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天地雖大,其化均也.,萬物雖多,其治一也.,人卒雖衆,其主君也. 君原於德而成於天,故曰,玄古之君天下,无爲也,天德而已矣.
以道觀言,而天下之名正.,以道觀分,而君臣之義明. 以道觀能,而天下之官治.,以道汎觀,而萬物之應備. 故通於天者,道也.,行於萬物者,義也.,上治人者,事也.,能有所藝者,技也. 技兼於事,事兼於義,義兼於德,德兼於道,道兼於天,故曰:古之畜天下者,无欲而天下足,无謂而萬物化,淵靜而百姓定. 記曰:「通於一而萬事畢. 无心得而鬼神服.」
천지수대 기화균야 만물수다 기치일야 인졸수중 기주군야
군원어덕이성어천 고왈 현고지;군천하 무위야 천덕이이의
이도관언 이천하지명정 이도관분 이군신지의명 이도관능 이천하지관치 이도범관 이만물지응비
고통어천자 도야 행어만물자 의야 상치인자 사야 능유소예자 기야
기겸어사 사겸어의 의겸어덕 덕겸어도 도겸어천 고왈:고지축천하자 무욕이천하족 무위이만물화 연정이백성정
기왈:[통어일이만사필 무심득이귀신복]
하늘과 땅이 비록 크나 그 조화는 고르다 만물이 비록 많으나 그 다스림은 하나요. 백성과 병졸이 무리를 이루나 그 임금이 다스리는 법.
임금은 덕으로 하늘이 세운 것이요, 고로 이르길 오랜 옛날 임금들이 무위로 하는데 그게 하늘 덕이다.
그런 진리의 입장으로 (임금의) 말을 보자면 천하의 바름을 나타내야하고, 그 분수를 보면 군신의 의리가 발라야 하며, 그 능력을 보면 천지를 다스릴만 해야하고 이 진리를 살피면 만물이 다 응하는 것이다.
고로 하늘과 통하는 바는 진리요, 만물을 돌게 하는 것은 의라하고, 위에서 다스리는 이치는 섬김이요, 예술적인 능력이 있는자를 재주라.
재주있는자가 섬김을 알고, 섬김이 의를 품고, 의가 진리를 품고, 진리가 하늘을 품는 것. 고로 이르길 예로 천하를 기르는 자는 욕심을 버리므로 천하를 채우고, 일컬음이 없으니 만물이 조화롭고, 깊고 맑으니 백성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
옛기록에 이르길:"하나로 통하면 만사가 반듯하니. 무심이면 귀신도 복종한다"했다.
세상 이치?
한 마디로 나를 잊으면 된다.
알량한 자존심에 갈등과 다툼 일어나고
욕심에 분란과 미움일어나고
제 자랑에 시기 질투 만드는 법...
그게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2.
夫子曰..[夫道,覆載萬物者也,洋洋乎大哉! 君子不可以不刳心焉. 爲爲之之謂天,无爲言之之謂德,愛人利物之謂仁,不同同之之謂大,行不崖異之謂寬,有萬不同之謂富.執德之謂紀,德成之謂立,循於道之謂備. 不以物挫志之謂完. 君子明於此十者,則韜乎其事心之大也,沛乎其爲萬物逝也.若然者,藏金於山,沈珠於淵,不利貨財,不折貴富.,不樂壽,不哀夭.,不樂通,不醜窮.,不拘一世之利以爲己私分,不以王天下爲己處顯. 顯則明,萬物一府,死生同狀.]
부자왈 [부도 이재만물자야 양양호대제 군자불가이불고심언 위위지지위천 무위언지지위덕 애인이물지위인 부동동지지위대 행불애이위관 유만부동지위부 집덕지위기 닥성지위입 둔어도지위비 불이물절지지위완 군자명어차십자 즉도호기사심지대야 패호기위만물서야 약연자 장금어산 침주어연 불리화재 부절귀부 부요수 부쇠요 부요통 불추궁 불구일세지이이위기사분 불이왕천하위기처현 현즉명 만물일부 사생동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란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는 것이다. 얼마나 넓고 큰가!
군자들이 그의 마음을 비게 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무위로써 일하는 것을 하늘이라고 말한다.
무위로써 말하는 것을 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인이라고 말한다.
같지 않은 것들이 같이 합쳐진 것을 크다고 말한다.
행동이 남들과 달리 어긋나지 않는 것을 너그러움이라고 말한다.
만 가지 같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라고 말한다.
굳게 자기 덕을 지키는 것을 기망이 있다고 말한다.
덕을 이룩하는 것을 입(立)이라고 말한다.
도를 따르는 것을 비(備)라고 말한다.
사물로 인해 뜻이 꺾이지 않는 것을 완전하다고 말한다.
군자로서 이 열 가지 것들만 분명히 알면 크게 그의 지닌 마음이 커질 것이며, 널리 만물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산만한 금을 저장해 두고, 못에 가득 진주를 저장해 둔 것과 같다.
재물을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일찍 죽는 것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재물을 얻은 것을 영화롭다 생각하지 않고, 궁핍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평생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분수에 따를 것이다.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도 영예로운 자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예로운 것은 맑게 드러난다. 만물은 한 가지 세계에 놓여 있고 죽음이나 삶이나 같은 현상이다.
3.
夫子曰..[夫道,淵乎其居也,漻乎其淸也. 金石不得,無以鳴. 故金石有聲,不考不鳴. 萬物孰能定之!
[夫王德之人,素逝而恥通於事,立之本原而知通於神. 故其德廣,其心之出,有物採之. 故形非道不生,生非德不明. 存形窮生,立德明道,非王德者邪! 蕩蕩乎! 忽然出,勃然動,而萬物從之乎! 此謂王德之人.]
[視乎冥冥! 聽乎無聲. 冥冥之中,獨見曉焉.,無聲之中,獨聞和焉. 故深之又深而能物焉,神之又神而能精焉.,故其與萬物接也,至無而供其求,時騁而要其宿.(大小,長短,修遠.)]
부자왈 [부도 연호기거야 료호기청야 금석부득 무이명 고금속유성 불고불명 만물숙능정야]
부왕덕지인 소서이치통어사 입지본원이지통어신 고기덕광기심지출 유물채지 고형비도불생 생비덕불명 존형궁생 입덕명도 비왕덕자사 탕탕호 홀연출 발연동 이만물종지호 차위왕덕지인
시호명명 청호무성 명명지중 독현효언 무성지중 독문화언 고심지우심이능물언 신지우신이능정언 고기여만물접야 지무이공기구 시빙이이요기숙(대소 장단 수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의 모습은 심연처럼 조용하고, 맑은 물처럼 맑다. 쇠나 돌은 울리지 않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쇠나 돌은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물의 이런 성질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큰 덕을 지닌 사람들은 소박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모든 일에 통달해 있다. 근본적인 도에 입각해 살고 있어서 그의 지혜는 신묘에 통달한다. 그러므로 그의 덕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의 움직임은 밖의 물건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모든 형체는 도가 아니고는 생성되지 않고, 모든 만물의 생성은 덕이 아니고는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형체를 보존하면서 생성을 다하고, 덕을 세우고 도를 밝힌다면 큰 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널리 어디에나 불쑥 나타나 갑자기 움직이는데도 만물이 그것을 따른다면 그를 두고 큰 덕을 지닌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보아도 까마득하고, 들어도 아무 소리가 없는데, 까마득한 가운데서 홀로 밝음을 보고, 소리 없는 가운데서 홀로 화(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깊고도 깊으면서도 뭔가 어스름히 밝혀주고, 아무 소리도 없어도 조화로운 음을 들을줄 아니 신묘하고도 신묘하여서 정묘한 작용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물과 접촉함에 있어서는 지극한 무(無)에 있으면서도 만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때때로 달려가지만 그의 알맞은 자리를 되찾는다. 크고도 작고 길고도 짧고 가깝고도 먼 것이다.]
도란 하늘의 이치요 그 도를 담는 그릇이 덕이다.
제 아무리 천하 이치를 깨닫고 싶어도 덕스러움이 없으면 불가한 일...
덕을 분간함은 사물을 바라 봄에 어긋남이 없이 바로보고 무엇보다 서로 화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유교의 격물의 의미와 비견되는 경지를 말한다.
덕은 언행이 순해서나 웃는 상이어서가 아니라 사물의 본성을 제대로 알아 사물을 제 자리에 있게 놔둘 줄 아는 능력이다.
4.
皇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之丘而南望, 還歸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詬索之而不得也. 乃使象罔, 象罔得之.皇帝曰:「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황제유호적수지북 등호곤륜지구이남망 환귀유기현주 사지색지이부득 사이주색지이부득 사끽후색지이부득야 내사상망 상망득지 황제왈:[이재 상망내가이득지호?]
황제가 적수의 북쪽에 들러 곤륜산 언덕에 올라갔다가 남쪽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이주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끽후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상망을 시켰더니 곧 찾아냈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하다. 상망 만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지=앎,이주=전설상 눈 밝은 이, 끽후= 말 만 번지르르 한 이, 상망=아무 존재감없는 이...
여기 말하는 검은 구슬란 말도 가물현 구슬주라는 말로 한마디로 아주 큰 구슬=가치를 잴수없는 보배...
황제가 남쪽 끝에 가서 세상 전부를 보았다 이를 만 하나, 실제 중요한 앎을 잃어버린 것이란 얘기...
세상 지식을 모두 알아도 정작 알아야할 자기를 모르면 소용없는 것...
세상 앎이 내 삶에 보탬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런 지혜는 든 지식이, 화려한 언변이, 분석력이 찾아주는 것 아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를 잊어버릴 때 언뜻 드러나는 것...
5.
堯之師曰許由,許由之師曰齧缺,齧缺之師曰王倪,王倪之師曰被衣.
堯問於許由曰..[齧缺可以配天乎? 吾藉王倪而要之.]
許由曰..[殆哉圾乎天下! 齧缺之爲人也,聰明叡知,給數以敏,其性過人,而又乃以人受天. 彼審乎禁過,而不知過之所由生. 與之配天乎? 彼且乘人而無天,方且本身而異形,方且尊知而火馳,方且爲緖使,方且爲物絯,方且四顧而物應,方且應衆宜,方且與物化而未始有恒. 夫何足以配天乎?
雖然,有族,有祖,可以爲衆父,而不可以爲衆父父. 治,亂之率也,北面之禍也,南面之賊也.]
요지사왈허유 허유지사왈설결 설결지사왈왕예 왕예지사왈피의
요문어허유왈 [설결가이배천호? 오자왕예이요지]
허유왈 [태재급호천하 설결지위인야 총명예 급수이민 기성과인 이우내이인수천 피심호금과 이부지과지소유생 여지배천호 피차승인이무천 방차본신이이형 방차존지이화치 방차위서사 방차위물해 방차사고이물응 방차응중의 방차여물화이미시유항 부가족이배천호
수연 유족 유조 가이위중부 이불가이위중부부 치란지솔야 북면지화야 남면지적야]
요임금의 스승은 허유였고, 허유의 스승은 설결이었고, 설결의 스승은 왕예였고, 왕예의 스승은 피의였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물었다.“설결께서는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 만 한 분이시지요? 저는 왕예를 통하여 그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허유가 말했다.
“위험합니다. 천하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설결의 사람 됨은 총명하고 지혜가 밝으며 일을 잘하면서도 민첩합니다, 그 분의 성품은 남보다 뛰어나서 인간의 지혜로써 하늘을 떠받들려하고 있습니다. 그 잘못을 금하기는 잘하지만 잘못의 바로잡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되게 하면 인위적인 행동으로써 하늘을 무시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것들에 차별을 둘 것입니다. 또한 지혜를 존중하여 날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에 부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에 구속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물건들에 대처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려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을 쫓아 변화함으로써 처음부터 일정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이 있으면 조상이 있다지만 작은 무리의 아버지라고 큰무리를 이끄는 아버지중 아버지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가 신하의 위치라면 화가 되고 임금이라면 도적과 같을 것입니다."
왕예와 설결이라 단어를 사람 이름으로 보기보다 그 사전 의미대로 해자하면 왕예란 어린애같은 천진난만함? 설결이란 호기심에 가득차 물음 만 가득한 것을 말한다 보면 본문 이해가 쉬울 것이다.
천하를 경영한다는 것은 앎을 얻어되는 일이 아니라 깨달아야 되는 일이란 말...
똑똑한 아이는 모르면 물어서라도 배우는 법이요 허유란 말도 합당한 이유면 받아들이는 태도라 보면 좋으리라...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맞딱드리는 것은 좋은 태도이긴 하지만 그 만으로 하늘의 이치가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피의란 단어도 말하자면 의복을 갖추는 예의로 볼 것...
그러니 예에 바르고 순진함을 가지고 알려 애쓰는 자세...
반듯함이 천하 경영의 자질이 아니라는 말...
6.
堯觀乎華.華封人曰:「嘻. 聖人, 請祝聖人.」
「使聖人壽.」 堯曰:「辭.」 「使聖人富.」 堯曰:「辭.」 「使聖人多男子.」 堯曰:「辭.」
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 女獨不欲, 何邪?」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
封人曰:「始也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則何懼之有? 富而使人分之, 則何事之有! 夫聖人, 鶉居而鷇食, 鳥行而无彰, 天下有道, 則與物皆昌. 天下无道, 則修德就閒. 千歲厭世, 去而上倦. 乘彼白雲, 至於帝鄕. 三患莫至, 身常无殃. 則何辱之有!」
封人去之. 堯隨之, 曰:「請問?」
封人曰:「退已!」
요임금이 화땅에 놀러 갔었는데, 화땅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오래 오래 사시기를 빕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부자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경계지기가 다시 말했다.
“성인께서 많은 아들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경계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경계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근심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면 모두가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천년이나 세상을 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나 신선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앞의 세 가지가 환란으로써 닥쳐올 수가 없으며 몸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경계지기가 떠나가자, 요임금이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경계지기가 말했다. “물러가시오."
7.
堯治天下, 伯成子高立爲諸侯.堯授舜, 舜授禹, 伯成子高辭爲諸侯而耕, 禹往見之. 則耕在野. 禹趨就下風, 立而問焉, 曰:「昔堯治天下, 吾子立爲諸侯. 堯授舜, 舜授予, 而吾子辭爲諸侯而耕, 敢問, 其故何也?」
子高曰:「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而民且不仁, 德自此哀, 刑自此立, 後世之亂自此始矣. 夫子闔行邪? 无落吾事!」俋俋乎耕而不顧.
요치천하 백성자고입위제후 요수순 순수우 백성자고사위제후이경 우왕견지 즉경재야 우추취하풍 입이문언 왈:[석요치천하 오자입위제후 요수순 순수우 이오자사위제후이경 감문 기고하야?]
자고왈:[석치천하 불상이민권 불벌이민외 금자상벌이민차불인 덕자차쇠 형자차립 후세지난자차시의 부자합행사 무락오사] 읍읍호경이불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자 백성자고거 제후로 다스림레 동참했다. 그 후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자자리를 물려주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자, 백성자고는 제후자리에서 물러나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그를 찾아가니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임금이 겸허히 서서 물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선생님께서 제후로 계셨습니다. 요임금께서 순임금께 천자 자리를 물려주셨고, 순임금께서는 저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자 선생님께서는 제후자리를 물러나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백성자고가 말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상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일에 힘썼고, 벌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했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상을 내리고 벌을 내리는데도 백성들은 어질지 않습니다. 덕은 이로부터 쇠하고, 형벌은 이로부터 확립되어갑니다. 후세의 혼란이 이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당신은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내 일이나 방해하지 마십시오.”
아예 돌아보지도 않고 밭을 갈았다.
상벌로 사람을 다스림은 사람을 짐승으로 간주하는 것...
상받으려 착하게 구는 것은 강아지의 재롱 이상이 아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판단이 미숙한 어릴 때는 그리 교육해야 한다.
짐승의 본성도 가지고 있으니...
그러나 제 스스로 궁리가 트이면 상벌에 연연하지않고 제 소신으로 살아갈 독립심 정도는 키워주고 스스로 지녀야 한다.
그런 제 궁리도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 일컫기에도 창피한 일...
남의 관심과 평판에 연연해서는 일관된 가치관 조차도 가지기 힘들다.
물론 그 가치관은 하늘이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집과 확신은 그래서 다른 것...
8.
泰初有无无有无名.,一之所起,有一而未形.
物得以生,謂之德.
未形者有分,且然无間,謂之命.,
留動而生物,物成生理.謂之形.,
形體保神,各有儀則,謂之性.
性修反德,德至同於初.
同乃虛,虛乃大.
合喙鳴.,喙鳴合,與天地爲合.
其合緡緡,若愚若昏,是謂玄德,同乎大順.
태초유무무유무명 일지소기 유일이미형
물득이생 위지덕
미형자유분 차연무간 위지명
유동이생물 물성생리 위지형
형체보신 각유의칙 위지성
성수반덕 덕지동어초
동내허 허내대
합훼명 훼명합 여천지위합
기합민민 약우약혼 시위현덕 동호대순
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 유(有)도 없었고 명칭도 없었다. 하나(一)가 여기에서 생겨났는데, 뭐라 형용하기 어렵다.
사물에겐 각자의 도리가 있는데 그걸 덕이라 한다.
아직 딱히 말하긴 어려워도 각 분수가 있는데 분간이 어렵지만 그 분수를 각자의 운명이라 한다.
이런 상호작용으로 사물의 구분이 생기고 나름 법칙이 생기니 그것을 형체라 한다.
형체가 정신을 보존하게 되는 제각기 원칙을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 닦아지면 덕으로 되돌아간다.
같아진다는 것은 텅 비어진다는 뜻이며, 텅 빈다는 것은 곧 커진다는 뜻이다.
새의 우는 소리가 입모양과 합하듯 입모양이 우는 소리와 맞아떨어지듯 하늘과 땅의 자연에 합치된다는 뜻이다.
그 합치되는 상태는 딱 들어맞아서 어리석은 듯도 하고 흐리멍덩한 듯도 하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말하는 것이며, 크게 순조로운 상태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들의 정의?를 본다.
덕이란:
성격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칭하는 말 아니고 제 각각의 타고난 자연계 안에서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음도 쥐가 기둥을 쏘고 곡식을 갉음도 덕... 한마디로 덕스러움이란 타고난 제 구실 똑바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운명이란 단어도...
팔자가 아니라 자기 맡은 바 소임...
본성이란 단어도
그런 소임들이 서로 상충하거나 상호작용으로 구분하려들자니 형(설명)이 생기는데 그 타고난 소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이루려 하는 것에서 본성이 나오는데..
그 본성을 잘 꿰뚫어 보면 덕의 상태를 바로 알게된다.
그리하여 매사에 어긋남이 없어짐을 덕의 상태라 부르는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기 사슴을 잡는다고 사자를 없애는게 사랑일까?
아님 사자의 육식성을 채식으로 바꾸면 지상천국일까?
뱀을 말살하면???
이 세상 모든 세균을 박멸하면 건강한 사회일까?
사람의 몸이 그런 병균에의 내성을 갖지못하는 것이 에이즈...
공부란 그런 자연의 소용돌이를 잘 견뎌내고 살아내려는 노력이지
연민을 갖고 상대를 말살하려는게 아니다.
연민이란 사랑이기 보다는 한 쪽 편 만 드는 깡패짓 일 뿐....
우리는 자연을 빌어사는 존재...
자연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교만이요 패악질...
'나'를 그저 작고 미미한 그들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9.
夫子問於老聃曰..[有人治道若相放,可不可,然不然. 辯者有言曰,{離堅白若縣宇.} 若是則可謂聖人乎?]
老聃曰..[是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 執狸之狗來田,猿狙之便來藉. 丘,予告若,而所不能聞與而所不能言,凡有首有趾无心无耳者衆,有形者與无形无狀而皆存者盡无. 其動止也,其死生也,其廢起也,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忘乎物,忘乎天,其名爲忘己,忘己之人,是之謂入於天.]
부자문어노담왈:[유인치도약상방 가불가 연불연 변자유언왈.{이견백약현우}약시즉가위성인호?}
노담왈:[시서역지계 노형출심자야 집리구래전 원저지변래자 구 료고고 아소불능문여이소불능언 범유수유지무심이자중 유형자여무형무상이개존자진무 기동지야 기사생야 기폐기야 차우비기소이야 유치재인 망호물 망호천 기명위망기 망기지인 시지위인어천]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다스림의 도를 전횡하여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게 되지 않을까요? 입만 산 사람은 말하기를 한 개의 돌에서 굳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분리시켜 놓으면 허공에 달아 매어 놓은 것처럼 분명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것은 지혜로 일을 처리하고 기교에 얽매여서 몸을 고생시키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잘 잡는 개도 밭에 돌아오고, 날렵한 원숭이도 자리에 앉기마련...
당신에게 당신이 들어보지도 말해보지도 못했던 일을 알려 주겠습니다.
대체로 머리도 있고 발도 있지만, 마음도 없고 귀도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들과 같이 있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움직이고 멈추는 것과 죽고 사는 것과 망하고 흥하는 것은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 같은 근거에 의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물건을 잊고 하늘을 잊으면 그것을 자기를 잊었다고 부릅니다. 자기를 잊은 사람을 하늘로 들어간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堅白同異란 말은 궤변...
돌을 눈 감고 만진다면 단단함은 알지만 흰 것은 알수 없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단단함은 알수 없으니 진실이 아니다라는 말로...
일견 아주 세세한 관찰로 보이고 논리적으로도 맞는 말처럼 보이나...
우리는 사물을 판단함에 '종합 판단'이란 걸 하는 법...
사람을 보아도 그 글 말로만 판단하는게 아니라 그 기운으로 판단하는 법...
그 글이 수려하고 언변이 유려해도 악한 사람은 결국 남 해치고 자잘한 이익 얻는 것에 사용하는 법...
아무리 배움이 깊고 존중받는 입지에 있어도 깨진 박은 물 새는 법...
어린아이와 나이든 노인네들은 척보기만 해도 사람을 가려내는 법...
어린아이는 상대의 기운으로...
노인들은 오랜 촉으로 그리하고...
도살장에 끌려간 짐승이 지레 공포에 질림은 그 기운을 느끼는 탓이다.
세상은 말로 글로 되어지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걸 가려 봄이 공부...
10.
蔣閭葂見季徹曰:「魯君謂葂也曰:‘請受敎.’ 辭不獲命, 旣已告矣.未知中否, 請嘗薦之. 吾謂魯君曰:‘必服恭儉, 拔出公忠之屬而无阿私, 民孰敢不輯!’」
季徹局局然笑曰:「若夫子之言, 於帝王之德, 猶螳螂之怒臂而當車轍, 則必不勝任矣. 且若是, 則其自爲處危, 其觀壹多物, 將往投迹者衆.」
蔣閭葂覰覰然驚曰:「葂也汒若於夫子之所言矣. 雖然, 願先生之言其風也.」
季徹曰:「大聖之治天下也, 搖蕩民心, 使之成敎易俗, 擧滅其賊心而皆進其獨志, 若性之自爲, 而民不知其所由然. 若然者, 豈兄堯舜之敎民, 溟涬然弟之哉? 欲同乎德而心居矣!」
장려면이 계철을 만나 말했다.
“노나라 임금이 저에게 가르침을 청해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아 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었는지 그른 말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 말을 말씀드릴 테니 한 번 들어주십시오.
제가 노나라 임금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행하고 공손하고 충실한 사람들을 뽑아 쓰되, 사사로움에 기우는 일이 없다면 백성들이 어찌 화합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계철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선생의 말을 제왕의 덕에다 비추어 본다면 마치 사마귀가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높은 누대는 가지게 될 것이지만 일이 많아질 것이고, 그에게 몰려드는 사람 만 많아질 것입니다.”
장려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가르침을 주십시오.”
계철이 말했다.
“위대한 성인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가르침에 따라서 풍속을 훌륭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백성들의 악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 모두가 도를 얻으려는 뜻을 밀고 나가도록 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자연스레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정치를 어찌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백성들을 가르치던 경지에 견주겠으며, 아무 생각 없이 모두가 같은 정치라고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덕을 지니고 마음이 편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1.
子貢南遊於楚, 反於晉, 過漢陰見一丈人方將爲圃畦, 鑿隧而入井, 抱擁而出灌, 滑滑淵用力甚多而見功寡. 子貢曰:「有械於此, 一日浸百畦, 用力甚寡而見功多, 夫子不欲乎?」
爲圃者仰而視之曰:「奈何?」 曰:「鑿木爲機, 後重前輕, 挈水若抽. 數如泆湯, 其名爲橰.」爲圃者忿然作色而笑曰:「吾聞之吾師, 有機械者心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子貢瞞然慙, 俯而不對.
有閒, 爲圃者曰:「子奚爲者邪?」
曰:「孔丘之徒也.」
爲圃者曰:「子非夫博學以擬聖, 於于以蓋衆, 獨弦哀歌以賣名聲於天下者乎? 汝方將妄汝神氣, 墮汝形骸, 而庶幾乎! 汝身不能治, 而何暇治天下乎? 子往矣. 無乏吾事!」
子貢卑陬失色, 頊頊然不自得, 行三十里而後愈.
其弟子曰:「向之人何爲者邪? 夫子何故見之變容失色, 終日不自反邪?」
曰:「始吾以夫子爲天下一人耳, 不知復有夫人也. 吾聞之夫子, 事求可, 功求成. 用力少, 見功多者, 聖人之道. 今徒不然. 執道者德全, 德全者形全, 形全者神全. 神全者, 聖人之道也. 託生與民竝行而不知其所之, 汒乎淳備哉! 功利機巧必忘夫人之心. 若夫人者.非其志不之, 非其心不爲. 雖以天下譽之, 得其所謂, 謷然不顧. 以天下非之, 失其所謂, 儻然不受. 天下之非譽, 无益損焉, 是謂全德之人哉! 我之謂風波之民.」
反於魯, 以告孔子, 孔子曰:「彼假修混沌氏之術者也, 識其一, 不知其二. 治其內, 而不治其外. 夫明白太素, 无爲復朴, 體性拘神, 以遊世俗之間者, 汝將固驚邪? 且混沌氏之術, 予與汝何足以識之哉!」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여행하고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는 길에 한 노인이 채소밭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을 파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들고 나와서 물을 주고 있었다. 힘은 무척 많이 들이고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인데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어 자공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밭을 돌보던 노인은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으나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듣기로는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생기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대해 마음을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에 대한 마음 쓰임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몸을 굽힌 채 말대꾸도 못했다.
잠시 후 밭을 돌보던 노인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많이 배움으로써 성인의 흉내를 내고, 허망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함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팔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당신도 당신의 정신과 기운을 잊고 당신의 육체를 버린다면 거의 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만 가시오. 내가 하는 일이나 방해하지 마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이 하얗게 되고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30리를 가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께서는 그 분을 만나고 나서 무엇 때문에 얼굴빛을 잃고 종일 정신이 없으십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나는 천하에 훌륭한 분은 우리 선생님 한 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었다. 내가 배운 선생님의 가르침은 일이란 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결과는 완성을 추구하며, 힘은 적게 들이고 드러나는 공로가 많은 것이 성인의 도라 배웠다.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구나.도를 지키는 사람은 덕이 완전해야 되며, 덕이 완전한 사람은 몸이 완전해야 되고, 몸이 완전한 사람은 정신이 완전해야 된다. 정신이 완전한 것이 성인의 도이다.
삶을 타고나서 백성들과 나란히 행동하면서도 갈 곳도 알지 못하고 망연하면서도 순일하고 완전해야 한다. 공로와 이익과 기교 같은 것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서 잊혀져야만 한다.
그런 사람은 그의 뜻이 아니면 가지 않고, 그의 마음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그를 칭찬하고 그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온 천하가 그를 비난하고 그의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마음을 비운 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도 그를 손상시키거나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덕이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일 것이다. 나 같은 자는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사람이다.”
자공이 노나라로 돌아와 공자에게 그 얘기를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술법을 배워 닦은 사람이다. 절대적인 도 하나 만을 알지 상대적인 둘은 알지 못한다. 그의 속 만을 다스리지 그의 밖은 다스리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밝게 하여 소박함으로 들어갔고, 무위함으로써 질박함으로 되돌아갔으며, 본성을 체득하고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서 속세에 노닐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무엇을 그리 놀라고 있느냐? 혼돈씨의 술법을 너와 내가 어찌 알겠느냐?”
12.
諄芒將東之大壑, 適遇苑風於東海之濱. 苑風曰:「子將奚之?」
曰:「將之大壑.」
曰:「奚爲焉?」
曰:「夫大壑之爲物也,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吾將遊焉.」
苑風曰:「夫子无意於橫目之民乎? 願聞聖治.」
諄芒曰:「聖治乎? 官施而不失其宜, 拔擧而不失其能, 畢見情事而行其所爲, 行言自爲而天下化, 手撓顧指, 四方之民莫不俱至, 此之謂聖治.」
「願聞德人.」
曰:「德人者, 居无思, 行无慮, 不藏是非美惡. 四海之內共利之之謂悅, 共給之之謂安. 怊乎若嬰兒之失其母也, 儻乎若行而失其道也. 財用有餘而不知其所自來, 飮食取足而不知其所從, 此謂德人之容.」
「願聞神人.」
曰:「上神乘光, 與形滅亡, 此謂照曠. 致命盡情, 天地樂而萬事銷亡, 萬物復情, 此之謂混冥.」
* 大壑 큰 골짜기
순망이 동쪽의 대학으로 가다가 동해 가에서 우연히 원풍을 만났다.
원풍이 말했다.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풍이 물었다.
“무엇 하러 가십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은 물이 흘러들어도 차지를 않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뜻이 없으십니까? 성인의 다스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성인의 다스림이란 관청에서 정치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그 합당함을 잃어서는 안되며,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또 실정을 완전히 살피어 백성들의 행동에 따라 정치를 합니다. 말은 자신부터 실천해야 천하가 교화됩니다. 손짓하고 손가락질만 해도 사방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인의 다스림이라 합니다.”
원풍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들어앉아 있을 때도 생각이 없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옳고 그르다거나 아름답고 추하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아울러 이롭게 하는 것을 기쁨이라 생각하고, 온 세상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안락이라 생각합니다. 모습은 의지할 곳이 없는 듯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멍청하여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쓰는 재물에는 여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음식은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것이 나오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덕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신인(神人)에 대해 말씀하여 주십시오.”
순망이 대답했다.
“신령스러운 훌륭한 분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을 타고 다니며, 몸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조광, 즉 널리 비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운명대로 따르고 실정대로 다하여, 하늘과 땅도 녹아 없어지고 만사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만물과 함께 진실한 형태로 되돌아가는데 이것을 혼명, 즉 뒤섞이고 어둡다 하는 것입니다.”
이제 탈속하려는 순망에게 원풍이 묻습니다.
'네 공부한 것이 다 뭐더냐?'
성인의 치세, 덕, 신인이 뭐라 생각하는가...
순망의 답은 교과서 한가지죠...
블라블라...
그리 술술 내뱉을 정도로 아니 선계에 들겠다는 건데....
그 의식이 문제...
그리 잘 아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펼쳐 행함이 남은 일 아닌가?
13.
門無鬼與赤張滿稽觀於武王之師.
赤張滿稽曰:「不及有虞氏乎! 故離此患也.」
門無鬼曰:「天下均治而有虞氏治之邪? 其亂而後治之與?」
赤張滿稽曰:「天下均治之爲願, 而何計以有虞氏爲! 有虞氏之藥瘍也, 禿而施髢, 病而求醫. 孝子操藥以修慈父, 其色燋然, 聖人羞之.
「至德之世, 不尙賢, 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蠢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迹, 事而無傳.」
문무귀와 적장만계가 함께 무왕의 군사들을 보면서
적장만계가 말했다.“(무왕의 치세가) 순임금의 정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의 환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무귀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던 것이 순임금이 다스려서 일까? 아니면 세상의 난리가 끝나고 그가 다스린 것인지 어찌 알수 있나?”
적장만계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순임금에게 다스리게 했겠습니까? 순임금은 머리 종기에 약을 쓸 때 머리를 모조리 깎게 하고서 다리꼭지를 붙이게 합니다. 병이 생겨야 의사를 구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약을 가져다 아버지에게 드릴 때 근심스런 얼굴을 하지만, 성인은 그처럼 병이 들게 한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지극한 덕이 펴진 세상에서는 현명한 사람도 숭상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쓰지 않습니다.
임금은 지표같고, 백성들은 들의 사슴과 같아서 서로 행동이 바르지만 그것이 의로움인 줄은 알지 못하며, 서로 사랑하지만 그것이 어짊인지 알지 못합니다. 충실하지만 그것이 충성인지 알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들어맞지만 그것이 신용인지 알지 못합니다. 꿈틀거리면서 움직여 서로를 위해 일하지만 그것이 은혜로움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행해도 흔적도 없게 되며, 일해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적장 만계의 사람들은 들판의 사슴과 같다라는 생각은...
본성은 억압해 다스릴 일 아니란 것...
모조리 붙잡아다 마굿간에 가지런히 두는게 다스림이 아니라는 말....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것이 능사일까?
아님 애초에 범죄의 여지를 줄이는게 나은걸까 정도의 차이...
즉, 세상 다스림은 누구의 업적이 아닌 민도의 성숙도 차이...
14.
孝子不諛其親, 忠臣不諂其君, 臣子之盛也. 親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子. 君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臣. 而未知此其必然邪? 世俗之所謂然而然之.所謂善而善之, 則不謂之道諛之人也. 然則俗故嚴於親而尊於君邪? 謂己道人, 則勃然作色, 謂己諛人, 則怫然作色. 而終身道人也, 終身諛人也, 合譬飾辭聚衆也, 是終始本末不相罪坐. 垂衣裳, 設采色, 動容貌, 以媚一世, 而不自謂道諛. 與夫人之爲徒, 通是非, 而不自謂衆人, 愚之至也. 知其愚者, 非大愚也. 知其惑者, 非大惑也. 大惑者, 終身不解. 大愚者, 終身不靈. 三人行而一人惑, 所適者猶可致也, 惑者少也. 二人惑則勞而不至, 惑者勝也.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嚮, 不可得也. 不亦悲乎!
大聲不入於里耳, 折楊皇荂, 則嗑然而笑. 是故高言不止於衆人之心, 至言不出, 俗言勝也. 以二缶鐘惑, 而所適不得矣.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嚮, 其庸可得邪! 知其不可得而强之, 又一惑也, 故莫若釋之而不推. 不推, 誰其比憂? 려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唯恐其似己也.
효자는 그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충신은 그의 임금에게 아첨을 하지 않는데, 그것이 신하와 자식의 훌륭한 태도이다. 부모가 말씀하신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부모가 행한 일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못난 자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말한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임금이 행한 것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그를 못난 신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면 곧 아첨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습속이 본시 부모보다 엄하고 임금보다도 존귀하단 말인가? 자기를 아첨꾼이라고 말하면 곧 성난 듯이 얼굴빛을 바꾸고, 자기에게 눈치꾼이라고 말하면 화난 듯이 얼굴빛을 바꾼다. 그러면서도 평생토록 아첨꾼 노릇을 하고 평생토록 눈치꾼 노릇을 한다.
이유를 들면서 말을 꾸미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작과 끝, 근원과 결과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채색으로 꾸미고, 갖은 용모를 써가며 온 세상에 아양을 떨면서도 자신은 아첨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더불어 무리를 이루고, 같이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면서도 자신은 보통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의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의 미혹됨을 아는 사람은 크게 미혹된 것은 아니다. 크게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깨닫지 못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고생만 하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으니, 내가 비록 가려는 방향이 있다 해도 갈 수가 없다. 그러니 슬프지 않은가.
위대한 음악은 천한 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절양이나 황과 같은 속된 음악을 들으면 좋아서 웃고 법석을 떤다. 그러므로 고상한 말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는 멈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극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속된 말들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모두가 미혹되어 있어서 목적지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처럼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다. 내가 비록 갈 곳이 있다 해도 어떻게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있겠는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억지를 쓰고 있는 것 또한 한 가지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버려 두고 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밀지만 않는다면 그 누가 근심을 할 것인가?
문둥이는 밤중에 자기 자식을 낳고서 바로 불을 가져다 비추어보면서 초조히 그 애가 자기를 닮지 않았을까 두려워한다.
15.
百年之木, 破爲犧樽,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 比犧樽於溝中之斷, 則美惡有間矣, 其於失性一也. 跖與曾史, 行義有間矣, 然其失性均也. 且夫失性有五. 一曰五色亂目, 使目不明. 二曰五聲亂耳, 使耳不聰. 三曰五臭薰鼻, 困惾中顙. 四曰五味濁口, 使口厲爽. 五曰趣舍滑心, 使性飛揚. 此五者, 皆生之害也. 而楊墨乃始離跂自以爲得, 非吾所謂得也. 夫得者困, 可以爲得乎? 則鳩鴞之在於籠也, 亦可以爲得矣. 且夫趣舍聲色以柴其內, 皮弁鷸冠縉笏紳修以約其外, 內支盈於柴柵外重纆繳, 睆睆然在纆繳之中而自以爲得, 則是罪人交臂歷指而虎豹在於囊檻, 亦可以爲得矣.
백년 묵은 나무를 쪼개어 제사 때 쓰는 술잔을 만들려면, 나무에 색을 칠하고 무늬를 조각한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는 도랑에 버린다. 제사에 쓰고 남은 술잔을 도랑에 버려진 부스러기와 견주어 본다면 아름답고 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성을 잃었다는 데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도척과 증삼, 사추는 의로움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을 잃은 것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본성을 잃게 하는 것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다섯 가지 빛깔은 눈을 어지럽혀 눈을 어둡게 만든다.
둘째, 다섯 가지 소리는 귀를 어지럽혀 귀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든다.
셋째, 다섯 가지 냄새는 코를 찔러 콧속을 메이게 만든다.
넷째, 다섯 가지 맛은 입안을 흐려놓아 입을 병나고 상하게 만든다.
다섯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을 날아가 버리게 만든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삶에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주와 묵자는 자기의 주장을 드러내놓고 스스로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되는 것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비둘기나 부엉이가 새장 속에 있는 것도 역시 제대로 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소리와 빛깔은 그의 마음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가죽 관이나 비취새 깃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홀을 꽂고, 큰 띠와 긴 바지를 입는 것은 그의 외모를 제약하는 것이다. 마음은 불안에 가득 차서 막힌 듯하고, 외모는 여러 겹으로 줄에 묶인 듯하다. 눈은 감긴 듯하고, 몸은 줄로 묶여진 가운데 있는 듯한데도 스스로는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팔을 뒤로 돌려 묶이고 손가락에 깍지가 껴져 있거나, 호랑이와 표범이 우리 속에 갇혀 있다 해도 역시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의니 뭐니 따지고 속박하는 것도 본성에 제약을 가하는 짓이고...
그저 마구잡이로 사는 것 역시 본성을 따르는 삶 아니다.
사람답게 살되...
너무 따지지 말고 너그러이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