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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남화경

應 帝 王

이 장은 한마디로 제왕론(덕치라 불리는)으로 오늘날 리더십과 비길 만한 장이지요...  

잘 읽다보면 남의 머리되고 싶은 잘난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리라 믿습니다...

 

 

應 帝 王

 

 

1.

 

齧缺問於王倪,四問而四不知.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네가지를 물었는데 넷 다 모른다고 했다.

 

齧缺因躍而大喜,行以告蒲衣子.

 

설결이 이로 인해 크게 깨치고 기뻐서 포의자에게 가 전했다.

 

蒲衣子曰:「而乃今知之乎? 有虞氏不及泰氏. 有虞氏,其猶藏仁以要人.,亦得人矣,而未始出於非人. 泰氏其臥徐徐,其覺于于.,一以己爲馬,一以己爲牛.,其知情信,其德甚眞,而未始入於非人.

 

포의자 말하길: [이제 알았느냐? 유우(순임금)은 태황(3황 중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유우씨는 어짊을 지녔기에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 사람을 얻었기에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했다. 태황은 잠자리에 누우면 한가롭고 깨서는 좀 모자란 듯했다. 한 번은 자기를 말이라고 하고 한 번은 소라고 한 바. 그는 情(뜻:본질)과 신뢰를 알고 그 덕이 깊어 진리에 이르러, 사람의 경지를 넘어섰다.

 

왕예는 요임금때 현인으로 설결의 스승이요 포의자는 순임금의 스승이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사상을 알게 되는 것이 3황시대가 가장 태평성대요 5제로 그리고 후대로 갈수록 도리가 혼탁해 진다보는... 이는 마치 성서에서 인간의 타락이전이 에덴이요 진리가 살아 숨쉬고 만물과 하나되는 삶을 살았다고 믿듯이 말이다...

 

왕예의 4질문은 제물론에도 나온 바...  

설결이 1, "선생님께서는 만물이 모두 같다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하자 왕예는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다시 2,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모르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하자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였다.

 

이에 설결이 , 3, "그렇다면 물物이란 알 수 없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왕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지만 시험삼아 말해 보겠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진정 모르는 것이 아닌 줄 어떻게 알며, 내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모르는 것이 아닌 줄 어떻게 알겠는가?

 

이제 내가 시험삼아 자네에게 물어 보겠다. 사람이 습지에 거주하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사람이 나무에 거처하면 두려워서 벌벌 떠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이 셋 가운데 누가 바른 거처를 알겠는가?

 

사람은 가축을 먹고, 순록과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솔개와 갈가마귀는 쥐를 좋아하는데, 이 넷 가운데 누가 바른 맛을 알겠는가? 원숭이는 편저로 암놈을 삼고 순록은 사슴과 교배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과 여희(유명한 미인)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이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깊이 숨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과 사슴은 그들을 보면 결사적으로 도망치니, 이 넷 가운데 누가 천하의 바른 미색을 알겠는가?

 

내가 살펴보건데 인의의 단서와 시비의 갈림길이 어수선하게 뒤섞여 어지러우니, 내가 어떻게 그 구별을 알 수 있겠는가?" 다시 설결이 4, "선생님께서 이해利害를 모르신다면(떠났다면) 지인至人은 진실로 이해를 모르는(떠난) 것입니까?"라고 하자,

 

왕예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인은 신이다. 큰 늪을 채운 갈대가 불타도 그를 뜨겁게 할 수 없고 황하와 한수가 얼어붙어도 그를 춥게 할 수 없으며, 벼락이 산을 부수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그를 놀라게 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사람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몰아 사해의 밖에서 노닐므로 죽음과 삶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해문제 같은 말단임에랴!" 을 말한다.

 

보통사람인 우리가 배우면 꺼꾸로 배워 올라가야 할진대

 

1, 먼저 이해를 떠나야 겠지요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는 남의 머리 될 자격 없지요... 그 다음은?

 

2, "나"를 버려야 겠지요 나가 있어 모든 걸 파악한다는 어줍쟎은 생각... 다음은

 

3,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달아야지요.

 

4, 그 다음이 세상 만물이 하나요 나도 그 중 하나라는 沒我의 경지에 들어야 남의 머리되어도 부끄럽지 않지요....

 

한마디로 나를 넘어서야 남의 머리 되는 겁니다. 불교론 無我요 沒我, 解脫 得道 覺醒 見性으로 표하고 기독교에선 "나는 죽었고 주님만이"라는 표현이지요...



2.

肩吾見狂接輿,狂接輿曰:「日中始何以語女?」

 

견오가 광접여를 만나게 됐다 광접여가 묻길: [일중시가 너를 어찌 말하드냐?]

 

肩吾曰:「告我君人者以己出經式義度,人孰敢不聽而化諸!」

 

이르길: [내가 된사람이라 이미 경전과 형식과 의와 도리를 넘어섰다 하며 사람중 누가 감히 너를 듣지 않고도 교화되리라 합디다.]

 

狂接輿曰:「是欺德也. 其於治天下也,猶涉海鑿河,而使蚊負山也. 夫聖人之治也,治外乎! 正而後行,確乎能其事者而已矣. 且鳥高飛以避矰弋之害,鼷鼠深穴乎神丘之下,以避熏鑿之患,而曾二蟲之無如!」

 

광접여 말하길:[그럼 그건 사기이다. 그런 식으로 천하를 다스리면 바다를 걷어내고 하천을 만들어내는 것 즉, 모기가 산을 지고가는 형국이라. 대저 성인의 다스림이란 다스리는 것을 이미 넘어선 것! 바르면 남들이 따르는 법이요 정확하면 그 모든 걸 이미 있는 것처럼 가지런히 할 수 있다. 또한 새가 높이 날면 화살을 맞아 죽는 꼴을 피하는 법이요, 새앙쥐 깊이 구멍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듯하니 쥐불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은 진리를 아지 못하는 버러지 인데...    

 

- 견오란 전설상의 인물로 접여와 동시대 사람은 아니다 접여는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니...일중시는 견오의 스승이라 하니 더더구나 가상의 인물...

 

다만 여기서 상징하는 바는 사람으로 경전과 형식 그리고 정의와 도리를 넘어선 사람을 보통 사람이 알아챌 눈이 없다. 오직 서로 같은 경지로 넘어섰을 때만 가능할 뿐 그저 범인의 눈으론 이상한 넘 취급할 뿐이다.

 

혹여 남들의 달콤한 말에 자신이 경지를 넘어섰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다스린다고 나서면 바다를 걸어 건너고 물길을 새로 내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다(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  진리를 알고 올바르고 정확해 가지런히 만들어도 워낙 산만한 사람들이 가만 안두는데... 그리 나서라 하나?

 

더구나 그 소리 듣고 하다못해 진리를 모른다는 짐승도 화를 피할 도리를 아는 법이거늘 그를 알아채지 못하나?

 

*쥐나 구멍파고 사는 짐승을 잡을땐 한 쪽 구멍에 연기를 피워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걸 잡는 법... 그러나 연기가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이 굴을 파고 있으면 소용없는 짓...

 

이 글이 주는 교훈은 일종의 이중적 파라독스로... 

도를 깨우친 자는 속세와 멀리 떨어지거나 깊이 숨는 법... 

그런 이를 부축여 넌 된 사람이다 내놓는 건 그를 죽이는 것... 

남의 말에 귀기울인다는 자체가 아직 남의머리 되기 틀린 사람이란 것... 

남의 말을 듣는 것 아니라 진리를 들을 줄 알아야 깨우친 이다.

 

다윗이 메시아로 불리는 것은 나단의 말을 듣고 무릎꿇을 줄 알기 때문이요...

아무리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지었어도 그 아래 솔로몬이 허락됨은 진리를 향해 "열려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닫힌 사람은 고여 썩을 뿐이요 닫힌 태는 더이상의 생산을 못하는 무용지물이듯... 

사래가 웃은 건 자기의  태가 닫힌 걸 아는 정도의 지혜였지 그 태 조차도 주관하시는 진리를 몰랐던 탓이지요. 



3.

天根遊於殷陽,至蓼水之上,適遭無名人而問焉,曰:「請問爲天下.」

 

천근이 은양땅을 가다가 요수 상류에서 무명인을 만나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알고싶습니다]

 

無名人曰:「去! 汝鄙人也,何問之不豫也! 予方將與造物者爲人,厭,則又乘夫莽眇之鳥,以出六極之外,而遊無何有之鄕,以處壙垠之野. 汝又何帠以治天下感予之心爲?」

 

무명인이 답하길:[가라 이 더러운 놈아 어째 그런 질문을 하나! 난 조물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려는데, 꼴보기 싫군, 이제 막 이 모든걸 벗어날 방도를 얻어(莽眇之鳥: 멀리 날아갈: 신선이 학을 타고 논다지요?) 육극 바깥으로 나서려던 참으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한없이 너른 들판을 노니려한다. 넌 무슨 까닭에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물어 내 마음을 흔드나?

 

又復問.

 

그래도 다시 재차 물으니

 

無名氏曰:「汝遊心於淡,合氣於漠,順物自然而無容私焉,而天下治矣.」

 

무명씨 말하길: [네가 마음을 담담히 쓰고, 기를 조용히하여 만물을 자연스레 대하여 사사로움이 없으면 그게 다스리는 법이다]

 

 - 육극을 떠난다는 말은 세상 번잡함을 떠나 조용히 제 천명을 누림을 말한다. 

 

마음을 그저 담담하게 쓴다는 말이 뭔가? "나"란 걸 지우라는 말...내 마음의 주인이 나라는 생각 버리라는 말이지요, 기를 없는것에 맞춰라... 기운이란 위로 솟는 것이니 그저 없다싶게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만물에 자연스레 따르라는 말은 삿된 마음으로 말없는 만물을 제 뜻으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나"를 꺾고 지워라 이 말입니다. 

세상을, 권세를 얻었으면 남의 것 빌어쓴다는 마음으로 잘 쓰고 돌려줘야 한다고 곱게곱게 쓸 일입니다. 그게 천하를 다스리는 법이지요.

 

제자리로 돌리는 것....

 

참고 글...


오복(五福)과 육극(六極)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리는 복(福)은 누구나 많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복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 하면서 복의 반대가 되는 흉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흉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당할 대로 다 당하고서도 미리 방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기 보다는 그냥 운이 나빠서 흉을 당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인간의 본연적인 허물인 것이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그 속에 어리석음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그 계획은 반드시 실패에 대한 대책을 포함하고 있어야 치밀한 계획이 된다. 성공만 전제로 하고 있는 계획은 실패했을 경우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생각할 때는 그 반대편에 있는 흉의 관념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즉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다는 사고의 양방향성에 의의를 두면서 『서경』홍범편에 나오는 오복과 육극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복(五福)은 첫째 수(壽), 둘째 부(富), 셋째 강녕(康寧), 넷째 유호덕(攸好德), 다섯째 고종명(考終命)이다.

(五福 一曰壽, 二曰富, 三曰 康寧, 四曰攸好德, 五曰 考終命.)


오복(五福)으로 볼 수 있는 수(壽)는 120살이다. 부(富)는 재물이 풍부하게 비축되어 있어야 하며, 강녕(康寧)은 질병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유호덕(攸好德)은 평상시 그가 좋아하는 바가 덕과 복의 도(道)이어야 한다. 고종명(考終命)은 사람마다 주어진 길고 짧은 명이 중간에 횡천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마쳐져야 한다.


육극(六極)은 첫째 흉단절(凶短折), 둘째 질(疾), 셋째 우(憂), 넷째 빈(貧), 다섯째 악(惡), 여섯째 약(弱)이다.

(六極 一曰凶短折, 二曰疾, 三曰憂, 四曰貧, 五曰 惡, 六曰弱.)


흉단절(凶短折)은 불행하게 60세 이전에 죽으면 단(短)이라 하고, 비통하게 30세 이전에 죽으면 절(折)이라고 한다. 즉 60세 이전에 죽으면 단명(短命)이고 30세 이전에 죽으면 요절(夭折)이다. 질(疾)은 항상 병을 끼고 사는 것이고, 우(憂)는 근심거리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빈(貧)은 재물이 곤궁한 것이고, 악(惡)은 추하고 비천한 것이다. 약(弱)은 몸이 비정상적이며 열등한 것이다.



4.

 

陽子居見老聃,曰:「有人於此,嚮疾强梁,物徹疏明,學道不倦 . 如是者,可比明王乎?」

 

양자거가 노담을 보고 이르길:[여기 한 사람이 있어 괴로움을 잘이기기는 돌다리같고 만물을 꿰뚫어 보아 밝히 알고 진리를 공부함에 게으르지 않다. 이런 사람을 명왕과 비길 수 있나?]

 

老聃曰:「是於聖人也,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 且也虎豹之文來田,猨狙之便來藉. 如是者, 可比明王乎?」

 

노담이 답하길:[성인 입장으로 보자면 잠깐 기(재주)에 매이는 자요 겉모양에나 신경쓰고 마음은 차마 다듬지 못하는 자니 호랑이나 표범의 무늬가 화를 부르고 원숭이의 재주가 업수이 여김을 받듯 나중에 버림받지요  이런 자를 어찌 명왕에 견줄까요?]

 

陽子居蹴然曰:「敢問明王之治.」

 

양자거가 기꺼워 묻길:[감히 명왕의 다스림에 대해 묻습니다]

 

老聃曰:「明王之治: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弗恃.,有莫擧名, 使物自喜.,立乎不測,而遊於無有者也.」

 

노담이 말하길:[명왕의 다스림이란 "공이 천하를 덮어도 자기는 없듯 하고, 만물을 빌 정도가 되도 사람들을 믿지않는 법. 제 이름 들먹이는 것을 막으며 만물이 스스로 기쁘게 한다."  있어도 있는지 모르니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제 할일이나 하는 사람이지]

 

-우리는 어떤 이가 성실하고 모든 것에 잘 대처하면 그가 참 깨달은 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 처신이 남다르고 훌륭하기에... 그러나 당자가 모르는 것이 그리 외연만을 닦다 보면 화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호랑이 표범의 그 무늬를 보고 그를 탐하기에 사냥질을 시작하고... 그 재주를 보고 원숭이를 잡아 들이듯... 자기를 오히려 안온한 데 두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끌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차라리 껍닥은 두고 내실을 다짐만 못하다.

 

여지껏 우리는 성실함, 겸손함에 대해 생각해왔다 늘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그를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그러나 여기보면 그로만 되지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를 감추는 겸손함이다. 속진에 나를 내어 놓으면 때묻고 아님 명을 재촉하는 법...

 

그런 태도로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질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그런 모습으로만 사는 것에 그치고 만다면 그건 문제를 낳는다. 명왕과 성실한 사내 하나... 겉보기엔 둘다 별반 다를 바없으나 문제는 실지 그의 살아지는 삶이다... 명왕의 다스림엔 자기란 것이 없다...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은 진짜로 진리에 사는 사람 아니다. 아니 굳이 말하면 이제 한 참 오르막 오르는 중일 뿐이다...내리막 아니 정상에 오른 사람이 갖춰야 할 도덕은 진짜로 그리 살아내는 것이다. 그삶에서 자기를 잊고 공을 잊고 있는듯 없는 듯 사는 사람이다.

 

객담이지만 시이저가 왜 브르투스의 칼을 맞는가? 왜 요순시대엔 사람들이 군주의 이름을 몰랐을까?

 

제왕이란 뭔 업적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

 

자질을 갖췄어도 정작 한 줌도 그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그 자질은 차라리 없음만 못하고 오히려 자기만 볶다가 끝날 뿐...




5.

鄭有神巫曰季咸,知人之死生存亡,禍福壽夭,期以歲月旬日,若神. 鄭人見之,皆棄而走. 列子見之而心醉,歸,以告壺子,曰:「始吾以夫子之道爲至矣,則又有至焉者矣.」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이 있어 사람들의 생사존망 화복수요를 연월일시까지 맞추는데 귀신같았다. 정나라 사람들이 그를 보면 모두 도망갈 정도로... 열자가 그를 만나곤 맘에 들어 돌아와 호자에게 고하길: [처음엔 스승의 도가 지극한줄 알았더니 더한 사람이 있읍디다]

-저 하는 판단이 있다는 것은 저가 뭘 이룬 게 있다 믿는 탓이지요.

그러나 진정 배우는 자라면 아직도 넓고 넓은 배움의 세계에 물가에서 부서지는 파도 물방울만 가지고 놀고있음을 알고 은인자중해야지요.

무당은 그 사람의 드러나는 기운만을 읽는 것...

그 본질을 사는 것은 아니지요.눈이라도 밝으니 사람들의 운명이라도 읽지만... 그래서 재주라는 겁니다.

壺子曰:「吾與汝旣其文,未旣其實,而固得道與? 衆雌而无雄,而又奚卵焉! 而以道與世亢,必信,夫故使人得而相汝. 嘗試與來,以予示之.」

호자왈:[난 너에게 그 모양이나 가르쳤지 그 실지는 다 가르치지 못했는데 어찌 도를 깨달았다하느냐? 뭇 암컷 사이에 수컷이 없는데 어찌 알을 낳을 수 있나! 네가 얕은 도를 가지고 너가 세상에 나섬은 필경은 그렇거니와 그 사람이 너의 모습을 보고 널 부추겨 널 우쭐하게 한 것... 같이 와서 내 모습을 보이거라]

-얕고 천박한 이의 병이지요 좀 안다고 다 아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를 보고 맘에 드는 소리나 하는 사람이 있다니 깨우치려는 스승의 애정입니다. 아마 못 알아듣는 버릴 제자면 이런 수고도 않겠지요...여기서 모양(形)이라 함은 사람마다의 개성이라 해도 좋고 사람마다의 삶의 가치.

明日,列子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噫! 子之先生死矣! 弗活矣! 不以旬數矣! 吾見怪焉,見濕灰焉.

列子入,泣涕沾襟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地文,萌乎不震不正. 是殆見吾杜德機也. 嘗又與來.」


다음날 무당과 열자가 와서 호자를 보고 나오며 열자에게 이르길: [아! 네 스승은 죽을 상이라 살지 못해 얼마 못가! 내 보기엔 기괴하고 젖은 재와 같아.]

열자가 들어와선 옷이 젖도록 대성통곡을 하고 호자에게 고하니 호자 왈:[난 여기 땅의 기운(地氣)를 보여주었다. 있느니 생산의 기운도 없고 바르지도 않은.. 이런 죽은 기운으로 나를 보니 덕이 가리워 보이지 않지 다시 와보라 해라]

-萌乎不震不正 있느니 震(애를 배는 생명력) 아니고 바름 아니니... 즉, 생명력이란 뭐든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러나 젖은 땅 젖은 재와 같은 이는 죽은 이입니다. 죽은 송장은 쓸모없지요. 송장은 가져다 묻으면 될 뿐...번거롭지요

明日,又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幸矣,子之先生遇我也! 有瘳矣,全然有生矣! 吾見其杜權矣.」

列子入,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天壤,名實不入,而機發於踵. 是殆見吾善者機也. 嘗又與來.」

다음날 다시 그가 와 호자를 만나고 나가며 열자에게 이르길:[행운이다 네 스승이 나를 만나 치료가 됐네 전부 생기로 넘친다! 내 그의 가려진 힘을 보았다!]

열자가 들어와 아뢰니 호자 말하길:[천양을 보여주었을 뿐이네 명이니 실이니 틈타지 않은, 그래서 그 기운으로 인해 내 선한 기틀을 본게지 내일 또오라 해라]

-여기서 천양란 뭔가요? 굳이 말하면 하늘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이름붙이기나 실체라든가라는 판단이 들기 이전의 상태 무한한 생명력 그 자체를 말하지요. 그러니 좋아보이지요. 이름붙이기란 사람들이 제 판단 안에 사물을 가두는 짓입니다 저는 스스로 사물을 잘 분변한다지만 사물은 원래 그대로 일뿐인데...

明日,又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子之先生不齊,吾无得而相焉. 試齊,且復相之.」

列子入,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太沖莫勝. 是殆見吾衡氣機也. 鯢桓之審爲淵,止水之審爲淵,流水之審爲淵. 淵有九名,此處三焉. 嘗又與來.」

다음날 다시 호자를 만났다. 나오며 열자에게 이르길:[스승이 일정치 않으니 나로선 그를 읽을 수 없네 고르게 한 후 내 다시 상을 보리라!]

열자가 들어와 호자에게 이르니 호자 왈:[내 크게 차있어 승부를 연연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네 이러니 마땅히 내 가득찬 기운을 본 게지.

잔고기의 판단이요 머물어있는(생령이 없는) 판단이고, 물이 흐르는(생령이 살아있는) 판단이라. 판단은 9개 이름이 있고 이제 3가지를 보였으니 또 오라해라]

-보여주는 것만 보는 이는 꿰뚫어 보는 자 아니지요... 보이는 것만 판단하는 자는 어리석지요.

明日,又與之見壺子. 立未定,自失而走. 壺子曰:「追之!」列子追之不及. 反,以報壺子曰:「已滅矣,已失矣,吾弗及已.」

壺子曰:「鄕吾示之以未始出吾宗. 吾與之虛而委蛇,不知其誰何,因以爲弟靡,因以爲波流,故逃也.」

다음날 다시 호자를 보았다. 바로 자리잡지도 못하고 망연자실 도망갔다 호자 이르길;[쫒아라! 열자가 따라가나 잡지 못했다.] 돌아와 호자에게 보고하며 말하길;[없어졌읍니다 잃어서 저로선 잡을 수 없읍니다]

호자 왈:[내 내 안의 내보이지 않는 근본을 보였다. 내 비어서 침착히 있는 모양을... 그게 어찌 그런지 알지 못하니 다만 없다가, 다만 파도같이 변하는 까닭에 그가 도망간 것이라]

-보는 것에 매이는 사람은 정작 그 실체를 감히 마주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태양을 마주해 태양의 흑점을 볼 수 있나요? 외려 시력만 잃지요.

뵈주는 것에 능한 사람은 처세에만 치중하는 거지요... 사람보지않고 진리보고 살려면 속을 볼 줄 알아야지요.

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三年不出. 爲其妻爨,食豕如食人. 於事无與親,雕琢復朴,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一以是終.

그 연후 열자가 공부는 시작도 않했음을 깨닫고 돌아가 3년간 나오질 않으며 마누라를 대신해 밥도 짓고 돼지 먹이기를 사람 섬기듯하며 친지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열심히 다듬어 순박함으로 돌아가 쌓아 홀로 자기 形을 세웠다. 산산히 부수고 다시 세워 이 하나로 끝까지 일관했다.

-열자는 순박함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세웁니다 기존의 배운 모든 허울을 산산히 부수었다가 다시 쌓으므로...紛而封이란 말입니다.

공부란 개미처럼 벽돌 쪼가리를 무수히 긁어모으는 것과는 다르지요.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배운 사람도 난삽합니다. 어쩌면 긁어 모은 벽돌들로 이리 저리 쌓아보고 하면서 종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거지요.

물론 처음엔 많이 듣고 보고 읽어야지요 男兒守讀 五車書란 말이 그겁니다. 다섯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벽돌쌓기놀이 잘하지요...

그리고 나이 들어선 그 모은 벽돌들로 세상살이에 맞춰 이리저리 쌓아보고 나이 50 지천명이 되면 자기만의 탑을 쌓아가기 시작해야지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지요...

그 동안 내 의도든 아니든 쌓였던 것들을 해체하고... 한 번 해 본 일이니 잘 할 수 있지요. 죽기 전에 그리 내 이름 걸맞는 인생 쌓는 기회 가진다는 건 복입니다.

지금은 부단히 부숴내야지요... 그저 끌어안고 어거지로 붙여가자면 나중에 이도저도 아닌 잡탕 나오지요... 아이들 다 크고 육체적 정욕이 죽음은 이제부터 여행이나 다니고 맛난 것 먹으라는 것 아니고 조용한 시간에 그런 작업들 하라는 겁니다... 이왕지사 인생으로 난 것 저 받은 걸 만들어 봄이 사는 낙이지요...

모르고 싫으면 말고...


6.

无爲名尸,无爲謀府.,无爲事任,无爲知主. 體盡无窮,而遊无朕.,盡其所受乎天,而无見得,亦虛而已. 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故能勝物而不傷.

 

하릴없음은 주검을 이르는 말, 하릴없음은 뭐든 하는 법이고 없음은 지혜의 근본입니다. 육신이 다하면 궁극에 이르고 뭐하나 주인 됨없다. 그 다함을 받아들이는 자리에 하늘이 임하고 그래서 얻음이 부질없다. 또 자기란게 없지요 깨달은 사람은 자기를 거울처럼 씁니다. 비치지 않으려 하지도 않고 감추는건 감추는 대로 비추죠 그래서 상채기 없이 만물을 이기게 되지요.

 

南海之帝爲儵,北海之帝爲忽,中央之帝爲混沌. 儵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混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混沌之德,曰:「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此獨無有,嘗試鑿之.」日鑿一竅,七日而混沌死.

 

남해의 왕을 숙이라합니다. 북해의 왕을 홀이라 하구요 가운데 있는 왕을 혼돈이라하지요. 숙과 홀이 만나면 혼돈이요 혼돈은 선을 기다리는 법 숙과 홀은 혼돈의 덕을 보고싶어 합니다 그래서:[사람들은 7개 구멍으로 듣고 먹고 자는 걸 봅니다, 그러나 이는 저란게 없어요 그저 구멍이지요] 하루에 한 구멍이지만 7일이면 혼돈이란게 죽지요.

 

-사람들은 그저 시계추 모양 흔들립니다. (儵)조급하거나 (忽)무신경하거나... 그 가운데는 혼돈 뿐이지요... 7구멍이란 뭘까요? 눈 코 귀 그리고 들고 싸는 곳... 아마도 옛 현인들은 입과 뒷구멍을 하나로 본모양입니다. 맞지요 연결된 것이니... 7공이지요 이 말은 보고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싸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 보는 淺薄한 인생의 판단을 말하지요...

 

그저 구멍란 더 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먹고 싸는데 매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누구든 잘먹고 좋은 냄새 맡고 좋은것 듣기 바라고 입에 넣었다가 쾌변하면 좋지요...

 

그러나 그 행위에 매이면 주인됨을 잊게 된다...

7공의 주인은 정신....

도란, 진리란 이런 7공에 매인 삶과는 상관없다.

 

혼돈이 죽는다는 건 간단해서 그걸 질서라는 이름으로 세우기에 조급함과 나태함을 이기는 겁니다.

 

잘난 사람들이 하는 어리석은 선택이란

좋은것 듣고 보고 먹자 하지만 어차피 배설물이란 더러운 것...

 

이는 진리를 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욕심일 뿐...

어차피 몸밖으로 나오는 것은 더러운 것이란 걸 모르나?

금덩어리 먹으면 금덩어리 싸나?

 

중요한 건 뭘 먹고 보고 듣던 쌓아두지 않는 거죠

 

성경에도 나오듯 입으로(눈으로 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 아니라 (입으로든 뒤로든) 나오는 것이 더럽고 악하다고...

 

현명한 지도라란 쌓아두지 않는 사람...

오히려 잘 굴러가도록하는 사람...

 

돈은 돌고 돈다고 돈이라듯...

재물이든 명예든 한 곳에 꿍쳐두면 탈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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