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 弩禮王
朴弩禮尼叱今[一作儒禮王] 初王與妹夫脫解讓位 脫解云 凡“有德者多齒 宜以齒理試之.” 乃咬餠驗之 王齒多 故先立. 因名尼叱今 尼叱今之稱 自此王始 劉聖公更始元年癸未卽位[年表云 甲申卽位] 改定六部號 仍賜六姓.
박노례이질금[일작유례왕] 초왕여매부탈해양위 탈해운 “범유덕자다치 의이치리시지.” 내효병험지 왕치다 고선립. 인명이질금 이직금지칭 자차왕시 유성공경시원년계미즉위[연표운 감신즉위,] 개정육부호 잉사육성.
박노례이질금(朴弩禮尼叱今)[유례왕(儒禮王)이라고도 한다.]이 처음에 매부인 탈해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탈해가 말하였다. “대개 덕이 있는 사람은 이빨이 많은 법이니, 의당 잇금을 가지고 시험해 보자!” 그래서 서로 떡을 입으로 물어서 시험해 보았더니, 왕의 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먼저 왕위에 올랐다. 이로부터 왕을 ‘이질금’이라고 하였으니, 이질금의 칭호는 이 노례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성공(劉聖公) 경시(更始) 원년 계미(서기 23)[연표에서는 갑신년(24)에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다.]에 왕위에 올라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여섯 성(姓)을 내려주었다.
始作兜率歌 有嗟辭詞腦格. 始製犂耜及藏氷庫 作車乘. 建武十八年 伐伊西國滅之. 是年 高麗兵來侵.
시작도솔가 유차사사뇌격. 시제려사급장빙고 작거승. 건무팔십년 벌이서국멸지. 시년 고려병래침.
이 당시에 처음으로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는데 차사(嗟辭, 슬픈 마음을 표현하는 감탄사)와 사뇌격(詞腦格, 감탄사를 가진 10구체의 향가)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쟁기와 보습을 만들고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를 짓고 수레를 만들었다. 건무 18년(서기 42)에 이서국(伊西國)을 쳐서 멸망시켰다. 이 해에 고구려 군사가 와서 침략하였다.
'三國遺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券第一 奇異 第一- 金閼智 (0) | 2020.04.28 |
---|---|
卷第一 紀異 第一- 第四 脫解王 (0) | 2020.04.27 |
卷第一 紀異 第一- 第二 南解王 (0) | 2020.04.26 |
卷第一 紀異 第一-新羅始祖 赫居世王 (0) | 2020.04.26 |
卷第一 紀異 第一-又四節遊宅 (0) | 2020.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