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哀王
景哀王立 諱魏膺 景明王同母弟也.
경애왕립 휘위응 경명왕종모제야.
경애왕(景哀王)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름은 위응(魏膺)이며, 경명왕의 친동생이다.
元年 九月 遣使聘於太祖. 冬十月 親祀神宮 大赦.
원년 구월 견사빙어태조. 동시월 친사신궁 대사.
원년(서기 924) 9월, 고려 태조에게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겨울 10월, 임금이 직접 신궁(神宮)에서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二年 冬十月 高鬱府將軍能文 投於太祖 勞諭還之 以其城迫近新羅王都故也. 十一月 後百濟主甄萱 以姪眞虎 質於高麗 王聞之 使謂太祖曰 “甄萱反覆多詐 不可和親” 太祖然之.
이년 동시월 고울부장군능문 투어재조 노유환지 이기성박근신라왕도고야. 십일월 후백제주견원 이질진호 질어고려. 왕문지 사위태조왈 견뤈반복다사 불가화친 태조연지.
2년(서기 925) 겨울 10월, 고울부(高鬱府) 장군 능문(能文)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였으나, 태조가 그를 위로하고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그 성이 신라의 도읍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11월, 후백제 군주 견훤이 그의 조카 진호(眞虎)를 고려에 볼모로 보냈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고려 태조에게 이르기를 “견훤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을 많이 하므로 그와 화친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니 태조도 그렇다고 여겼다.
三年 夏四月 眞虎暴死 萱謂高麗人故殺 怒擧兵 進軍於熊津. 太祖命諸城 堅壁不出. 王遣使曰 “甄萱違盟擧兵 天必不祐 若大王奮一鼓之威 甄萱必自破矣.” 太祖謂使者曰 “吾非畏萱 俟惡盈而自彊耳.”
삼년 하사월 진호촉사 훤위고려인고살 노거병 진군어웅진. 태조명제성 수벽불출 왕견사왈 ‘견훤맹거병 천필불우 약대왕탈일고지위 견훤필자파의." 태조위사자왈 오비외훤 사악영이자강이.
3년(서기 926) 여름 4월, 진호가 갑자기 죽었다. 견훤은 고려 사람들이 고의로 죽였다고 생각하고 분노하여 병사를 일으켜 웅진(熊津)까지 진군하였다. 태조가 모든 성에 명령하여 방비를 굳게 하고 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임금이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견훤은 약속을 어기고 병사를 일으켰으므로 하늘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대왕이 북 한번 치는 위풍만 보여도 견훤은 반드시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고려 태조가 사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견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죄악이 넘쳐서 자멸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四年 春正月 太祖親征百濟 王出兵助之. 二月 遣兵部侍郞張芬等 入後唐朝貢 唐授張芬檢校工部尙書 副使兵部郞中朴術洪 兼御史中丞 判官倉部員外郞李忠式 兼侍御史. 三月 皇龍寺塔搖動北傾. 太祖親破近巖城 唐明宗以權知康州事王逢規 爲懷化大將軍. 夏四月 知康州事王逢規遣使林彦 入後唐朝貢 明宗召對中興殿 賜物. 康州所管突山等四鄕 歸於太祖. 秋九月 甄萱侵我軍於高鬱府 王請救於太祖 命將出勁兵一萬往救 甄萱以救兵未至 以冬十一月 掩入王京.
사년 춘정월 태조친정백제 왕출병조지. 이월 견병부시랑장분등 입후당조공 당수장분검교공부상서 부사병부랑중발술홍 경어사중승 판관창부원외랑이충식 겸시어사. 삼월 황룡사탑요동북경. 태조친파근엄성 당명종이권지강주사왕봉규 위회화대장군. 하사월 지강주사왕봉규견사임산 입후당조공 명종소대중흥전 사물 강주소관돌산등사향 귀어태조. 추구월 견훤침아군어고울부 왕청구어태조 명장물경병일만왕구 견훤이구병미지 이동십일월 엄입왕경.
4년(서기 927) 봄 정월, 고려 태조가 몸소 백제를 정벌하자 임금이 병사를 내어 도왔다.
2월, 병부시랑 장분(張芬) 등을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후당에서는 장분에게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의 직위를 주고, 부사 병부낭중 박술홍(朴術洪)에게는 겸어사중승(兼御史中丞)을, 판관 창부원외랑 이충식(李忠式)에게는 겸시어사(兼侍御史) 직위를 주었다.
3월, 황룡사 탑이 요동쳐서 북쪽으로 기울었다. 고려 태조가 친히 근암성(近巖城)을 격파하였다. 후당 명종(明宗)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王逢規)를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삼았다.
여름 4월, 지강주사 왕봉규가 임언(林彦)을 사신으로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명종이 중흥전(中興殿)으로 불러 대면하고 선물을 하사하였다. 강주(康州) 소관의 돌산(突山) 등 네 고을이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에서 우리 군대를 공격하니, 임금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장군에게 명령하여 굳센 병사 1만을 내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11월에 서울을 습격하였다.
王與妃嬪宗戚 遊鮑石亭宴娛 不覺賊兵至 倉猝不知所爲. 王與妃奔入後宮 宗戚及公卿大夫士女四散 奔走逃竄. 其爲賊所虜者 無貴賤皆駭汗匍匐 乞爲奴僕而不免.
왕여비빈종척 유포석정연오 불각적병지 창졸부지소위, 왕여비분입후궁 종척급공경대부사여사산 분주도찬 기위적소노자 무귀천개해한포복 걸위노복이불면.
이때 임금은 왕비, 후궁 및 친척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적병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임금은 왕비와 함께 후궁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친척과 공경대부 및 여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적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귀한 자, 천한 자 할 것 없이 모두 놀라 진땀을 흘리며 엎드려 벌벌 기면서 노비가 되겠다고 빌었으나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
萱又縱其兵 剽掠公私財物略盡 入處宮闕 乃命左右索王 王與妃妾數人在後宮 拘致軍中 逼令王自盡 强淫王妃 縱其下 亂其妃妾. 乃立王之族弟 權知國事 是爲敬順王.
훤우종기병 표략공사재물약진 입처궁궐 냐묭좌우색왕 왕여비첩수인재후궁 구치군중 핍영왕자진 강음왕비 종기하 한기비첩. 내립왕지족제 권지국사 시위경순왕.
견훤은 또 그의 병사들을 풀어 모든 재물을 모두 약탈하였고, 궁궐에 들어앉아 측근들에게 임금을 찾도록 하였다. 임금이 왕비와 첩 몇 사람과 후궁에 있다가 군영으로 잡혀오니, 견훤은 임금을 핍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에게 비와 첩들을 강간하게 하였다. 이어서 임금의 친척 동생에게 임시로 나라 일을 맡게 하였다. 그가 바로 경순왕(敬順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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