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于老
昔于老 奈解尼師今之子[或云 角干水老之子也] 助賁王二年七月 以伊飡爲大將軍 出討甘文國 破之 以其地爲郡縣.
석우노 내해이사금지자[혹운 각간수노지자야] 조분왕이년칠월 이이찬위대장군 출토감문국파지 이기지위군현.
석우노(昔于老)는 내해 이사금(奈解尼師今)의 아들이다.[혹은 각간 수노(水老)의 아들이라고 한다.]조분왕(助賁王) 2년(서기 231) 7월에 이찬으로서 대장군이 되어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여 이를 격파하고 그 땅을 군현으로 만들었다.
四年七月 倭人來侵 于老逆戰於沙道 乘風縱火 焚賊戰艦 賊溺死且盡. 十五年正月 進爲舒弗邯兼知兵馬事.
사년칠월 왜인래침 우노약전어사도 승풍종화 분적전함 적익사차진. 십오년정월 진위서불한겸지병마사.
4년(서기 233) 7월에 왜인이 침략해오자 우노가 사도(沙道)에서 맞아 싸웠는데,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적의 전함을 불태우자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15년(서기 244) 정월에 서불한(舒弗邯)으로 승급되고 병마의 일도 겸하였다.
十六年 高句麗侵北邊 出擊之 不克 退保馬頭柵. 至夜 士卒寒苦 于老躬行勞問 手燒薪槱暖熱之 群心感喜 如夾纊. 沾解王在位 沙梁伐國舊屬我 忽背而歸百濟 于老將兵往討滅之.
십육년 고구려침북변 출격지 불극 퇴보마두책. 지야 사졸한고 우노궁행노문 수소신유난지군심감희 여협광. 첨해왕재위 사량벌국구속아 물배이귀백제 우노장병왕토멸지.
16년(서기 245)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나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여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에 군사들이 추위에 괴로워하므로 우노가 직접 돌아다니며 위로하고 손수 땔감을 태워 따뜻하게 해주니, 무리의 마음이 감격해 마치 솜옷(夾纊)을 입은 것 같이 기뻐하였다. 첨해왕(沾解王)이 왕위에 있을 때, 예전부터 우리에게 속해 있던 사량벌국(沙梁伐國)이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붙으니,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여 멸망시켰다.
七年癸酉 倭國使臣葛那古在館 于老主之 與客戱言 早晩 以汝王爲鹽奴 王妃爲爨婦.
칠년계유 왜국사신갈나고재관 우노주지 여객희언 “조만 이여왕위염노 왕비위찬부.”
7년 계유(서기 253)에 왜국(倭國)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객관(館)에 있을 때 우노가 그를 접대하며 농담으로 말했다. “조만간 당신네 국왕을 염전의 노비로 만들고, 왕비는 부엌데기로 만들 것이다.”
倭王聞之怒 遣將軍于道朱君 討我 大王出居于柚村. 于老曰 “今玆之患 由吾言之不愼 我其當之.” 遂抵倭軍 謂曰 “前日之言 戱之耳 豈意興師至於此耶?” 倭人不答 執之 積柴置其上 燒殺之乃去.
왜왕문지노 견장군우도주군 토아 대왕출거우유촌. 우노왈 “금자지환 유오언지불신 아기당지.” 수저왜군 위왈 “전일지언 희지이 이의흥사지어차야?” 왜인부답 집지 적시피기상 소살지내거.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우리를 공격하자, 대왕이 궁궐을 나가 유촌(柚村)에 기거하게 되었다. 우노가 아뢰었다. “지금의 환란은 제가 말을 삼가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니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마침내 왜군에게 가서 말했다. “전에 한 말은 농담일 뿐이었는데 어찌 군대를 일으켜 이 지경까지 이를 것을 생각하였겠느냐?” 왜인이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붙잡아 장작더미 위에 얹어 놓고 불태워 죽인 다음 가버렸다.
于老子 幼弱不能步 人抱以騎而歸 後爲訖解尼師今.
우노자 유약불능보 인포이기이귀 후위흘해이사금.
우로의 아들이 유약(幼弱)하여 걸음을 걷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안아다가 말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가 후에 흘해 이사금(訖解尼師今)이 되었다.
味鄒王時 倭國大臣來聘 于老妻請於國王 私饗倭使臣. 及其泥醉 使壯士曳下庭焚之 以報前怨. 倭人忿 來攻金城 不克引歸.
미추왕시 왜국대신래빙 우노처청어국왕 사향왜사신. 급기니취 사장사예하정분지 이보전원. 왜인분 래공금성 불극인귀.
미추왕(味鄒王) 때 왜국 대신이 와서 예방하였는데, 우노의 처가 국왕에게 청하여 왜국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하게 되었다. 그가 흠뻑 술에 취하였을 때, 그녀가 장사(壯士)를 시켜 뜰에 끌어내려 불태워서 지난날의 원수를 갚았다. 왜인들이 분개하여 몰려와 금성을 침공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論曰 于老爲當時大臣 掌軍國事 戰必克 雖不克 亦不敗 則其謀策必有過人者. 然以一言之悖 以自取死 又令兩國交兵. 其妻能報怨 亦變而非正也. 若不爾者 其功業 亦可錄也,
논왈 우노위당시대신 장군국사 전필극 수불극 역불패 즉기모책필유과인자. 연이일언지폐 이자취사 우영양국교병. 기처능보원 역변이비정야. 약불이자 기공업 역가록야.
사관이 논평하길 우노가 당시의 대신으로서 군사와 정무를 맡아 싸우면 반드시 이겼고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패하지는 않았으니, 그의 모책이 틀림없이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 한 마디를 잘못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전쟁까지 일으켰다. 그의 아내가 원한을 갚을 수 있었으나 이것도 역시 변칙이요 올바른 길은 아니었다. 만일 이렇지만 않았다면 그 공적도 기록에 남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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