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朗神印
신인종의 시조 명랑법사
按金光寺本記云 “師挺生新羅 入唐學道 將還 因海龍之請 入龍宮傳秘法 施黃金千兩[一云千斤] 潛行地下 湧出本宅井底. 乃捨爲寺 以龍王所施黃金飾塔像 光曜殊特. 因名金光焉.”[僧傳作金羽寺 誤].
안금광사본기운 “사탄생신라 입당학도 장환 인해룡지청 입용궁전비법 시황금천냥[일운천근] 잠행지하 용출본택정저. 내사위사 이용왕소시황금식탑상 광요수특. 인명금광언.”[승전작금우사오]
「금광사본기(金光寺本記)」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다. “법사가 신라에서 태어나서 당나라로 들어와 도를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 용의 청에 따라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고 황금 1,000냥[1,000근이라고도 한다.]을 시주 받아 땅 밑으로 몰래 와서 자기 집 우물 밑에서 솟아나왔다. 자기 집을 희사하여 절을 만들었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장식하자 광채가 유달리 특이하였다. 그래서 절을 금광사(金光寺)라 하였다.”[『승전(僧傳)』에서는 금우사(金羽寺)라 했지만 잘못된 것이다.]
師諱明朗 字國育 新羅沙干才良之子. 母曰南澗夫人 或云法乘娘 蘇判茂林之子金氏 則慈藏之妹也. 三息 長曰國敎大德 次曰義安大德 師其季也. 初母夢呑靑色珠而有娠
사휘명랑 자국육 신라사간재량지자. 모왈남간부인 혹운법승낭 소판무림지자김씨 즉자장지매야. 삼식 장왈국교대덕 차왈의안대덕 사기계야. 초모몽탄청색주이유신.
법사의 이름은 명랑(明朗)이고 자는 국육(國育)이며, 신라의 사간(沙干) 재량(才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간부인(南澗夫人)인데 법승낭(法乘娘)이라고도 하며 소판(蘇判) 무림(茂林)의 딸 김씨이니, 즉 자장(慈藏)의 누이동생이다. 재량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국교대덕(國敎大德)이고 다음은 의안대덕(義安大德)이며 법사는 막내아들이다. 처음에 어머니가 꿈에 푸른색 구슬을 삼키고 임신을 하였다.
善德王元年入唐 貞觀九年乙未來歸
선덕왕원년입당 정관구년을미래귀.
선덕왕(善德王) 원년(서기 632)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정관(貞觀) 9년 을미(서기 635)에 돌아왔다.
總章元年戊辰 唐將李勣統大兵 合新羅 滅高麗. 後餘軍留百濟 將襲滅新羅. 羅人覺之 發兵拒之 高宗聞之赫怒 命薛邦興師將討之. 文武王聞之懼 請師開秘法禳之.[事在文武王傳中] 因玆爲神印.
총장원년무진 당장이적통대병 합신라 멸고려. 후여군유백제 장습멸신라. 라인각지 발병거지. 고종문지혁노 명설방흥사장토지. 문무왕문지구 청사개비법양지.[사재문무왕전중] 인자위신인.
총장(總章) 원년 무진(서기 668)에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대군을 거느리고 신라군과 합세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 후 남은 군사가 백제에 머물면서 신라를 습격해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신라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고 군사를 내어 막았다. 당나라 고종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화를 내며 설방(薛邦)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문무왕이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법사를 청해 비법으로 이들을 물리치게 하였다.[이 일은 「문무왕전(文武王傳)」에 실려 있다.] 이 일로 인해 명랑은 신인종(神印宗)의 시조가 되었다.
及我太祖創業之時 亦有海賊來擾. 乃請安惠朗融之裔 廣學大緣等二大德 作法禳鎭. 皆朗之傳系也. 故幷師而上 至龍樹爲九祖.[本寺記 三師爲律祖 未詳] 又太祖爲創現聖寺 爲一宗根抵焉.
급아태조창업지시 역유해적래요. 내청안혜낭융지예 광학대연등이대덕 작법양진. 개랑지전계야. 고병시이상 지용수위구조.[본사기 삼사위율조 미상] 우태조위창현성사 위일종근저언.
우리 고려 태조(太祖)가 나라를 열 때 해적이 와서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안혜(安惠)와 낭융(朗融)의 후예인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의 두 고승을 청해 비법으로 진압하였다. 이것은 모두 명랑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9조로 삼았다.[본 절의 기록에는 세 명의 법사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하지만 자세하지 않다.] 또 태조는 그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창건하여 종파의 근거지로 삼았다.
又新羅京城東南二十餘里有遠源寺 諺傳 “安惠等四大德與金庾信金義元金述宗等 同願所創也. 四大德之遺骨 皆藏寺之東峰. 因號四靈山祖師嵓云.” 則四大德皆羅時高德.
우신라경성동남이십여리유원원사 언전 “안혜등사대덕여김유신김의원김술종등 동원소창야. 사대덕지유골 개장사지동봉. 인호사령산조사암운.” 즉사대덕개라시고덕.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이렇게 전하였다. “안혜(安惠) 등 네 대덕이 김유신(金庾信)ㆍ김의원(金義元)ㆍ김술종(金述宗) 등과 함께 발원하여 창건한 것이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었다. 그래서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嵓)이라고 한다.” 그러한 즉 네 대덕은 모두 신라 시대의 고승이었다.
按堗白寺柱貼注脚載 “慶州戶長巨川母 阿之女 女母 明珠女 女母積利女之子 廣學大德大緣三重[古名善會] 昆季二人皆投神印宗. 以長興二年辛卯 隨太祖上京 隨駕焚修. 賞其勞 給二人父母忌日寶于堗白寺田沓若干結云云.”
안돌백사주첩주각재 경주호장거천모 아지녀 여모 명주녀 여모적리여지자 광학대덕대연삼중[고명선회] 곤제이인개투신인종. 이장흥이년신묘 수태조상경 수가분수. 상기노 급이인부모기일보우돌백사전답약간결운운,
돌백사(堗白寺) 주첩(柱貼)의 주각(注脚)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경주(慶州) 호장 거천(巨川)의 어머니는 아지녀(阿之女)이고 아지녀의 어머니는 명주녀(明珠女)이며 명주녀의 어머니는 적리녀(積利女)인데, 그 아들은 광학대덕(廣學大德)과 대연삼중(大緣三重)으로[옛 이름은 선회(善會)이다.] 형제 두 사람이 모두 신인종에 들어갔다. 장흥(長興) 2년 신묘(서기 931)에 태조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왕을 따라다니며 향을 피우고 수도하였다. 태조는 그 노고를 포상하여 두 사람의 부모 제사에 쓸 비용으로 전답 몇 결을 돌백사에 주었다고 한다.”
則廣學大緣二人 隨聖祖入京者 安師等 乃與金庾信等創遠源寺者也. 廣學等二人骨 亦來安于玆爾 非四德皆創遠源皆隨聖祖也 詳之.
즉광학재연이인 수성조입경지 안사등 내여김유신등창원원사자야. 광학등이인골 역래안우자이 비사덕개창원원개수성조야 상지.
그러한 즉 광학과 대연 두 사람은 태조를 따라 서울로 들어왔으며, 안혜법사 등은 김유신과 원원사를 창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광학 등 두 사람의 뼈를 여기에 모셨을 뿐이지, 네 대덕이 모두 원원사를 창건했거나 모두 태조를 따라온 것은 아니니,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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