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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남화경

山 木

山    木


1.

 

莊子行於山中,見大木,枝葉盛茂,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 問其故,曰:「无所可用.」 莊子曰:「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

 

장자가 산길을 가다가 큰 나무를 보았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한데 나무베는 이가 그저 방관하며 벨 생각을 않더라. 그 연유를 물으니 왈:[소용닿는데가 없읍니다] 장자가 이르길:[이 나무는 재목거리가 아니어 천년을 사는구나]

 

-나무가 올곧고 튼실하면 기둥거리로든 뭐로든 선택될 겁니다. 그저 재목감이지요 사람집지을... 그러나 당산나무가 그렇듯 넓게 퍼지고 가지하나 올곧지 못함은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세상 사람의 소용에 닿으면 쓰임은 받을지 모르나 다른 용도 본디의 용도로는 살아남지 못하지요.

 

出於山,舍於故人之家. 故人喜,命豎子殺雁而烹之. 豎子請曰:「其一能鳴,其一不能鳴,請奚殺?」 主人曰:「殺不能鳴者.」

 

산을 벗어나 지인의 집에 머무는데 지인이 기뻐 일하는 아이에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했다. 아이가 청하여 묻길:[한 놈은 울고 한 놈은 울지않습니다 어떤 놈을 잡을까요?] 주인 왈:[울지 않는 놈으로 잡아라]

 

明日,弟子問於莊子曰:「昨日山中之木,以不材得終其天年.,今主人之雁,以不材死.,先生將何處?」

 

다음날 제자가 장자에게 묻기를:[일전에 산속의 나무는 재목감이 아니어 천년을 산다하셨읍니다. 지금 거위의 경우엔 쓸모있는 재목감이 아니어 죽임을 당합니다, 스승님은 어찌 처신하시렵니까?]

 

-아시나요 거위가 개보다 집을 더 잘지킨다는 사실? 낯선이에게 운다는 사실? 개는 고깃덩어리 주면 그에 정신 팔리지만 거위는 그러지 않다는 걸? 본디 살생의 본성을 가진 이는 정신줄 잘 놓아버립니다.

 

莊子笑曰:「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 材與不材之間,似之而非也,故未免乎累. 若夫乘道德而浮遊則不然. 无譽无訾,一龍一蛇,與時俱化,而无肯專爲.,一上一下,以和爲量,浮遊乎萬物之祖.,物物而不物於物,則胡可得而累邪! 此神農黃帝之法則也. 若夫萬物之情,人倫之傳,則不然. 合則離,成則毁.,廉則挫,尊則議,有爲則虧,賢則謀,不肖則欺,胡可得而必乎哉! 悲夫! 弟子志之,其唯道德之鄕乎!」

 

장자가 웃으며 말하길:[난 재목감과 재목감 아닌 중간자리나 할라네. 재목감과 아닌 것의 중간이라 함은 비슷하나 다른 것... 그러니 화를 면하지 않을까. 대저 사람들이 따르는 도덕이 흔들리면 그렇지 못하겠지만... 명예나 비방을 떠나 한 번은 용이 되고 한 번은 뱀이 되어 그저 시류에 맞춰 변할것이니 한가지 일만 매달릴 일 없지. 한 번은 오르고 한 번은 내리며 그 요량을 맞추고 만물의 근본으로 그저 떠돌겠네. 사물이 사물이되 그 사물됨을 벗어나니 어찌 재목감이 되리! 이게 신농 황제씨의 법칙이라. 대저 만물의 돌아가는 이치나 인륜은 그렇지 않은 법으로 만나면 헤어지고, 이뤄지면 부서지고, 청렴하면 꺾이고, 높아지면 책잡히고, 뭔가를 하면 배신당하고, 현명하면 음모에 말리고, 같지않으면 업신여김당하니 어찌 재목감이 되야만 하리! 제자는 의지가 있으니 도덕이 살아나리!]

 

어울렁 더울렁 저 하나 잘 사는 보신책을 말하는 걸로 보이는가? 

그런 뜻 아니고 여기선 굳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스펙 자랑 아무리 한들, 사람 속내가 깊지않으면 팽 당하는 법... 

고로 깨친 이란 나서지 말라라는 것 아니라 경솔하지 말라는 거지요.


2. 

市南宜僚見魯侯,魯侯有憂色. 市南子曰:「君有憂色,何也?」 
魯侯曰:「吾學先王之道,修先君之業.,吾敬鬼尊賢,親而行之,无須臾離居,然不免於患,吾是以憂.」 

시남의료가 노나라 제후를 만났는데 제후가 걱정어린 기색이더라. 시남자가 묻길:[왕이시여 걱정거리 있는듯합니다 뭔지요?] 노나라 제후 왈:[내 선왕들의 도리를 공부했고 선대 임금들의 업적을 따라 수련했고, 귀신을 잘대해줬고 어진이를 존중하며 그리 행함에 잠시도 다른 짓하지 않았읍니다만 우환을 면치 못하니 이게 제 걱정입니다] 

-왕이라고 근심이 없나요? 가난한 사람이라고 늘 근심만 하나요? 사람사는 동안 근심없이 사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여기서 왕다움, 왕 됨 만을 공부한 사람의 얘기를 봅니다. 목사됨 목사다움만 공부한 사람은 먹사될 가능성 많지요. 먼저 제 사람됨을 공부하지 않은고로... 그러기에 근심을 벗지 못하는 겁니다. 

市南子曰:「君之除患之術淺矣! 夫豊狐文豹,棲於山林,伏於巖穴,靜也.,夜行晝居,戒也,雖飢渴隱約,猶且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定也.,然且不免於罔羅機辟之患. 是何罪之有哉? 其皮爲之災也. 今魯國獨非君之皮邪? 吾願君刳形去皮,洒心去欲,而遊於无人之野. 南越有邑焉,名爲建德之國. 其民愚而朴,少私而寡欲.,知作而不知藏,與而不求其報.,不知義之所適,不知禮之所將.,猖狂妄行,乃蹈乎大方.,其生可樂,其死可藏. 吾願君去國捐俗,與道相輔而行.」 

시남자가 말하길:[왕이 우환을 제거하는 방법이 얕은 꾀인 탓입니다! 살찐 여우와 무늬를 지닌 표범이 숲속에 살면서 동굴에 웅크리고 있음은 고요함입니다. 밤에 돌아다니고 낮에 쉼은 게율입니다. 비록 배고프고 목말라도 멀리 나가 음식을 구함은 안정을 추구함이지요 그래서 그물에 잡히는 걱정을 더는 겁니다. 이게 뭔 죄라 그런가요? 다만 그 가죽이 재앙이지요. 지금 노나라가 임금님의 가죽일까요? 제 바라기는 임금이란 체통을 잘라내고 껍데기를 벗으시면 합니다, 술에 취하면 욕심이 사라져 아무도 없는 들판을 돌아다님과 같듯 말입니다. 

남쪽 월나라에 마을들이 있지요 이르길 덕으로 세워진 나라라 합니다. 백성들은 어리석어 순박하며 삿됨이 적으니 욕심도 적고 일할 줄 만 알지 갈무리하는 걸 모릅니다 뭘하든 대가를 바라지 않지요. 올바름이란걸 따로 세우질 않으니 모두 적절하고 예의라고 할 걸 세우지 않아 그저 멋대로 행하듯 하지만 하는 짓이 하늘도리에 맞지요. 그 삶이 즐겁고 그 죽음이란 그저 죽음일 뿐이지요. 제 바라기는 임금님이 나라를 버리고 속됨을 덜어내셔서 하늘 도리가 보우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전혀 엉뚱한 것에서 찾지요. 그러니 걱정을 덜려는 것도 얕은 꾀일 뿐이지요 내 고민이 사라지려면 뭐를 해야하는 지 모르는 겁니다. 여기 여우니 표범이니 하는 짐승들이 어째 굴 속에 살며 야음을 틈타 움직일까요? 본디 성격일까요? 그리 하나님이 살라고 정하신건가요? 아니지요 인간의 탐욕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 숨게 만든겁니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이 탐심을 지움이 정답이지요. 하나님 탓, 누구 탓 할 것 아니라... 

그들이 숨게된 것은 그 가죽이 문제지요 그렇다고 홀딱 가죽 벗겨놓으면 살수 있을까요? 그들의 가죽을 탐내는 무리가 문제인 겁니다. 그걸 그들 탓하면 불가한 애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의 문제지요.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기심의 문제입니다. 생명존중 이전에 욕심을 버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벗을 수 있는 것이 있지요. 이 글에선 왕의 자리... 그걸 놓지못하며 걱정하는 자신을 아무리 아파한 들 걱정거리가 없어질까요? 그 자리가 바로 문제를 안고있는 자리인데? 

남방 월국이란 나라는 미개한 나라라 합니다 문명이란 눈에서 본다면... 그러나 역으로 하나님 본디 지으신 모습을 아직 간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겁니다. 

하늘 원래 지으신 사람의 삶이란 其民愚而朴:어리석은듯 순박하며 ,少私而寡欲 자기란 걸 모르니 욕심도없고.,知作而不知藏 열심히 일할 줄만 알지 감춰둘 줄 모르며 與而不求其報 그러니 보답이니 뭐니 바라지 않고 그저 나눠 쓸 따름이요 不知義之所適,不知禮之所將., 정의니 예의니 격식을 세우지 않아 猖狂妄行 그저 날뛰는 듯 보이나 乃蹈乎大方 사방이 트임과 같이 분방하며 .,其生可樂,其死可藏 살때는 즐겁게 죽을 때 그저 죽음으로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 원래 세운 사람 삶이지요. 

君曰:「彼其道遠而險,又有江山,我无舟車,奈何?」 

임금이 말하길:[그 경지까지 멀기도하고 험하기도 하며 가는 길에 산도 물도 있는데 난 배도 수레도 없으니 어찌해야하나?] 

-먼 길 떠나는 사람은 채비를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여정을 떠나는 사람은 단 하나만 준비하면 되지요 

市南子曰:「君无形倨,无留居,以爲君車.」 

시남자 말하길:[임금님으로 체통 차림을 없애고, 안주하지말고 떠나심을 임금님의 수레로 삼으시지요] 

-격식을 벗어버리고, 안주하려는 마음을 그저 세상 빌려사는 나그네로 정하시면 됩니다. 

君曰:「彼其道幽遠而无人.吾誰與爲鄰.吾无糧,我无食,安得而至焉?」 

임금이 말하길:[저들의 길이란 멀기만하고 사람이 없으니 내 무엇으로 벗하리. 내 먹을 것도 없고 먹지도 못하니 그 곳에 이를 수 있나?] 

-세상에 매인 사람의 걱정이지요... 아직도 탈 것, 먹을 것 따짐이란 아직도 격식 따짐이죠. 격식이나 따지는 이와는 진리에 관해 할 애기 적지요. 아직 인간이 세운 틀에나 매여있으니... 

市南子曰:「少君之費,寡君之欲,雖无糧而乃足. 君其涉於江而浮於海,望之而不見其崖,愈往而不知其所窮. 送君者皆自崖而反,君自此遠矣! 故有人者累,見有於人者憂. 故堯非有人,非見有於人也. 吾願去君之累,除君之憂,而獨與道遊於大莫之國. 方舟而濟於河,有虛船來觸舟,雖有惼心之人不怒.,有一人在其上,則呼張歙之.,一呼而不聞,再呼而不聞,於是三呼邪,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其孰能害之!」 

시남자가 말하길:[비용을 줄이시고 욕심을 적게하시면 식량이 없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님이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며 바라보아도 물가가 뵈지않으면 점차로 그 부족함을 잊을겁니다. 왜? 배웅하는 이들은 이미 돌아갔고 임금은 이미 멀리 와있으니! 그래서 사람이 있으면 문제요 사람들이 있음을 보니 걱정인겁니다. 그래서 요임금은 사람을 두지않고 사람을 찾지않았읍니다. 제 바라기는 임금으로서의 것들을 떠나보내시고 임금으로서의 걱정을 없애어 홀로 광막한 대막지국(사막)에서 진리와 노니십시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빈배가 내 배에 부딪히면 마음이 좁은 자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고있으면 배를 거두라할 것이빈다. 한번으로 안들으면 두번, 그러다 세번째엔 나쁜말을 하겠지요 즉, 언성이 높아질겁니다.빈배일 때 화내지 않음이 이젠 화냄이 되지요 빈배일 땐 허허롭던 마음이 뭔가로 채워진거지요. 사람이 저를 비울때 세상을 여유롭게 노닐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나를 건드릴까요?] 

-일단 떠나면 되지요. 눈에 뵈지않으면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어찌 그럴까합니다만... 그리 됩니다. 스스로를 믿으면 되지요...떠나보면 압니다. 지금 이 자리 떠나면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다 살아집니다. 선교사로 강산 한 번 변할만치 살아본 사람 얘기입니다. 게다가 죽을 마음으로 자리 바꿔가며 한 번 더 맨 땅에 헤딩하는 사람의 하는 얘기입니다. 

虛舟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눈에 보여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이지요. 
사람들은 상대가 있어야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사를 관계라 하는 게지요. 똑같은 배여도 빈 배를 볼 땐 아무렇지 않다가도 사람만 있으면 뭔가 일어나는 법... 사물이란 그에 뭘 실어 담느냐가 문제지요. 

찬란한 신라 금잔에도 독을 담으면 살인 도구지요 문화재 아니라. 

우리는 사물을 봄에 그저 그대로만 보면 될 일에 이해관계를 실어 담기 때문에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지 못하지요.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지 못하면 진리는 아예 구경못하지요.


3.

 

北宮奢爲衛靈公賦斂以爲鐘,爲壇乎郭門之外, 三月而成上下之縣.

 

북궁사가 위령공에게 추렴하여 종을 만드는데 성문 밖에 단을 세워 3개월 만에 세웠다.


-이 글은 북궁 사=음험한 과장을 말하는 듯... 우리 말로 사기꾼 제비???... 

종루를 왜 성밖에 세울까요? 

성 안에 세워 백성들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지요. 한 마디로 위령공을 속이고 부추기는 겁니다.

 

王子慶忌見而問焉,曰:「子何術之設?」

 

왕자 경기가 보고 묻되:[당신은 뭔 재주로 이리했소?]


-왕자 경기=즐거워하고 근심하는 사람... 조심하는 사람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

 

奢曰:「一之間,无敢設也. 奢聞之,'旣彫旣琢,復歸於朴.' 侗乎其无識,儻乎其怠疑.,萃乎芒乎,其送往而迎來.,來者勿禁,往者勿止.,從其强梁,隨其曲傅,因其自窮,故朝夕賦斂而毫毛不挫,而況有大塗者乎!」

 

사가 말하길:[그냥 한가지죠 뭐 따로 한다는 것 없었읍니다. 내 듣기엔 '구슬을 깎고 다듬는 것은 그 본디의  순박함에 잡티를 제거함이라' 들었읍니다. 그저 멍하니 일체의 지식을 잊고, 의심을 잊고 그저 당당하게, 마음대로 그저 몰아지경으로.. 가는 것은 보내고 오는 것을 맞는 것. 오는 것 막지않고 가는 것 잡지않는 것. 그 곧고 강함도 따르며 굽음의 의미를 따르니 그 스스로의 심원함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고로 조석으로 추렴을 재촉함에 굽힘이 없었는데 말하자면 두껍게 덧칠을 씌웠는데야...(제대로 보일까)]

 

- 오버 잘하는 사람이 꼬드기는 이치는 하나... 

'잡티를 털어내는 것이 가치를 세우는 일'이란 말... 

그 말 하나로 

일체의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고 사람들의 의견에 귀막게 하고 강조하면 굽은 의견도 따르게 되는 법... 

과장된 사람들 하는 짓이 무슨 큰 일인가 싶어 스스로 속게되는 법... 

그리 속으면.... 돈을 내라 졸라도 아무 의심없이 내주게 된다. 

비유하자면 눈에 진흙을 발라 눈 멀게 한 것... 


4.

孔子圍於陳蔡之間,七日不火食.

 

공자가 陳 蔡 두 나라 사이에서 포위되었을 때 이레 동안이나 끓인 음식을 먹지못했다.

 

大公任往弔之曰:「子幾死乎?」

 

임대공이 그를 위문하러 가서 말했다."죽을 맛이지요?"

 

曰:「然.」


그러네요

 

大公任曰「子惡死乎?」


죽기 싫은가요?

 

曰:「然.」

 

공자가 "그렇소" 하고 대답했다.

 

任曰:「予嘗言不死之道. 東海有鳥焉,其名曰意怠. 其爲鳥也, 翂翂翐翐,而似无能.,引援而飛,迫脅而棲.,進不敢爲前,退不敢爲後.,食不敢先嘗,必取其緖. 是故其行列不斥,而外人卒不得解,是以免於患. 直木先伐,甘井先竭. 子其意者飾知以驚愚,修身以明 ,昭昭乎如揭日月而行,故不免也. 昔吾聞之大成之人曰:『自伐者无功,功成者墮,名成者虧.』 孰能去功與名而還與衆人! 道流而不明居,德行而不名處.,純純常常,乃比於狂.,削迹捐勢,不爲功名. 是故无責於人,人亦无責焉. 至人不聞,子何喜哉?

 

임 대공이 말했다. "그럼 내가 시험삼아 불사의 도에 대해 말해 보리다. 동해에 새가 있는데 이름을 意怠라 하오. 그 새의 됨됨이는 느려서 높이 날지 못하고 무능한 새와도 같습니다. 날 때는 같은 새떼의 도움을 얻어서 날고 머물 때는 새떼 속에 끼어 있으며 날아갈 때는 앞장서지 않고 물러설 때는 꽁무니에 처지지 않으며 먹을 때도 앞에 나서지 않고 반드시 그들이 먹다 남긴 것을 먹소.

그러니까 이 새는 그 행렬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지도 않소.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재난을 면할 수 있는 거요. 곧은 나무는 먼저 벌목되고 단 우물은 먼저 말라 버리오.

 

내가 선생을 생각해 보니 선생은 자기 지식을 꾸며서 어리석은 사람을 놀래게 만들고 스스로의 행실을 닦아 남의 잘못된 행동을 돋보이게 하며 눈부시게 마치 해나 달을 들고 가기라도 하듯 자기를 자랑했을 거요. 때문에 재난을 면하지 못하오.

옛날 내가 큰 덕을 지닌 분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스스로 功을 자랑하는 자는 오히려 공을 잃고 공을 이룬 뒤 물러나지 않는 자는 몸을 망치며 명성을 이루고 거기 그대로 머무는 자는 욕을 보게 된다.'는 거요.

누가 과연 공명을 버리고 뭇사람에게 되돌려줄 수가 있겠소? 그 도가 널리 세상에 퍼져 있어도 명성에 머물지 않고 덕이 온 천하에 시행되어도 명예에 머물지 않으며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행동을 평범하게 하여 狂人처럼 무심하게 거동하며 자취를 남기지 않고 권세를 버린 채 공명에 마음을 두지 않소. 덕이 지극한 사람은 세상의 명성을 바라지 않소.

그런데 선생은 그런 따위를 얻는 것을 어찌 기뻐한단 말이오!"

 

孔子曰:「善哉!」 辭其交遊,去其弟子,逃於大澤. 衣裘褐食杼栗.,入獸不亂群,入鳥不亂行. 鳥獸不惡,而況人乎!

 

공자는 "좋은 말씀이오" 하고 대답하고는 이윽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제자들을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연못가에 숨어살며

남루한 옷을 입고 도토리를 먹으며 無心無欲하게 살았다.

이윽고 그는 짐승들 속에 들어가도 무리가 어지럽게 흩어지지 않고 새떼 속에 끼어도 놀라서 행렬이 흩어지지 않게 되었다.

새나 짐승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5.

孔子問子桑戶曰:「吾再逐於魯,伐樹於宋,削迹於衛,窮於商周,圍於陳蔡之間. 吾犯此數患,親交益疏,徒友益散,何與?」

 

공자가 자상호에게 묻기를:“내 노나라서 두 번 쫓겨났고, 송나라에선 꺾이고, 위나라에선 몰려나 진,채 두나라 경계에 있다. 내 이런 지경이니 친한 이들과도 멀어지고 제자들도 흩어지는 판이니 어찌하면 좋겠소?”

 

子桑戶曰:「子獨不聞假人之亡與?林回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 或曰:『爲其布與?赤子之布寡矣.,爲其累與? 赤子之累多矣.,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何也?』 林回曰:『彼以利合,此以天屬也.』 夫以利合者,迫窮禍患害相棄也.,以天屬者,迫窮禍患害相收也. 夫相收之與相棄亦遠矣. 且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君子淡以親,小人甘以絶. 彼无故以合者,則无故以離.」

 

자상호가 말하길:“님은 하나라 사람 도망간 얘기 못들었소? 임회라는 이가 천금 값어치의 옥을 버리고 갓난아기 하나 업고 달아났답디다. 누가 묻길 ‘값으로도 아이보다 값나가고 무겁기로 아기가 더 무겁건만 어째 옥을 버리고 아기만 업고 도망했소?’하니 임회가 말하길 ‘옥은 이익에 합하긴 하나 아기는 하늘이 내려준 것. 이문으로 맺어진 인연은 곤란함에 이르면 서로 버림받지만 하늘이 주신 연은 곤란에 서로 단결하는 법. 서로 단결함이란 서로 버림과는 상당히 다른 것. 그래서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고 소인배의 사귐은 단술과 같지요. 군자는 담담하기에 친하고소인은 달짝지근하기에(그 달짝지근함이 끝나면) 끊어집니다. 군자는 뭔 연고가 없으니 합하는 것 연고가 없으면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孔子曰:「敬聞命矣!」 徐行翔佯而歸,絶學捐書,弟子无揖於前,其愛益加進.

 

공자 말하길;“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듣습니다!” 천천히 편한 마음으로 돌아와 공부를 집어치우고 책을 덮고 제자가 조아리지 않아도 더욱더 사랑하였다.

 

異日,桑戶又曰:「舜之將死,乃命禹曰:『汝戒之哉!形莫若緣, 情莫若率. 緣則不離,率則不勞.,不離不勞,則不求文以待形.,不求文以待形,固不待物.』

  

다음에 또 자상호가 말하길:“순임금이 임종할 때 우에게 말하길: ‘너는 이를 명심하라. 육신은 인연을 따름보다 좋은 것 없고, 마음은 솔직함을 따름보다 더 나은 것 없다. 인연이니 깨어짐 없고 솔직하니 힘쓸 일 없고, 즉, 形을 따라 이론을 구하지 않으면 그리하면 외물에 휘둘리지 않는다’. 


- 여기서 形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를 의미합니다.  


6.

莊子衣大布而輔之,正係履而過魏王.


장자가 누덕누덕 기운 큰 보자기 같은 옷에 삼으로 된 신을 신고 위왕에게 갔다.


魏王曰:「何先生之憊邪?」



위왕이 말하길:“어찌 선생이 곤궁한 지경이신가요?”

莊子曰:「貧也,非憊也. 士有道德不能行,憊也.,衣弊履穿,貧也,非憊也.,此所謂非遭時也. 王獨不見夫騰猿乎? 其得枏梓豫章也,攬蔓其枝而王長其間,雖羿逢蒙不能眄睨也. 及其得 棘枳枸之間也,危行側視,振動悼慄.,此筋骨非有加急而不柔也,處勢不便,未足以逞其能也. 今處昏上亂相之間,而欲无憊,奚可得邪? 此比干之見剖心徵也夫!」


장자 이르길:“가난한 것 일 뿐 곤경에 빠진 건 아니외다. 선비가 도덕을 행하지 못함이 곤경이지요. 옷이 해어지고 신에 구멍난건 가난일 뿐 곤경은 아니지요. 이를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하지요. 왕께선 나무에 오르는 원숭이를 보신 적 없소? 원숭이가 그 녹나무나 가래나무 등 크고 좋은 나무에 오르면 기뻐하고 큰 가지를 잡고 있으면 비록 예나 봉몽같은 명궁도 겨누질 못하고, 가시나무나 탱자나무같이 작은 나무라면 이리저리 위험을 살피고 흔들리지요. 이는 근육이나 뼈가 급박한 위험으로 부드럽지 못하기 때문, 있는 자리가 불편하면 발길 닿을 데가 적당치 않기 때문. 지금 혼미한 왕과 난삽한 재상 사이에 있다면, 곤경이 없기 바람이 어찌 가능하겠소? 이는 비간의 그 심장이 세세히 잘리움을 보는 것이나 다름아니오”


-여기서 비간이란 은나라 충신으로 직언하다 폭군 주왕에게 난도질 당한 사람... 사람이 난삽하면 다른 이들에게 누를 끼치는 법


7.


孔子窮於陳蔡之間,七日不火食,左據槁木,右擊槁枝,而歌猋氏之風,有其具而无其數,有其聲而无宮角,木聲與人聲,犁然有當於人之心.

 

공자가 진나라 채나라사이서 힘들 때, 이레를 더운 음식 못 먹으며 왼손으로 마른 나무를 잡고 오른 손으로 마른 가지를 두드리며 표씨지풍이란 노래를 하는데, 그 도구는 있으나 악보가 없고, 그 소리는 전하나 음조가 없는 것이었는데 나무소리와 사람소리가 합쳐 사람의 마음을 전율케 하더라. 

 

顔回端拱還木而窺之. 

 

안회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나무 뒤에서 엿보더라. 

 

仲尼恐其廣己而造大也,愛己而造哀也,曰:「回,无受天損易,无受人益難. 无始而非卒也,人與天一也. 夫今之歌者其誰乎?」

 

공자가 안회가 생각이 많아 이를 큰 일로 여기거나 사랑함으로 슬퍼할까하여 말하길:“안회야 하늘이 주는 손을 쉽게 감당하는 이 없고, 사람이 주는 이득을 어렵게 여기는 이 없다. 시작도 없으니 망함도 없고, 사람과 하늘은 하나인 법. 대저 이 부르는 노래가 그 무엇이더냐?”

 

回曰:「敢問无受天損易.」

 

안회 묻길:“감히 하늘이 주는 손을 쉽게 받는 이 없다란 말이 뭔가 여쭙니다”

 

仲尼曰:「飢渴寒暑,窮桎不行,天地之行也,運物之泄也,言與之偕逝之謂也. 爲人臣者,不敢去之. 執臣之道猶若是,而況乎所以待天乎!」

 

공자 이르길:“목마르고 주리고 춥고 더운데 오도 가도 못함은 천지 운행의 이치요, 사물의 운행이 드러나는 것이니 설명하자면 따름을 이르는 것. 신하 된 자는 감히 제 멋대로 못가는 법. 신하된 자의 도리는 이 처럼 따름이니 하물며 하늘을 따름에서랴!”

 

「何謂无受人益難?」

 

그럼 “어찌 사람의 이익을 어렵게 감당하는 이 없다 합니까?”

 

仲尼曰:「始用四達,爵祿竝至而不窮,物之所利,乃非己也,吾命其在外者也. 不給視,雖落其實,棄之而走. 其畏人也,而襲諸人間,社稷存焉爾.」

 

공자 이르길:“처음엔 온 천하에 미치고 작록이 넘쳐 곤궁치 않으나 본디 사물이란 이익에 따르는 법이니 자기됨이 아니라, 제 운명이 외물에 매인 것이라 본다. 눈에 미치지 않으면 그 열매를 떨어뜨리고 버리고 지나치는 법. 그리 사람을 두려워하니 사람들 사이에 거하며 사직을 보존하려한다”

 

「何謂无始而非卒?」

 

묻길:“어찌 시작이 없으니 망함도 없다하시는지요?”

 

仲尼曰:「化其萬物而不知其禪之者,焉知其所終? 焉知其所始? 正而待之而已耳.」

 

공자 이르길:“만물이 조화되어 그를 그리하는 자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그 마침을 알까? 그 시작을 알까? 바르게 기다림이 이미 옳은 것. 

 

「何謂人與天一邪?」

 

다시 묻길:“어찌 사람과 하늘이 하나라 이르시는지요?”

 

仲尼曰:「有人,天也.,有天,亦天也. 人之不能有天,性也,聖人晏然體逝而終矣!」

 

공자왈:“사람이 있으니 하늘이 있고, 하늘이 있으니 하늘이 있다. 사람이 하늘과 함께 못함은 그 성질 때문인데 성인은 그저 편안히 그저 그 끝까지 다가가는 것!” 


8.

莊周遊於雕陵之樊,覩一異鵲自南方來者,翼廣七尺,目大運寸,感周之顙而集於栗林. 莊周曰:「此何鳥哉,翼殷不逝,目大不覩?」 蹇裳躩步,執彈而留之. 覩一蟬,方得美蔭而忘其身.,螳螂執翳而搏之,見得而忘其形.,異鵲從而利之,見利而忘其眞. 莊周怵然曰:「噫! 物固相累,二類召也!」 捐彈而反走,虞人逐而誶之.


장자가 조릉지번을 여행할 때 기이한 까치가 남쪽으로부터 오는 것을 봤는데, 날개가 일곱자 폭이요 눈이 커서 한 치를 움직이는데 장자를 스칠듯 날아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자 말하길:[이게 뭔 새란 말이냐 큰 날개로 높이 날지도 않고 큰 눈으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가?] 바짓단을 접고 잰걸음으로 살을 재어 따랐다. 매미 한마리를 봤는데 그늘에서 자신을 잊고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가 몰래 숨어 잡으려하며 자신의 처지를 잊고있더라, 기이한 까치는 그를 잡으려는 욕심에 빠져 자기의 본성을 잊고있더라. 장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하길:[슬프다! 만물의 인연이란 것이 이류라!] 살을 버리고 달아나니 사냥꾼이 따라와 욕하더라.


-날개가 일곱자란 본디 높이 날 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눈이 크다함은 멀리 볼 자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음에도 벌레 하나에 혹해 본디 능력을 사장하는 걸 말합니다. 

기이한 것을 보고 뭔가 의미가 있겠지 좇아나섰던 장자가 본 것은 만물의 인연의 쌓임: 累란 제 본령을 지킴보단 당장의 호구와 이익에 매임이라...

타고나길 기이하게 타고났음은 그 그릇에 무언가를 담기 원하시는 조물주의 뜻:본령, 본질이 있어서건만... 그저 사마귀나 보고 장자를 못보고 스쳐지나가고 자기를 노리는 장자를 의식치 못하는 얕은 모습을 안타까워 함이지요. 

사람은 먼저 제 그릇부터 알아야 합니다.제 행할 처신부터 잡지 못하고 눈에 뵈는 이득에 빠지면 추하고 부끄러운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나도 인간이라고 말하며 변명해도... 

인간이 원죄를 가짐은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때문 아니요, 이브에게 뱀에게 전가하는 천박함이 원죄입니다. 행위때문이라면 이브가 중죄인이요 뱀이나 아담은 죄의 근원이 아니지요. 그러니 죄 중 제일 큰 죄는 남으로 미혹케 하는 죄가 가장 큰 것입니다.


莊周反入,三月不庭. 藺且從而問之:「夫子何爲頃間甚不庭乎?」

莊周曰:「吾守形而忘身,觀於濁水而迷於淸淵. 且吾聞諸夫子曰:'入其俗,從其令.' 今吾遊於雕陵而忘吾身,異鵲惑吾顙,遊於栗林而忘眞,栗林虞人以吾爲戮,吾所以不庭也.」


장자가 돌아와 3개월을 불쾌해했다. 인차가 좇아와 묻길:[장자여 요즘 왜 이리도 심사가 편치 않으십니까?] 장자 이르길:[내 겉 닦기에 마음이 뺏겨 망신했네, 그저 흐린 물만 보다가 맑고 깊은 물의 경지를 보지 못하고 헤맸다네. 또 내 스승의 말을 듣자니 말하길:["그 지역의 풍속에 들어서도 본디의 본령을 따르시게". 내 조릉에 갔다가 내 본신을 잊었고 기이한 까치가 내 이마를 혹하고 밤나무 숲에 앉아 제 본질을 잊고 숲의 사냥꾼이 쫓아와 나를 참소하데 그러니 내 유쾌할 리 없지]


-깨우친 자의 처신이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자숙함이지요. 조금이라도 잘못됨을 보면 3개월 아니라 30년이라도 부끄러워 해 앞에 얼굴을 들지 말아야지요 그것을 고치기 전엔...

여기서 몇몇 단어들을 정의하면 形이란 제 겉모습 닦기:보통 수련이라 말하는... 것이요. 累란 만물의 모습이란 서로 겹치고 덮여 우리앞에 선다는 걸 말하지요.

망신이란 다른 것 아니지요. 진짜 제 모습을 잃는 것... 하긴 진짜 제 모습을 모르는데... 마음공부함은 겉닦기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 부어주신 "내 역할, 할 일" 알아채는 겁니다.

나이먹어가면 갈수록 내게 주신 소명을 알아채는 知天命해야 하는 겁니다.


9.

 

陽子之宋,宿於逆旅. 逆旅人有妾二人,其一人美,其一人惡,惡者貴而美者賤. 陽子問其故,逆旅小子對曰:「其美者自美,吾不知其美也.,其惡者自惡,吾不知其惡也.」

陽子曰:「弟子記之! 行賢而去自賢之行,安往而不愛哉!」

 

양자가 송나라에서 여관에 투숙했는데 여관주인에게 두 첩이 있는데 하나는 미인이고 하나는 추녀라 추녀는 귀히 대접받으나 미인은 천히 대접받더라. 양자가 그 연유를 물으니 그이 말이:[미인은 스스로 미인임을 내세우니 난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추녀도 자신이 추녀임을 알고있지요 난 그의 추함을 모르겠노라] 양자 말하길:[제자들이어 기억하시게! 어질게 처신하는 이는 스스로 어질다 자처않는 법, 그저 쉽게 처신하면 사랑받지 못하리]

 

-현대는 자기 PR시대라 하나 제 진짜 모습을 모르는 자는 뭘 내세워야하는 지도 모르는 법... 그저 겉껍질을 내세운들 내면의 가치를 당할까? 겉껍질이란 花無 十日紅이라고 열흘 이상 활짝 피는 꽃 없듯...언젠가는 사그러질 것...

 

그러니 그저 저가 보여주려는 것 말고 그 속 사정을 들여다 보시게...

물론 스스로 자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얘기해주지는 말고.... 

얘기해준 들 고마워는 커녕 뒤돌아 욕이나 안들으면 다행이지...

 

대접은 제 한 요량으로 받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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