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遺事

卷第五 感通 第七 - 仙桃聖母 隨喜佛事

卷第五 感通 第七

 

仙桃聖母 隨喜佛事

선도성모는 불사를 기뻐한다.

 

眞平王朝 有比丘尼 名智惠 多賢行. 住安興寺 擬新修佛殿而力未也. 夢一女仙 風儀婥約 珠翠飾鬟 來慰曰 我是仙桃山神母也 喜汝欲修佛殿 願施金十斤以助之. 宜取金於予座下 粧點主尊三像 壁上繪五十三佛 六類聖衆 及諸天神 五岳神君[羅時五岳 謂東吐含山 南智異山 西雞龍 北太伯 中父岳 亦云公山也] 每春秋二季之十日 叢會善南善女 廣爲一切含靈 設占察法會 以爲恒規.”[本朝屈弗池龍 託夢於帝 請於靈鷲山 長開藥師道場 平海途 其事亦同].

진평왕조 유비구니 명지혜 다현행. 주안흥사 의신수불전이역미야. 몽일여선 풍의작약 주취식환 래위왈 아시선도산신모야 희여욕수불전 원시금십근이조지. 의취금어여좌하 장점주존삼상벽상회오십삼불 육류성중 급제천신 오악신군[라시오악 위동토함산 남지리산 서계룡 북태백중부악 역운공산야] 매춘추이계지십일 총회선남선녀 광위일체함령 설점찰법회 이위항규[본조굴불지룡 탁몽어제 청어영취산 장개악사도장 *평해도 기사역동.

 

진평왕(眞平王) 때에 지혜(智惠)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있었는데 행실이 아주 어질었다. 안홍사(安興寺)에 살았는데, 불전을 새로 수리하려 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어느 날 꿈에 구슬로 쪽머리를 장식한 아름다운 선녀가 와서 위로하며 말하였다. “나는 바로 선도산(仙桃山)의 신모(神母)이다.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 하는 것이 기특하여 금 10근을 주어 돕고자 한다. 내가 있는 자리 아래에서 금을 꺼내어 주존(主尊)과 삼상(三像)을 장식하고 벽에는 53불 육류성중(六類聖衆) 및 모든 천신(天神)과 오악(五岳)의 신군(神君)[신라시대의 오악은 동쪽 토함산(吐含山), 남쪽 지리산(智異山), 서쪽 계룡산(雞龍山), 북쪽 태백산(太白山), 중앙 부악(父岳) 또는 공산(公山)이라고 한다.]을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두 계절에 10일 동안 남녀 신도들을 많이 모아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푸는 것을 일정한 규정으로 삼아라.”[우리나라의 굴불지(屈弗池) 용이 황제의 꿈에 나타나 영취산(靈鷲山)에 약사도량(藥師道場)을 열어서 뱃길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청했는데 그 일이 또한 이와 같다.]

 

惠乃驚覺 率徒往神祠座下 堀得黃金一百六十兩 克就乃功 皆依神母所諭. 其事唯存 而法事廢矣.

혜내경각 솔도왕신사좌하 굴득황금일백육십량 극취내공 개의신모소유. 기사유존 이법사폐의.

 

지혜가 놀라 깨어나 무리를 데리고 신사 자리 아래로 가서 황금 160냥을 파내어 불전 수리를 마치고, 모두 신모가 가르쳐준 대로 따랐다. 그 사적은 남아 있지만 절의 행사는 없어졌다.

 

神母本中國帝室之女 名娑蘇. 早得神仙之術 歸止海東 久而不還. 父皇寄書繫鳶足云 隨鳶所止爲家.” 蘇得書放鳶 飛到此山而止 遂來宅爲地仙. 故名西鳶山 神母久據玆山 鎭祐邦國 靈異甚多 有國已來 常爲三祀之一 秩在群望之上.

신모본중국제실지년 명사소. 조득신선지술 귀지해동 구이불환. 부황기서계연족운 수연소지위가 소득서벙연 비도차산이지 수래택위지선. 고명서연산 신모구거자산 진우방국 영이심다 유국이래 상위삼사지일 질재군망지상.

 

신모는 본래 중국 황제의 딸로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신라에 와서 머물면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인 황제가 편지를 솔개의 발에 매달아 보내어 말하기를, “솔개를 따라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라고 하였다. 사소가 편지를 보고 솔개를 날리자, 선도산에 도달하여 멈추므로 마침내 그곳에서 살며 지선(地仙)이 되었다. 그래서 산의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하였다. 신모는 오랫동안 이 산에 머무르며 나라를 지켰는데, 신령스럽고 기이한 일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나라가 세워진 이래 항상 삼사(三祀)의 하나로 삼았고, 그 서열도 여러 망제(望祭)의 위에 있게 하였다.

 

第五十四景明王好使鷹 嘗登此放鷹而失之 禱於神母曰 若得鷹 當封爵.” 俄而鷹飛 來止机上 因封爵大王焉.

제오십사경명왕호사응 상등차방응이실지 도어신모왈 약득응 당봉작.” 아이응비 래지궤상 인봉작대왕언.

 

54대 경명왕(景明王)은 매사냥을 즐겼다. 일찍이 이 산에 올라가서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리고는, 신모에게 기도를 하였다. “만일 매를 찾게 된다면 마땅히 성모께 작위를 봉해드리겠습니다.” 금세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앉았으므로 성모를 제일 우두머리(大王)으로 봉하였다.

 

其始到辰韓也 生聖子爲東國始君 蓋赫居閼英二聖之所自也. 故稱鷄龍鷄林白馬等 雞屬西故也. 嘗使諸天仙織羅緋 染作朝衣 贈其夫 國人因此 始知神驗.

기시도진한야 생성자위동국시군 개혁거알영이성지소자야 고칭계룡계림백마등 계속서고야. 상사제천선직라비 영작조의 증기부 국인인차 시지신험.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성자를 낳아 동국의 첫 번째 임금이 되었으니, 아마도 혁거세(蓋赫居)와 알영(閼英)부인의 두 성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계룡(雞龍), 계림(雞林), 백마(白馬) 등으로 일컬으니, 이것은 닭[]이 서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붉은 빛으로 물들여 관복을 지어 남편에게 주었으니, 나라 사람들은 비로소 그의 신비한 영험을 알게 되었다.

 

又國史 史臣曰 軾政和中 嘗奉使入宋. 詣佑神館 有一堂 設女仙像. 館伴學士王黼曰 此是貴國之神 公知之乎?’ 遂言曰 古有中國帝室之女 泛海抵辰韓 生子爲海東始祖 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우국사 사신왈 식정화중 상봉사입송. 지우신관 유일당 설여선상. 관반학사왕보왈 차시귀국지신 공지지호?’ 수언왈 고유중국제실지녀 범해저진한 생자위해동시조 여위지선 장재선도산 차시상야.

 

또 국사(國史)에서 사관이 말하였다. “김부식(金富軾)이 정화(政和) 연간(서기 1111~1118)에 사신으로 송나라에 들어갔다. 우신관(佑神館)에 갔더니 한 당()에 여자 신선의 상이 모셔져 있었다. 관반학사(館伴學士) 왕보(王黼)가 말하기를 이것은 귀국의 신인데 공은 알고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어서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중국 황제의 딸이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의 시조가 되었고, 그 여인은 지선(地仙)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에 살았으니, 이것이 바로 그 여인의 상입니다.’라고 하였다.”

 

又大宋國使王襄到我朝 祭東神聖母 文有娠賢肇邦之句.

우대송국사왕배도아조 제동신성모 문유신현조방지구,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이 우리 조정에 와서 동신성모(東神聖母)를 제사 지냈는데, 그 제문에 어진 사람을 낳아 나라를 세웠다.”는 구절이 있었다.

 

今能施金奉佛 爲含生 開香火 作津梁 豈徒學長生 而囿於溟濛者哉.

금능시금봉불 위함생 개향화 작율양 기도학장생 이유어명몽자재.

 

성모가 이제 황금을 주어 부처를 만들게 하고 향을 피우고(제례) 의지할 길을 만들었는데, 어찌 다만 오래 사는 술법만을 공부하는 몽매함에 얽매일 것인가?

 

讚曰 來宅西鳶幾十霜 招呼帝子織霓裳 長生未必無生異 故謁金仙作玉皇.

찬왈 래댁서연기십상 촐호제자직예상 장생미필무생이 고알금선작옥황.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서연산에 자리잡은 지 몇 십 년인가 하늘의 선녀 불러 신선의 옷을 짰다네.

장생술이 완전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으니 부처를 만나면 옥황상제-생사의 이치를 알게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