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田子方侍坐於魏文侯,數稱谿工.
전자방이 위나라 문후와 함게 자리했는데 누차 계공의 얘기를 하더라.
文侯曰:「谿工,子之師邪?」
문후가 묻길:[계공이 당신의 스승인가요?]
子方曰:「非也,无擇之里人也.,稱道數當,故无擇稱之.」
자방이 이르길:[아니요. 그냥 동네 사람이지요. 도리가 합당하니 그저 얘기하는 겁니다]
文侯曰:「然則子无師邪?」
문후 왈:[그럼 스승이 따로 없으신가요?]
子方曰:「有.」
자방이 말하길:[있지요]
曰:「子之師誰邪?」
묻길:[스승이 누구신데요?]
子方曰:「東郭順子.」
자방 왈: [동곽의 순자입니다]
文侯曰:「然則夫子何故未嘗稱之?」
문후 묻길:[그럼 왜 그대는 스승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합니까?]
子方曰:「其爲人也眞,人貌而天虛,緣而葆眞,淸而容物. 物無道,正容以悟之,使人之意也消. 无擇何足以稱之!」
자방 왈:[그 사람됨이 진실하고, 사는 모습이 하늘의 비임과 같고 인연을 진실히 쌓으며 맑아서 만물을 포용하지요. 만물이 무도함에도 안색을 바로하여 깨달으며 사람의 생각을 잘라내지요. 그러니 뭐라 칭할 말을 고를 수 없지요.]
-일단 남을 가르침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있는 것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만약 문후가 직접 동곽 순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그러겠지요. 그런 사람은 인간세엔 없다고... 즉, 전자방은 문후가 들을 귀 있는 만큼의 예를 들어준거지요.
지극한 진리를 그저 던져준다고 덥석 받아들 그릇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니 전하는 자는 그저 그릇에 맞추어 전할 따름이지요.
지극한 진리를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허약한 우리의 자기 위로요 합리화 일 뿐....
子方出,文侯儻然終日不言,召前立臣而語之曰:「遠矣,全德之君子! 始吾以聖知之言仁義之行爲至矣,吾聞子方之師,吾形解而不欲動,口鉗而不欲言. 吾所學者直土梗耳,夫魏眞爲我累耳!」
자방이 나가고 난후 문후가 갑자기 말없이 종일 앉았더라, 신하를 불러 말하길:[멀고도 멀구나 온전히 덕을 가진 군자되기란! 처음에 난 성인과 지혜자의 가르침과 인의를 따름이 깨달음인 줄 알았더니 내 자방의 스승 얘기를 들으니 내 그간의 몸닦음이 허물어져 더욕구도 없고 입이 다물어저 뭔 말을 할 수 없구나. 내 여적 공부한 것은 맨바닥의 병폐들이니 대저 위나라에서 진리란 것은 내게 하나의 업보나 같구나.
-문후 역시 난 사람이나... 스스로 고백하거니와 그저 성인이나 지혜자의 말을 기억하고 알 따름이지 그저 하늘 사람으로 살지는 못하는 거지요. 세상 것 많이 안다고 진리를 아는 것 아닙니다. 아는 것을 살아내야지요.
하늘 사람은 사람됨이 진실함에서 부터 시작하고, 작은 인연도 귀히 진실되게 만나며, 청아하여 그저 모든 걸 포용하지요. 만물에 진리가 없다고 하지않고 바로 보고 깨달으려하며 사람들의 의지를 지워내지요. 다만 알만한 사람이라면 전할 뿐...
계공은 눈에 뵈는 문후의 스승감이요 동곽 순자는 전자방 같은 이의 스승이지요. 전자방은 현인 중 하나요... 눈이 떠야 스승도 만나지요.
진리는 들으려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줄 아는 겸허한 이에게나 주어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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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顔淵問於仲尼曰:「夫子步亦步,夫子趨亦趨,夫子馳亦馳.,夫子奔逸絶塵,而回瞠若乎後矣!」
안연이 공자에게 묻길;[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립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먼지도 내지않고 달려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습니다.]
仲尼曰:「回,何謂邪?」
공자 말하길:[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曰:「夫子步,亦步也.,夫子言,亦言也.,夫子趨,亦趨也.,夫子辯,亦辯也.,夫子馳,亦馳也.,夫子言道,回亦言道也.,及奔逸絶塵而回瞠若乎後者,夫子不言而信,不比而周,无器而民滔乎前,而不知所以然而已矣.」
안회가 대답하길:[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도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이론을 펴시면 저도 이론을 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린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도를 말씀하시면 저도 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지도 내지않고 달려가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다는 말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남에게 믿음을 받고, 남과 친하려 하지 않으셔도 남들이 친하게 따르고, 벼슬이나 권력이 없어도 백성들이 굴복해 오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仲尼曰:「惡! 可不察與! 夫哀莫大於心死,而人死亦次之. 日出東方而入於西極,萬物莫不比方,有首有趾者,待是而後成功,是出則存,是入則亡. 萬物亦然,有待也而死,有待也而生. 吾一受其成形,而不化以待盡,效物而動,日夜无隙,而不知其所終.,薰然其成形,知命不能規乎其前,丘以是日徂.]
「吾終身與汝交一臂而失之,可不哀與! 女殆著乎吾所以著也. 彼已盡矣,而女求之以爲有,是求馬於唐肆也. 吾服女也甚忘,女服吾也亦甚忘. 雖然,女奚患焉! 雖忘乎故吾,吾有不忘者存.」
공자가 말하길:[틀렸다! 잘 봐라! 슬픔 중에 믿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 사람의 죽음은 그 다음 가는 슬픔이다.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들어가는데 만물은 모두가 이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눈이 있고 발이 있는 사람들은 해를 기다렸다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세상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세상일도 그치는 것이다. 만물도 역시 그러니, 그것에 의해 죽기도 하고 그것에 의해 살기도 한다. 우리는 한번 형체를 타고난 이상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고 그 다함을 기다릴뿐 만물이 움직임을 따르라. 낮이나 밤이나 빈틈없으니 그것이 끝나는 곳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교훈을 얻으니 형을 닦아가는 것 제 운명을 아는 것도 그 앞에선 기준이될 수 없다. 난 이를 따를 뿐이다]
[내가 평생토록 너와 어깨를 맞대고 지낸다 해도 결국은 서로를 잃게 될 것이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드러나 보이는 나의 겉의 것을 그대로 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텅 빈 시장에 가서 말을 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무엇을 걱정하느냐? 비록 옛날의 나를 잊어버린다 해도 나에게는 언제나 잊혀질 수 없는 참된 나도 그 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잘 고를 안목이 설 때까진 뭘 알아도 제대로 아는 것 아닙니다. 내 눈이 틔여야 가려보고 진리를 살아갈 능력이 생기게 되지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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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百里奚爵祿不入於心,故飯牛而牛肥,使秦穆公忘其賤,與之政也. 有虞氏死生不入於心,故足以動人.
백리해는 벼슬에 뜻이없어 소나 키우며 사는데 진나라 목공은 그의 천한 위치를 괘념치 않고 정치를 같이했다. 유우씨는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아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명예나 물욕을 벗어야만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재목이요, 생사를 초월한 사람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법... 여기서 유우씨는 요순의 순임금이고 요순 시대까지는 하늘 진리가 살아있던 시대고.... 7.
宋元君將畵圖,衆史皆至,受揖而立.,舐筆和墨,在外者半. 有一史後至者,儃儃然不趨,受揖不立,因之舍. 公使人視之,則解衣般礴臝. 君曰:「可矣,是眞畵者也.」
송나라 원군이 그림을 그리려는데 사가들이 떼로 몰려들어 시립하여 붓을 먹물에 적시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자가 반이라. 사가 한 명이 뒤에 왔는데 천천히 재촉하지 않고 시립하지 않고 사양하더라. 원군이 사람을 시켜 살피게하니 너럭바위에 옷을 풀어헤치고 활개뻗고 있더라. 원군 왈:[좋도다. 그가 진짜 그림장이로다]
*사가들이 모여서 그리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전쟁 전략이요 정치의 비젼이지요.
-그저 무리에 들어 다투지 않고 그저 쓰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이가 초연함을 사는 이... 진리를 사는 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름내기도 돈 벌기도 떠나 주어진 진리 그 자체를 음미하며 살기에도 바쁜 이... 그런이는 범상하지 않지요 그러니 이상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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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肩吾問於孫叔敖曰:「子三爲令尹而不榮華,三去之而无憂色. 吾始也疑子,今視者之鼻間栩栩然,子之用心獨奈何?」
견오가 손숙오에게 묻길:[당신이 3번을 초나라의 영윤으로 지냈어도 영화로 알지않고 떠날때마다 근심어린 기색을 않으시는군요. 내 처음엔 그대를 의심했으나 지금 보니 얼굴이 황홀한듯 합니다 어찌하면 마음을 그리 다스리는지요?]
孫叔敖曰:「吾何以過人哉! 吾以其來不可却也,其去不可止也,吾以爲得失之非我也,而无憂色而已矣. 我何以過人哉! 且不知其在彼乎,其在我乎? 其在彼邪? 亡乎我.,在我邪? 亡乎彼. 方將躊躇,方將四顧,何暇至乎人貴人賤哉!」
손숙오가 답하길:[내 어찌 뛰어난 사람이리요! 난 그저 오는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잡을 수 없다 생각하지요 또 득실의 문제에선 그건 내 것 아니라 여기니 근심할 일이 없더군요. 나란 존재도 그저 사람이지요! 나란 것이 벼슬에 따르는지 내게 있는지도 모르니 그게 나의 마음에 있을까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걸까요? 내게 없으면 그들에게 있나요? 그들에게도 없다면 주저할 것이요 사위를 돌아 볼 것이니 어느 틈에 사람의 귀천을 따질까요!]
-대신을 지내면서도 그저 심상하게 "오는 것이니 감당하고 가는 것이니 마음 비우며 득실의 문제에선 그저 내 것 아니라"고 여기는 화통한 마음가짐이 있어야지요.
나라는 것이 그들이 본 것이 나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인가요? 그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귀천을 따질 틈 있나요? 아니 내가 귀한지 천한지도 모르는 판에 남을 귀하다 천하다 할 기준이나 있나요? 그저 하나님이 주셨거니 다만 나 할도리하기도 바쁜데... 귀천을 가리지 않으니 초연하게 살 수 있는거지요.
仲尼聞之曰:「古之眞人,知者不得說,美人不得濫,盜人不得劫,伏戱黃帝不得友. 死生亦大矣,而无變乎己,況爵祿乎! 若然者,其神經乎大山而无介,入乎淵泉而不濡,處卑細而不憊,充滿天地,旣以與人,己愈有.」
공자가 듣고 말하길:[옛날 깨친 이는 지혜자라도 설득할 수 없고 미인이라도 유혹하지 못하고 도둑이라도 상치 못했고 복희 황제씨도 벗하지 못했다. 생사의 문제가 크긴 하나 그를 흔들지 못했는데 하물며 벼슬쯤이야! 이와 같은 이는 정신이 큰 산이라도 끼어들 틈이 없고 깊은 샘에 빠져도 젖지 않으며 비천한 자리에 처해도 약해지지 않으니 천지를 가득채우며 이미 사람들과 함께하니 뛰어남이 있는 법.]
-眞人이란 참 사람이요 진리중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저 하늘 그대로를 닮아 누구의 편이 되거나 적이 되지않는 3자의 입지로 살고 벼슬이니 뭐니 바깥 명칭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저 사람들 속에서 묻혀 살아내는 법... 구름타고 신선놀음하는 것이 참사람 아니요 진리 사는 것 아니지요.
사람들 속에 살되 초연함이 갖춰진 사람 그게 참 사람입니다. 초연함이란 말그대로 오는것 가는것 막고잡지않으며, 이해득실에서 한 발 떠난 사람이 초연한 것... 뭐에들 끼어들고 나를 욺켜쥐고 있음은 초연함 아니지요.
만나지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주시는 것으로 알고 품어안을 줄 알고, 만남에 그를 나를 향한 선물로 보는 것 아니라 내가 그에게 선물임을 알고 그에게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 줄 알며 그에게 필요한 것 다 내어주고 떠나가더라도 아쉬워 않으면 그가 하나님 사람입니다. 11.
楚王與凡君坐,少焉,楚王左右曰凡亡者三. 凡君曰:「凡之亡也,不足以喪吾存. 夫凡之亡不足以喪吾存,則楚之存不足以存存. 由是觀之,則凡未始亡而楚未始存也.」
초왕이 범나라 왕과 자리했는데 초왕의 신하들이 범나라가 망한 나라라고 3번을 말하더라. 범나라 임금이 이르길:[범나라의 망함이 내 존재를 상하기엔 부족하다. 그리 말한다면 초나라가 존재한다는 것도 존재라는 걸 말하기에 부족한 것. 이를 잘 보면 범나라가 망하기 시작하여 초나라가 있게된 것이나 마찬가지]
-왕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신하들이 그러지요 범나라 왕이면 나라가 있어야 왕도 있으니 나라가 망하면 왕도 아니지 않느냐? 도대체 왕은 왕이전에 사람 아닌가요? 왕은 왕만 친구하나요? 이렇듯 외연에 매이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나요?
사람을 껍질말고 그대로 볼 때 그 사람이 참 사람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