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遺事

券 第四 義解 券五- 勝詮髑髏

勝詮髑髏

승전의 해골

 

釋勝詮 未詳其所自也. 常附舶指中國 詣賢首國師講下. 領受玄言 硏微積慮. 惠鑒超穎 探賾索隱 妙盡隅奧. 思欲赴感有緣 當還國里.

석승전 미상기소자야. 상부박지중국 지현수국사강하. 영수현아 연미적려. 혜감초영 탐색색은묘진우오. 사욕부감유욘 당환국리.

 

승려 승전(勝詮)의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일찍이 배를 타고 중국에 가서 현수국사(賢首國師)의 제자가 되었다. 현묘한 불법을 받아 미묘한 것을 연구하여 사색을 쌓았다. 지혜가 뛰어나 깊이 숨어있는 이치를 찾아내어 끝까지 오묘한 이치를 다 찾았다. 승전은 인연 있는 곳으로 가 감응을 받으려고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始賢首與義湘同學 俱稟儼和尙慈訓. 首就於師說 演述義科 因詮法師還鄕寄示. 湘仍寓書[云云]

시현수여의상동학 구지엄화상자훈. 수취어사설 연술의과 인전법사환향기시. 상잉우서[운운]

 

처음에 현수(賢首)는 의상(義湘)과 같이 배우면서 스승 지엄화상(智儼和尙)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모두 받았다. 현수는 스승의 학설에 대해 그 뜻을 풀이하고 과목을 설명하였는데, 승전법사가 고향에 돌아갈 때 이를 부쳐서 보여주었다. 의상도 글을 보냈다고 한다.

 

別幅云 探玄記二十卷 兩卷未成, 敎分記三卷, 玄義章等雜義一卷, 華嚴梵語一卷, 起信疏兩卷, 十二門疏一卷, 法界無差別論疏一卷, 竝因勝詮法師抄寫還鄕, 頃新羅僧孝忠遺金九分 云是上人所寄. 雖不得書 頂荷無盡 今附西國軍持澡罐一口 用表微誠 幸願檢領 謹宣.

별부운 탐현기이십권 양권미성 교뷴기삼권 현의장등잡의일권 황엄법어일권 기신소양권 십이문소일권 법계무차별논소일권 병인승전법사초사환향. 경신라승효충유금구푼 운시상인소기. 수부득서 정하무진 금부서국순지조관일구 용표미성 행원검영 근의.

 

별도로 보낸 편지는 이러하다. “탐현기(探玄記)20권 중, 두 권은 아직 미완성이고, 교분기(敎分記)3, 현의장등잡의(玄義章等雜義)1, 화엄범어(華嚴梵語)1, 기신소(起信疏)2, 십이문소(十二門疏)1, 법계무차별론소(法界無差別論疏)1권 등을 승전법사가 간추려 베껴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번 신라의 승려 효충(孝忠)이 금 9근을 주면서 스님께서 보낸 것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편지는 받지 못했지만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서쪽 나라의 물병과 대야 한 개를 부쳐, 이것으로 작은 정성을 표하려고 하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올립니다.”

 

師旣還 寄信于義湘. 湘乃目閱藏文 如耳聆儼訓. 探討數旬 而授門弟者 廣演斯文 語在湘傳.

사기환 기신우의상. 상내목열장문 여이령엄훈. 탐토수순 이수문제자 광연사문 어재상전.

 

승전법사는 귀국하여 현수의 편지를 의상에게 전해주었다. 의상이 곧 법장의 글을 보니 마치 스승 지엄의 가르침을 직접 귀로 듣는 것만 같았다. 수십일 동안 탐구하고 검토한 후에 제자들에게 주어 이 글을 널리 전하도록 하였다. 이 말은 의상의 전기에 실려 있다.

 

按此圓融之敎誨 遍洽于靑丘者 寔師之功也. 厥後有僧梵修 遠適彼國 求得新譯後分華嚴經觀師義疏 言還流演 時當貞元己卯 斯亦求法洪揚之流乎.

안차원융지교회 편흡우청구자 식사지공야. 궐후유승범수 원적피국 구득신라역후분화엄경관사의소 언환소연 시당정원기묘 사역구법홍양자류호.

 

살펴보면, 이 원만하고 융통한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널리 펴진 것은, 이것은 승전법사의 공이다. 그 뒤에 승려 범수(梵修)가 멀리 당나라에 가서 새로 번역된 후분화엄경(後分華嚴經)관사의소(觀師義疏)를 구해 돌아와서 널리 전하였으니, 정원(貞元) 기묘년(서기 799)이었다. 이 또한 불법을 구해 널리 퍼뜨린 예일 것이다.

 

詮乃於尙州領內開寧郡境 開創精廬 以石髑髏爲官屬 開講華嚴. 新羅沙門可歸 頗聰明識道理 有傳燈之續 乃撰心源章 其略云 勝詮法師領石徒衆 論議講演 今葛項寺也. 其髑髏八十餘枚 至今爲綱司所傳 頗有靈異. 其他事迹 具載碑文 如大覺國師實錄中.

전내어상주영내개녕군경 개창정려 이석촉루위관속 개강화엄. 신라사문가귀 파총명식도리 유선등지속 내찬심원장 기약운 승전법사영석도중 논의강연 금갈항사야. 기촉루팔십여매 지금위강사소전 파유영이. 기타사적 구재비문 여대각국사실록중.”

 

승전은 상주(尙州) 개령군(開寧郡)에 절을 새로 짓고 돌멩이와 뼈들을 예로 삼아 화엄경(華嚴經) 강의를 열었다. 신라의 승려 가귀(可歸)가 매우 총명하고 도리를 알아 법통을 이어서 심원장(心源章)을 편찬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승전법사는 돌무더기를 거느리고 불경을 논의하고 강연하였으니, 그곳은 지금의 갈항사(葛項寺)이다. 그 뼈 80여 개를 지금도 강사(綱司)가 전하고 있는데, 매우 신령스럽고 신이한 점이 있다. 그밖의 다른 사적들은 모두 비문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대각국사실록(大覺國師實錄)에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