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天道運而无所積,故萬物成.,帝道運而无所積,故天下歸.,聖道運而无所積,故海內服. 明於天,通於聖,六通四辟於帝王之德者,其自爲也,昧然无不靜者矣. 聖人之靜也,非曰靜也善,故靜也.,萬物无足以鐃心者,故靜也. 水靜則明燭鬚眉,平中準,大匠取法焉. 水靜猶明,而況精神! 聖人之心靜乎! 天地之鑑也,萬物之鏡也.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天地之本,而道德之至,故帝王聖人休焉. 休則虛,虛則實,實者備矣. 虛則靜,靜則動,動則得矣. 靜則无爲,无爲也則任事者責矣. 无爲則兪兪,兪兪者憂患不能處,年壽長矣.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萬物之本也. 明此以南鄕,堯之爲君也.,明此以北面,舜之爲臣也. 以此處上,帝王天子之德也.,以此處下,玄聖素王之道也. 以此退居而 閒游,則江海山林之士服.,以此進爲而撫世,則功大名顯而天下一也. 靜而聖,動而王,无爲也而尊,樸素而天下莫能與之爭美.
하늘 진리란 늘 변화하여 어디 한군데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만물이 제대로 된다.
제왕의 도리도 늘 한가지 아니라 어디 한 군데로 치우치질 않으니 세상이 그리 모여든다.
성인의 가르침도 늘 움직여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온 나라가 따른다.
하늘처럼 밝고 성인처럼 깨우치고 육기를 알고 사방을 다스리는 제왕의 덕은 그 스스로 세워지니 그저 고요할 뿐이다.
성인의 고요함을 고요하다해서 선하다 하지마라.
만물이 번잡한 생각에 만족하지 않으니 공하다라는 것.
물이 조용하니 능히 얼굴을 비추고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 큰 목수가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물이 고요해 밝히 근본을 할 수 있다면 하물며 정신이야!
성인이 고요하면 세상을 비췰수 있고 만물의 거울이 되리.
대저 비어서 고요하며 조용하면 능히 세상의 근본이라 할 것 이리하여 도덕이 그 지극함에 이르리니 이로써 왕이니 성인이니가 쓸모없으리.
쉼이란 빈것이요 비어있으니 일이관지하고 일이관지하니 모든 걸 대비할 수 있다.
비었으니 고요하고 고요하니 뭔가 할 수 있고 그러니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것.
고요함이란 '무위'요 '무위'란 지도자의 할 바라.
'무위'란 늘 대응할 준비 된 것이요 대응할 준비된데에는 우환이 싹트지 않으며 오래 간다.
대저 비어서 고요하며 조용한 것은 세상의 근본이라.
이런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린 이가 요임금이요.
이런 밝음으로 신하노릇 한 이가 순이라.
이것이 위로 오르면 제왕의 덕이요 아래로 내려가면 현명한 성인과 제대로 된 왕의 도리라.
이것이 물러서 거하면 한가함이니 모든 선비가 따르고자 하는 것. 이것이 나아가면 세상을 아우르니 큰 공과 이름으로 세상이 하나된다.
고요함이 聖이요 그 작용이 왕이나 '무위'가 게중 존귀하니 순박함에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 다투지 않을 것이라.
- 무위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은 상태인가? 아니 그 반대로 뭐에든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열린 준비 상태라 할 것이다.
이미 그 돌아가는 것을 알고 그 추이를 바라보며 예민함으로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 그것이 무위다
뭔가를 함으로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현혹하는 것은 하늘의 다스림 아니다.
2.
夫明白於天地之德者,此之謂大本大宗,與天和者也.,所以均調天下,與人和者也. 與人和者,謂之人樂.,與天和者,謂之天樂.
대저 천지의 덕을 명백히하는 것, 이를 이르러 큰 근본이요 머리라 하며 하늘에 화합하는 것. 그러므로 천하를 고르고 조화롭게 하며 사람과도 화합하는 자라. 사람들과 조화됨을 사람의 즐거움이라 한다. 하늘과 조화로움을 일러 하늘의 즐거움이라 한다.
-德이란 무엇인가? 하늘이 하는 일이 덕이요 그를 부러 말로 설명하면 분분한 설명이 나온다. 본디 하늘의 것을 하나로 딱 집어 말하지 못함은 다음 절에서도 말하듯 늘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다만 사람이 덕을 알 방법은 하늘의 뜻에 감응하는 수 외엔 없다.
莊子曰:「吾師乎! 吾師乎! 韰萬物而不爲戾,澤及萬世而不爲仁,長於上古而不爲壽, 覆載天地刻雕衆形而不爲巧,此之爲天樂.
故曰:"知天樂者,其生也天行,其死也物化. 靜而與陰同德,動而與陽同波." 故知天樂者,无天怨,无人非,无物累,无鬼責.
故曰:"其動也天,其靜也地,一心定而天地正.,其魄不崇,其魂不疲,一心定而萬物服." 言以虛靜推於天地,通於萬物,此之謂天樂. 天樂者,聖人之心,以畜天下也.」
장자왈:[내 스승이로다! 내 스승이로다! 만물이 빨리가도 흩어지지않고, 못이 만세를 가도 어질지 않고, 상고시대가 길다해도 내 목숨엔 닿지 않고, 세상을 뒤엎고 사람들의 꼴을 만들어도 재주라 않네 이것이 하늘의 즐거움이라.
고로 이르길:"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자는 살아서 하늘과 동행하고 죽어서 만물이 되네. 고요함이란 음의 측면에서 덕과 같고 움직임은 양의 측면에서 파동이나 같다. '고로 하늘 즐거움엔 원망도, 사람의 허물도, 만물의 누적도, 귀신의 술수도 없다. 고로 이르길:"움직임은 하늘이요 고요함은 땅이요 마음이 안정되면 세상도 바르게 선다.그 넋이 채우지도, 그 혼이 지치지도 않으니 마음이 안정되면 만물이 따른다."
말이 비고 고요하면(사심없이) 천지를 바꾸니 만물과 통하고 이를 하늘의 즐거움이라한다. 하늘의 즐거움은 성인의 마음이요 이런 마음이 천하를 기른다]
-굳이 말하면 뭐로든 뭘 설명하려고도 나누고 견주려도 말고 그저 알면 된다. 말로 설명하려는 순간 그 말에 꼬투리 잡히는 것... 고로 이르길:"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자는 살아서 하늘과 동행하고 죽어서 만물이 되네. 고요함이란 음의 측면에서 덕과 같고 움직임은 양의 측면에서 파동이나 같다. '고로 하늘 즐거움엔 원망도,사람의 허물도,만물의 누적도,귀신의 술수도 없다. 고로 이르길:"움직임은 하늘이요 고요함은 땅이요 마음이 안정되면 세상도 바르게 선다.그 넋이 채우지도, 그 혼이 지치지도 않으니 마음이 안정되면 만물이 따른다."
우린 알면 떠벌이려 한다.
똑같이 알아도 말 잘하는 것도 실력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는(깨달은) 이가 적으니 먼저 깨달은 이를 보자는 말...
夫帝王之德,以天地爲宗,以道德爲主,以无爲爲常. 无爲也,則用天下而有餘. 有爲也,則爲天下用而不足. 故古之人貴夫无爲也. 上无爲也,下亦无爲也,是下與上同德,下與上同德則不臣. 下有爲也,上亦有爲也,是上與下同德,上與下同德則不主. 上必无爲而用天下,下必有爲爲天下用,此不亦之道也. 故古之王天下者,知雖落天地,不自慮也.辯雖彫萬物,不自說也.能雖窮海內,不自爲也. 天不産而萬物化,地不長而萬物育,帝王无爲而天下功. 故曰莫信於天,莫富於地,莫大於帝王. 故曰帝王之德配天地. 此乘天地,馳萬物,而用人羣之道也.
대저 왕의 덕은 세상의 머리이니 도덕을 중심삼고 무위로 법도 삼으니 이리함으로 천하에 여유가 생기는 것. 뭔가 한다는 유위란 천하를 이용하니 오히려 부족한 것. 고로 옛사람들은 무위를 귀히 쳤다. 위로도 무위요 아래로도 무위면 위아래가 덕으로 한가지되니 그리되면 왕이니 신하니 서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유위요 위로 역시 유위면 위아래가 덕과는 다르니 뭐하나 주인됨이 없다. 웃사람은 무위로 천하를 다스리고 아랫사람은 유위로 천하를 사는 것 이리함은 기실 도가 아니다. 고로 옛 왕들은 천지가 어찌 되던 그를 염려치 않고 만물의 조화가 어찌되던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에 충실할 뿐 뭘 하려않는다. 하늘이 내지 않으니 만물이저절로 되고 땅이 나서지 않으니 만물이 자란다, 제왕의 무위가 천하의 공덕이다. 고로 하늘을 믿음도 땅의 풍부함도 왕의 큼도 아니다. 고로 제왕의 덕이란 천지와 짝이 되어야 한다. 이리 천지와 맞아 떨어지면 사람들이 도에 모여든다.
-굳이 한 마디로 말한다면 모든 게 하나님 지으신 것이요 내 형제자매이니 그저 그런 마음으로 만나면 된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그런다 그저 오욕칠정을 끊고 고요한 이가 도를 깨친 이라고... 아니 도를 깨친 이는 오욕칠정이 제대로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本在於上,末在於下. 要在於主,詳在於臣. 三軍五兵之運,德之末也. 賞罰利害,五刑之辟,敎之末也. 禮法度數,形名比詳,治之末也.鐘鼓之音,羽旄之容,樂之末也. 哭泣衰絰,隆殺之服,哀之末也. 此五末者,須精神之運,心術之動,然後從之者也.
근본은 위요 아래는 끄트머리라. 중요한게 주요 설명이 필요한게 신하라.
3군과 5병이 움직이는 것은 덕의 끄트머리다.
상벌이해, 5형의 법,가르침의 끄트머리라.
예법이나 도량형, 꼴이나 이름을 설명하는 것, 다스림의 끄트머리다.
악기소리,꾸민 장식은 음악의 끄트머리다.
곡하고 우는 것이나 상복, 웃사람의 죽음에 부복하는 것은 애통함의 끄트머리다.
이 다섯가지 끄트머리는 반드시 마음이 동하고, 마음의 술책이 동하고 난 후 나중에 따를 것이다.
-뭐든 그 정신가지고 할 일 기술만 배워서는 안될 일... 모자라고 덜 된 스승이 상벌로 학생을 끌고가는 법... 진정한 스승은 그 한 아이 아이를 그저 하늘 마음으로 대하는 것... 볻돋우고 꾸중하면서...
末學者,古人有之,而非所以先也. 君先而臣從,父先而子從,兄先而弟從,長先而小從,男先而女從,夫先而婦從. 夫尊卑先後,天地之行也,故聖人聚象焉. 天尊地卑,神明之位也. 春夏先,秋冬後,四時之序也. 萬物化作,萌區有狀,盛衰之殺,變化之流也. 夫天地至神,而有尊卑先後之序,而況人道乎. 宗廟尙親,朝廷尙尊,鄕黨尙齒,行事尙賢,大道之序也. 語道而非其序者,非其道也. 語道而非其道者,安取道.
이런 끄트머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옛사람에도 있었으나 그래서 이 말단이 먼저라 하면 안된다. 임금이 먼저요 신하가 나중이고 아비가 먼저요 자식이 따르고, 형이 먼저요 동생이 따르고, 연장자가 먼저고 어린 사람이 따르고 남자가 먼저고 여자가 따르고, 남편이 앞서고 부인이 따르는 법. 귀하고 비천하고 앞뒤가 있는 것이 이 세상 되어지는 일이라면 성인이란 그를 본뜬 것 뿐이다. 하늘은 귀하고 땅은 낮음이 본질과 앎의 위계인 것. 봄여름이 앞이고 가을 겨울이 뒤로 오니 사계가 질서있게 됨이다. 만물변화를 일으킴에 있어 그 펴지고 굽어짐이 다르고 성쇠의 변화가 빠르니 변화란 흐름이다. 대저 세상의 본질(神)은 존귀하고 비천함 앞과 뒤의 질서가 있는 것 하물며 인간의 도리야 이루 말하랴. 제사에서 가친이 높임받고, 조정에서 존귀한 자가 높임 받고 마을이나 집단에선 나이가 존중되고 일을 처리함엔 지혜자가 존중되니 큰 도리의 질서 아닌가. 그러니 도리를 말하고 질서를 찾지 않음은 도리가 아닌것. 도를 말하면서 그 도 자체를 모르면 편안히 도리를 얻는가.
-예로부터 이런 끄트머리를 잡고 뭔가 아는 양 해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러니 이들이 진짜라 할 것 아니다. 도리를 흉내낸 것이 질서요 그 질서의 근본은 바로 자연의 지나가는 모습이다.
是故古之明大道者,先明天而道德次之,道德已明而仁義次之,仁義已明而分守次之,分守已明而形名次之,形名已明而因任次之,因任已明而原省次之,原省已明而是非次之,是非已明而賞罰次之,賞罰已明而愚知處宜,貴賤履位. 仁賢不肖襲情,必分其能,必由其名. 以此事上,以此畜下,以此治物,以此修身,知謀不用,必歸其天,此之謂大平,治之至也.
이래서 옛날에 도리를 밝히 아는 자는 먼저 하늘의 뜻을 밝히알고 도덕을 그 다음에 알고자 했고,
도덕이 밝아진 후에야 인의를,
인의가 그리된 후에야 분수를,
분수를 밝히하고나서야 꼴이니 이름을,
이름이나 꼴이 밝아지고서야 원인과 책임을
원인과 책임을 알고나서야 으뜸되는 일을 가리고
으뜸되는 일을 알고나서야 시비를 가리고
시비가 밝아지고나서야 상벌을,
상벌이 밝아지고나서야 어리석고 지혜로움이 제자리를 찾으니 귀하고 천한 사람이 제 자리를 잡게 됐다.
어질든 지혜롭던 기존의 인습을 깎아내지 않으니 그 할 일이 나뉘고 직급이란 명칭이 나뉜 것. 그래서 웃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양육하고 이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자기를 닦으니 지식과 모략이 의미없고 모두다 하늘 법으로 돌아간다. 이를 큰 평화요 궁극적인 다스림이라 하는 것.
-이 문장을 따르면 지혜란 맨 아래단게로 그 보다 높은 이가 상벌의 기준을 알게되어야 옳고그름을 옳고그름이 뭔지 분간하니 뭐가 으뜸인지를 그 연후 이치와 책임을 알게되고 그 후에야 세상만물을 구분하는 이름이나 꼴을 알고 그를 알고나야 분수(저 할 도리)를 알고 그 연후에 인의가 뭔지를 그리고 종내 하늘의 도리와 덕을 알게 되는 법... 이것이 진리에 이르는 단계라 해도 대과 없으니 과연 난 어디 쯤 있는가 재어 보는 척도 삼음도 좋으리라.
허탄한 이름따위 말장난으로 자기를 볶지말고 저 할도리나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저 할 도리는 않으니 말 장난에 매여있고 말도 제대로 구분 못하니 으뜸이 뭔지도 모르는 것... 으뜸이 뭔지 모르니 뭐가 옳고 그른지 조차 지 임의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은 근원이다. 원숭이도 상벌로 가르칠 수 있으니 짐승과 사람의 차이란 으뜸이 뭔지를 아는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돌아가는 이치도 세상의 구별도하고 제 분수를 알고 인의가 뭔지를 논할 수 있는 법...
故書曰:有形有名.
形名者,古人有之,而非所以先也.
古之語大道者,五變而形名可擧,九變而賞罰可言也.
驟而語形名,不知其本也. 驟而語賞罰,不知其始也. 倒道而言,迕道而說者,人之所治也,安能治人.
驟而語形名賞罰,此有知治之具,非知治之道.
可用於天下,不足以用天下,此之謂辯士,一曲之人也.
禮法數度,形名比詳,古人有之,此下之所以事上,非上之所以畜下也.
그래서 경전들이 말하길: 뭔가 꼴을 나누고 이름 지어지는 것.
이런 구분이야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게 먼저라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큰 도를 말할 때엔 다섯번을 생각하고 形名을 들먹였고, 아홉번을 생각하고 상벌을 말했다.
갑자기 형명을 말하는 것은 그 근본을 모르는 것이요 갑자기 상벌을 말하면 그 시초를 모르는 것. 도리를 뒤집어 말하고 잘못된 도를 설명함은 사람을 다스리려 하는 것인데 어찌 능히 다스릴까?
갑자기 형명상벌을 말하려면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 하지만 다스리는 도리는 모르는 것. 천하를 쓸수있다고 하나 기실 부족하니 이런 사람을 말만 많은 선비라 할 것이라 한 번 꼬인 사람이라.
예법이나 도량형, 꼴과이름을 나누고 설명함은 옛사람도 그리했지만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섬기는 도리도 웃사람이 아랫사람 기르는 도리도 아니다.
-예가 어쩌고 따지고 날세우는 모지란 아이들????
코끼리 본 자랑하는 장님이나 한가지...
장자가 강조하는 한 가지는 '제대로 아는 지' 다시 돌아보라는 말이다.
3.
昔者舜問於堯曰:「天王之用心何如?」
옛사람 순이 요에게 묻길:[하늘 임금의 마음씀이 어떠할까요?]
堯曰:「吾不敖無告,不廢窮民,苦死者,嘉孺子而哀婦人. 此吾所以用心已.」
요가 답하길:[난 오갈데 없는 사람에게 방자하지 않으며, 곤궁한 사람에게 막 대하지 않으며, 죽은 자를 애통해 하며, 어린아이를 이뻐하여 산모들의 고통을 애처로이 여긴다. 이게 왕으로서 내 마음씀이라]
舜曰:「美則美矣,而未大也.」
순이 답하길:[아름답다 할 만 하니 아름답긴하다 그러나 아직 위대하진 않다]
堯曰:「然則何如?」
요 묻길:[그럼 어떤게 위대한건데?]
舜曰:「天德而土寧日月照而四時行.,若晝夜之有經.,雲行而雨施矣.」
하늘 덕이 땅을 평안케하고 일월을 비추게하여 사시를 제대로 가게 한다. 그래서 주야가 정해진 길이 있는 것. 구름이 나오니 비가 나리는 것]
堯曰:「膠膠擾擾乎! 子,天之合也.,我,人之合也.」
요 말하길:[그렇게 되어 그렇군! 넌 하늘에 합한 자요 난 사람에 합한 자라 그랬군]
夫天地者,古之所大也,而皇帝堯舜之所共美也. 故古之王天下者,奚爲哉? 天地而已矣.
대저 천지란 위대한 것 그래서 요순이 아름다움을 따르는 것. 그러니 옛 왕이 천하와 합하여 있는 것이네 어찌 가능하냐고? 천지 이치가 그러니 그렇지.
-장자의 관점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말고 하늘 이치를 따르는게 왕의 할 일이라 보는 것 요순시절이 평온했다 함은 그네들이 자기 생각보다 하늘과 땅을 듣고 느낄 줄 아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 설파하며 대중적 인기 사람들의 이목을 초월하라고 주장한다.
4.
孔子西藏書於周室.
子路謀曰:「由聞周之徵藏史有老聃者,免而歸居,夫子欲藏書,則試往因焉.」
공자가 주나라 왕실에 책을 보존하고자 했다.
자로가 지혜를 내어 말하길:[제 듣기론 징장사(책을 모아들이는 사람)로 노담이란 사람이 있는데 낙향하였답니다. 책을 보존하시려면 가서 한 번 물어나 보시지요]
孔子曰:「善.」
공자 이르길:[좋은 생각이다]
往見老聃,而老聃不許,於是繙六經以說.
가서 노담을 만나니 노담이 허락질 않아 6경을 말로 풀어 보이게 됐다.
老聃中其說.,曰:「大謾.,願聞其要.」
노담이 그 설명 중에 말하길:[잡소리다 그 요점만 말하라]
孔子曰:「要在仁義.」
공자 이르길:[요점은 인의지요]
老聃曰:「請問,仁義,人之性邪?」
노담 묻길:[묻자 인의란게 사람들의 본성이냐?]
孔子曰:「然. 君子不仁則不成,不義則不生. 仁義,眞人之性也,又將奚爲矣?」
공자 답하길:[그럼요 임금이 어질지 않으면 이룸이 없고 의롭지 않으면 사람들의 삶이 곤고하지요. 인의는 참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老聃曰:「請問,何謂仁義?」
노담이 묻길:[뭐가 인의냐?]
孔子曰:「中心物愷,兼愛无私,此仁義之情也.」
공자 답하길:[중심은 편안하고 모두를 사랑하여 사사로움이 없으니 이를 인의의 뜻이라합니다]
老聃曰:「意,幾乎後言! 夫兼愛,不亦迂乎! 无私焉,乃私也. 夫子若欲使天下无失其牧乎? 則天地固有常矣,日月固有明矣,星辰固有列矣,禽獸固有群矣,樹木固有立矣. 夫子亦放德而行,循道而趨,已至矣.,又何偈偈乎揭仁義,若擊鼓而求亡子焉? 意,夫子亂人之性也!」
노담이 말하길:[무릇, 뒷말=설명이 어찜이냐! 겸손히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한번 에둘러 가는 것 아니냐! 삿됨이 없는 사랑이란 삿됨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냐? 천지가 이미 자기 나름의 常: 항구여일한 법이 있는데, 일월이 이미 빛을 가지고 있는데,별들이 다 제자리를 갖추고 있는데 금수가 다 제 각각 사는데, 초목이 다 제대로 서있는데. 넌 어찌 그 덕의 운행을 놓치고 있는가 그저 진리를 따르면 이미 이를것을...어째 인의라는 표지를 내어 애를 씁니까 이는 북치며 죽은 귀신을 불러내는 것 아니요? 대저, 당신은 사람의 본성을 흐트릴 뿐이요!]
-인의란 전장에서도 말한 바, 공맹의 주장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늘 덕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인의니 예니 지혜니를 들어 설명하려는 시도 일 뿐이고 또 그런 설명들을 들고 나와 떠드는 무리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본성을 호도하고 왜곡함을 꾸짖는 것...
여기서 노담은 노자를 말하고 있지만 기실 시기적으로 공자 당대 사람이 아니나 다만 그 이름을 거론함은 노자의 무위 자연의 사상을 강조하는 것... 무위자연이란 말 그대로 "인위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사는 것" 아니 이미 부어진 자기를 잘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역으로 인이 어쩌고 저쩌고 논하는 사람들은 정작 하늘 덕은 모르고 그를 비춘 그림자=인의를 가지고 가타부타 논하는 어리석은 짓 임을 밝히는 것이다.
5.
士成綺見老子而問曰:「吾聞夫子聖人也,吾固不辭遠道而來願見,百舍重趼而不敢息. 今吾觀子,非聖人也. 鼠壤有餘蔬,而棄妹之者,不仁也,生熟不盡於前,而積斂无崖.」
勞資漠然不應.
사성기가 노자를 만나 말하길:[난 당신이 성인이라 들었기에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뵙습니다, 100개의 여관과 물집이 쌓이길 반복함도 나를 멈추지 못했읍니다. 이제 당신을 보니 성인 아니로군요. 쥐들 사는데도 남는 푸성귀가 있는 법인데 어리석은 이를 내 팽겨두니 어질지 못하군요, 날 것과 익은 것 모두 눈 앞에 있건만 끌어모으기에 가림이 없군요] 그저 끌어 모을 뿐 남들이 뭐라든 대꾸도 없이...
-노자의 무위자연에 대해 꼬집지요.
어찌보면 자기 보신주의로 일관하는 듯한 노자의 태도...온갖 변설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를 지키는 태도...
남을 이끌어 주기보다 그저 묵묵히 제 앞가림이나 하는 태도... 얄밉지요... 성인이라면 남들을 헤아리고 거들어야 하는데...
성인이 거들 것은 깨우치려 애쓸 경우에만 국한 하지요.
그릇 크기 보아가며 나서는 겁니다.
士成綺明日復見,曰:「昔者,吾有刺於子,今吾心正却矣,何故也?」
老子曰:「夫巧知神聖之人,吾自以爲脫焉. 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呼我馬也而謂之馬. 苟有其實,人與之名而弗受,再受其殃. 吾服也恒服,吾非以服有服.」
사성기가 다음 날 다시 만나서 말하길:[어제 내가 당신을 난도질 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졌으니 뭔 연고인가?]
노자 말하길: [ 대저 공교로운 사람의 지식, 마음, 고결함 등은 내 스스로 벗어난듯하오. 어제 당신이 날 소라 칭했는데 소를 보고 소라 했을 것이오 날 말이라 부름은 내 꼴이 말이니 그랬겠지요. 아마 실지 그랬을 거외다. 그런 이름에 맞는 사람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재앙아니요. 내가 굽히는 것은 늘 굽히는 것이요 내가 수긍하면서 수긍하지 않지는 않소]
- 꾸미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
남이 뭐로 보든 그런 모습이라 자신을 수긍하는 너그러움...
진정 극에 이른 이의 가장 진솔한 모습이지요.
남의 이목을 마음두지 않는...
그러나 날 강요하는 것과는 다르죠. 난 그냥 날 보여줄 뿐...
진정 자유한 사람의 특권입니다.
士成綺雁行避影,履行遂進而問:.「修身若何?」
老子曰:「而容崖然,而目衝然,而顙頮然,而口鬫然,而狀義然,似繫馬而止也. 動而持,發也機,察而審,知巧而覩於泰,凡以爲不信. 邊竟有人焉,其名爲竊.」
사성기가 절도있게 행하며 그림자를 피하며 따라 나서며 묻길:[자기를 닦는다는 것이 이런 겁니까?]
노자 답하길:[얼굴에 뭔가 편치않고, 눈은 불안하게 움직이고, 안색을 씻어내고, 입은 때에 따라 말을 바꾸며 몸은 진중한 듯 뭔가 만드려하나 꾸미는 중인 모습이라. 뭔가 움직임을 속이고 있고, 시도하면 뭔가 꿍꿍이가 있고, 뭔가를 깊이 살피고, 궁리가 교묘해 뭔가 큰 걸 노리고, 평범을 가장하나 모든 걸 믿지않는다. 늘 그리 자신을 어디에도 속하게 두지 않으니 뭔가 훔치려는 도둑이라 하오]
-순수함으로 보는 사람은 상대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 보이면 순수한 사람은 금방 알아채지요.
눈빛이 맑지않고 말에 일관성이 없으면 속이려는 사람이라 하지요.
우리는 그걸 알아야지요...
사람마다 단계마다 다르지만 늘 그 단계 마다 사람을 판단하는 원칙은 신실함입니다.
그것 만이 나를 밝히 보이는 길이지요...
아무리 내 마음에 진실이 커도 그를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감추거나 알 수 없는 말로 표현하면 상대에 불 성실한 겁니다.
아니 오히려 상대를 속이는 겁니다 아니 자기를 밝히 알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은 먼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6.
夫子曰:「夫道,於大不終,於小不遺,故萬物備,廣廣乎其无不容也,淵淵乎其不可測也. 形德仁義,神之末也,非至人孰能定之! 夫至人有世,不亦大乎! 而不足以爲之累. 天下奮棅而不與之偕,審乎無假而不與利遷,極物之眞,能守其本,故外天地,遺萬物,而神未嘗有所困也. 通乎道,合乎德,退仁義,賓禮樂,至人之心有所定矣.」
노자 이르길:[대저 도란 그 끝이 없이 크고, 작아도 내버려 둠이 없다 그래서 만물이 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요, 크고 넓다하나 형용하지 못하는 것 아니요 깊고 깊으니 가히 측량할 길 없다.덕이,어짊이 올바름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것은 정신작용의 끄트머리일 따름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뭔 수로 그를 정한단 말인가!
지극한 깨달음을 얻은 이가 세상에 있다면 그 역시 큰 것 아닌가! 하여 부족함이 누가 되질 않는다. 천하의 공다툼에 따르지 않고 살피되 꾸미지않으니 이문을 따라 변하지 않고 사물에 진솔하니 참되고 그 근본을 능히 지킬 수 있어 세상 밖으로 만물을 떠났으니 정신이 그 인과를 따지지 않는다.
통하니 진리고 합하니 덕이요 물러서니 올바름이요 손님처럼 어려워하니 禮樂이라 지극한 깨달음을 얻은 마음만이 그 자리를 아는 법]
- 우리는 인의를 향해 오르려 하지만 그런 것은 산을 내려오는 자의 모습에서 차오르는 기운:하늘 진리를 아는 사람의 기운을 형용한 것 일 뿐... 다만 그런 이를 알아볼 길은 그런 이는 공다툼이나 이문을 따지지 않고 사물을 너무 분변하지 않는 듯이 해야 보인다.
모든 걸 꿰뚫어보니 진리요, 그저 그러려니 화합하니 덕이요 저 자리 아니면 물러서니 올바름이요 그저 이 모든 것에 손님처럼 대하니 예악에 어긋나지 않지요 지극한 깨달음:하늘 진리를 알고나면 다 저절로 갖춰 질 것이라...굳이 인의예지 나눠가며 얻으려 말라.
7.
世之所貴道者書也,書不過語,語有貴也. 語之所貴者意也,意有所隨. 意之所隨者,不可以言傳也,而世因貴言傳書. 世雖貴之,我猶不足貴也,爲其貴非其貴也. 故視而可見者,形與色也.,聽而可聞者,名與聲也. 悲夫,世人以形色名聲爲足以得彼之情! 夫形色名聲果不足以得彼之情,則知者不言,言者不知,而世豈識之哉!
세상에 귀한 도리가 책이된다, 글이란 말에 불과하지만 그 말들이 귀한 것이다. 말들이 귀한 것은 그 가운데 의지가 있기 대문이다 의지란 따를 만한 것이요 의지란 따름이라 이를 말로 전하기는 힘들지만 말로 전해지기에 말이나 글이 세상에 유익하다. 세상에 무엇이 이보다 귀하리 나란 오히려 부족하니 그 귀함은 그리 귀하지 않다는 것에서 난다. 그러므로 보고서 알수있다함은 형이 색을 더한 탓이요. 들어 깨칠수있다함은 이름이 그 나타냄이 있기때문이다. 슬픈 현실은 세상사람들이 그 꼴이나 색 명성으로 그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무릇 그 형색 명성으로 그 본질을 어찌 알꼬 그래 서 아는자는 외려 말이 없고 말많은 자는 모르는 것 이것이 세상사람들의 앎이라!
-“너를 죽일거야”라는 단순한 말이 강도가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 때와 사랑하는 사람간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일 때와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 달라진다.
요순시대에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노래했던 백성들의 행복을 우리가 알 수 있나? 그 완전한 낙원을... 낙원이 뭔가? 천국이 뭔가 아랍인들에게 천국이란 70명의 처녀들이 기다리는 곳일 뿐,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 천국과 같은가? 아니 말이란 그저 뜻을 담는 그릇 일뿐... 그러니 그릇의 외양을 닦을 일 아니요 그 안에 담는 뜻을 다듬어야 할 일... 요순시대 그 사람의 언설은 온데 간데 없고 똑 같은 글에 전혀 다른 말의 뜻이 실려 전해 오고 다르게 해석될 뿐이다.
말은 그래서 해석(interpretation)이 필요하다 아니 해석을 위해서는 그 상황(context)이해가 필요하다. 그 전이해 없이 무슨 단어 하나로 인해 내 판단으로 결정해버리면 그건 엄밀한 의미로 양방의 의사 소통이 아닌 강요나 흰소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의사소통은 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통하지 않는다. 수천년 전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언설을 적은 글을 죽어라고 읽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이 수천년전 사람들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그 죽은 말의 뜻에 매달려 당시의 사람들과도 소통하지 못했다. 불과 수년 전에 나도 백여년 전이든 아니든 그 사람들의 글만 읽으면 그 글을 쓴 사람과도 소통하고 오늘의 사람과 소통하여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연인지도 모를 소통과 자주 마주치려면 근원적으로 경험이 같아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것, 이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봉사하게 할 것,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것은 모두 의심할 것…. 현실 속에서 진리를 궁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비진리인 채로, 비윤리라 하더라도 비윤리인 채로 바라 볼 것… 무슨 이상(~ism)이든 인생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다.
그러니 '난 네가 맘에 안들고 틀렸어라는 식보다 '난 이런 이론적, 사상적 바탕에서 이 문제를 이리 본다' 라는 식의 대화를 하는것이 적어도 진리를 고구하는 학문적 예의요 상대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8.
桓公讀書於堂上,輪扁斲輪於堂下,釋椎鑿而上,問桓公曰:「敢問,公之所讀者何言邪?」
제환공이 당상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이 “ 공께서 읽은 것이 무엇인지 감히 묻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公曰:「聖人之言也.」
공이 말하기를, “성인의 말씀이다.”
曰:「聖人在乎?」
“성인이 지금 있습니까?”
公曰:「已死矣.」
“이미 죽었다.”
曰:「然則君之所讀者,故人之糟魄已夫!」
“그러면 공께서 읽은 바는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桓公曰:「寡人讀書,輪人安得議乎!有說則可,无說則死.」
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독서하는데 바퀴장이 따위가 어찌 議論하려 하느냐? 네 말에 일리가 있으면 살려줄 것이로대 그렇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다.
輪扁曰:「臣也以臣之事觀之. 斲輪,徐則苦而不入. 不徐不疾,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然則君之所讀者,故人之糟魄已夫!」
장인이 말하기를, “신이 신의 일로서 보건데, 바퀴를 쪼개는 것은 느려서도 안되고 빨라서도 안됩니다. 손에 얻은 바가 있고 마음이 응해야지 말로써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신의 자식에게도 깨우쳐 주지 못하고 신의 자식 또한 신에게서 받지 못해, 일흔이 되도록 늙었어도 여전히 바퀴를 쪼개고 있습니다. 옛사람과 그 전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죽거나 없어졌으니, 공이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눈에 뵈고 본을 보이는 기술과 기능도 전하기가 쉽지 않거늘, 사상이나 삶을 말로 전하는 것의 어려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냥 들을 귀있는 자들이나 들을 일...
내가 사는 삶이나 바람직 하다고 여기는 삶이 올바른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히 서로 통하는 바가 있어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로 웃을 뿐이다. 반가운 것과 우연히 마주쳤으므로 즐겁기 때문이다.
산 꼭대기에서 부는 바람은 그 꼭대기에 오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그저 그렇다라는 걸 전할 뿐이지 그걸 깨닫고 알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 그런 것이 있음을 알기라도 하면 언젠가 가 보지 않을까 하는 그저 나눔일 뿐...
그러니 가 보지 못한 이완 그 얘기를 할 것 아니요 그 곳에 갈 마음 없는 이에겐 쓸모없는 잡소리 일 뿐... 굳이 속 볶을 일 없다.