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則陽游於楚,夷節言之於王,王未之見,夷節歸.
칙양이 초나라를 여행하는데, 이절이 왕에게 일렀으나 왕이 만나주지 않았고 이절이 돌아갔더라.
彭陽見王果曰:「夫子何不譚我於王?」
팽양이 왕과를 만나 묻길:[당신은 어째 내 얘기를 왕에게 아니하오?]
王果曰:「我不若公閱休.」
왕과 왈:[전 공열휴만 못합니다]
彭陽曰:「公閱休奚爲者邪?」
팽양 왈:[공열휴는 어떤 분이지요?]
曰:「冬則擉鼈於江,夏則休乎山樊. 有過而問者,曰:'此予宅也.' 夫夷節已不能,而況我乎! 吾又不若夷節. 夫夷節之爲人也,无德而有知,不自許,以之神其交,固顚冥乎富貴之地,非相助以德,相助消也. 夫凍者假衣於春,暍者反冬乎冷風. 夫楚王之爲人也,形尊而嚴.,其於罪也,無赦如虎.,非夫佞人正德,其孰能橈焉!
답이:[겨울엔 강에서 자라잡고 여름엔 산속에서 쉽니다. 지나는 사람이 있어 물으면 :"이게 내집이요" 합디다. 무릇 이절이 해도 못할 일을 하물며 제가! 난 이절만 못하다오. 대저 이절의 사람됨은 덕은 없지만 지혜는 있지요, 스스로 자기란 걸 허용하지 않아 신명과 교류하니 그에 홀려 그 부요함에 사로잡혀있어 덕을 서로 돋우기보다 덕을 없애는 격이니 추위에 떠는 이가 봄을 기리며, 더위먹은 이가 겨울 찬바람을 돌아보는 격이지요. 대저 초왕의 사람됨이란 형식으로는 존중받기 좋아하고 엄하니 그게 죄라면 호랑이처럼 용서가 없어 무릇 간사한 말도 할 정도 그러나 덕이 바른 이 아니고는 누가 능히 그 뜻을 굽힐까요!
-공열휴의 깨달음이란 자기에게 엄해서 굳이 말하면 하나님 편이라 그에 취하여 서로 위로하고 따뜻함을 주기보단 혹독한 절제와 인내를 말하는 사람이라... 이런 깨침도 깨침이지요 덕있고 온후한 것 만이 깨친 이의 모습 아닙니다.
초왕의 사람됨이란 엄하고 존중받기 즐기는 자의식 강한 사람으로 이런 이에겐 이절과 같은 이의 깨침이 도움이 된다.
「故聖人,其窮也使家人忘其貧,其達也使王公忘爵祿而化卑. 其於物也,與之爲娛矣.,其於人也,樂物之通而保己焉.,故或不言而飮人以和,與人竝立而使人化. 父子之宜,彼其乎歸居,而一閒其所施. 其於人心者,若是其遠也. 故曰待公閱休.」
[그러므로 성인이란 그 무궁함을 따르는 자세로 식구들의 빈궁함을 잊게하고, 그 깨달음으로 왕과 귀족에게 그 작위가 비천히 여기도록 합니다. 사물에게는 그들에 어우러져 즐기고, 사람에게는 사물의 즐거움을 깨달아 자기를 지키니 그러므로 혹 말을 않아도 조화롭게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남들과 같이 처함으로 사람으로 뭔가 변하게 하지요. 부자의 의리랄까 저들의 그러함으로 돌아가 머물게 하여, 그저 하는 듯 안하는 듯하는 베풀고 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이래서 그리 심원하다. 그래서 공열휴에게 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성인이란 빈천하여 세속사에 매인 사람에게는 궁극의 진리를, 권력에 빠진 왕과 귀족들에겐 그 비천한 욕망을 일깨우게 하며, 사물에 대해서는 사심없이 대하고 사람을 대함엔 사물의 뜻을 알아 자기를 지키기만 하며 차분히 남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지요 때론 회초리 들고... 마치 父子의 의리랄까? 그런 것을 지닌 사람입니다.
嚴父慈母입니다. 사랑은 아비의 사랑 어미의 사랑 다 사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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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舊國舊都,望之暢然.,雖使丘陵草木之緡,入之者十九,猶之暢然. 況見見聞聞者也,以十仞之臺縣衆閒者也!
나 태어난 고향땅은 바라만 봐도 즐거운 것, 비록 구릉과 수풀이 무성해도 거기 들어서면 10에 아홉은 기쁨을 느낀다. 하물며 그 영화를 보고있는 자야 어떠하랴 10길 넘는 누대와 사람 가득찬 것을 보는 사람이야 얼마나 기쁘랴!
-다 허물어진 고향집 터만 봐도 고향을 느끼고 기꺼운데 당장 눈앞에 영화로움이 펼쳐지면 얼마나 기쁘랴? 삶속에 가려진 본성을 봄도 기쁘지만 그 본성대로 당장 살고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쁘랴?
冉相氏得其環中以隨成,與物无終无始,无幾无時. 日與物化者,一不化者也,闔嘗舍之! 夫師天而不得師天,與物皆殉,其以爲事也若之何? 夫聖人未始有天,未始有人,未始有始,未始有物,與世偕行而不替,所行之備而不洫,其合之也若之何? 湯得其司御門尹登恒爲之傅之,從師而不囿,得其隨成. <爲之司其名.,之名嬴法,得其兩見. 仲尼之盡慮,爲之傅之.> 容成氏曰:「除日无歲,无內无外.」
염상씨는 그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알아 깨우침을 이루었으니 만물은 시작도 끝도 없고 때나 기회가 없는 것. 스스로를 사물의 일부로 보는 사람은 변화의 와중에서 벗어난 사람이니 한 번 맛보시게! 하늘을 스승삼고자 해도 그러지 못함은 만물의 흐름에 치이기 때문 그러니 하는 일도 그런것 아니겠는가? 성인이란 하늘도 사람도 시작도 끝도 만물에 매이지 않아 만물과 함께해도 참람하지 않으니 그 하는 바가 잘 준비된 듯하여 분수에 넘치지 않음이라. 그 합하는 모습이 어떤가? 탕왕은 스승 사어,문윤,등항의 가르침을 입었으나 따르되 붙잡혀있지 않아 그로 깨침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이름을 얻고 법을 펼치도록 임명되었으니 그 둘을 깨친 것. 공자가 그를 극진히 사려하여 남겼으니> 용성씨 이르길:[날을 잊어 시간을 잊고 안을 없애 밖을 없이한다] 했다.
-염상씨는 만물의 이치를 알아 깨우쳤으니 무슨 때가 있고 시작이 있고 끝이란 분별이 있을까? 즉, 당장의 잡사에 치이는 사람들이여 만물의 그 변화함에 치이지 말고 변화함 속에 사시게... 당장의 고통도 기실은 그 변화 중 하나일뿐...벗으려 잊으려 애쓰지 말고 그저 누리시게...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것 좋은 시절을 얘기합니다만... 그는 우리가 좋고나쁨의 이원론에 갖힌 것... 생이란 그저 차고 더움이 번가르듯 생엔 만남과 이별이, 삶과 죽음이, 기쁨과 슬픔이 번가름도 자연의 법칙... 그런 걸 미움을 더한다고 바로잡아지나?
우리는 좋아하고 좋은 걸로만 살고 싶어한다. 좋은 것,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말 들으며... 어찌 인생을 그리만 살 수 있는가?
공연히 사물 그리된다고 미움 심지 말게...내 마음 조차 그리 끌려가지 말게... 그저 사람 아끼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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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長梧封人問子牢曰:「君爲政焉勿鹵莽,治民焉勿滅裂. 昔予爲禾,耕而鹵莽之,則其實亦鹵莽而報予.,芸而滅裂之,其實亦滅裂而報予. 予來年變齊,深其耕而孰耰之,其禾蘩以滋,予終年厭飧.」
장오에 책봉된 이가 자뢰에게 말하되:[군주된 자는 정치에서 단순하고 경솔하면 안되고 백성을 다스림에 가르고 나눠선 안되더군요. 제가 전에 벼를 심을때 밭갈기를 대충대충하였더니 그 소출역시 대충대충으로 나고 김매기도 산만히 하였더니 그 소출도 그러하더이다. 다음 해에 방식을 바꾸어 흙을 깊이 갈고 잘 부수어주니 벼가 무성히 자라 다음해에 물리도록 먹을수 있었지요]
-진리를 찾는 일이나 사람만나고 다루는 일이나 농사 짓는 일이 다 한가지입니다. 그저 설렁설렁 대충 거칠게 하면 그 결과도 그러한 것... 사람은 그저 매사에 정성을 다할 일입니다. 사람 하나를 만나도 그 사람 아니면 큰 일 날듯... 정성으로... 꽃을 키워도 그 꽃이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꽃으로 대해야 하는 법...
만약 되어진 결과가 이러하다면 내가 그리 대충대충 한 탓이지요. 콩심은 데 콩나는 법이듯... 뭔가가 잘못된 결과를 낸다면 그건 내가 그리해서 입니다. "사람이 허물없는 사람 어디있냐?" 라는 말은 남의 허물을 덮어줄 때 쓰는 말이고, 제 스스로 건성건성 띄엄띄엄 사는 자는 남들도 그리 대하는 법입니다.
莊子聞之曰:「今人之治其形,理其心,多有似封人之所謂,遁其天,離其性,滅其情,亡其神,以衆爲. 故鹵莽其性者,欲惡之孼,爲性 萑葦蒹葭,始萌以扶吾形,尋擢吾性.,竝潰漏發,不擇所出,漂疽疥癰,內熱溲膏是也.」
장자가 듣고 이르길:[오늘날 사람들은 제 한 몸 건사하고 마음 다스림에 이 사람 말하듯하는 사람이 많아서 하늘도리를 피하고, 제 본성을 떠나, 제 정기를 말리고, 그 정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많다. 고로 제 본성에 대해 경솔하고 거친 사람은 업보가 나빠져서 본성이 되고 갈대처럼 무성하고 산만하면 싹틀 땐 내 몸가짐에 도움줄 것 같아도 내 본성을 뽑아내어 고루 무너지고 새어나가 줄줄이 나갈뿐 그래서 온갖 더러운 것이 드러나고 마음의 열이 밖으로 나오는 것 조차 말라 비틀어지게 한다]
-뭇 대중들이란 그저 건성건성 서로 눙치고 눈감고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기에 큰 열매를 얻지 못한다. 자기에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함 보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기에 엄한 사람이 되어야 할 터...
사람들이 각박해짐은 제 속의 열을 내뱉어 식히지 못하여서라... 잘 먹고 잘 싸는 것만치 자연스러운 것 있으랴? 세상을 잘 살기위해 진리를 깨닫기 원한다면 먼저 저 지어진 본성, 즉 자신을 잘 알아야 하리... 저가 저를 모르며 정의를, 도덕을, 사랑을 알면 뭐한단 말인가? 빈집에 남이 들어와 주인행세하는 격이니 정작 저자신은 그런 생각들에 종노릇 밖에 더하나? 감당못하는 양심으로 저 자신 볶으며 사는 것이 과연 진리를 사는 삶인가? 자유한 삶인가? 되지도 않을 몇마디 주워들은 지식으로 남은 물론 저도 볶는 그런 짓 않아야 진리를 산다고 할 수 있다. |
7.
柏矩學於老聃,曰:「請之天下遊.」
백구가 노자에게 공부할 때 말하길:[세상을 돌아 볼까 합니다]
-이론으로 배운 것, 현실에도 맞는가 보려는 마음이지요.
老聃曰:「已矣! 天下猶是也.」
노자 말하길:[됐다! 천하가 별거냐 여기도 천하다]
又請之,老聃曰:「汝將何始?」
다시 청하니, 노자왈:[어디서부터 시작할 건데?]
曰:「始於齊.」
답이 :[제나라부터요]
至齊,見辜人焉,推而强之,解朝服而幕之,號天而哭之曰:「子乎子乎! 天下有大菑,子獨先離之,曰莫爲盜! 莫爲殺人! 榮辱立,然後覩所病.,貨財聚,然後覩所爭. 今立人之所病,聚人之所爭,窮困人之身使无休時,欲无至此,得乎!
제 나라에 이르러 처형된 시체를 보고 제 예복을 벗어 덮어주고 하늘에 곡하며 말하길:[이보시게 이보시게! 천하에 험한 꼴 많은데 당신 먼저 떠났구료 말하자면 도둑질했소! 살인했소! 영예와 치욕을 겪어야 병이 나고, 재물을 긁어야 다툼이 생기는 법. 제 몸 세우는 이가 병든 것이요, 사람 모으는 자가 싸움질하고, 끝없는 못 이룬 것에 대한 갈증이 사람의 몸으로 쉬질 못하게 하는데 이꼴을 당하지 않으려 한다고 그리될까?]
-죽은 이에 대한 애도 아닙니다. 그리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사에 대한 회억이지요. 어차피 사람이란 사는 동안 그런 영욕에, 재물에, 저 하나 잘나려는 욕심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법.
「古之君人者,以得爲在民,以失爲在己.,以正爲在民,以枉爲在己.,故一形有失其形者,退而自責. 今則不然. 匿爲物而過不識,大爲難而罪不敢,重爲任而罰不勝,遠其塗而誅不至. 民知力竭,則以僞繼之,日出多僞,士民安取不僞! 夫力不足則僞,知不足則欺,財不足則盜. 盜竊之行,於誰責而可乎?」
[옛날 임금된 자란 그 얻음을 백성들에게 두고, 잃음을 자기 탓으로, 바름을 백성들 덕으로 삐뚤어짐은 저 탓으로 했다. 그래서 하나라도 저가 제 본디 처신을 못하면 물러서 자기를 자책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러지 못하고 뒷전으로 도모하고 모르는 사람을 깐보며, 크게 어렵게 하고는 담당하지 못하는 자에게 죄를 묻고, 과중한 책임을 주곤 그를 이기지 못하는 이를 벌하고, 닿지못할 것을 못 닿았다고 험담한다. 사람들의 지혜가 다하게 되면 사사로운 계교를 들이대며, 날마다 거짓이 많아지면 세상사람들이 그런 허위에 속아가리! 감당 못하면 속이려들고,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일은 기만이요 재물이 여의치 않으니 도적질이라. 이런 도둑질이 행해짐을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
-옛 임금들은 그저 세상 허물 저가 안고 가려했건만... 이 즈음 권세있는 자들은 뒷꿍꿍이가 정치인 양 비밀스레 굴길 좋아하고 그에 동참치 않은 자를 업수이 여긴다. 저도 감당 못할 일을 남에게 구하곤 그를 빌미로 남을 깎아내는 짓거리가 횡행하고, 모자란 저가 계교를 들이대곤 하니 이런 것이 반복되면 너도나도 다 속아넘어가 종내 진리가 왜곡될 것... 그리되면 누굴 탓하리...
어느 하나라도 나서서 "아닌 걸 아니라" 얘기해야함에도 그런 험한 꼴 싫어 뒤로 빠지니.. 안타깝다.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사람이 사람 잡아먹는 세상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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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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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少知問於大公調曰:「何謂丘里之言?」 소지가 대공조에게 따져 묻길:[떠도는 말이란 뭔가요?] -'작은 지식'이 '크게 고른 이'에게 묻습니다. 온갖 말들이 떠돌고 그 말마다 옳은 듯 한까닭에... 이 모두가 진리 아닌가 싶어 뭐하나 버릴 것 없을 듯 하여... 大公調曰:「丘里者,合十姓百名而以爲風俗也,合異以爲同,散同以爲異. 今指馬之百體而不得馬,而馬係於前者,立其百體而謂之馬也. 是故丘山積卑而爲高,江河合小而爲大,大人合幷而爲公. 是以自外入者,有主而不執.,由中出者,有正而不距. 四時殊氣,天不賜,故歲成.,五官殊職,君不私,故國治.,文武殊能,大人不賜,故德備.,萬物殊理,道不私,故无名. 无名故无爲,無爲而无不爲. 時有終始,世有變化. 禍福淳淳,至有所拂者而有所宜.,自殉殊面,有所正者有所差. 比於大澤,百材皆度.,觀於大山,木石同壇. 此之謂丘里之言.」 대공조 이르길:[마을이란 열가지 다른 성씨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풍속을 이루니 서로 다름이 합하여 하나되고 같음이 흩어져 다름되는 것. 말을 백조각으로 나누고 말이라 하지 않듯 말이 전에 하나로 엮여있었으니 그를 연결하여 보며 백조각을 말이라 부르는 거요. 그러니 언덕이나 산이란 흙이 쌓여 높이 된 것이요 강이란 작은 시내들이 모여 큰 강 이룬것... 사람됨이 큰 것이 모여 공이 되는겁니다. 그러니 밖에서 들어 온 것은 이미 주인 됨이 있으니 고집할 일 아니며, 진심에서 난 것은 바름이 있으니 잣대 들이댈 일 아니지요. 사시사철 다름은 하늘 뜻이 치우치지 않음이니 세월이 쌓이는 것, 오관이 직책이 서로 다르지만 임금이 사사롭지 않아야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 문무가 그 할 일이 다르니 (문무를 겸비한)큰 사람은 치우치지 않아 덕을 갖추고, 만물의 이치가 저각각 달라도 진리가 사사롭지 않으니 뭐라 이름짓고 따지질 않는 것. 그런 가림이 없으니 딱히 뭘 할 것도 없고 안할 것도 없는 것. 시간이란 것이 시작과 끝을 두니 세상에 변화란 것이 생기는 법. 화와 복은 그만큼 씩이나 더바라고 덜바람이 있어 선을 긋게 되는 것, 스스로 그런 차이를 잘 알고 따르면 바르고도 차이를 알게 되는 것. 큰 못가에 비교하면 온갖 식물이 저마다 도수를 갖추고, 큰 산에 비유하면 나무와 바위가 같은 토대에 있는 것. 이를 떠도는 말이라한다!] -열가지 성씨란 다 배경도 본성도 다름을 말하지요, 그런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을을 이룸은 뭔가 서로 하나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게끔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살아가며 저 각각 생각이 상황이 달라 추구하는 것도 달라지고 그리하여 의견이 분분해지기 마련... 그러나 뭐에든 치우치지 않아서 저 각각 제 자리를 잘 균형맞춰 살아야지요. 사람들에겐 화와 복이 정확히 똑같이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읍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복은 더 받으려하고 화는 피하려하니 조정이 필요한 것... 큰 못가의 식생을 살펴보면 양지식물 음지식물 다 저마다 서로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 높은 산이란 것도 그저 바위로만 된 것 아니요 나무도 같이 어우러져 사는 것... 저 마다 저만 생각하며 떠드니 떠도는 말이 말을 만들어 그럴싸한 설을 만드는 법. 少知曰:「然則謂之道,足乎?」 大公調曰:「不然. 今計物之數,不止於萬,而期曰萬物者,以數之多者號而讀之也. 是故天地者,形之大者也.,陰陽者,氣之大者也.,道者爲之公. 因其大而號以讀之,則可也,已有之矣,乃將得比哉? 則若以斯辯,譬猶狗馬,其不及遠矣!」 소지 왈:[그럼 그걸 진리라 해도 맞는가요?] 대공조왈:[아니. 지금 만물의 수리를 다지면 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리 만물이라 말함은 그 수리가 많음을 불러 알기 쉽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란 그 형용함보다 더 크고, 음양이란 그 기운보다 더 크며 도란 그 공을 이루는 것이다. 그 큼을 불러 알기 쉽게 해서 알아 듣게 되는 것, 이미 있는 것 장차 견주어만 말할까? 즉 이리 분변하고 개와 말을 비유하면 그 진상을 알지 못하게 된다] -어쨌든 그 모두가 중요하다면 다 진리 아닌가요? 아니 그렇지 않다 만물이니 진리니 하는 형용은 그저 이름붙이기 어려운 것을 쉽게 가려보라고 이름지은 것 뿐... 눈에 안뵈는 만물의 작용이 얼마나 많은데... 나중에 이리 견주어 말하다 보면 결국 견백동이, 지록위마의 궤변이 나오게 되는 법... 때마다 다시 들여다 보고 그런 견줌을 벗어나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진리라 오해하면 달은 안중에 없어지듯... 우리가 부러 붙인 이름들을 가타부타 따지는 논리는 무의미하다... 다만 도라 부르든 덕이라 부르든 그 가리키는 실제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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