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馬,蹄可以踐霜雪,毛可以禦風寒,齕草飮水,翹足而陸,此馬之眞性也. 雖有義臺路寢無所用之. 及至伯樂,曰:「我善治馬.」 燒之,剔之,刻之,雒之,連之以羈馽,編之以皁棧,馬之死者十二三矣.,飢之,渴之,馳之,驟之,整之,齊之,前有橛飾之患,而後有鞭筴之威,而馬之死者已過半矣. 陶者曰:「我善治埴,圓者中規,方者中矩.」匠人曰:「我善治木,曲者中鉤,直者應繩.」夫埴木之性,豈欲中規矩鉤繩哉? 然且世世稱之曰「伯樂善治馬,而陶匠善治埴木」,此亦治天下者之過也.
말은 발굽으로 능히 서리와 눈을 딛고 갈 수있고, 터럭으로 능히 바람과 한기를 제어할 수 있고 풀을 뜯고 물마시며 든든한 다리로 땅을 밟고있다 이게 말의 본성이다. 의대와 노침(왕의 자리) 같은 자리가 말에겐 무소용이다. 백락을 보자면 : [말을 잘 다스린다]며 말하길:낙인하고 털을 고르며 발굽을 깎고 갈기를 고르며 고삐를 물리고 마굿간에 묶어두었더니 말 열마리 중 두 세마리가 죽고, 때가려 먹이고 마시게하고, 급히 내몰고 말뚝에 매어 가두어 앞에는 재갈이 매이고 뒤로는 채찍의 위협이 있으니 말의 반이 죽어나갔다.
도자기꾼 왈: [난 흙을 잘 다룬다 동그랗게도, 네모나게도 자로잰듯하다]
목수왈:[난 나무를 잘 다룬다 굽게함에도 곧게함에도 한치의 흩으러짐 없다] 한다.
대저 흙과 나무의 본성에 그런 기준들에 맞춰가도록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세세토록 이르길:[백락이 말을 잘 다루고 도기꾼이나 목수가 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하리라 그러나 이 역시 천하를 다스린다는 자의 지나침일 뿐이요 허물이라...
-말이란 단어로 세상을 빗대어 말하지요 이미 말은 제 살아갈 발굽이니 털이니 모든 걸 갖추고 있는데 그를 내 이용하는 마음으로 끌어다 재갈물리고 채찍을 대니 문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듣는 자의 시점을 잘 잡아야 합니다 듣는 자란 여기서 권세를 잡으려하고 나라를 다스리려 하는 사람들이지요. 출세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세상 경영 할 지혜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지요. 장자는 그들에게 이리 말합니다. 세상 만물은 이미 저나름의 법을 타고났고 이미 저마다 이런저런 변설을 내지르는 데 공연히 나서서 너까지 "내"판단을 넣어 번거롭게 말라는 뜻입니다. 아니 잘난 재주 부리고 자랑하려 들지 말란 뜻입니다.
吾意善治天下者不然. 彼民有常性,織而衣,耕而食,是謂同德.,一而不黨,命曰天放. 故至德之世,其行塡塡,其視顚顚. 當是時也,山无蹊隧,澤无舟梁.,萬物群生,連屬其鄕.,禽獸成群,草木遂長.是故禽獸可係羈而遊,鳥鵲之巢可攀援而闚.
내 생각하는 천하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 백성은 본성에 맞게 살며 그저 옷을 지어 입고 농사를 지어 먹으니 이를 하늘의 덕과 같다고 할 것이다. 한 가지되 파당을 지은 것 아니요 인간의 운명은 하늘이 내린 것. 그러므로 덕이 지극한 세상은 그 행함이 격하지않고 은은하며 그 보이는 것이 다 꽉차 부족함이 없다. 이런 세상에선 산에 오솔길도 없고 못에 다리나 배가 없고 그저 만물 모든 것이 그 난 자리에 속해있을 뿐 짐승은 무리짓고 초목을 울창하다. 이래서 짐승들이 스스로 떼지어 놀고 새집을 올라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다스리는 자가 웅대한 이상이나 사심이 없고 그저 백성을 섬기려는 자세면 새로운 뭐를 들고 나서지 말고 그들의 본연을 잘 살도록 하며 그들에게 쓸데없는 내 고집을 더할 일 아니지요.
一而不黨,命曰天放 이란 말은 하나되지만 획일적이지 않고 사람들 각자의 창조는 제 각각이란 말입니다. 아마 사람들이 한 얼굴 한 생각이면 만남이란 의미 없을 겁니다. 저 각각다르니 서로 어울려 사는 세상인거지요.
마음이 순박하고 착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짐승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법... 왜 그네들은 미추인의로 판단치 않고 하늘이 주신 감동으로 만나기 때문이죠, 저들 대로 무리진 짐승을 각자의 소용으로 끌어내는 것 그것이 자연을 깨는 겁니다. 모든 걸 제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다스리는 자의 덕목입니다.
아니 제자리를 떠난 자를 제자리로 돌리는 것...
夫至德之世,同與禽獸居,族與萬物竝,惡乎知君子小人哉! 同乎无知,其德不離.,同乎无欲,是謂素樸.,素樸而民性得矣. 及至聖人,蹩躠爲仁,踶跂爲義,而天下始疑矣.,澶漫爲樂,摘僻爲禮,而天下始分矣. 故純樸不殘,孰爲犧樽! 白玉不毁,孰爲珪璋! 道德不廢,安取仁義! 性情不離,安用禮樂! 五色不亂,孰爲文采! 五聲不亂,孰應六律! 夫殘樸以爲器,工匠之罪也.,毁道德以爲仁義,聖人之過也.
덕이 지극한 세상엔 온갖 짐승이 서로 같이 살고 제 각각 족속이 서로 잘 조화로이 있었는데, 군자소인을 어찌 알겠나! 그저 모를만큼몰라 그 덕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저 욕심이 없으니 소박할 뿐.. 이 소박함이 사람들의 본성이 되었다.
성인이 나오고서야 에둘러 가는 것이 어짊인양, 뭔가 애쓰는게 의인양 하니 이로써 천하에 의문들이 생긴것. 방종하고 풀어짐이 즐거움이요, 짚어내고 거리끼는 것이 예라하니 천하가 나뉘는 것.
나무를 깎지 않으면 술잔이 나오나! 옥덩어리가 나뉘지 않으니 뭐가 옥구슬이요 장식인가! 도덕이 사라지지 않으면 인의를 쉽게 알게 될 것! 본성과 뜻이 나뉘지않으면 예악이 그저 편히 쓰일 것! 오색이 나뉘지 않으면 뭐가 무늬일까! 소리가 나뉘지 않으면 뭐가 육율(음계)일까 대저 통나무를 깎아내 그릇이 되니 재주많은 이의 죄라. 도덕을 흩고 인의를 세우니 성인의 허물이라.
-남의 머리된 자의 제일 가는 덕목은 소박하게 살도록 돕는 겁니다.
내 식도 있다 한 번 그리해보자 살도록 강요하는 것 아니라..
또한 어찌 성인의 어짊이 빙빙 에둘러가는 걸까요?
어찌 뭔가를 세우고 만들어감이 올바름일까요?
사람들로 뭔가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은 나의 작위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유인책 아닌가요?
그저 사람들의 본성을 살도록 함이 도덕(진리와 사랑이 가득찬 세상) 이 아닌가요?
꾸미고 닦는 것 그것은 남 보이기 위한 처신이다.
질박하게 사는 것 솔직하게 사는 것이 깨친 이의 삶.
2.
夫馬,陸居則食草飮水,喜則交頸相靡,怒則分背相踶. 馬知已此矣. 夫加之以衡扼,齊之以月題,而馬知介倪闉扼鷙曼.詭銜.竊轡. 故馬之知
而態至盜者,伯樂之罪也.
대저 말이란 땅에 살며 풀뜯고 물마시며 기쁘면 서로 목을 비비고 성나면 등 돌려 서로 찬다. 말이 아는 것은 이뿐이라. 대저 말에게 굴레를 씌우고 마구를 채우니 말이 끼인 걸 알고 멍에를 느끼고, 재갈 물린 걸 알게되어 도적처럼 교활하게 되니 이게 백락의 죄라
-말이란 그저 먹고마시고 기쁘면 서로 치대지만 화나면 뒤돌아 발길질이나 하지요. 그게 짐승된 본성입니다. 사람은 그리 살 것은 아니지요.
사람들이 이미 세상의 법도와 규례를 알게되고 그에 매이니 그 모양으로 삽니다. 좋을 땐 치대다가 싫으면 되돌아 발길질이나 하며... 이런 걸 막자는게 공맹의 가르침이긴 합니다만... 그런 가르침의 문제는 사람을 너무 박제화한다는 거지요.
자유로운 본연 우리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자유로운 본성이 그런 틀을 벗어나려하게 됩니다. 이런 허탄한 굴레를 잘 맞춰사는 것이 마치 우아한 삶이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지요 또 하나의 획일주의적 파당을 짓는 겁니다.
夫赫胥氏之時,民居不知所爲,行不知所之,含哺而熙,鼓腹而遊,民能以此矣. 及至聖人,屈折禮樂以匡天下之形,縣跂仁義以慰天下之心,而民乃始踶跂好知,爭歸於利,不可止也. 此亦聖人過也.
대저 혁서씨 때엔 사람들이 거처의 좋고 나쁨을 몰랐고 행함에 막힘이 없고 먹고 배부르면 기쁘고 배를 두드리며 놀았다 사람들은 겨우 이 정도라. 성인이 나오고 예악을 따져 천하의 모습을 갖추게되고, 애써 잡아 인의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니 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것을 애쓰게 되었고 이문을 따지기 시작해서 그치질 않았다 이게 성인의 허물이라...
-남의 머리 된 자는 일사분란함으로 내 맘대로 남을 휘어잡으려 말고 그저 자유롭게 저 네들 난 본연을 살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나 저 난 본연이 난삽하고 남에게 허물되는 것을 놔두자는 아니지요. 본연 하나님 창조의 모습은 제각각 저 하고싶은 대로 하라는 것 아니라 서로 화합하고 살라는 거죠...
마약장이에게 마약하는 것을 본연이라 할것인가요? 도둑놈 살인자의 행실을 그들의 본연이라 할 것인가요? 본연이란 그런 습벽 이전을 말함이지 지금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 보다 더 본연은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를 살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글에 나오는 성인은 우리가 아는 성인이 아닌 제 자랑으로 혹세무민하는 이를 빗대어 부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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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말을 분석하고 발라내는게 아니라 말굽을 달아 말이 제 구실하게 하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