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傳 第五-乙巴素
乙巴素 高句麗人也 國川王時 沛者於卑留評者左可慮等 皆以外戚擅權 多行不義 國人怨憤. 王怒欲誅之 左可慮等謀反 王誅竄之.
을파소 고구려인야. 국천왕시 패자어비류평자좌가려등 개이외척천권 다행불의 국인원분. 왕노역주지 좌가려등모반 왕주찬지.
을파소(乙巴素)는 고구려(高句麗) 사람이다. 국천왕(國川王) 때의 패자(沛者) 어비류(於卑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 등이 모두 외척의 신분으로 권세를 부리고 불의한 행동을 많이 하자, 나라 사람들이 원망하고 분개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들을 목 베려 하자 좌가려 등이 모반하였으므로, 왕이 그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遂下令曰 “近者 官以寵授 位非德進 毒流百姓 動我王家 此寡人不明所致也 今 汝四部 各擧賢良在下者.” 於是 四部共擧東部晏留 王徵之 委以國政.
수하령왈 “근자 관이총수 위비덕진 독류백성 동아왕가 차과인불명소치야. 금 여사군 각거현량재하자.” 어시 사부공거동부안류 왕징지 위이국정.
그리고 영을 내려 말했다. “요즈음 벼슬이 총애하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지위가 도덕에 따라 올라간 것이 아니어서, 그 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고 왕실을 동요시켰다. 이는 과인이 현명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 너희 4부에서는 각기 재야에 있는 어진 이와 착한 이를 천거토록 하라!” 이에 4부에서 모두 동부의 안류(晏留)를 천거하자, 왕이 그를 불러서 국정을 맡기려 하였다.
晏留言於王曰 “微臣庸愚 固不足以參大政. 西鴨淥谷左勿村乙巴素者 琉璃王大臣乙素之孫也. 性質剛毅 智慮淵深 不見用於世 力田自給. 大王若欲理國 非此人則不可.”
안류언어왕왈 “미신용우 고부족이참대정. 서압록곡좌물촌을파소자 유리왕대신을소지손야. 성질강의 지려연심 불경요어세 역전자급. 대왕약욕리국 비차인즉불가.”
안류가 왕에게 아뢰길 “미천한 저는 용렬하고 어리석어 실로 중대한 정사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서압록곡(西鴨淥谷) 좌물촌(左勿村)에 사는 을파소라는 사람은 유리왕(琉璃王)의 대신이었던 을소(乙素)의 후손입니다. 그는 성품이 굳세고 지혜가 깊은데 세상이 써 주지 않으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다스리려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입니다.”
王遣使以卑辭重禮聘之 拜中畏大夫 加爵爲于台 謂曰 “孤叨承先業 處臣民之上 德薄材短 未濟於理. 先生藏用晦明 窮處草澤者久矣 今不我棄 幡然而來 非獨孤之喜幸. 社稷生民之福也 請安承敎 公其盡心.”
왕견사이비사중예빙지 배중외대부 가작위우태 위왈 “고도승선업 처신민지상 덕박재단 미제어리. 선생장용회명 궁처초택자구의 금불아기 번연이래 비독고지의행. 사직생민지복여 청안승교 공기진심.”
왕이 사람을 보내 겸손한 말과 정중한 예로 그를 초빙하여 중외대부(中畏大夫)로 임명하고, 벼슬을 더해 우태(于台)로 삼고 말하길 “내가 외람되이 선대의 왕업을 계승하여 신하와 백성의 윗자리에 처하게 되었으나, 덕이 박하고 재능이 부족하여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있소. 선생이 재주를 감추고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은 채 초야에 묻힌 지 오래였으나 지금 나를 버리지 않고 선뜻 와주었으니, 이는 나에게 다행한 일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사직과 백성의 복이오. 차분히 가르침을 받고자 하니 공은 마음을 다해주기 바라오.”
巴素意雖許國 謂所受職不足以濟事 乃對曰 “臣之駑蹇 不敢當嚴命 願大王選賢良 授高官 以成大業.”
파소의수허국 위소수직부족이제사 내대왈 “신지노건 불감당엄명 원대왕선현량 추고관 이성대업!”
을파소는 나라에 몸을 바치고 싶은 생각이었으나 맡은 바 직위가 일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 이내 대답하였다. “신이 둔하고 느려 감히 지엄하신 명령을 감당할 수 없사오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현량한 사람을 선발하여 높은 관직을 줌으로써 대업을 완수하시옵소서!”
王知其意 乃除爲國相 令知政事 於是 朝臣國戚 謂巴素以新間舊 疾之 王有敎曰 “無貴賤 苟不從國相者 族之.”
왕지기의 내제위국상 영지정사 어시 조신국척 위파소이신간구 질지 왕유교왈 “무귀천 구하종국상자 족지.”
왕이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국상(國相)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이때 조정의 신하들과 외척들은 을파소가 새로 등용되어 옛 대신들을 이간한다 여겨 그를 미워하였다. 왕은 교서를 내려 말했다. “귀천을 막론하고 만약 국상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일족을 멸하리라.”
巴素退而告人曰 “不逢時則隱 逢時則仕 士之常也 今 上待我以厚意 其可復念舊隱乎?”
파소퇴이고인왈 “불봉시즉은 봉시즉사 사지상야 금 상대아이후의 기하복념구은호?”
을파소가 물러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벼슬을 하는 것은 선비로서 떳떳한 일이다. 이제 임금께서 나를 후의로 대해주시니 어찌 예전의 은거생활을 고집하겠는가?”
乃以至誠奉國 明政敎 愼賞罰 人民以安 內外無事 王謂晏留曰 “若無子之一言 孤不能得巴素以共理 今庶績之凝 子之功也.” 迺拜爲大使者 至山上王七年秋八月 巴素卒 國人哭之慟.
내이지성봉국 명정교 신상벌 인민이안 내외무사 왕위안류왈 “약무자지일언 고불능득파소이공리 금서적지응 자지공야.” 내배위대사자 지산상왕칠년추팔월 파소졸 국인곡지통.
곧 지성으로 나라에 봉사하여 정교(政敎)를 밝히고 상벌을 신중하게 처리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고 내외가 무사하였다. 왕이 안류에게 ‘만약 그대의 한 마디 말이 없었다면, 내가 파소를 얻어서 그와 함께 다스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 모든 치적이 이루어진 것은 그대의 공로이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그를 대사자(大使者)로 임명하였다. 산상왕(山上王) 7년(서기 203) 가을 8월에 파소가 죽자 나라 사람들이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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