祿眞
祿眞 姓與字 未詳 父秀奉一吉飡. 祿眞二十三歲始仕 屢經內外官 至憲德大王十年戊戌 爲執事侍郞. 十四年 國王無嗣子 以母弟秀宗 爲儲貳 入月池宮. 時 忠恭角干爲上大等 坐政事堂 注擬內外官 退公感疾. 召國醫診脈 曰 “病在心臟 須服龍齒湯.” 遂告暇三七日 杜門不見賓客.
녹진 성여자 미상. 부수봉일길찬 녹진이십삼세시사 누경내외관 지헌덕대왕십년무술 위집사시랑. 십사년 국왕무사자 이모제수종 위저이 입월지궁. 시 충공각간위상대등 좌정사당 주의내외관 퇴공감질. 소국의진맥 왈 “병재심장 수복용치탕 수고가삼칠일 두문불견빈객.
녹진(祿眞)의 성과 자는 자세하지 않다. 아버지는 일길찬 수봉(秀奉)이다. 녹진은 23세에 비로소 관직에 올라 여러 차례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헌덕대왕(憲德大王) 10년 무술(서기 818)에 집사시랑(執事侍郞)이 되었다. 14년(서기 822)에 국왕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친아우 수종(秀宗)을 태자로 삼아 월지궁(月池宮)에 들어오게 하였다. 그때 각간 충공(忠恭)이 상대등이 되어 정사당에 앉아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을 심사했는데, 하루는 퇴근하여 병이 들었다. 국의를 불러 진맥하니 국의가 말했다. “심장에 병이 들었으니 반드시 용치탕(龍齒湯)을 복용해야 합니다.” 그는 마침내 21일 간의 휴가를 얻어 문을 닫아걸고 손님들을 만나지 않았다.
於是 祿眞造而請見 門者拒焉 祿眞曰 “下官非不知相公移疾謝客 須獻一言於左右 以開鬱悒之慮 故此來耳 若不見 則不敢退也.”
어시 녹진조이청견 문자거언 녹진왈 “하관비부지상공이질사객 수헌일언어좌우 이개울읍지려 고차래이 약불견 즉불감퇴야.”
이때 녹진이 가서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으니 녹진이 말했다. “나는 상공께서 병을 옮길까 하여 손님을 사절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꼭 한 마디 말씀을 직접 드려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드려야겠기에 이렇게 온 것이다. 만나지 않고는 물러나지 않겠다.”
門者再三復之 於是 引見 祿眞進曰 “伏聞寶體不調 得非早朝晩罷 蒙犯風露 以傷榮衛之和 失支體之安乎?” 曰 “未至是也 但昏昏嘿嘿 精神不快耳.” 祿眞曰 “然則公之病 不須藥石 不須針砭 可以至言高論 一攻而破之也 公將聞之乎?” 曰 “吾子不我遐遺 惠然光臨 願聽玉音 洗我胸臆.”
문지기가 두세 번 반복해 전하고서야 충공이 그를 불러들여 만나주었다. 녹진이 들어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귀한 몸이 편치 않다 하시니,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고 저녁 늦게 파해 찬바람과 이슬을 맞아 혈기의 조화를 해치고 사지의 평안함을 잃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소. 다만 어질어질하여 정신이 상쾌하지 못할 뿐이오.” 녹진이 말하길 “그렇다면 공의 병은 약이나 침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말과 고상한 담론으로 한번에 쳐서 고칠 수 있을 것이니 공께서 이를 들어주시겠습니까?” 하니 “그대가 나를 멀리 여기지 않고 고맙게도 이렇게 와주었으니, 옥음을 들려주어 내 가슴 속을 씻어 주기 바라오.”
祿眞曰 “彼梓人之爲室也 材大者爲梁柱 小者爲椽榱 偃者植者各安所施 然後 大廈成焉 古者 賢宰相之爲政也 又何異焉 才巨者 置之高位 小者授之薄任 內則六官百執事 外則方伯連率郡守縣令 朝無闕位 位無非人 上下定矣 賢不肖分矣 然後 王政成焉.
녹진왈 “피재인지위실야 재대자위양주 소자위연최 언자식자각안소시 연후 대하성언 고자 현재상지위정야 우하이언 재거자 치지고위 소자수지박임 내즉육관백집사 외즉방백연솔군수현령 조무궐위 위무비인 상하정의 현불초분의 연후 왕정성언.
녹진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큰 재목으로는 들보와 기둥을 만들고 작은 재목으로는 서까래를 만들며, 눕힐 것과 세울 것이 각각 적당한 곳에 자리잡은 뒤에야 큰 집이 지어집니다. 옛날에 어진 재상이 정치를 하는 것도 또한 무엇이 이와 달랐겠습니까? 재주가 큰 자는 높은 자리에 앉히고 재주가 작은 자는 가벼운 임무를 주어, 안으로 6관(六官)과 온갖 집사(執事)들로부터 밖으로 방백(方伯), 연솔(連率), 군수, 현령에 이르기까지 조정에 비어있는 직위가 없고 직위마다 적임자가 아닌 경우가 없어, 위아래가 정해지고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가 구분되어 그렇게 한 뒤에야 왕정이 이루어졌습니다.
今則不然 徇私而滅公 爲人而擇官 愛之則雖不材 擬送於雲霄 憎之則雖有能 圖陷於溝壑. 取捨混其心 是非亂其志 則不獨國事溷濁 而爲之者 亦勞且病矣.
영즉불연 순사이멸공 위인이택관 애지즉수불재 의송어운소 증지즉수유능 도함어구학. 취사혼기심 시비난기지 즉부독국사혼탁 이위지자 역노차병의.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사사로움을 좇아 공적인 것이 없어지고 사람을 위하여 관직을 고르므로, 아끼는 사람이면 재목감이 아니더라도 아주 높은 직을 주려 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면 유능하더라도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합니다. 취하고 버림에 있어서 그 마음이 혼란스럽고 옳고 그름에 있어서 그 뜻이 어지러우니, 나라 일이 혼탁해질 뿐 아니라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도 수고롭고 병이 나는 것입니다.
若其當官淸白 蒞事恪恭 杜貨賂之門 遠請託之累 黜陟只以幽明 予奪不以愛憎 如衡焉 不可枉以輕重 如繩焉 不可欺以曲直. 如是 則刑政允穆 國家和平 雖曰開孫弘之閤 置曹參之酒 與朋友故舊 談笑自樂可也. 又何必區區於服餌之間 徒自費日廢事爲哉.
약기당관청백 리사각공 두화뢰지문 원청탁지루 출척지이유명 여탈불이애증 여형언 불가왕이경중 여승언 불가사이곡직. 여시 즉형정윤목 국가화평 수왈개손홍지합 치조참지주 여붕우고구 담소자요가야. 우하필구구어복이지간 도자비일폐사위재.
만약 관직을 맡아 청렴하게 하고 일에 임해 삼가고 공손하게 하며, 뇌물이 오가는 문을 막고 청탁의 폐단을 멀리하며, 승진과 강등을 오로지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하고, 관직을 주고 빼앗는 것을 애증에 의해서 하지 않는다면, 마치 저울처럼 가볍고 무거움을 왜곡할 리 없고 먹줄처럼 굽고 곧음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형벌과 정치가 믿음직스럽고 국가가 화평해져서, 비록 공손홍(公孫弘)과 같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조참(曹參)과 같이 잔치를 베풀어 벗들이나 오랜 친구들과 담소하며 즐겨도 좋을 것입니다. 어찌 꼭 구구하게 약 드시기에만 몰두하여 부질없이 시일을 소비하고 정사를 버려두실 일이겠습니까?”
角干 於是 謝遣醫官 命駕朝王室 王曰 “謂卿剋日服藥 何以來朝.” 答曰 “臣聞祿眞之言 同於藥石 豈止飮龍齒湯而已哉.” 因爲王一一陳之.
각간 어시 사견의관 명가조왕실 왕왈 “청경극일복약 하이래조.” 답왈 “신문녹진지언 동어약석 이지음용치탕이이재.” 인위왕일일진지.
각간이 이 말을 듣자 의원을 사절하여 보내고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왕궁으로 입조하니 왕이 말했다. “나는 경이 기일을 정해 약을 복용하리라 생각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입조하였는가?” 충공이 대답하였다. “신이 녹진의 말을 들으니 약과 침과 같았습니다. 어찌 용치탕(龍齒湯)을 마시는 것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왕에게 녹진의 말을 낱낱이 아뢰었다.
王曰 “寡人爲君 卿爲相 而有人直言如此 何喜如焉? 不可使儲君不知 宜往月池宮.”
왕왈 “과인위군 경위상 이유인직언여차 하희여언? 불가사저군부지 의왕월지궁.”
왕이 말했다. “과인이 임금으로 있고 경은 재상으로 되어 있는 터에, 이와 같이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태자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 월지궁으로 가야 되겠다.”
儲君聞之 入賀曰 “嘗聞君明則臣直 此亦國家之美事也.”
저군문지 입하왈 “상문군명즉신즉 차역국가지미사야.”
태자가 이 말을 듣고 들어와 경하하며 말했다. “일찍이 듣사옵건대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정직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역시 나라의 아름다운 일입니다.”
後 熊川州都督憲昌反叛 王擧兵討之 祿眞從事有功. 王授位大阿飡 辭不受.
후 웅천주도독헌창반반 왕거병토지 녹진종사유공. 왕수위대아찬 사불수.
그 후 웅천주도독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했는데, 녹진이 종군하여 공이 있었다. 왕이 대아찬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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