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 禦 寇 1. 列禦寇之齊,中道而反. 遇伯昏瞀人. 伯昏瞀人曰:'奚方而反?' 曰:'吾驚焉.' 曰:'惡乎驚?' 曰:'吾嘗食於十漿],[而五漿先饋.' 伯昏瞀人曰:'若是,則汝何爲驚已?' 曰:'夫內誠不解,形諜成光,以外鎭人心,使人輕乎貴老,而虀其所患.夫漿人特爲食羹之貨,無多餘之贏,其爲利也薄,其爲權也輕,而猶若是,而況於萬乘之主乎! 身勞於國而知盡於事,彼將任我以事而效我以功,吾是以驚.' 伯昏瞀人曰:'善哉觀乎! 汝處已,人將保女矣!' 열자가 제나라로 가다 말고 돌아오는 길에 백혼무인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말했다:[어째서 되돌아 오느냐?] [놀랐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놀랐느냐?] [가는 길에 열 집 정도의 주막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섯 집이 제가 돈을 주기도 전에 먼저 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일로 어찌 놀랐단 말이냐?] [그것은 제 안의 열심이 덜 정리되어 밖으로 기색이 드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위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저보다도 노인을 가볍게 여기게 하고 공경하지 않게 한 것이니, 제 자신의 환란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특히 주막의 주인이란 다만 음식을 팔아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며, 그 이익 또한 보잘 것 없고 권한도 작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그처럼 대했으니 하물며 만승의 군주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군자의 몸은 나라를 위해 쓰고, 그의 정신은 정사를 처리하는 데 써야하는 법. 저들은 나를 세워 섬기며 공을 세우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네 생각이 기특하구나. 네 처신이 그러하면, 사람들이 너를 아끼리라.] -깨침이 깊어질수록 저를 잘 다스려야지요. 無幾何而往,則戶外之屨滿矣. 伯昏瞀人北面而立,敦杖蹙之乎頤,立有間,不言而出. 賓者以告列子,列子提屨,跣而走,玂乎門,曰:「先生旣來,曾不發藥乎?」 曰:'已矣,吾固告汝曰人將保汝,果保汝矣. 非汝能使人保汝,而汝不能使人无保汝也,而焉用之感豫出異也! 必且有感搖而本才,又无謂也. 與汝遊者又莫汝告也,彼所小言,盡人毒也. 莫覺莫悟,何相孰也! 巧者勞而知者憂,无能者无所求,飽食而敖遊,汎若不繫之舟,虛而敖遊者也.' 얼마 뒤에 백혼무인이 열자에게 가보니 문밖에 신이 가득했다. 백혼무인은 북쪽을 향해 지팡이에 턱을 괴고 한참을 서있다가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문지기가 그 사실을 열자에게 전하자, 열자는 신을 든 채 맨발로 문간까지 뛰어나왔다. [선생 오셨으면 약될 말씀을 주셔야지요?] [그만두어라. 내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너를 아낄 것이라고 했고, 역시 그러하구나. 네가 사람들로 그리하게도 못하고, 그러지 못하게도 못하는 법 어찌 다른 것이 나올 것인가! 남을 감동시키려면 자기의 본성을 뒤흔들어야 할 것이니, 그것 또한 말할거리 아니요. 너와 어울리는 자들도 네게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내뱉는 쓸모없는 말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해독일 뿐. 남을 깨우쳐 주지도 못하고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과 어찌 터놓고 사귀겠느냐? 기교가 많은 자는 수고로울 것이며,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은 법이다. 재주없는 자는 오히려 바라는 것 없을 것이니, 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매어 있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마음을 텅 비워 무심히 소요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깨우쳐도 못 벗어나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입니다. 우러르며 대접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뛰어넘는 것이 깨침의 완성이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저를 칭찬하며 모여드는 사람들의 주목받기를 내치기 보단 즐기지요. 사람의 주목을 받음은 뭔가를 흘리고 다녔기 때문, 그런 자신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 진정 깨달은 사람은 제 부족함을 알고, 늘 삼가하는 법... |
2.
鄭人緩也呻吟於裘氏之地. 祇三年而緩爲儒,河潤九里,澤及三族,使其弟墨. 儒墨相與辯,其父助翟. 十年而緩自殺. 其父夢之曰:「使而子爲墨者予也. 闔嘗視其良,旣爲秋柏之實矣?」
정나라 사람 완이 구씨들의 땅에서 책을 읽어 삼 년이 지나자 선비가 되었다. 황하가 물가 9리의 땅을 적셔주듯 그의 공부한 덕택이 삼족에 영향이 미쳤다. 그리고 그의 아우를 묵자(墨者)로 만들어 유묵사상이 서로 대화하였고 그 아비가 적(묵자)의 편을 들자 십년이 지나 완이 자살하였다. 그의 아버지 꿈에 그가 나타나서 말했다:[아버님의 자식을 묵자로 만든 것은 저였습니다. 그 잘한 것을 보지 않으십니까? 마치 가을에 잣나무가 결실한 것 같지 않은가요?]
夫造物者之報人也,不報其人而報其人之天. 彼故使彼. 夫人以己爲有以異於人以賤其親,齊人之井飮者相捽也. 故曰今之世皆緩也. 自是,有德者以不知也,而況有道者乎! 古者謂之遁天之刑.
聖人安其所安,不安其所不安.,衆人安其所不安. 不安其所安.
莊子曰:「知道易,勿言難. 知而不言,所以之天也.,知而言之,所以之人也.,古之至人,天而不人.」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보답할 때는 그 사람에게 보답하지 않고, 그 사람의 천성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묵자가 되었던 것. 대저 사람이 저를 생각해 특출함을 드러내고 가족관계를 천시하면, 한 우물을 마시며 서로 다투는 격. 그래서 말하길 지금 세상 사람이 다 완과 같다 하는 것. 이리되니 덕있는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진리를 깨친이를 알아보랴!
옛말에 이르길 하늘이 외면하는 형벌을 받는 자라 말했다. 성인은 그가 편안히 지낼 곳에 편안히 지내며, 편안치 않은 곳에는 편안치 않게 지내는 법이다. 뭇사람들은 편안치 않은 곳에서 편안함을 찾고, 편안한 곳에서는 편안함을 이기지 못한다.
장자가 말했다:[도를 알기는 쉽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하늘도리이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사람을 위함이다. 옛날 깨우친 사람들은 하늘을 따랐지 사람을 따르지 않았다.]
-뭘 안다는 사람은 그 아는 걸 드러내고 자랑하려한다. 그러나 하늘도리란 그저 조용히 뒤에서 돕는 것이지 공을 다투는 것 아니다.
깨달은 사람은 그저 그 처지에 맞게 맞춰 살 뿐... 그를 부러 고치려하지 않는 법. 보통사람들은 그런 평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꼭 뭔가 일을 벌이려한다.
선비가 됨은 식견을 높이는 것도 아니요, 남을 가르치고 입신양명하도록 돕는 것 아니라 저 하나 잘 갈무리함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3.
朱泙漫學屠龍於支離益,單千金之家,三年技成而无所用其巧.
주평만은 용을 해부하는 방법을 지리익에게 배웠는데, 천금이나하는 집을 수업료로 3년을 거쳐 기술을 익혔으나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용을 해부하려면 먼저 용을 발견해야하는 법, 본말이 뒤집어 진 것에 수만금의 노력을 들이면 뭐하나? 용을 일일히 나누고 해부하는 법을 알면 그가 진리를 아는 것인가?
聖人以必不必,故无兵.,衆人以不必必之,故多兵.,順於兵,故行有求. 兵,恃之則亡.
성인은 불필요함도 필요하다 보는데 마음에 다툼이 없어서이다. 보통 사람들은 필요한 것도 필요없다 고집하는데 마음이 여러 갈래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갈래를 따르기에 뭔가를 끊임없이 구하는 것. 그 마음의 다툼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곧 망한 것이다.
-제 마음이 한 갈래로 정해지면 눈앞의 것에 헷갈리지 않으니 그저 보이는 것 모두 사랑할 수 있지만,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은 정작 해야할 것도 모르는 법 그런 갈피를 못잡는 것이 이미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小夫之知,不離苞苴竿牘,敝精神乎蹇淺,而欲兼濟道物,太一形虛. 若是者,迷惑於宇宙形累, 不知太初. 彼至人者,歸精神乎无始而甘冥乎无何有之鄕. 水流乎无形,發泄乎太淸. 悲哉乎! 汝爲知在毫毛,而不知大寧!
소인배는 선물을 주고받고, 편지를 주고받는 소소한 정나눔이나 따지면서, 정신을 피폐하게 하여 절름발이, 천박한 꼴을 만들어 진리와 사물을 하나로 묶어보려 하지만 큰 하나됨은 그 형체가 허허로운 법. 이리하는 자들은 우주니 뭐니하는 그 형체에 미혹되어 태초라는 이치를 모른다.(이미 형을 갖춘 것에 매여)
저 깨달은 사람(至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정신을 시작도 없는 허무한 상태로 모두어 모든 것의 있기 전의 어두움을 즐긴다. 흐르는 물은 형태가 없고, 흘러나오는 것은 큰 맑음이다. 슬프다! 그대들은 가느다란 털끝의 일에 집착하여 큰 평안함을 알지 못하는구나.
-작은 일을 세밀히 함도 좋지만 본디 그 연원을 알아 누리는 평안함도 알아야 하리.
진리를 깨달으면 그런 평안함을 누리는 것...세상을 백안시함 아니다. 다만은 소소한 것에 매여 옳고그름과 나와 너를 가리는 분변으로 토닥거리며 볶지 말고 살라는 것...
깨달은 자란 세상을 버린자 아니요 세상을 바로보아 시비 선악의 흐름을 누리며 편안함을 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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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魯哀公問乎顔闔曰:「吾以仲尼爲貞幹,國其有瘳乎?」 曰:「殆哉急乎! 仲尼方且飾羽而畵,從事華辭,以支爲旨,忍性以視民而不知不信,受乎心,宰乎神,夫何足以上民! 彼且女與? 予頤與? 誤而可矣. 今使民離實學僞,非所以視民也,爲後世慮,不若休之. 難治也.」 노나라 애공이 안합에게 물었다:[공자를 대신으로 삼고자 하는데 그러면 나라가 다스려지겠습니까?] 안합이 말했다:[위태롭고 위험한 일입니다. 공자는 지금 새의 깃으로 장식을 하고도 채색을 더 하는 짓을 하고있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는 일을 하고 있으며, 지엽적인 것들로 주지를 삼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억제하는 눈으로 백성을 보며 그들을 제대로 알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대접받으려는 마음과 주재함을 근본으로 하니 어찌 백성들의 위에 설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같이 보듬고 갈수있을까? 오해만 살 뿐이지요. 지금 백성들에게 사실을 떠나 거짓됨을 배우게 한다면, 백성들을 살피는 방법이 못되는 것입니다. 후세를 위해 생각하신다면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생각이 그러면)다스리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공자란 사람은 진리인 달을 가리키기보다 자기의 설을 최고라 고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남을 위함보다 자기를 위함이 크다. 지도자란 남들을 진리 앞으로 끌어가는 사람이지 결코 제 걸 진리라고 강요하는 사람 아니다. 사람을 다스리고 살핀다 함은 뭘 가르쳐주고 답을 주는 것 아니라 그들이 진리에 맞닥뜨리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와중의 문제들을 같이 배우고 나누며... 세상의 이단이니 독선이니 소리듣는 사람이나 종파의 문제가 뭔가? "내 해석이 옳다"라는 자세 때문 아닌가? 유대인과 이슬람의 골깊은 원한이 뭔가? 서로 내가옳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몫이요. 믿는 자란 진리에 맞닥뜨리려는 사람일 뿐이다. 옳은 것을 잡는 경쟁이 깨우침의 자세 아니다. 예수나 부처가 성인 소리들음은 하나님을 만나도록 깨우고, 불법으로 진리를 보이려 애썼기 때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은 극구 싫다고 피하려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직면하도록 한 스토킹같은 설파 때문인가] 아님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리한 것일까? 십자가에 달고 말고는 사람들 몫... |
6. 施于人而不忘, 非天布也. 사람은 남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은혜를 잊지않기 바라는데 이는 하늘의 베풂과는 다른 것. 商賈不齒,雖以事齒之,神者弗齒. 장사치는 말뿐이지 치아를 팔진 않는다= 믿을 바 못된다. 그들은 말을 하지만 그말을 파는 것... 정신은 말에 있지않다. -사람은 뭔가를 하면 꼭 그 보답이나 답이 있기 바란다. 진리와 당면하여도 진리의 길로 따르지 않고 제 스스로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장사치들의 말은 듣기엔 그야말로 믿음직하다. 그러나 말을 팔아 돈을 구하는게 목적이니 가려보라... 입으로 만 가지 얘기한다손 쳐도 이미 그 마음엔 제 꿍꿍이가 있다. 진리를 살고 가없는 사랑을 베풀었으면 그저 거기까지로 그만 할 일... 내가 그를 진리의 바닷물을 마시게끔 하랴? 무거운 짐 든 할머니를 도와준다한들... 그저 정류장까지요 아님 택시태우는 데 까지 뿐... 그 가족을 몰라라하고 내가 모시고 살 순 없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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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孔子曰:「凡人心險於山川,難於知天.,川猶有春秋冬夏旦暮之期, 人者厚貌深情.故有貌愿而益,有長若不肖,有順懁而達,有堅而縵, 有緩而釬. 故其就義若渴者,其去義若熱.
공자가 말하길:[사람들의 마음이란 산천보다도 험난해서 자연에 대해 알기보다 어렵다. 자연에는 봄,여름,가을,겨울 및 아침, 저녁의 일정한 시간의 변화가 있으나 사람은 두터운 외모 속에 감정을 깊이 감추고 있다. 외모는 공손한 듯 보이면서도 마음으로는 더 바라는 사람이 있고, 외모는 건장한듯하나 쇠약한 자가 있고, 성급한 듯하나 통달한 이가 있고, 견실한 듯 하면서도 속으론 게으른 자가 있고, 느슨한 듯하나 꽉 짜인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목말라하듯 의로움을 찾던 이도 그 의를 떠날 땐 불같이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알기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본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천방지축 튀어나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에... 거기에 소위의 처신-자기를 부각하는-이 앞서니... 겉으로는 사양하나 속으론 더 바라고, 겉으론 굳세보이나 기실은 비루한 사람, 조급하고 안달하듯 하나 기실은 다 알고 있어 다음으로 빨리 넘어가려는 사람도 있고, 겉으론 성실한 듯하나 기실은 속으로 게으르고 미련하여 동작이 굼뜬 사람도 있고, 겉으론 무골호인이나 속이 꽉찬 사람도 있다. 의로움을 향한 열정이 목마름처럼 크던 사람도 연을 버릴 땐 그 열정만큼 단칼에 자르기도 한다.
故君子遠使之而觀其忠,近使之而觀其敬,煩使之而觀其能,卒然問焉而觀其知,急與之期而觀其信,委之以財而觀其仁,告之以危而觀其節,醉之以酒而觀其則,雜之以處而觀其色. 九徵至,不肖人得矣.」
그러므로 군자는 멀리 놓고 부리면서 충성됨을 살피고, 가까이 놓고 부리면서 공경함을 살피는 것이다. 그에게 번거로운 일을 시켜 능력을 살피고, 갑자기 질문함으로써 지혜를 살피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약속을 함으로써 신용을 살피고, 재물을 맡겨봄으로써 어짊을 살피는 것이다. 위태로움을 얘기해줌으로써 절의를 살피고, 술로 취하게 함으로써 그의 법도를 살피고 남녀가 섞여 지내게 함으로써 호색함의 정도를 살피는 것이다. 이 아홉 가지 시험을 다 마치면 못난 자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눈에 판단하고 받아들일 일 아니고 찬찬히 겪어 보아야 한다.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 아니라 찬찬히... 사람을 볼 땐 충,경,능,지,신,인,절,칙,색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데, 충성된 사람은 사람을 공경하는 법이요, 능력이 되는 사람은 지식이 있고, 재물 씀씀이를 보면 그 어진 마음의 정도를 알고 위태로움에 처해 하는 일을 보면 절개를 알 수 있고, 술에 취함을 보면 그 사람의 평시 사는 인생의 원칙을 알게되고, 남들과 어우러짐에 그 사람의 처신을 알 수 있다.
충성됨과 사람에의 공경심이 없는 이는 이기적이요, 능력과 앎이 부족한 이는 간사하며, 어짊과 절개가 없는 이는 비루하다. 만취하여 노는 모습을 보면 숨겨진 본바탕이 나오며 사람들과 섞어놓으면 난삽함이드러나는 법...
이기적이며 간사하며 비천한 사람은 군자로 칭하기 어려운 법. 술도 맘놓고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뭔가 구린 것이 있는 사람이요 긴장을 풀어놓으면 본 바탕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일뿐.
사람을 고를때 우선 버려야 할 사람은 이기적이요 간사하며 비천한 사람이며 그를 한번에 뚫어보는 법은 술자리를 갖고 긴장을 풀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
9.
正考父一命而傴,再命而僂,三命而俯,循牆而走,孰敢不軌! 如而夫者,一命而呂鉅,再命而於車上儛,三命而名諸父,孰協唐許!
정고부는 한 번 공직에 임명되자 허리를 굽히고, 대부로 임명되자 고개를 숙여 삼가고, 경에 오르자 몸을 굽히고 담장아래로 숨어다녔으니 누구든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 보통 사람들은 한번 공직에 오르면 몸을 뻣뻣이 거만한 태도를 지니고, 대부에 임명되면 수레 위에서 춤이라도 출 듯 멋대로 행동하고, 경에 임명되면 자기 아저씨들에게까지 이름을 부를 정도가 된다. 이들은 요임금이나 허유의 겸손한 태도에 합치될 수가 없는 것이다.
-중책을 맡을 수록 직위라는 겉껍질로 자기의 가치를 거들먹대지 말고 그 맡은 바를 잘 감당하려 할 일...
賊莫大乎德有心而心有睫,及其有睫也而內視,內視而敗矣, 凶德有五,中德爲首. 何謂中德? 中德也者,有以自好也而吡其所不爲者也. 窮有八極,達有三必,形有六府. 美髥長大壯麗勇敢,八者俱過人也,因以是窮. 緣循偃佒,困畏不若人,三者俱通達. 智慧外通,勇動多怨,仁義多責. 達生之情者傀,達於知者肖.,達大命者隨,達小命者遭.
아주 사악하다 함은 덕에 제 생각을 보태서라 제 생각이란 속눈썹이나 같아 그 속눈썹은 자신이 보지 못하니 보지 못하면 실패하는 법, 덕을 구미는 흉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중덕(中德)이 그 중에서도 첫째가는 것이다. 중덕이 무엇인가? 중덕이란 것은 자기 선호로 제 멋대로 자리를 정해 모든 것을 제 자리에 있지 못하게하는 것이다.
-사악함이란 덕에 제 뜻을 더하는 것... 제 뜻이란 속눈썹같아 알지 못하는 사이 덕을 제멋대로 농단하게 한다. 그런 농단하는 사람은 제 스스로 덕에 머문다하나 기실은 제 선호로 판단하여 하늘이 정한 자리를 어긋나게 하는 우를 저지른다. 덕이라 함은 도에 충만한 삶을 말한다. 도에 충만한 삶이란 하늘 정한 이치대로 사는 것... 그런데 제 선호를 붙여 하늘도리를 흩음은 많은 이로 하늘 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사악함이다.
곤궁함에는 8가지 넘침이있고, 처세가 능란함엔 3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며, 몸에는 6부가 있다. 아름답고, 멋진 수염, 키가 크고, 몸집이 크고, 힘이 세고, 멋있고, 용기있고, 과감한 이 여덟 가지가 모두 남보다 과하면 이것 때문에 궁해지는 것이다.
-남보다 넘치면 우쭐하기 십상이니 이런 이가 진리를 깨치기는 요원한 일... 진리를 모르니 만족함이 없어 마음이 곤궁한 사람...
인연에 매이고, 안락함만 바라 웅크리고, 두려워하여 남들처럼 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는 사람을 처세에 능하게 하는 것이다. 바깥 일을 구분하는 지혜는 있으되, 저만의 호기로운 행동은 많은 원망을 사게 되며, 저만의 어짊과 의로움엔 책임질 일이 많다(허물이 많다).
-진리를 찾기보다 그 험난함을 피해 인연에 매여 판단하고, 편안함만 바라고 나서지 않으며 두려워하여 남들 하는 일도 뒤로 물러서는 것이 곤란을 피하는 처세이니 하는 일마다 올바르지 못하다. 뒤로 물러서면 일신은 편안하나 진보는 없는 것...그저 세월에 끌려 나이먹어감이 사는 것인가?
사는 재주에 통달한 사람은 꼭두각시요, 그런 지식에 통달한 사람은 초라하다. 위대한 천명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자연을 따르며 자기의 작은 운명에만 통달한 사람은 그 자리에 맴돈다.
-사는 재주만 아는 사람은 제 생각이나 적극성이 없는 남이 하자는 대로 하며 남의 눈치나 헤아리는 꼭두각시요. 그런 지식만 가득한 사람은 뭔가 모자라다. 하늘도리를 알며 따라 사는 사람은 당당하나 제 앞가림이나 겨우 하는 사람은 그저 거기서 맴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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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或聘於莊子. 莊子應其使曰:「子見夫犧牛乎? 衣以文繡,食以芻菽,及其牽而入於大廟,雖欲爲孤犢,其可得乎!」
어떤 사람이 장자를 초빙하려 하자, 장자가 그의 사자에게 말하길:[당신은 제물로 쓰이는 소를 본 일이 있습니까? 무늬가 수놓인 옷을 입고, 좋은 풀과 콩을 먹으며 지내지만, 그 소가 태묘로 끌려 들어갈 때가 되면 비록 외로운 송아지가 되려한다 해도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늘도리를 따름이란 제 본성을 잃지말고 잘 살아내자는 것이다. 진리를 알면 세상에 우뚝서리라는 것은 하늘도리를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나쁜 일이듯, 진리를 진리되게 살지 못함도 옳지 않다. |
12,
莊子將死,弟子欲厚葬之. 莊子曰:「吾以天地爲棺槨,以日月爲連璧,星辰爲珠璣,萬物爲齎送. 吾葬具豈不備邪? 何以加此!」
장자의 임종이 가까워오자 제자들이 장례를 성대히 치르려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나는 하늘과 땅을 관짝삼고 해와 달을 함께 묻힐 구슬로 삼으며 별들을 진주와 보석으로 삼는다 세상만물이 다 같이하니 장례용품이 다 갖춰진 것 아니냐 또 무엇을 덧붙이리!]
-하늘도리로 살다 하늘로 돌아가는데 뭔 인간의 형식을 덧붙이나...
弟子曰:「吾恐烏鳶之食夫子也.」 莊子曰:「在上爲烏鳶食,在下爲螻蟻食,奪彼與此,何其偏也!」
제자들이 왈:[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뜯어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위쪽에 놓아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아래쪽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저쪽 것을 뺏아 이쪽에 주는 격이니 어째서 그리 편벽되게 생각을 하느냐?]
-그들도 본디 이 자연의 한부분 나라고 특별한가? 그런 분별이 예의라는 생각이 잘못이요 편벽함이다. 진리공부하는 이는 버릴 것 골라 버리는 "선택하는 사람" 아니라 "나"란 생각을 버리고 하늘도리에 하나되는 것...
以不平平,其平也不平.,以不徵徵,其徵也不徵. 明者唯爲之使,神者徵之. 夫明之不勝神也久矣,而愚者恃其所見入於人,其功外也,不亦悲乎!
공평함을 공평하지 못하게 하면 그건 공평하지 못한 것. 감응할 것에 감응치 않음은 그 감응이 제대로 된 감응아닌 것. 분명한 사람이란 오직 할 수 밖에 없는 일만 한다면, 신령스러운 사람이란 외물을 따라 감응해 나가는 것이다. 대저 분명함이 신령함을 이기지 못함은 예로부터 그래온 것.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이 본것에 의지해 인위적인 일에 빠져들어 간다. 그들의 애씀이란 모두 외적인 것들이니 또한 애석하지 아니한가?
-공평함을 말하며 그런 불공평을 만드니 인위요... 그저 뭘 잘알고 가린다는 사람이란 저가 세운 논리에 스스로 올무지워 사는것... 진실로 사는 사람은 그저 유연하게 사물에 되어가는 일에 반응하고 살아갈 뿐... 밝고 정확하되 전체를 아우러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