으니 때를 따라 변하는 것이니, 이에 도(道)의 귀(貴)함이 있는 것입니다. 호칭도 영원불변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편안하고 이름을 가지면 실속이 생깁니다. 밖으로 위대하지 않고 냐실이 적지 않으니 도가 품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겁니다.
天之有機 見於吾心之機 地之有象 見於吾身之象, 物之有宰 見於吾氣之宰也 乃執一而含三 會三而歸一也.
천지유기 견어오심지기 지지유상 견어오신지상 물지유재 견어오기시재야 내집일이함삼 회사이귀일야.
하늘에는 기틀이 있음 보고, 내 마음의 기틀을 깨달아야 하고, 땅에는 모양이 있둣, 내 육신의 모양을 보면, 만물을 주재를 생각하고 자기 기운을 통제하라. 이중 하나라도 붙들고 3의 이치를 알고 그 셋을 하나로 귀결하라.
一神所降者 是物理也 乃天一生水之道也. 性通光明者 是生理也 乃地二生火之道也. 在世理化者 是心理也 乃人三生木之道也. 盖大始 三神造三界 水以象天 火以象地 木以象人.
일신소강자 시물리야 내천일생수지도야. 성통광명자 시생리야 내지이생화지도야. 재세이화자 시심리야 내인삼생목지도야. 개대시 삼신조삼계 수이상천 화이상지 목이상인.
하나님이 강림하심 그게 세상 이치로 즉, 하늘이란 生水之道(물흐르듯 흐르는 도리)요. 성정이 지혜와 통함은 창조의 이치로 땅이 불붇듯 번성하는 生火之道요. 세상에서 사람들을 변화시켜주는 것은 마음의 법으로 사람이 꽃피우고 열매맺는 生木之道다. 모두 태초에 3신이 3계를 지으신 이치니 흐르는 물의 이치가 하늘이요. 불꽃처럼 번성하는 불의 이치는 땅이요 나무처럼 꽃피우라는 이치는 사람의 이치이다.
夫木者 量地而出乎天 亦如人立地而出能代天也 君曰 ‘善哉 言乎.’
부목자 양지이출호천 역여인립지이출능대천야 군왈 선재 언호.
대저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하였으니, 역시 사람도 땅을 딪고 서서 능히 하늘의 이치를 대신하는 것입니다.”고 하니, 왕께서, ‘그 말이 옳다.’ 하였다.
檀君王儉 旣定天下 分三韓而管境 乃封熊伯多爲馬韓 都於達支國 亦名曰白牙岡也. 登馬韓山祭天 天王下詔曰 ‘人視鏡則姸醜自形 民視君則治亂見政 視鏡須先視形 視君須先視政.’
단군왕검 기정천하 분삼한이관경 내봉웅백다위마한 도어달지국 역명왈백아강야. 등마한산제천 천왕하조왈 ‘인시경즉연추자형 민시군즉치란경정 시경수선시형 시군수선시정.’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이미 천하를 나누어 삼한(三韓)으로 관할하는 경계를 정하고, 이에 웅백다(熊伯多)를 임명한 곳을 마한(馬韓)이라 하고, 달지국(達支國)에 도읍을 정하게 하니, 역시 이름을 백아강(白牙岡)이라고 했다. 마한산에 올라가 하늘님께 제사를 올리고, 황제께서 조서를 내려 가로되, ‘사람이 거울을 보면 그 곱고 미운 것이 자연히 거울에 나타나듯이, 백성이 임금을 보면 정치(政治)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볼 수 있다. 거울을 보면 마땅히 먼저 모습을 보고, 임금을 보면 모름지기 먼저 정치(政治)를 보게 되느니라.’ 하니,
馬韓 上箚曰 ‘聖哉 言乎 聖主 能從衆議 故道大 暗君 好用獨善 故道小 可無內省而不怠乎?’
마한 상차왈 ‘성재 언호. 성주 능종중의 고대도 암군호용독선 고도소 가무내성이불태호?’
마한이 글을 올려 이르기를,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성군은 능히 대중의 생각을 따르니, 그 도량(度量)은 넓고, 어리석은 임금은 독선을 즐겨 쓰는 고로, 그 도량(度量)이 좁으니 스스로를 살피는 것과 태만하지 않음(태만하다)이 없지 않습니까?’ 하였다.
檀君王儉五十一年 天王 命雲師倍達臣 築三郞城于穴口 設祭天壇于摩璃山. 發江南民丁八千人以助役.
단군왕검오십일년 천왕 명운사배달신 축삼랑성우혈구 설제천단우마리산. 발강남민정팔천인이조역.
단군왕검 51년 무오(戊午:BC 2,283)년에 황제께서는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령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祭天壇)을 세우게 하였다. 강남(江南)의 장정 8,000명을 선발하여 일을 돕게 하였다.
* 여기 강남사람은 누구???
辛酉三月 天王 親幸摩璃山祭天. 熊伯多薨 在位五十五年 子盧德利立. 盧德利薨 子弗如來立. 是檀君扶婁十二年壬子 秋十月 以命頒七回曆于民 明年春三月 始敎民種柳于白牙岡 作都亭.
신유삼월 천왕 친행마리산제천. 웅백다훙 재위오십오년 자노덕리입. 노덕리훙 자불여래입. 시단군부루십이년임자 추시월 이명반칠회력우민 명년춘삼월 시교민종유어백아강 작도정.
신유(辛酉)년 3월 황제께서 친히 마리산으로 행차하여 하늘님께 제사를 지냈다. 웅백다(熊伯多)가 재위 55년에 죽으니, 아들 노덕리(盧德利)가 즉위하였다. 그후 노덕리(盧德利)가 죽으니, 그의 아들 불여래(弗如來)가 즉위하였다. 이때가 단군 부루(扶婁) 12년 임자(壬子:BC 2,229)년 가을 10월 이었다. 이에 황제께서 명령하여 백성들에게 7회책력(七回柵曆)을 배포 하게 하였으며, 이듬해 봄 삼월에 비로서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백아강에 심고, 도정(都亭)을 짓게 하였다.
丙辰 刻立三一神誥碑於南山. 庚申 作稻田 己亥 立蘇塗 施三倫九誓之訓 治化大行.
병진 각입삼일신고비어남산. 경신 작도전 기해 입소도 시삼륜구서지훈 치화대행.
병진(丙辰:BC 2,225)년에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새긴 비석을 남산에 세우게 하였다. 경신(庚申:BC 2,221)년에는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게 하였으며, 기해(己亥:BC 2,182)년에는 소도(蘇塗)를 세워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베푸니, 치화(治化)를 크게 일으켰다.
檀君嘉勒三年 弗如來薨 子杜羅門立. 乙巳九月 天王勅 曰 ‘天下大本 在於吾心之中一也 人失中一 則事無成就 物失中一 則體乃傾覆 君心惟危 衆心惟微.
단군가륵삼년 여불래훙 자두라문입. 을사구월 천왕칙 왈 ‘천하대본 재어오심지중일야 인실중이 즉사무성취 물실중일 즉체내경복 군심유위 중심유미.
단군 가륵 3년 신축(辛丑)년에 불여래(弗如來)가 죽고, 아들 두라문(杜羅門)이 즉위했다. 단군 가륵 7년 을사(乙巳:BC 2,176)년 9월에 천왕(두라문)께서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천하의 큰 근본은 내 마음 가운데 하나로 있다. 사람이 마음의 중심을 잃으면 일은 성취되지 않는다. 물체가 중심을 잃으면 형체가 기울어지거나 넘어진다. 임금의 마음은 오직 위기만 염려하며, 대중의 마음은 오직 어두울 뿐이다.
全人統均 立中勿失然後 乃定于一也. 惟 中惟一之道 爲父當慈 爲子當孝 爲君當義 爲臣當忠 爲夫婦當相敬 爲兄弟當相愛 老少當有序 朋友當有信 飭身恭儉 修學鍊業 啓智發能 弘益相勉 成己自由 開物平等 以天下自任. 當尊國統 嚴守憲法 各盡其職 獎勤保産 於其國家有事之時 捨身全義 冒險勇進 以扶萬世无疆之運祚也. 是朕 與爾國人 切切佩服而勿替者也 庶幾一體完實之至意焉 其欽哉.’
전인통균 입중물실연후 내정우일야. 유중유일지도 위부당자 위자당효 위군당의 위신당충 위부부당상경 위형재당상애 노소당유서 붕우당유신 칙신공검 수학연업 계지발능 홍익상면 성기자유 개물평등 이천하자임 당존국통 엄수헌법 각진기직 장근보산 어기국가유사지시 사신전의 모험용진 이부만세무강지운조야. 시짐 여이국인 절절패복이물체자야. 서기일체완실지지의언 기흠재.
온전히 사람들을 통일하고 고르게 함은 마음 가운데 일심을 세워 잃지 않은 연후 하나로 정하는 것이다. 가운데 하나로 정해지면 아비는 당연히 자애로워지고 자식은 당연히 효도하면 임금을 올바르고 신하는 충성하며 부부는 서로 존중하며 형제는 서로 사랑하며 친구간에 신의가 있고 몸을 다스려 검소하며 공부에 열심하여 학업을 이루며 지혜를 계몽하여 쓰일수 있게하며 서로 돕는데 힘쓰며 스스로를 자유하게하며 만물을 평등하게 하니 이것이 천하의 스스로 할 임무이다. 국가의 전통을 존중하고, 헌법을 엄격히 지키고, 각기 그 직분에 힘을 다하고, 산업을 보호하고 부지런함을 장려하며, 나라에 일이 생길 때는 몸을 바쳐 의(義)를 보전하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나아가니, 이에 만세(萬世)토록 끝이 없는 복(福)된 운(運)이 도울 것이다. 이에 짐은 너희 국인(國人)들과 더불어, 절절히 기억하도록 몸에 지니고 이를 바꾸거나 폐지하지 않을 것이니, 모든 기틀은 일체(一體)가 되어 완성된 결실을 얻는 것이 지극한 생각이니 마음에 새겨 존중하라.’
杜羅門薨 子乙弗利立 乙弗利薨 子近于支立 乃檀君烏斯丘乙酉也. 庚寅 遣民丁三十人 造船舶于薩水 乃辰韓南海岸也.
두라문훙 자을불리입 을불리훙 자근우지입 내단군오사구을유야. 경인 견민정삼십인 조선박우살수 내진한남해안야.
두라문(杜羅門)이 죽었다. 아들 을불리(乙弗利)가 즉위하였다. 을불리(乙弗利)가 죽어니, 아들 근우지(近于支)가 즉위하였다. 이 때가 4세 단군 오사구(烏斯丘) 2년 을유(乙酉:BC 2136)년이었다. 단군 오사구 7년 경인(庚寅)년에 백성중에 장정 30인을 파견하여 살수(薩水)에서 배를 만들게 하였다. 곧 진한(辰韓)의 남쪽 강안이었다.
壬子 韓以命入常春 助祭三神于九月山 十月 起離宮於牧丹峰中麓 爲天王巡駐之所.
임자 한이명입상춘 조제삼신우구월산 시월 기이궁어목단봉중록 위천완순주지소.
단군 오사구 29년 임자(壬子)년에 마한(馬韓)은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상춘(常春)에 들어가 구월산의 삼신제(三神祭)를 돕고, 10월에 별궁을 모란봉의 중턱에 세워 황제가 순행(巡行)하다가 머무르는 장소로 삼았다.
每當三月 命馬韓 閱武佃獵 十六日 祭天麒麟窟 賜皂衣加冠之禮 仍歌舞百戱而罷.
매당삼월 명마한 열무전렵 십육일 제천기린굴 사위의가관지례 잉가무백희이파.
매년 3월에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 마한(馬韓)은 16일간 무사(武士)를 뽑고, 사냥하였으며, 기린굴(麒麟窟)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의(皂衣: 검은 옷)를 내려주시고, 관(冠)을 쓰는 예식을 행하였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한 후에 끝마치었다.
甲寅 近于支薨 子乙于支立 乙于支薨 弟弓戶立 弓戶薨 無嗣 杜羅門之弟杜羅時曾孫莫延 以命入承馬韓.
갑인 근우지훙 자을우지입 을우지훙 제궁호입 굴호훙 무사 두라문지제두라시증손막연 이명입승마한.
갑인(甲寅:BC 2,107)년에 근우지(近于支)가 죽자, 아들 을우지(乙于支)가 즉위하였다. 을우지(乙于支)가 죽으니, 동생 궁호(弓戶)가 즉위하였다. 궁호(弓戶)가 죽었는데 후사(後嗣)가 없으니, 두라문(杜羅門)의 동생인 두라시(杜羅時)의 증손 막연(莫延)이 명령을 받아 마한(馬韓)의 왕위를 계 승하였다.
* 馬韓은 지명이라기 보다 韓=汗으로 소위 우현왕 좌현왕 급의 帝다음 天王의 직급 또는 영지로 봐야 옳다. 단군은 王儉=大監임을 기억하고....
戊申 檀君于西翰 巡駐白牙岡 命劃田授土 四家作區 區出一乘 分守鄕衛.
무신 단군우서한 순주백아강 명획전수토 사가작구 구출일승 분수향위.
무신년(戊申:BC 1,993) 西翰의 단군이 백아강(白牙岡)에 순행하며 명령을 내려, 밭을 나누어 주되, 땅을 네 가구씩 구역을 지어 주고, 그 구역에서 생산되는 소득에서 1승을 내어 지역 방어에 썼다.
檀君魯乙壬寅 莫延薨 弟阿火立 時 檀君道奚 方銳意開化 平等爲治 以命建大始殿于大聖山 作大橋于大同江 三忽爲佺 設扃堂 定七回祭神之儀 講三倫九誓之訓. 桓道文明之盛 聞于域外 夏主厪 遣使獻方物.
단군노을임인 막련훙 제아화입 시 단군도해 방예의개화 평등이치 이명건대시전우대성산 작대교우대동강 삼물위전 설경당 정칠회제신지의 강삼륜구서지훈. 환도문명지성 문우역외 하주미 견사헌방물.
단군 노을(魯乙) 12년 임인(壬寅:BC 1939)년에 막연(莫延)이 죽으니, 동생 아화(阿火)가 즉위하였다. 단군 도해(道奚)가 예민한 뜻을 가지고 교화를 열고, 다스림을 평등하게 하였으며, 이에 대성산(大聖山)에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고, 대동강(大同江)에 큰 다리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으며, 3물(三勿: 세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신령한 법(佺)으로 삼아 경당(扃堂)을 세우고, 7일간 하늘님(天神)께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정하였으며,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강론(講論)하였다. 밝은 도(道)와 문명의 번성함이 먼 외국에 까지 소문이 퍼지고, 하(夏)나라 주근(主厪: 지도자 근)이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丁巳阿火薨 子沙里立. 檀君阿漢乙卯 沙里薨. 弟阿里立. 檀君古弗乙酉 阿里薨 子曷智立. 曷智薨. 檀君代音戊申 子乙阿立. 己酉 耽牟羅人 獻馬三十匹.
정사아화훙 자사리입 단군아한을묘 사리훙 제아리입 단군고불을유 아리훙 자갈지입 갈지훙 단군대음무술 자을아입 을유 탐모라인 헌마삼십필.
정사(丁巳:BC 1,924)년에 아화(阿火)가 죽으니, 아들 사리(沙里)가 즉위하였다. 단군 아한(阿漢) 29년 을묘(乙卯:BC 1,806)년에 사리(沙里)가 죽었다. 동생 아리(阿里)가 즉위하였다. 단군 고불(古弗) 6년 을유(乙酉:BC 1,716)년에 아리(阿里)가 죽으니, 아들 갈지(曷智)가 즉위하였다. 갈지(曷智)가 죽었다. 단군 대음(代音) 29년 무신(戊申:BC 1,633)년에 아들 을아 (乙阿)가 즉위하였다. 기유(己酉:BC 1,596)년에 탐모라(耽牟羅)인이 말 30필을 바쳤다.
乙阿薨 檀君余乙辛未 子豆莫亥立. 壬申三月十六日 親幸摩璃山 祭三神于塹城壇 殷主外壬 遣使助祭. 豆莫奚薨 戊寅 子慈烏漱立 薨 己丑 子瀆盧立 瀆盧薨 檀君固忽庚午 子阿婁立 阿婁薨 戊午 弟阿羅斯立. 是歲 高登 叛據開城 抗命天王. 馬韓 方擧兵討之 到紅石嶺界 聞天王許高登 爲右賢王 乃止.
을아훙 단군여을신미 자두막해립. 임신삼월십육일 친행마리산 제삼신우참성단 은주외임 견사조제. 두막해훙 무인 자자오수립 훙 을축자독로입 독로훙 단군고물경오 자아루입 아루훙 무오 제아라사입. 시세 고등 반거개성 항명천왕. 마한 방거병토지 도홍석령계 문천왕허고등 위우현왕 내지.
을아(乙阿)가 죽고, 단군 여을(余乙) 3년 신미(辛未:BC 1,550)년에 아들 두막해(豆莫奚)가 즉위하였다. 임신(壬申)년 3월 16일 친히 마리산(摩璃山)에 행차하여 참성단에서 삼신(三神)께 제사를 올리니, 하(夏)나라의 외임(外壬)왕이 사신을 파견해 제사를 도왔다. 두막해(豆莫奚)가 죽으니, 무인년 자오수가 위에 오르고 죽으니 기축(己丑:BC 1,496)년에 아들 독로(瀆盧)가 즉위하였다. 독로(瀆盧)가 죽었다. 단군 고홀(固忽) 10년 경오(庚午:BC 1,371)년에 아들 아루(阿婁)가 즉위하였다. 아루(阿婁)가 죽고, 동생 아라사(阿羅斯)가 무오(戊午)년에 즉위하였다. 이 해에 고등(高登)이 개성(開城)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의 명령에 항거 하였다. 마한(馬韓)이 사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토벌을 하려고 홍석령(紅石嶺)에 이르렀을 때 황제께서 고등(高登)을 우현왕(右賢王)으로 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쳤다.
乙未 天王欲讓禪于海城褥薩徐于餘 馬韓 諫不可而不允 及索弗婁之立 而馬韓 整師躬率 往戰于海城 戰敗不還.
을미 천왕욕양선우해성욕살서우여 마한 간불가이불윤 급색불루지입 이마한 정사궁솔 왕전우해성 전패불환.
을미(乙未:BC 1,286)년에 황제께서 해성(海城)의 욕살(褥薩) 서우여(徐于餘)에게 제위(帝位)를 넘기려고 하므로, 마한(馬韓)은 옳지 않음을 바로 말씀드렸으나 허락하지 않고, 마침내 색불루(索弗婁)가 황제가 되자, 이에 마한(馬韓)은 군사를 정비하여 몸소 이끌고 전쟁에 나섰으나 해성(海城)전투에서 패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 여기서 소위 호칭의 문제....... 천왕은 마한을 의미하거나 환웅을 의미한다. 단군은 왕검으로 대감호칭이고.....
馬韓世家 下
檀君索弗婁 承祖父功 手握重兵 辰韓自潰 二韓亦未一勝 而敗滅前帝. 使人傳玉冊國寶以讓 新帝 相都於白岳山 諸褥薩執不可黎元興蓋天齡等 奉詔諭之 於是 諸褥薩畢服.
단군색불루 승조부공 구악중병 진한자궤 이한역미일승 이패멸전제. 사인전옥책국보이양 신제 상도어백악산 제욕살집불가여원흥개천영등 봉조유지 어시 제욕살필복.
우현왕 색불루(索弗婁)가 아버지 고등(高登)의 공(功)을 이어 받아 많은 병사를 장악하고 있어, 진한(辰韓)은 스스로 자멸하고, 마한, 번한도 역시 이길수 없어 패하여 멸망되었다. 이에 앞서 단군 소태(蘇台)는 사람을 시켜 색불루(索弗婁)에게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새로 즉위한 황제가 상의하여 백악산 (白岳山)에 도읍을 정하니, 모든 욕살(褥薩)들이 불가함을 고집하므로,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등이 조서(詔書)를 받들고 깨우쳐 설득하니, 비로서 욕살(褥薩)들이 마침내 굴복하였다.
丙申元年正月 遂卽位于鹿山 是爲白岳山阿斯達也. 三月下詔 曰 ‘邇者 阿斯達 使人傳玉冊國寶以讓. 前帝今雖襲號以尊 而其海內山川 旣歸名帳. 祭天之禮 當在國典 不可濫也. 必須徵古實 以達誠敬者. 今當祭迎 前往擇齋 審掃神域 潔備牲幣 用答三神.’
병인원년정월 수즉위우록산 시위백악산아사달야. 삼월하조 왈 ‘이자 아사달 사인전옥책국보이양 전제금수습호이존 이기해내산천 기귀명장. 제천지예 당재국전 불가남야. 필수징고실 이달성경자. 금당제영 전왕택재 심소신역 결비생폐 용답삼신.
단군 색불루(索弗婁) 원년 병신(丙申:BC 1,285)년 정월에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니, 이곳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이라고 한다. 3월에 조서(詔書)를 내려 이르기를, ’이곳 아사달에서 전 황제께서 사람을 보내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제위(帝位)를 물려주었다. 선제께서 지금에서야 비록 존귀한 호(號)를 주시어 나라 안의 산천(山川)중에 귀히되었으나 이미 그 이름이 장부(帳簿)에 올라잇었던 것이다. 제천(祭天)하는 예의(禮儀)는 지금도 나라의 법이고, 규정이니,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드시 전해오는 옛 사실들을 수행하고, 정성을 다하여 공경해야 한다. 이제 마땅히 제사(祭祀)에 임하자면, 먼저 제(祭)를 지낼 장소를 택하여, 신성하게 지역을 살피어 청소하고, 희생(犧牲)을 깨끗이 정돈하며, 페백(幣帛)으로 사용하여 삼신(三神)에게 보답하여야 한다.’
於是 帝擇齋七日 授香祝于黎元興. 至十六日早朝 敬行祀事于三韓大白頭山天壇. 帝親祭于白岳山阿斯達.
어시 제택재칠일 수향축우여원흥. 지십육일조조 경향서서우삼한대백두산천단. 제친제우백악산아사달.
이에 황제께서 재계(齋戒)할 날자를 택하여 7일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향(香)과 축문(祝文)을 여원흥(黎元興)에게 내려 주었다. 16일 이른 아침에 경건하게 삼한(三韓)의 큰 산(山)인 백두산(白頭山)의 천단(天壇)에서 제사(祭祀)를 행하게 하였다. 황제는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서 친히 제사(祭祀)를 지냈다.
其白頭山誓告之文 曰 ‘朕小子檀君索弗婁 拜手稽首. 自天帝子 之修我以及民 必自祭天以 敬皇上. 受三神明命 普恩大德 旣與三韓五萬里之土境 共享弘益人間.
기백두산서고지문 왈 ‘짐소자단군색불루 배수돈수. 자천제자 지수아이급민 필자제천이경 황상. 수삼신명명 보은대덕 기여삼한오만리지토경 공향홍익인간.
그 백두산의 서고문(誓告文)에 이르기를, 「짐 소자 단군 색불루(索弗婁)는 손을 모아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옵니다. 하늘님의 아들께서 나와 백성들에 이르기 까지 가르치신 대로 스스로 제천의식을 올려 황상을 공경하겠습니다. 삼신이 밝히 보이신 명으로 삼한 5만리 땅에 내리신 크신 덕과 은혜를 함께 누리며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습니다.
故 遣馬韓黎元興 致祭于三神一體上帝之壇. 神其昭昭 體物無遺 潔齊誠供 降歆黙佑. 必能賁飾 新帝之建極世保三韓千萬年 无疆之祚業. 年穀豊熟 國富民殷 庶昭我聖帝 空我存物之至念.’
고견마한여원흥 치제우삼신일체성제지단. 신기소소 체물무유 결제성공 강흠묵우 필능비식 신제지건극세보삼한천만년 무강지조업. 연곡풍숙 국부민은 서소아성제 공아존물지지념.’
그러므로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을 보내어 삼신일체(三神一體)이신 하늘님의 제단에 지극한 제사를 올리게 하겠습니다. 하늘님의 그 밝고도 밝음에 온전히 몰입하여(體物無遺) 설결하게 정성을 다해 드릴 것이니 내려오셔서 흠향하시고 도우소서. 반드시 온 힘을 기울여 새 황제가 삼한 만년에 최고가 되도록 한 없이 왕업에 보탬(賁飾)이 되겠습니다. 해마다 풍년이 되어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들은 편안하게 고루 우리 성제를 비추어]도록 나를 비워 만물이 잘 존재하게 함을 염두에 두겠습니다.’
五月 改制三韓 爲三朝鮮. 朝鮮 謂管境也. 眞朝鮮 天王自爲 而地則仍舊辰韓也.
오월 개제삼한 위삼조선 조선 위관경야 진조선 천왕자위 이지즉잉구진한야.
5월에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이라고 하였다. 조선(朝鮮)이란 관경(管境)을 말한다. 진조선(眞朝鮮)은 황제가 몸소 다스리니 곧 옛날의 진한(辰韓)땅과 같았다.
* 조선의 원래 뜻은 관경이다.
政由天王 三韓 皆一統就令也. 命黎元興爲馬韓 治莫朝鮮 徐于餘爲番韓 治番朝鮮.
정유천왕 삼한 개일통취영야. 명여원흥위마한 치막조선 서유여위번한 치번조선.
정치는 천왕=환웅에게서 나오니 삼한(三韓)이 모두 하나같이 통일된 명령을 따랐다. 여원흥(黎元興)을 마한(馬韓)으로 삼아 막조선(莫朝鮮)을 통치하게 하고, 서우여(徐于餘)를 번한(番韓)으로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통치하게 하였다.
總之名 曰檀君管境 是則辰韓 史稱檀君朝鮮 是也. 元興 旣受大命 鎭守大同江 亦稱王儉城.
총지명 왈단군관경 시즉진한 사칭단군조선 시야. 원흥 기수대명 진수대동강 역칭왕검성.
이를 통틀어 이름 하여 단군관경(檀君管境)이라 하였다. 이것이 곧 진한(辰韓)으로, 역사에서 칭하기를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 하였다. 여원흥(黎元興)이 이미 대명을 받고 대동강을 진압하고, 역시 왕검성(王儉城)이라 칭하였다.
天王 亦以每年仲春 必巡駐馬韓 勤民以政 於是 藉供厚斂之弊 遂絶.
천왕 역이매년중춘 필순주마한 근민이정 어시 작공후렴이폐 수절.
황제도 역시 봄에는 반드시 막조선(莫朝鮮)에 순행하여 머물면서 백성을 근면하도록 다스렸다. 이에 국인(國人)들이 어떤 일을 빙자하여 물건이나 돈을 제공받거나, 억울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의 폐단이 마침내 없어졌다.
先是 有詔 曰 ‘惟朕一人之養 煩民以斂 是乃無政也 無政而君何用哉?’ 嚴命罷之.
선시 유조 왈 유짐일인지양 번민이렴 시내무정야 무정이군하용재 엄명파지.
이보다 앞서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오직 짐 한 사람을 공양(供養)하기 위하여, 백성을 번거롭게 하여 세금 등을 거두어들인다면, 이는 곧 다스림이 아닌 것이다. 다스림인 정치가 없고서야 지도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시고는 엄하게 명령하여 이를 철폐하였다.
戊子 馬韓 承命入京師 諫以寧古塔遷都爲不可 從之 元興薨 己丑 子阿實立. 阿實薨 弟阿闍立.
무자 마한 승명입경사 간이영고탑천도위불가 종지. 원흥훙 을축 자아실립. 아실훙 제아도입.
무자(단기 1101, BC 1233)년 마한 원흥이 명을 받고 수도에 들어와 도읍을 영고탑에서 천도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간하니 이에 따르셨다. 여원흥(20세)이 돌아가시고 기축(단기 1102, BC 1232)년에 아들 아실이 즉위하였다. 아실이 돌아가시니, 동생 아도가 즉위하였다.
己卯殷滅. 後三年辛巳 子胥餘 避居太行山西北地 莫朝鮮聞之 巡審諸州郡 閱兵而還.
기묘은멸. 후삼년신가 자서여 치거태행산서북지 막조선문지 순신제주군 열병이환.
기묘(단기 1212, BC 1122)년에는 은나라가 망했다. 3년 뒤의 신사(단기 1214, BC 1120)년 남은 자손 친척(子胥餘)들이 태행산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산다는 소식을 들은 막조선 왕이 모든 주와 군을 순행하여 살피고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왔다.
阿闍薨 庚戌 子阿火只立. 阿火只薨 丙戌 弟阿斯智立. 阿斯智薨 檀君摩休 丁亥 兄之子阿里遜立. 阿里遜薨 子所伊立. 所伊薨 丁亥 子斯虞立.
아도훙 경술 자아화지입 아화지훙 병술 제아사지입. 아사지훙 단군마휴 정해 영지자아리손입. 아리손훙 자소이입. 소이훙 정해 자사우입.
아도(22세)가 돌아가시자 경술(단기 1243, BC 1091)년에 아들 아화지가 즉위하였다. 아화지가 돌아가시자 병술(단기 1279, BC 1055)년에 동생 아사지가 즉위하였다. 아사지가 돌아가시자 단군 마휴의 정해(단기 1400, BC 934)년에 형의 아들 아리손(아화지의 아들)이 즉위하였다. 아리손이 돌아가시니 아들 소이가 즉위하였다. 소이가 돌아가니 정해(단기 1580, BC 754)년에 아들 사우(27세)가 즉위했다.
戊子 周主宜臼 遣使賀正 斯虞薨 甲辰 子弓忽立 甲寅 命陜野侯 率戰船五百艘 往討海島 定倭人之叛 .
무자 주주의구 견사하정 사우훙 갑진 자궁홀입 갑인 명협야후 솔전선오백수 왕토해도 정왜인지반.
무자(단기 1581, BC 753)년에 주나라 왕 의구(주 13세 평왕, BC 771~720)가 사신을 보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사우가 죽으니 갑진(단기 1657, BC 677)년에 아들 궁홀이 즉위하셨다. 갑인(단기 1667, BC 667)년에 협야후(陜野侯)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이끌고 가서 해도(海島)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
弓忽薨 子東杞立. 東杞薨 檀君多勿癸酉 子多都立. 多都薨 壬辰 子斯羅立. 斯羅薨 子迦葉羅立.
궁홀훙 자동기입. 동기훙 단군다물정유 자다도입. 다도훙 임진 자사라입. 사라훙 가가섭라입.
궁홀(28세)이 돌아가시니 아들 동기가 즉위하였다. 동기가 돌아가시자 다물단군 계유(단기 1746, BC 588)년에 아들 다도가 즉위하였다. 다도가 돌아가시자 임진(단기 1825, BC 509)년에 아들 사라가 즉위하였다. 사라가 돌아가시고 아들 가섭라(32세)가 즉위하였다.
迦葉羅薨 甲寅 子加利立. 乙卯 隆安獵戶數萬叛. 官兵 每戰不利 賊遂迫都城甚急 加利亦出戰 中流矢而薨.
가섭라훙 갑인 자가리입. 을묘 융안렵호수만반. 관병 매전불리 적수박도성심급 가리역출전 중유시이훙.
가섭라가 돌아가시고 갑인(단기 1907, BC 427)년에 아들 가리가 즉위하였다. 을묘(단기 1908, BC 426)년에 융안의 사냥꾼 수 만이 모반을 일으켰다. 관병이 싸울 때마다 패하여 적이 마침내 도성까지 쳐들어와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가리가 출전하였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丙辰 上將丘勿 遂斬獵戶頭目宇和冲 移都藏唐京. 先以加利之孫典奈 入承莫朝鮮 自是國政益衰.
병진 상장구물 수참렵호두목우화충 이도장당경. 선이가리지손전내 입승막조선 자시국정익쇠,
병진(단기 1909, BC 425)년에 상장 구물(후에 44세 단군)이 마침내 사냥꾼들의 두목 우화충을 죽이고 도성을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보다 먼저 가리의 손자 전내가 막조선을 계승하였는데 이때부터 국정이 날로 쇠잔해졌다.
典奈薨 子進乙禮立. 進乙禮薨 乙卯 子孟男立. 戊戌 須臾人箕詡 兵入番韓以據 自稱番朝鮮王. 燕遣使 與我共伐之 莫朝鮮 不從.
전내훙 자진을례입. 진을례훙 을묘 자맹남입. 무술 수유인기루 병입번한이고 자칭번조선왕 연견사 여아공벌지 막조선 불종.
전내가 돌아가시고 아들 진을례가 즉위하였다. 진을례가 돌아가시니 을묘(단기 1968, BC 366)년에 아들 맹남(36세 왕)이 즉위하였다. 무술(단기 2011, BC 323)년에 수유의 사람 기후(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스스로 번조선 왕이라 칭하였다.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우리와 함께 기후를 치자고 했으나 막조선은 따르지 않았다.
癸亥 檀君高烈加 遂棄位入阿斯達 眞朝鮮與五加從政 終未復而終焉.
계햐 단군고열가 수기입입아사달 진조선여오가종정 종미복이종언.
계해(단기 2096, BC 238)년 고열가단군께서 마침내 제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은둔하셨다. 진조선은 5가가 공동으로 집행하는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다가 끝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고 종말을 맞았다.
공화정에 대한 기록이 중국 측에도 남아있으니 주나라 厲王 때 일로 폭군 여왕을 彘라는 곳으로 도망하자 주공의 후손 정공과 목공에 의해 14년 다스려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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