蓋婁王
蓋婁王 己婁王之子 性恭順 有操行. 己婁在位五十二年薨 卽位.
개루왕 기루왕지자 성공순 유조행. 기루재위오십이년훙 즉위.
개루왕(蓋婁王)은 기루왕(己婁王)의 아들이다.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을 바르게 했다. 기루왕이 재위 52년에 돌아가시자 왕위를 이었다.
四年 夏四月 王獵漢山.
사년 하사월 왕렵한산.
4년(서기 131) 여름 4월, 임금이 한산(漢山)에서 사냥하였다.
五年 春二月 築北漢山城.
오년 춘이월 축북한산성.
5년(서기 132) 봄 2월,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쌓았다.
十年 秋八月庚子 熒惑犯南斗.
십년 추팔월경자 형혹범남두.
10년(서기 137) 가을 8월, 경자일에 형혹성(熒惑星, 화성)이 남두성(南斗星)을 침범하였다.
二十八年 春正月丙申晦 日有食之. 冬十月 新羅阿飡吉宣謀叛 事露來奔 羅王移書請之 不送. 羅王怒 出師來伐 諸城堅壁 自守不出 羅兵絶糧而歸.
이십팔년 춘정월병신회 일유식지. 동시월 신라아찬길선모반 사로래분 라왕이서청지 불송. 라왕노 출사래벌 제성견벽 자수불출 라병절량이귀.
28년(서기 155) 봄 정월, 그믐 병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 신라의 아찬(阿飡) 길선(吉宣)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탄로나서 도망쳐왔다. 신라의 왕이 글을 보내어 길선을 돌려달라고 청했으나 임금이 보내지 않았다. 신라왕이 분노하여 군대를 내어 쳐들어왔으나 모든 성을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으니, 신라군이 양식이 떨어져 돌아갔다.
論曰 春秋時 莒僕來奔魯 季文子曰 “見有禮於其君者 事之如孝子之養父母也 見無禮於其君者 誅之如鷹鸇之逐鳥雀也 觀莒僕 不度於善而在於凶德 是以去之.” 今吉宣亦姦賊之人 百濟王納而匿之 是謂掩賊爲藏者也. 由是 失鄰國之和 使民困於兵革之役 其不明 甚矣.
논왈 춘추시 거복래분노 계문자왈 “견유례어기군자 사지여효자지양부모야 견무례어기군자 주지여응전축조작야 관거복 부도어선이재어흉덕 시이거지.” 금길선역간적지인 백제왕납이닉지 시위엄적위장자야. 유시 실린국지화 사민곤어병혁지역 기불명 심의.
사관이 논평하길 춘추시대에 거복(莒僕)이 노(魯)나라로 도망하여 오니 계문자(季文子)가 이르기를 “자기 임금에게 예를 차리는 자를 보면 임금을 섬기는 것이 마치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듯이 섬기며, 자기 임금에게 예의가 없는 자를 보면 임금 죽이기를 마치 매가 참새를 쫓는 것과 같다. 거복을 보니 착한 일에 뜻을 두지 않고 흉한 짓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버린다.”고 하였다. 지금 길선도 흉악한 사람인데 백제왕이 받아들여 숨겨주었으니, 이것은 도적을 숨겨주고 장물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웃나라와 평화를 잃고 백성들을 난리에 빠지게 하였으니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三十九年 王薨.
삼십구년 왕훙.
39년(서기 166) 임금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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