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 桑 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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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宇泰定者,發乎天光. 發乎天光者,人見其人,物見其物. 人有修者,乃今有恒.,有恒者,人舍之天助之. 人之所舍,謂之天民.,天之所助,謂之天子.
하늘의 큰 진리를 아는 자는 하늘 빛을 발하니 그 하늘 빛으로 사람은 그 사람됨을 알게되고 만물은 제 자리를 지키게 되네. 수련된 이는 항여하니 항여함은 사람에 매이지 않고 하늘이 돕는다. 사람에 연연하지 않는 이는 일컬어 하늘 사람이라하고. 그를 돕는 것을 하늘이라 부른다. 4.
學者,學其所不能學也.,行者,行其所不能行也.,辯者,辯其所不能辯也. 知止乎其所不能知,至矣.,若有不卽是者,天鈞敗之.
배움이란 배우기 어려운 것을 배우려 함이요. 실천이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하려는 것. 분별이란 구분되지 않는 그것을 분별하려함이다. 앎의 끝은 알지 못하는 것에 다다름이니 깨달음이라하고,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하늘의 고른 이치를 깨게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지요 그저 내 인생 꾸릴 정도의 배움만 있으면 된다. 그게 구차한 자기 변명이어선 안되지요. 어떤 이는 그를 넘어 진리를 살게끔 된 사람도 있지요. 진정 배운다 함은 궁극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도둑질도 예술의 경지가 있듯...
실천하는 사람이란 흔들리는 사람 아니지요. 남들이 다 '그깟걸 뭐하러 하냐 어려운 걸...' 그리 말하는 그것을 몸에 익혀 행하려는 사람입니다.
그저 띄엄띄엄 아는 것으로 인생 미봉하는 사람과는 다르지요. 토막토막 끊어진 정신줄을 하나로 주욱 이어가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마치 중세교회의 모자이크 처럼 그리 조각조각이지만 질서를 갖추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
기왕 여기까지 왔으면 끝을 봐야지요. 기독교에 그런 말이 있읍니다. 천사와 마귀는 한 끗 차이라고... 천사란 하나님의 진리를 보좌하는 존재지요 그러나 자기 판단이 개입하면 마귀되는 법. |
5.
備物以將形,藏不虞以生心,敬中以達彼,若是而萬惡至者,皆天也,而非人也,不足以滑成,不可內於靈臺. 靈臺者有持,而不知其所持,而不可持者也.
사물에 대비하여야 내 꼴갖춤이 되고 마음을 다스려 염려가 없어야 나라는 중심이 생기니 제 마음을 공경하여야 바깥 사물에 달관하게 된다 이리하여 모든 허물에 대해 그 끝을 알면 하늘에 이르니 사람의 것 아니다. 뭔가 부족하니 어지러워지고 마음에 중심이 가능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과 교통하는 자는 자기란 것을 갖는데 그게 뭔지 모르면서 유지할 수 없다.
-사물의 본질을 꿰고있어야 내 처신이 올바르고 내 마음에 염려나 근심이 없어야 남을 향한 마음이 열리고 그런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바깥에게도 달관할 수 있다. 이런 정도로 모든 허물까지 그 끝간데까지 다다라야 하늘 뜻에 이르고 사람의 한계를 벗을수 있다 모자라면 혼란되고 정신 줄이 잡히지 않는 법이다. 정신 줄이 뭔가를 지탱한다 하나 그게 뭔지 모르면 뭘 잡고 있을것인가?
敬中以達彼: 자기를 존경해야 외물에 달관한다는 말입니다. 말은 그럴싸하고 맞는 말인데 존경한다는 말이 뭔가요?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존경인가요? 그런 염려가 없어야 나라는 중심이 섭니다.
不見其誠己而發,每發而不當,業入而不舍,每更爲失. 爲不善乎顯明之中者,人得而誅之.,爲不善乎幽闇之中者,鬼得而誅之. 明乎人,明乎鬼者,然後能獨行.
자기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뭔가 하면 그 하는 것 모두가 당당하지 못하며 업이 끊이질 않고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최선(사물을 대비하고 자기를 존중하는)없는 이가 뭘 분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사람에게 얻는 것은 형벌이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며 음습한 마음이면 귀신이 형벌하리라. 사람에게나 귀신에게나 떳떳히 된 연후 스스로 섬이 가능하리라.
-자기 성실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앞에 당당하지 못하며 모든 것에서 실수가 나오기 마련 무엇보다 자기를 먼저 발견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노력없이 뭘 분별만 하면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고, 홀로 있어도 이런 노력않는 상태로 있으면 귀신 눈에도 나는 법.
愼獨이란 말이 있지요. 진짜 선비라면 홀로 있어도 의관 정제하고 늘 사람들 앞에 있듯 하라는... 아무도 안 본다고 망가지는 사람은 언젠가는 남앞에서도 망가지는 법 사람은 밖 공부 안공부 두루 되야 합니다. 그래야 獨行 스스로 섬이 가능하죠. 밖공부 많이 했으면 이젠 안공부해야지요.
券內者,行乎无名.,券外者,志乎期費. 行乎无名者,唯庸有光.,志乎期費者,唯賈人也,人見其跂,猶之魁然. 與物窮者,物入焉.,與物且者,其身之不能容,焉能容人! 不能容人者无親,无親者盡人. 兵莫憯於志,鏌鎁爲下.,寇莫大於陰陽,无所逃於天地之間. 非陰陽賊之,心則使之也.
자신을 중시하는 자는 행함에도 이름을 내지 않고, 바깥을 중시하는 자는 뜻부터가 뭔가 이득을 바란다. 행함에 이름내지 않는 자는 떳떳하여 빛이 나지만 이문을 좇는 이는 오직 장사치나 한가지라. 사람들이 뻔히 그 하는 짓을 아는데도 제가 우두머리인 줄 처신한다. 사물의 궁극을 구하면 사물이 내 안에 들어오며 사물에 끌려가는 이는 제 몸뚱이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사람을 다루지도 못한다! 사람을 다룰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없고 친구가 없는 이는 다 된 인간이다. 잔혹한 병사는 막야(명검)아래 있고, 음양의 이치를 도적질 함이니 천지지간 어디든 숨을 곳이 없다. 음양의 이치가 도적질하도록 하는 것 아니고 마음이 하는 짓이다.
-천박한 사람들의 병이 그겁니다. "내 하는 짓, 아는 것 다른 이들은 모를거라는 착각"... 참 중병이지요. 하늘이 알고 내가 알고 땅이 알면 다 아는 겁니다. 남들이 그저 '오냐 너도 인간이니...' 그러며 넘어가 줌을 모르고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기고만장 까부는 병 넌즈시 일러줘도 외려 분만 내지요.
그리 바깥에 매인 사람은 말에서부터 일관되지 못하지요. 뜻이 곧질 못하니... 제 몸도 제 것으로 다스리지 못하니... 남들 눈치봐서 이리저리 휩쓸려 살지요 아님 반대로 되지도 않을 똥고집이 자기 신념인 양 내세우고... 다른 이들과 같이 사는 법을 모르니 외롭고 볼 짱 다 본 사람으로 전락하지요.
사람들은 그리 말하지요 세상이 시계추 마냥 선과 악사이를 오가는데 나더러 어쩌라구... 그건 핑계지요. 사람들의 무지 뒤로 숨는 겁니다. 그 시계추 같은 음양을 빌미로 자기의 구차함을 숨겨선 진리 추구하는 태도 아닙니다. 음양의 오고가는 조화속이 일을 그르치는 것 아니고 그 오고감에 안주하는 내 마음이 병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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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古之人,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至矣,盡矣,弗可以加矣. 其次以爲有物矣,將以生爲喪也,以死爲反也,是以分已. 其次曰始无有,旣而有生,生俄而死.,以无有爲首,以生爲體,以死爲尻,孰知有无死生之一守者,吾與之爲友. 是三者雖異,公族也. 昭景也,著戴也,甲氏也,著封也,非一也. 옛사람이 있어 그 지혜가 지극한데 이르렀다. 지극함이 뭔가? 뭘 함에 만물을 구별함 이전에 있는 자라야 지극한 것이요 다함이요 더 이상 더할 것 없는 자라. 그 다음이 만물을 구별하는 사람이라 죽음으로나 돌아설 수 있으니 그게 그의 분수라. 그 다음이 무유를 말하는 자라 살아가다가 죽는자라. 무유를 으뜸으로 삼으며 생을 몸으로 살아내고 죽음이란 하챦아진 사람 누가 그런 생사의 하나됨을 지켜냄이 중요함을 안다면 난 그와 벗이 되리라. 이 세 경우는 달라보여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 소씨니 경씨니 나뉨은 모여사니 그리 되고 갑씨니 함은 봉토에 따름이니 하나되지 못하는 것. -깨달음이란 본디 모습은 무차별이며, 동시에 잘 가려 봄이며, 무유(있음에 매여 시비를 하는 것 아닌)로 중심잡음이다. 즉, 사람을 나눔에 있어 모여사는 모습, 그 사는 지역으로 사람이 구분하나 각 사람마다의 차이가 있는 법. 그러나 그 획일성과 개인의 개별성으로 사람을 판단할 것 아니라 생을 사랑하고 살아내며 죽음을 초월한 이가 있다면 그가 진리를 살 줄 아는 도반이지요... 有生,堷也,披然曰移是. 嘗言移是,非所言也. 雖然,不可知者也. 臘者之有膍胲,可散而不可散也.,觀室者周於寢廟,又適其偃焉,爲是擧移是. 請常言移是. 是以生爲本,以知爲師,因以乘是非.,果有名實,因以己爲質,使人以爲己節,因以死償節. 若然者,以用爲知,以不用爲愚,以徹爲名,以窮爲辱. 移是,今之人也,是蜩與學鳩同於同也. 살아있는 것은 묻히는 법 풀어헤치니 이리 옮겨지는 것. 옮김이란 것을 알자면 말로서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알 수 없지. 납기 제사 제물은 내장과 발톱까지 제물로 쓰는데, 나눠내도 되지만 나눠서는 안되는 것(온전한 제물을 훼손하는 것) 집을 구경하는 사람이 침실과 사당을 보지만 화장실까지 봐야 적절한 것 그래야 선악을 고루 볼 수 있다. 보통하는 말로 이 옮김을 말하면 지금 삶을 본으로 하고 지금 아는 걸 스승삼아 그로 시비를 가리는 것, 명분과 실리의 구별이 이로인해 생겨 자기란 것이 되니 그걸 기질이라하며 사람을 부리려하니 그 절차가 죽음으로 보답되리라. 이런 사람은 소용을 앎이 지혜요 소용안닿는 것을 어리석음이라하며 다스림을 명예라하고 궁핍함을 치욕이라 한다. 이런 옮겨감이 당대 사람들이니 매미가 비둘기를 알고 흉내내며 일부 같은 걸 전부 같다라 하는 격이다. -우리는 뭐든 좋은 것(?)을 택함이 옳다라 알지만 집을 보아도 좋은 것만 보다보면 정작 필요한 것이 걸림돌이 되는 법. 뭘 판단하기 전에 온전히 좋은 것 뿐 아니라 더럽다는 곳까지 전부 봐야하는 법. 이를 풀어 설명하면 항구한 진리가 아닌 당장의 삶으로 지식으로는 자신에게나 남에게 강요하기 십상이다. 그저 소용닿으면, 맘닿으면 진리요 아니면 진리 아니다라는 말하는 자는 남 위에 올라타기 즐기고 검소함을 외면한다. 이런 것을 매미나 비둘기가 날 수 있으니 같다고 같은 것이라는 것 만치나 희한한 왜곡이다. 역으로 이해하면 공중에 날아다닌다고 곤충인 매미가 조류인 비둘기가 같은 것이라는 궤변으로 '비슷하니 진리다' 하면 안된다. 참새나 매미가 날개 짓한다고 붕새와 격이 같은가? 소용에 따라 선별함이 언뜻보면 명쾌하지만 그 명쾌함이 진리의 본성 아니다. 진리란 양날의 칼과 같아 그 쓰는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를 보이고, 소위의 하늘에 드리는 제물도 깨끗한 부분만이 아닌 전체 더러운 내장이나 발굽까지 갖춘 온전함임을 모르나... 하나님은 등심만 따로 떼어 제사 지내라 한 적 없고... 온전히 다 드리면 냄새로 흠향한다 하셨으니... 고깃 점 떼어 먹는 것 아니고 그 삶의 가치를 본다는 말.... 더러운 걸 피하고 꺼리낌은 사람사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진리까지 시비를 가리고 제 판단으로 취사선택함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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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蹍市人之足,則辭以放鷔,兄則以嫗,大親則已矣. 故曰,至禮有不人,至義不物,至知不謀,至仁無親,至信辟金.
저자거리서 남의 발을 밟으면 즉시 사과하여 흉함 일을 떨쳐내나, 형이면 편하게 대하고, 아주 친하면 그저 지나간다. 그래서 이르길 지극한 예의는 사람을 가리지 않음에 있고, 지극한 옳음은 물건에 달린 것 아니요, 지극한 지혜는 음모하지 않으며 지극한 인은 딱히 친함이 없고 지극한 신뢰는 금전문제를 피한다.
-우리는 예의를 행함에 친소를 따진다. 예를 차리는 관계라면 상대를 믿지 못하는 것... 잘 알고 친하면 예라는 것이 중요치 않으며, 올바름이 뭘 행하거나 무언가 사물에 기준하는 것 아니라 자기 맘을 옳게 가짐이며 지극한 어짋은 굳이 친소(親疎)를 두지않고 모든 것에 진리의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며, 지극한 지혜는 저 안다고 모르는 자를 농단하거나, 뒷구멍으로 뭘 도모함아니다 그것은 지혜로움이 아니라 꾀일 뿐, 지극한 신뢰는 금전이라는 외물을 거치지 않고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를 행함에도 계산 속을 가짐을 본다. 인간의 예란 이와같은 것... 예를 잘차린다는 말은 외려 깊은 신뢰가 없는 것... 남을 믿지 못하고 저만 꾸미고 생각하는 것... 어린 아이가 아무나에게 웃고 장난함은 예가 없어서, 예의를 몰라서 아니라 그 안의 믿음이 큰 탓이다.
옳음, 정의는 바깥 사물이 결정하는 것 아니라 내 자신이 옳음을 추구함이 지극한 옳음을 사는 태도이다. 호랑이가 사슴을 찢는다고 호랑이는 틀리고 사슴은 옳은가? 그것은 내 감정의 개입일 뿐... 호랑이에게도 배고플 때 아니면 살생을 않는 의가 있음은 모르는 가 아님 외면하는가? 이런 일도양단의 생각이 외려 참 올바름을 가리는 걸 모르나?
어진 이란 누구에게나 잘 대하는 사람 아니라 누구에게나 진리로 대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역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꾸중하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사랑이란 감정으로 남에게 잘하는 것 아니라 진리의 눈으로 잘 잘못을 가려 대할 줄 알아야 진짜 어진 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라도 옳은 것에는 기꺼이 박수할 줄 아는 이가 어진 이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른 것을 그르다 할 줄 알아야 어진 이다.
지혜를 깨달은 자는 자기 꾀를 과신하고 함부로 쓰는 자 아니라 그 지혜를 씀에 어려워하고 늘 "하나님이 이 자리 이 경우를 당하시면 어쩌실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지혜의 지극함을 깨달은 자다. 자기 꾀로 뒷 전에서 음모를 꾸미는 자는 일단은 지혜로운 자 아니라 사특한 마귀와 같은 사람이다.
신뢰란 돈으로 살 수 없고, 신뢰란 무엇을 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아니다. 신뢰란 그저 같이 죽을 고생을 견뎌냄으로 생겨난다. 즉 두 사람 앞의 고난은 신뢰를 쌓을 좋은 기회인 것... 그를 모르고 고통을 가져왔다고 상대를 비난하거나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는 자는 신뢰를 업수이 여기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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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一雀適羿,羿必得之,威也.,以天下爲之籠,則雀無所逃. 是故湯以胞人籠伊尹,秦穆公以五羊之皮籠百里奚. 是故非以其所好籠之而可得者,無有也.
한마리 참새라도 예를 만나면 예가 반드시 그를 잡을 것이니 두려울 것이다. 천하를 조롱 삼으면 참새가 도망칠 곳이 없지않나. 탕왕은 이윤을 포인을 써서 붙잡았고 진 나라 목공은 다섯장의 양피로 백리해를 붙들어 두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으로 미끼삼지 않고 얻음은 무유다.
-좋아하는 것으로 미끼삼지 않고 얻음은 무유라는 말은 뭔 대가가 아닌 참됨으로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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