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史記

高句麗 本紀 第二- 慕本王


慕本王

 

慕本王 諱解憂(一云解愛婁) 大武神王元子 閔中王薨 繼而卽位 爲人 暴戾不仁 不恤國事 百姓怨之.

모본왕 휘해우(일운해애루) 대무신왕원자 민중왕훙 계이즉위 위인 폭루불인 불휼국사 백성원지.

 

모본왕(慕本王)의 이름은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이며, 대무신왕(大武神王)의 맏아들이다. 민중왕이 돌아가시자 뒤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사람됨이 포악하고 어질지 못하여 나라 일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였다.

 

元年 秋八月 大水 山崩二十餘所. 冬十月 立王子翊爲王太子.

원년 추팔월 대수 산붕이십여소. 동시월 입왕자익위왕태자.

 

원년(서기 48) 가을 8, 홍수가 나서 20여 곳의 산이 무너졌다.

겨울 10, 왕자 익()을 왕태자로 삼았다.

 

二年 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蔡彤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三月 暴風拔樹 夏四月 殞霜雨雹 秋八月 發使賑恤國內饑民.

이년 춘 견장습한북평어양상곡태원 이요동태수채동 이은신대지 내복화친. 삼월 폭풍발수 하사월 운상우박. 추팔월 발사진휼국내기민.

 

2(서기 49) , 장수를 보내 한()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요동 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접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3,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여름 4, 서리와 우박이 떨어졌다.

가을 8, 사람을 보내 국내의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四年 王日增暴虐 居常坐人 臥則枕人 人或動搖 殺無赦 臣有諫者 彎弓射之.

사년 왕일증포학 거상좌인 와즉침인 인혹동요 살무사 신유간자 만궁사지.

 

4(서기 51), 임금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사람을 깔고 앉고, 사람을 베고 누웠다. 만일 사람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죽였으며, 신하 가운데에서 간하는 이가 있으면 활을 당겨 그를 쏘았다.

 

六年 冬十一月 杜魯弑其君. 杜魯 慕本人 侍王左右 慮其見殺 乃哭.

육년 동십일월 두로시기군. 두로 모본인 시왕좌우 여기견살 내곡.

6(서기 53) 겨울 11, 두로(杜魯)가 임금을 죽였다. 두로는 모본(慕本) 사람으로서 임금을 모시는 측근이었는데, 죽임을 볼 때 마다 자신도 그럴까 염려되어 통곡하였다.

 

或曰 大丈夫何哭爲 古人曰 撫我則后 虐我則讎今王行虐以殺人 百姓之讎也 爾其圖之”.

혹왈 대장부하곡위 고인왈 무아즉후 학아즉수 금왕행학이살인 백성지수야. 이기도지.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대장부가 왜 우는가? 옛 사람의 말에 나를 어루만지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라고 하였다. 이제 임금이 포악한 짓을 하여 사람을 죽이니, 이는 백성의 원수이다. 그대가 임금을 처치하라.”

 

杜魯藏刀以進王前 王引而坐 於是 拔刀害之.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두로장도이진왕전 왕인이좌 어시 발도해지. 수장어모본원 호위모본왕.

 

두로가 칼을 품고 임금 앞으로 가니 임금이 그를 당겨 앉게 하였다. 이때 두로가 칼을 빼어 임금을 죽였다. 마침내 그를 모본 벌판에 장사 지내고, 호를 모본왕(慕本王)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